"스위스 명장도 못 고친 시계, 내가 살려냈죠"
대한민국 시계수리명장 장성원
0.001mm 오차도 용납못하는 정교한 직업
명품 본사에서도 못 고치는 시계 수리도
"그분이 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다른 말이 필요 없습니다. 기술이 세계 수준이죠."
오랜 시간 시계를 고쳐본 수리공들에게 '이 사람'에 대해 묻자 한결같이 최고라고 답한다. 시계 수리 분야에서는 따라올 사람이 없다는 주인공은 대한민국 1호 시계 수리 명장 '장성원(68)' 명장이다. 그는 52년째 고장 난 시계에 새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브랜드 본사에서 '수리 불가' 판정을 받은 시계도 장성원 명장 손에 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새것처럼 움직인다. 현재 장 명장은 서울시 강남구 압구정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시계방 '장성원 시계'를 운영하고 있다. 압구정 장성원 시계에서 "못 고치는 시계가 없다"고 자부하는 시계 수리 명장 장성원 명장을 만났다.
장성원 명장. /jobsN |
0.1mm 부품 다루는 정교한 직업
장성원 시계 수리 명장은 말 그대로를 시계를 고치는 사람이다. 고장 난 시계를 진단하고 필요한 부품을 수급해 시계를 고친다. 이때 필요한 부품이 없다면 직접 만들기도 한다. 겉으로 봤을 때는 시계를 수리하는 일이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시계를 하나하나 뜯어보면 시계 수리공의 진가가 드러난다. 기계식 시계 하나에 들어가는 부품은 수백개. 이중 가장 작은 부품은 지름 0.1mm다. 장 명장은 부품을 모두 다룰 줄 아는 것은 물론 똑같이 만들기도 한다.
"수리가 들어오면 우선 확대경을 통해 시계의 어떤 부분이 고장이 났는지 파악합니다. 예를 들어 시침이나 분침이 돌아가다 멈추는 경우가 있어요. 시계를 열어보면 태엽을 감는 기어가 부러진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톱니가 부러진 자리에서는 기어가 돌아가지 않으니 태엽이 감아지지 않아요. 결국 시계가 멈추는 것이죠. 이럴 경우 부속을 새로 깎아서 넣습니다."
기존 부품과 0.001mm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크기로 만들어야 시계가 다시 돌아간다. 작으면 지름 0.1mm 부품까지 다룬다. 그만큼 섬세함과, 정교함, 집중력이 필요한 직업이다.
"기존 기어 지름과 똑같이 재료를 깎고 난 후 기어를 만듭니다. 기어를 만든다는 건 뾰족한 톱니 모양을 내는 작업이에요. 왼손은 톱니 사이의 간격을, 오른손은 톱니 깊이를 조절하는 기계를 이용해 만듭니다. 톱니의 개수와 간격이 일정해야 시계가 작동해요. 조금이라도 오차가 생기면 재료를 깎는 것부터 다시 해야 하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죠."
장 명장은 직접 부품을 깎아서 시계를 수리한다. 완성된 기어는 지름 1.7mm이다. 가운데에 톱니 8개, 겉에는 15개가 있는 기어다. 이 부품 역시 직접 만들었다. /ebs 유튜브 캡처 |
장성원 명장이 만든 쌀 한톨보다 작은 부품. 부러진 기어를 대체할 수 있는 부품을 똑같은 크기로 만들었다. /모닝와이드 방송화면 캡처 |
18살 때부터 시계와 함께
장성원 명장이 이렇게 시계를 수리한 지도 벌써 52년째다. 이런 그가 처음 시계 수리와 인연을 맺은 건 18살 때였다.
"17살 때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졌습니다. 저도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생업에 뛰어들었죠. 중고시계 장사를 하던 아버지 후배를 따라다니면서 일을 했는데, 시계방을 돌아다니면서 헌 시곗줄을 사는 게 제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매일 시계를 접하다 보니 관심이 생겼어요. 사장님들께 헌 부품을 받아서 모았어요. 밤새도록 그 부품을 조립하고 다시 풀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낮에는 돈을 벌고 밤에는 시계를 조립했다. 조립하다 막히면 지인이나 기술 학원, 부품 제작 관련 책을 보면서 해결했다. 그렇게 시계에 점점 빠져들었다. 결국 일을 그만두고 아예 시계방으로 들어갔다. 일을 도우면서 어깨너머로 기술을 터득했다. 자신의 기술을 공유하지 않는 시계 수리공 사이에서 열심히 자신만의 기술과 노하우를 익혀나갔다. 10년 동안 시계를 수리하고 부품을 만들어 실력을 쌓았다. 1979년 기능경기대회 시계 수리 부문에 출전해 금메달을 따기도 했다. 시계 수리 기술자로 인정받아 전국 기능경기대회, 지방 경기대회 등에서 심사위원도 맡았다.
