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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친구에게 준 선물이 세상을 바꿨습니다”

휠체어 타는 모든 어린이에게 수백만원 제품을 무료로 주는 이 남자의 정체


전기 모터를 이용해 휠체어를 움직이는 장치를 만들었다. 휠체어를 타는 딸 친구에게 줄 선물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게 세계에서 가장 가볍고, 가격도 싼 혁신적인 제품이었다. 회사를 세워 제품을 생산했다. 그리고 휠체어를 타는 우리나라 어린이에게 이 제품을 무료로 선물하고 있다. 한국에서 돈을 벌 마음은 없다. 하지만 해외로 눈을 돌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세계 시장 점유율 30%가 목표다. 심재신(46) 토도웍스 대표 창업기는 선물 이야기로 시작해 선물 이야기로 끝난다.

작업중인 심재신 대표 /잡스엔

“딸 친구와 한 약속이 시작이었습니다. 다리가 불편해 휠체어를 쓰더군요. 처음 본 친구라 ‘왜 밖에 자주 안 나오냐’고 물어봤어요. 어디 가서 놀고 싶으면 그곳까지 차에 휠체어를 싣고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휠체어를 타야 움직일 수 있다고 합니다. 전동 휠체어는 움직이기 편하지만 무거워서 차에 실어 가져오기가 힘들다고 했어요. 무게가 100kg이 넘습니다. 또 가벼운 수동 휠체어는 차에 싣기는 쉽지만 움직일 때 직접 손을 써야 하는데 힘이 부친데요. 그래서 집밖으로 나가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수동 휠체어를 편하게 움직일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는 기계 전문가다. 또 ‘상상하는 모든 것을 만들어준다’는 회사를 15년간 운영해온 경영자였다.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통신장비 전문가 등 다양한 엔지니어들이 일하는 회사 이름은 애니모스. 주로 대기업이 앞으로 생산할 물건의 시제품을 만들었다. 기업들은 시장에 내 놓을 생각인 제품을 미리 만들어 본다. 직접 만들 때도 있지만 외부에 맡기기도 한다. 애니모스는 ‘이런 제품을 만들어 달라’면 실제로 제품을 만들어 주는 회사였다. 

부품을 다듬고 있는 심재신 대표 /토도웍스 제공

휠체어를 움직이는 전동기구를 만들기 위해 딸 아이 친구를 여러 번 공장으로 초대했다. 뭐가 필요한지, 불편한 게 무엇인지 묻고 제품을 만들었다. 이야기만 듣고 물건을 만드는 일엔 자신이 있었다. 직원 모두가 단 1명을 위해 수동 휠체어를 움직이는 전동기구를 만든다는 목표를 가지고 3개월간 일했다. “직원들도 다들 아이가 있었습니다. 부모 마음으로 즐겁게 일했습니다.” 그렇게 전기모터로 휠체어를 움직이는 전동키트, 토도 드라이브가 탄생했다. 


“어? 팔려고 만든 게 아닙니다”


전동키트를 만들어 주고 며칠이 지나자 갑자기 전화가 빗발쳤다. 아이가 다니던 병원에 전통키트를 단 휠체어를 타고 갔다. 이를 본 다른 아이 부모들이 우리 아이 것도 부탁한다고 전화를 걸었다. 처음엔 파는 물건이 아니라고 했지만 매몰차게 거절하기 힘들었다. 결국 20대를 더 만들기로 했다. “원가를 뽑아보니 400만원 정도였습니다. 수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에 인건비가 많이 나왔습니다. 소량생산이라 부품 값도 비쌌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물건을 만들었는데 필요한 아이들이 20명이 있다’는 글을 포털 사이트에 올려 모금을 했어요.” 이른바 스토리 펀딩 서비스를 활용해 두 달 만에 1200만원을 모았다. 나머지 비용은 저희가 댔습니다. 20명 아이들이 선물을 받았다. “펀딩을 할 때 하루 100통씩 문의 전화가 왔어요. 상품으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토도 드라이브/토도웍스 제공

내가 도대체 뭘 만들었나, 다들 왜 이렇게 좋아할까 생각하다가 인터넷을 검색해 봤다. 토도 드라이브는 이동형 의료보조기기였다. 그 가운데서도 파워 어시스트(power assist)라 불리는 제품이었다. 한국엔 만드는 업체가 없었다. 미국, 일본, 독일업체가 생산했다. “가격을 보고 좀 놀랐습니다. 최소 600만원에서 최대 1000만원이었습니다. 우리가 만들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토도 드라이브 가격은 176만원이다. 


