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어촌을 바꾼 로컬 크리에이터...“해녀가 잡은 해산물, 공연과 접목”
김하원 해녀의부엌 대표...제주 뿔소라 판로 확장 위해 ‘극장형 식당’ 아이디어
[스페셜리포트]
로컬의 최전선에서 남들과는 다른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혁신 창업가,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로컬 크리에이터는 ‘생산’이 주 무대였던 로컬 공간을 ‘소비’와 ‘문화’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 지역에 잠재된 스토리를 풀어 사람을 그러모으고 새로운 콘텐츠를 제시한다. 이들은 왜 ‘로컬’에 주목했을까. 행정가도, 지역 전문가도 할 수 없던 일들을 해내고 있는 로컬 크리에이터 2인을 만났다.
“뿔소라가 제값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섬에서 나고 자란 그는 해녀들이 목숨 걸고 채취한 제주 뿔소라가 양식보다 값을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 분노했다. 한국에서 소비 시장을 창출하고 해녀의 이야기를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공연을 전공한 김하원 해녀의부엌 대표는 뿔소라와 사라져 가는 해녀의 이야기를 무대 위에 올리기로 결심했다. 해녀가 잡은 제주 해산물을 식탁 위에 올리고 공연을 곁들인다면 승산이 있다는 생각이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전에 하루 100명의 관광객이 공간을 찾았고 식탁에 올라온 제주 해산물에 관심을 보였다. 제주의 작은 마을 구좌읍 종달리에 있는 극장형 식당 ‘해녀의부엌’의 이야기다.
해녀의부엌은 식탁에 오른 뿔소라에 시가 대비 20% 이상 값을 더 쳐줬고 고령의 해녀들은 바다가 아닌 무대 위에서 공연하며 제2의 일자리를 찾을 수 있게 됐다. 청년의 아이디어가 수십 년간 그 누구도 풀지 못한 지역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해 낸 것이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가 실시하는 ‘2020 로컬 크리에이터 페스타’에서 거점 브랜드 분야 최우수 팀에 선정됐다. 변화를 주도한 로컬 크리에이터 김하원 대표를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코로나19가 잠식한 1년, 그간 어떻게 지냈나요.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하루 90~100명의 손님들이 다녀갔는데, 그중 95%가 관광객이었어요. 코로나19가 터지며 공연 횟수를 반으로 축소하고 전용(프라이빗) 서비스를 만들어 운영하기도 했죠. 지난해 뿔소라의 온라인 판매에 처음 도전했는데 펀딩 금액의 4000%를 초과 달성할 정도로 반응이 좋았어요.”
-해녀의부엌이 어촌의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그런 결과를 만들고 싶어 시작한 일이어서 보람을 느낌니다. 해녀의부엌은 제주 뿔소라의 판로를 넓히기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입니다. 뿔소라 매입 시 시가 대비 20%의 웃돈을 주고 온·오프라인으로 판로를 확장했어요. 또 8명의 해녀가 무대에 올라 공연하며 제2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어떻게 시작했나요.
“저는 해녀 집안에서 나고 자랐어요. 해녀가 채취한 해산물이 판로가 없어 가격이 계속 하락하고 있는 게 억울했죠. ‘왜 그들이 물질하며 채취한 해산물이 양식보다 더 값을 못 받을까’ 의문이 들었죠. 일본 수출 의존도가 높아 제값을 받지 못한 게 가장 큰 이유였어요. 1930년대 일제의 식민지 수탈 정책 때부터 생긴 고질적인 문제라 해결하는 게 쉽지 않았죠. 우리가 한국에 시장을 만들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해결 방식이 독특했어요.