국내에서는 한 분야에서 20년 이상 종사해 최고 수준의 기술과 기능을 가진 사람을 명장으로 선정한다. 장성원 명장은 1997년 대한민국 시계 수리 부문 명장에 선정됐다. 국내 최초였다. 명장으로 선정되려면 우선 시계 수리 기능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또 산업인력공단과 고용노동부에서 정한 20년 이상의 현장 경험도 필수다. 이후 품질관리, 후배양성 등 이력은 물론 기술자 본인이 보유한 기술로 만든 시제품도 평가한다. 장성원 명장은 "한 우물만 파서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에 나 자신이 대견했다"며 명장으로 선정된 날을 회상했다.
청년 시절 장성원 명장과 기능경기대회에서 금메달 수상한 모습. /ebs 유튜브 캡처 |
본사에서도 못 고치는 시계 고쳐 입소문
고치지 못하는 시계가 없다는 소문에 장성원 명장이 운영하는 시계방에는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오래된 시계는 시계 본사에도 부속이 없기 때문에 수리를 맡지 않는다. 장 명장은 이런 '수리 불가' 판정을 받은 시계도 살려내 입소문을 탔다. 또 시계의 3대 그랜드 컴플리케이션(복잡 기능)을 모두 다룰 수 있다.
3대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은 '투르비옹(중력으로 생기는 오차를 조정하는 기능)', '퍼페추얼 캘린더(큰달·작은달·윤달을 계산해 날짜를 표시하는 기능)', '미닛 리피터(소리로 시간을 알려주는 알람기능)'다. 시계에 이 3대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중 하나를 추가할 때마다 가격이 최소 5000만원 이상 올라간다고 한다. 기술 자체가 복잡하고 정교해서 제조사에서만 분해와 조립이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장 명장의 손에 들어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는 "독학으로 3대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을 모두 터득했고 제품 분해 및 조립은 물론 부품까지 제작할 수 있다. 3대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이 모두 들어간 스위스의 '파텍 필립(Patek Philippe)' 수리도 맡았었다"고 말했다. 이런 장성원 명장이 작업을 맡은 시계 중에는 150년이 넘는 시계, 가격이 25억~26억원까지 나가는 시계도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이런 시계를 브랜드숍이 아닌 장성원 명장에게 맡기는 또 다른 이유는 실력과 합리적인 가격이다. 장 명장은 브랜드숍보다 저렴한 가격에 시계를 수리한다. 많은 소비자가 수리 비용, 기간을 모른 채 본사에 보내기도 한다. 고장 원인이나 수리 비용 책정 이유, 기간 등을 모르고 무작정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한 손님은 '브랜드숍에 문의했더니 견적이 800만원이 나왔다'며 제게 가져왔어요. 시계를 열어보니 250만원 정도면 고칠 수 있겠더군요. 그 뒤로는 저희 단골입니다."
둘째 아들과 함께. /jobsN |
”기계식 시계는 사라지지 않을 것”
시계 수리 명장의 월수입은 그때그때 다르다. 시계마다 수리 가격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오래된 시계거나 고가의 제품은 수리비도 비쌉니다. 고가일수록 정교한 시계인데, 그런 시계들은 수리 기간이 오래 걸려요. 또 시중에 없는 부품들은 제가 직접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수리 비용이 많이 들죠."
요즘에는 전자식 시계는 물론 삼성전자와 애플 등 다양한 IT기업에서 내놓은 스마트워치도 많아졌다. 기계식 시계보다 정확하고 편리하면서 가격도 저렴하다. 그럼에도 장성원 명장은 "기계식 시계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전자식 시계가 많아져도 기계식 시계는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기계식 시계만의 매력이 있기 때문이에요. 내가 시계를 차고 있다는 걸 인지하게 해주는 묵직한 무게감과 물 흐르는 듯한 초침의 움직임이 그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정교함도 매력입니다. 기계식 시계는 인공위성에 견줄 만큼 극도로 정밀한 기계죠. 또 전통을 추구하는 소비계층이 있기 때문에 독보적인 시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계 수리공 역시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손재주가 있고 시계를 좋아한다면 도전해볼 만한 직업입니다. 무엇보다도 시계 수리는 정년이 없어 이 나이에도 계속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입니다."
이런 장성원 명장의 목표는 시계 기술을 전수하는 것이다.
"시계 명장은 남들이 모르는 자신만의 기술을 갖고 있어요. 기술 전수 없이 죽으면 자신을 끝으로 그 기술은 사라지는 거죠. 저는 제 기술을 후배들에게도 전수하고 싶어요. 한때 동서울대학교에서 시계 주얼리과 겸임교수로 5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지만, 더 전문적으로 가르치고 싶습니다. 지금은 작은아들이 제 옆에서 기술을 배우고 있죠. 나중에는 작은 아카데미를 만들어 제자들에게 제 기술을 전수하고 싶습니다."
글 CCBB 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