다른 제품을 상세히 살펴보다가 심 대표는 또 한 번 놀랐다. 토도 드라이브가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제품이었다. 다른 제품은 15~40㎏였는데 딸 친구를 위해 만든 선물은 5kg이었다. “처음 설계부터 무게에 신경을 썼습니다. 엄마들이 몇 ㎏까지 들 수 있는지 생각해봤습니다. 마트에 쌀 20㎏짜리가 있어요. 주부들도 들어 카트에 싣고 계산대로 갑니다. 수동 휠체어가 보통 10㎏~15㎏입니다. 그래서 상한선을 5kg으로 정했습니다.” 수동형 휠체어는 가벼울수록 비싸다. 쉽게 말해 무게가 경쟁력이다. 딸 친구를 위해 만든 선물이 말 그대로 세계 시장에서도 통할 물건이었다. 

토도 드라이브 /토도웍스 제공

재밌는 것은 이런 제품이 나온 이유가 무지, 혹은 무식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른 제품과 동력전달 방식이 다릅니다. 다른 제품은 모두 바퀴를 떼어내고 모터가 든 바퀴를 끼워 넣는 방식입니다. 전동 휠체어가 다 그런 방식을 씁니다. 자연스럽게 수동식 제품을 움직이는 제품도 그 방식을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우리 제품은 바퀴에 매달아 놓은 모터가 바퀴를 굴리는 방식입니다.” 만약 처음부터 판매, 대량생산을 염두에 뒀다면 시장조사를 했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선물용 딱 1개를 만들 생각이었다. 심지어 이미 그런 제품이 있는 것도 몰랐다. 선물 받을 사람 이야기만 듣고 상상 속에서 제품을 끄집어 냈다. 


만약 심 대표가 휠체어란 제품에 대해 미리 알았다면 지금의 토도 드라이브는 없었다. “솔직히 다른 제품들을 보고 시장 조사를 한 다음 제품을 만들었다면 우리도 휠에 모터를 넣은 제품을 만들었을 겁니다.” 고정 관념 없는 백지상태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독창적, 혁신적인 제품이 나왔다. “해외전시회에 가져갔을 때 바이어들이 ‘왜 지금까지 이런 제품이 없었을까’라고 말하는 것을 듣기도 했습니다.” 70~80도 가파른 언덕길을 직접 타고 올라가 본 다음 나온 소감이었다. 앞으로 다른 업체는 모터가 휠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 있는 파워 어시스트를 만들기 힘들다. 토도웍스가 한국, 미국, 중국, 유럽 등에서 특허를 받았기 때문이다. 


2016년 애니모스 경영을 다른 이에게 맡기고 토도웍스를 만들었다. 하지만 당장 돈을 벌 수는 없었다. 의료기기 시장의 특성 때문이었다. 의료기기 시장의 가장 큰 손은 각국 정부다. 정부가 복지를 위해 기기를 살 때 보조금을 준다. 물론 엄격한 심사를 통과해야만 보조금을 받을 자격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보조금 지급 대상 리스트에 제품이 올라가면 고객 입장에선 가격이 확 떨어진다. 제조업체 입장에선 의료기기로 인증을 받지 못하면 물건을 팔기가 어렵다. “미국이나 유럽에선 장애인들이 정부보조금을 받아서 무료 또는 원래 가격의 10% 정도만 주고 의료기기를 삽니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 인기 있는 파워 어시스트 제품 가격은 500만~600만원대. 하지만 보조금을 받으면 10유로(약 1만3000원)면 살 수 있다. 

토드웍스 심재신 대표 /잡스엔

그러나 한국에선 현재 파워 어시스트 제품을 살 때 보조금을 받을 수 없다. 의료보조기기 인증을 받은 제품만 보조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의료보조기기 리스트에 파워 어시스트가 없었다. 담당부처인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문의하니 관련 법을 정비하고 인증 기준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4년간 법 개정과 인증 기준 고시를 기다렸습니다. 식약처에서 2019년말 기준을 고시했습니다. 인증 기준 세부항목도 나왔습니다. 현재 인증 테스트에 들어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올해 안에 토도 드라이브가 의료기기 인증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고객들이 올해 안에 토도웍스가 만든 제품을 싸게 장만하기는 어렵다. “인증이 끝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의료보험공단이 인증 받은 제품에 대한 보험수가를 정하는데 시간이 걸립니다.” 쉽게 말해 토도 드라이브를 살 때 가격의 몇 %를 의료보험비로 지원할 것인지를 정하는데 시간이 든다. “이외에도 관련 기관이 많습니다. 식약처 인증을 통과해도 실제로 고객들이 혜택을 보려면 1~2년은 걸린다고 봐야 합니다.”


