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총연출 양정웅
여러 올림픽 행사 중에서도 개회식은 ‘올림픽의 꽃’으로 불린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기에 압박감도 적지 않다. 특히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은 총연출 중도 사퇴, 지역 소도시라는 공간적 제약, 한정된 예산 등으로 준비 단계부터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지난 2월 9일 개회식이 시작되자 우려는 사라지고 감탄만이 남았다. 고분 벽화 속 상서로운 동물들과 오륜기를 상징하는 다섯 아이들이 함께 뛰놀고, 사람의 손으로 움직이는 인면조와 첨단 기술로 구현한 드론의 춤이 평창을 수놓았다. 연극적 요소와 미디어아트가 결합된 거대한 판타지에 세계인은 열광했다. 2016년 12월 개회식 총연출로 뒤늦게 합류해 꿈의 무대를 일궈낸 연극연출가 양정웅은 평창 동계올림픽의 ‘신의 한 수’였다.
이번 개회식은 정말 화제가 될 만한 요소가 많았죠? 팬아트가 생길 만큼 인기를 끈 인면조를 비롯해 드론의 군무, 72m 원형 무대에 펼쳐진 미디어아트까지 그야말로 복합예술무대 같았습니다. 한데 26년 전에 이런 종합예술이 어우러진 올림픽 무대 연출을 꿈꾼 적이 있었다고요.
1992년 알베르빌올림픽을 TV로 보았을 때 ‘아, 나도 저런 무대를 연출해보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당시 30살의 프랑스 안무가 필립 드쿠플레가 총연출을 맡았는데 서커스, 현대무용, 연극 등의 공연예술이 어우러진 무대였죠. 기존 개회식에서 보던 매스게임 같은 공연과는 전혀 달랐어요. 스토리와 캐릭터가 명확하고, 판타지와 내러티브도 공연 같고 연극 같아서 깜짝 놀랐어요. 그때 전 총체극에 한참 빠져 있던 20대 연극학도였으니 더 큰 감동을 받았죠.
공연기획자가 아닌 연극연출가가 개회식 총연출을 맡았다는 점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어요.
해외에서는 연극연출가가 개회식 총연출을 많이 해요. 2004년 아테네올림픽과 2015년 바쿠 유러피언 게임을 총연출한 디미트리스 파파이오아누도 그리스의 유명한 연극연출가죠. 우리나라 사례를 봐도, 서울올림픽 총연출을 맡은 표재순 선생님도 방송국 PD이자 연극연출가셨고, 2002년 한일월드컵 개회식 총연출 손진책 선생님도 연극연출가셨지요.
인면조를 비롯해 백호, 주작, 현무, 청룡 같은 고분 벽화 속 캐릭터들은 인형극처럼 손으로 움직이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연기했는데, 무대 바닥에 투영된 미디어아트에 힘입어서인지 더 강렬한 이미지로 다가오더라고요.
원래 홀로그램이나 로봇 등을 활용한 VR(가상현실)도 적용하고 싶었는데,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AR(증강현실)만 적용할 수 있었어요. 첫 번째 장면에 등장하는 천상열차분야지도 별자리, 두 번째 장면에서 메밀꽃이 반딧불이로 바뀌어서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이 대표적이죠. 첫 장면을 연출할 때는 고대를 표현하는 데 있어 다른 올림픽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방법을 고민했어요. 판타지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다섯 아이가 여행할 때 겨울동화 같은 콘셉트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거기에 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또 어른도 좋아할 인형극 형식을 넣자고 결정했죠. 고분 벽화에 표현된 상상력을 현대에 되살리면서 평화를 사랑했던 우리 선조들의 모습을 자유롭게 펼쳐보고 싶었어요. 그때는 경계와 영토를 초월한 축제가 열리던 시대였잖아요. 실제로 고구려 벽화에도 평화의 염원이나 기원이 담겨 있고요.
1) 인면조와 다섯 아이들, 고구려 고분 벽화를 2D로 표현한 무용수들이 함께한 문화공연 '평화의 땅'. |
공연은 오각형의 경기장 안에서 진행됐지만 바닥의 원형 무대도, 다섯 아이들이 손에 쥔 수정구슬도, 달항아리를 형상화한 성화대까지도 둥글고 푸근한 원의 이미지가 강했어요. 원의 상징성을 통해 대중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나요?
원은 일체, 합일, 하나라는 개념을 상징하잖아요. 그래서 평화의 이미지와도 이어지는 것 같아요. 태양이든 달이든 지구든, 둥근 형상 곳곳에 그런 메시지가 구석구석 스며 있는 것 같고요. 개회식 주제가 평화다 보니 달항아리 성화대라든지 마당 같은 무대 바닥이라든지 여러 요소에서 무의식중에 드러나는 원형이 있었을 거예요. 송승환 총감독님도 연극인이시기 때문에, 제가 총연출로 합류하기 전부터 그런 부분들을 많이 생각하셨던 것 같고요.
방송으로 개회식을 지켜보는 사람에게까지 현장의 감동을 전하려면 어려움도 많았겠어요. 카메라 앵글도 굉장히 섬세하게 고려했을 것 같은데요.