“예술을 전공했어요. 문화·예술을 활용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사명이라고 믿었죠. 처음에는 아동을 대상으로 예술 치료를 하고 싶었는데 해녀에게도 비슷한 감정이 들었어요. 문화·예술 방식으로 해녀들이 처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의미 있는 일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뛰어들었어요.”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부모님부터 반대하셨어요(웃음). 어업에 오래 종사한 두 분 모두가 ‘이 문제는 수십 년을 노력해도 해결되지 않았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했죠. 주변의 염려가 컸어요. 제주가 로컬 중 로컬이다 보니 인재를 끌어오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어요. 그 무엇보다 가장 큰 어려움은 해녀들을 무대 위에 모시는 일이었어요. 본인의 삶을 앞에 나와 이야기하는 것을, 그걸 누가 봐준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워했죠. 지금은 공연을 하다가도 행복해 웃기도 하고 우시기도 해요. ‘내가 죽기 전 이런 호사를 누릴지 몰랐다, 이제 나이 먹어 물질을 못해도 직업이 있다’고 좋아하시죠. 제게 가장 큰 힘이에요.”
-‘로컬’이라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로컬에서 사업을 하려면 적어도 3년은 지나야 한다는 말이 있어요. 지역민들과의 신뢰를 쌓는 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죠. 그들과 상생하는 모델을 만들어 나가는 것, 즉 지속 가능성이 로컬 사업의 가장 큰 핵심인데 문제는 그 과정이 절대 쉽지 않다는 것이에요. 지역민들은 대개 1차 생산자인데 변화에 도전하는 것이 쉽지 않아요. 해녀의부엌은 ‘우리가 뭔가 하고자 하니 도와 달라’고 하지 않았어요. 이들을 주인공으로 만들고 이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면 결국에는 즐겁게 참여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세 번이나 바꿔 가며 해녀의 스토리를 공간에 담아내고 그들이 이곳에 오고 싶게끔, 참여하고 싶게끔 만들었어요. 결국 해녀를 중심으로 한 콘텐츠를 만들고 무대에 올리는 데 성공했죠.”
-로컬 크리에이터 주목도가 높아졌어요.
“로컬 크리에이터란 단어가 생긴 게 좋아요. 청년들이 이 일에 매력을 느껴 도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꼭 이주민이 로컬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냈을 때로 한정되는 단어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요. 로컬 자원을 활용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지역 사회에 또 다른 가능성이 열리니까요. 그 대신 로컬에서 일한다는 것은 멘토링이나 컨설팅만으로는 도전하기가 어려운 일이기도 해요. 청년들이 로컬에 정착할 수 있게끔 하는 제도가 가장 필요하죠. 우리만 해도 스타트업이기에 인건비를 많이 줄 수 없지만 인재 한 명을 충원하려면 이동 수단과 숙박·식사까지도 고려해야 해요. 결국 도시 청년이 시골 마을의 라이프에 매력을 느끼고 정착할 수 있게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가장 필요한 지원 사업이라고 여겨져요. ‘팀’이 꾸려져야 사업을 할 수 있으니까요.”
-장·단기 계획이 궁금해요.
“올해 2호점을 내려고 해요. 제주공항과 근접한 곳에서 준비하고 있어요. 당장 3월 25일부터 영상 공연을 오픈합니다. 원래는 해외를 무대로 준비한 공연인데 코로나19로 발이 묶이다 보니 한국에서 첫선을 보여요. 기존 연극 형식은 배우들이 직접 출연해 20분 정도의 아날로그 공연을 선보였다면 영상 공연은 45분의 긴 러닝 타임으로 극의 완성도를 높였어요. 무대가 한순간 바다로 변하는 등 미디어 파사드 기법을 활용해 해녀의 삶을 새롭게 전할 예정이에요. 연출·음악·조명·무대 디자이너가 합심해 만든 결과물인 만큼 기대해도 좋아요. 물론 두 공연 모두 해녀가 차려 주는 식사라는 콘셉트는 동일해요. 전 콘텐츠가 가진 힘은 세계 그 어떤 사람도 이 브랜드의 팬이 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역시 지금의 모델을 해외로 가지고 나가 제주 해산물의 이야기를 전하고 해녀들의 이야기를 전할 계획이에요.”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사진 해녀의부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