한국 시장이 활짝 열리려면 앞으로도 1~2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다. “처음부터 한국 시장에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기업이 돈을 벌 생각이 없다는 이야기를 믿기 힘들다. 하지만 토도웍스는 실제 돈만 생각했으면 할 수 없을 일을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에 휠체어를 타는 6~13세 어린이가 최대 2500명 정도 있습니다. 2019년부터 중견기업인 상상인과 함께 회사에서 만든 수동 휠체어와 토도 드라이브를 이들에게 무료로 선물하고 있습니다. 현재 2000개 정도가 나갔습니다. 받아가지 않은 친구들은 아직 이 소식을 모르는 듯합니다. 대부분 정보약자 계층일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토드웍스가 개발한 휠체어 토드아이. 6월부터 150만원에 판매할 예정이다. /토도웍스 제공

이렇게 다 선물로 주면 회사는 어떻게 돈을 벌까? 통계청이 2016년 내 놓은 ‘장애인의 외출시 이동수단(1순위)별 추정수 및 비율’이란 자료를 보면 전동휠체어를 이동수단으로 쓰는 사람은 9만2841명, 수동휠체어는 2만2105명이다. 전동과 수동을 합쳐도 11만명이 조금 넘는다. 쉽게 말해 시장이 너무 작다. 그러나 세계로 눈을 돌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전세계에서 휠체어와 같은 이동보조기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약 1억2000만명, 이중 약 3000만명만 휠체어와 같은 보조기기를 사용하고 있다. 한국 시장은 해외 시장으로 도약하기 위한 디딤돌이다. 


“2019년에 ‘유럽 의료기기 인증(CE MDD)’을 받았습니다. 2020년 오스트리아와 호주를 시작으로 26개 국가에 진출했습니다. 미국 FDA 인증도 신청해 놓았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유럽 시장을 열었는데 코로나19 사태로 유럽이 잠들었습니다. 하지만 곧 세계가 깨어나면 본격적으로 매출이 나올 것으로 봅니다.” 사실 회사는 작년 코로나 때문에 매출이 줄었다. “재작년 매출은 24억원이었는데 작년 매출은 19억원입니다.” 


토도웍스는 요즘 신제품 출시 준비로 바쁘다. 신제품 아이디어도 선물을 나눠주다가 나왔다. “아이들 2000명에게 휠체어와 토도 드라이브를 무료로 주다가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몸에 맞는 휠체어를 탄 아이가 차지하는 비율이 전체의 10% 이하였습니다. 몸에 맞지 않는 휠체어를 계속 타면 2차 장애가 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만든 제품이 좌폭(자리의 너비)을 최소 22㎝에서 최대 40㎝까지 조절할 수 있는 휠체어, 토도아이다. “휠체어는 다 같다고 생각하기 쉬운 데 그렇지 않습니다. 양복 맞추듯이 맞춤 제작을 합니다. 모양이 같은 저렴한 양산형 제품도 있지만 건강을 생각한다면 몸에 맞는 제품을 써야합니다. 아이가 다 크기 전에 4~5번 휠체어를 바꿔줘야 합니다. 이런 맞춤형 휠체어 한 대 가격이 400만~500만원입니다.”

아이가 자라 체형이 변하면 쉽게 좌석 크기를 조절해 사용할 수 있는 토도아이/토도웍스 제공

자라는 아이 몸에 맞춰 휠체어를 바꿔주려면 2000만원 정도가 든다는 이야기다. “정부가 휠체어를 살 때 보조금을 48만원 줍니다. 그래도 만만한 금액이 아닙니다. 6월 출시할 토도아이는 한번 사면 어린이가 좌석 크기를 조정해 계속 쓸 수 있는 제품입니다. 몸무게 75kg이 넘지 않으면 교체할 필요가 없습니다. 판매가는 150만원으로 정했습니다.” 6월부터 선물 받는 아이들은 이 토도아이와 토도 드라이브 세트를 받는다. “토도아이를 사고 싶은데 목돈이 부담스럽다는 분들을 위해 구독서비스도 할 계획입니다. 매월 사용료를 내고 쓰는 방식입니다.”


“토도 드라이브를 쓰는 아이들 표정이 좋아지고 성격도 바뀌는 걸 봤습니다.” 예를 들어 마트에 가기 싫어하던 아이가 매일 마트에 가자고 졸랐다. 예전에는 엄마가 미는 곳으로 가야했다. 하지만 토도 드라이브를 달고 난 뒤에는 자기가 가기 싶은 곳에 가서 원하는 것을 보고, 장바구니에 담을 수 있었다. 이동의 자유를 얻은 뒤 아이들의 삶이 달라졌다. “마음대로 이동할 수 없어 힘들어 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게 우리 회사가 추구하는 세상입니다.”


글 CCBB 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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