1년 전부터 3초 단위로 바뀌는 커트를 준비했어요. 리우올림픽이나 소치올림픽 중계방송만 해도 평균 8초, 길게는 10초 단위로 방송용 커트가 바뀌어요. 런던올림픽은 짧은 경우 3초 단위로 커트가 바뀌더라고요. 그게 굉장히 다이내믹했어요. 그래서 저희도 올림픽 주관 방송국인 OBS(Olympic Broadcasting Service) 측과 회의를 많이 했죠. 매일 아침 10시마다 커트를 리뷰할 만큼 심혈을 기울였으니까요.
이번 개회식 주제가 ‘행동하는 평화’(Peace in Motion)였는데요. 고분 벽화에서 깨어난 평화의 메시지가 다섯 아이들의 촛불로 이어지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어요.
기획 단계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온 이미지가 촛불이었어요. 우리나라의 촛불시위는 가장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정권을 교체한 사건이었잖아요.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든, 평화를 가장 대표할 만한 것이 촛불이라 생각했어요. 집 안에만 있지 않고 온 가족이 밖으로 나와서 행동함으로써 이룬 평화인 거죠.
개회식 무대뿐 아니라 과거에 연출한 작품에도 한국 전통문화의 영향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죠. 셰익스피어 연극에 전통 요소를 접목한 대표작 <한여름 밤의 꿈>(2002)을 비롯해 <십이야>(2008)에서는 꼭두 이미지와 마당놀이가 어우러졌고, <햄릿>(2009)에서는 진오기굿, 수망굿 등 다양한 굿이 등장했으니까요. 고도(故都) 경주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영향이었을까요?
제 고향은 서울이지만 아버님 고향이 경주여서, 초등학생 때까지 여름방학을 경주에서 보냈어요. 만날 김유신 장군묘나 천마총 같은 데 가서 놀았죠. 부모님이 모두 작가라 집에는 늘 책과 그림이 있었어요. 아침에 눈뜨면 별표 전축으로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을 틀어주셨죠. TV에서 <주말의 명화>가 방영할 시간이면 자고 있는 저를 깨워서 영화를 보라고도 하셨어요. 1988년 문예창작과에 입학한 것도 “앞으로 배우를 하든 감독을 하든, 먼저 글을 쓰고 문학을 공부해라”라는 어머님의 조언 때문이었죠. 어머님이 고대 극회 출신이셨는데, 인간의 이야기와 내러티브, 캐릭터와 스토리를 직접 쓰고 이해해야 한다고 권하셨어요.
2) 문화공연 '모두를 위한 미래'. |
고등학생 때 동랑레퍼토리 청소년 연극아카데미 1기로 활동했고, 고3 때 영화배우로 데뷔하는 등 일찌감치 다양한 경험을 해왔어요. 하지만 연극배우로 정식 데뷔한 건 대학에 들어온 뒤였지요?
첫 무대가 1989년 6월에 열린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남자는 남자다>였어요. 그땐 현대백화점 위에 현대토아트홀이라고 극장이 있었는데 거기서 했죠. 그전까지 브레히트의 작품은 공연 금지였어요. 공산주의자였으니까요. <남자는 남자다>는 그가 해금되고 나서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작품이었죠. 대학을 다니다가 근질근질해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1년 다니다가 휴학하고 연극하겠다고 대학로로 갔을 때인데요. 복학하고 나서도 대학로에서 활동하느라 수업을 많이 빼먹었죠.
연극인으로서 가장 큰 전환점은 1994년부터 1996년 초까지 몸담았던 다국적 극단 라센칸 활동이 아닐까 해요. 대표로 있는 극단 여행자의 이름도 이 시절의 유랑 경험에서 비롯됐잖아요.
라센칸은 새로운 연극 언어를 찾는 실험적 극단이었죠. 창무국제예술제에 라센칸이 참여했을 때 워크숍을 듣고 오디션을 봐서 합격한 후 함께 떠났어요. 스페인과 일본을 돌며 연극을 했고, 라센칸을 나와서도 저 혼자 인도에서 1년 정도 현지인들과 연극도 하고 여행도 했죠. 그때부터 ‘집시의 방랑’이 시작된 것 같아요. 그러다 히말라야 해발 5,000m에 있는 베이스캠프에서 문득 생각했어요. ‘아, 한국에 돌아가서 연극을 해야겠다.’ 그렇게 돌아왔지만 그때 만끽했던 자유에 대한 기억, 인종과 언어와 문화가 달라도 인간은 서로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는 깨달음, 이를테면 인간의 보편성에 대한 생각…. 그것이 제 안에 굉장히 많이 남아 있죠.
돌이켜보면 극단 여행자에서 쌓은 경험과 인연을 맺은 분들이 개회식 연출에도 큰 영향을 미쳤겠네요.
예를 들면 인면조가 등장하는 인형극 형식은 오래전부터 고민해 오고 실험했던 장르예요. 카이로국제실험연극제(2003)에서 대상을 받은 공연 <카르마>도 인형적인 움직임을 콘셉트로 했고요. 그런 요소를 확장·변형시키면서 다른 공연에도 반영해왔어요. 극단 여행자의 배우들은 예전부터 그런 시도를 수없이 해왔기 때문에, 개회식에서도 그들에게 트레이너 겸 출연진 역할을 맡길 수 있었어요.
일반 대중은 올림픽 개회식 총연출로 기억하지만, 연극계에서는 이미 중견 연출자로 입지를 굳히셨는데요. 특히 2015년 제22회 한국 베세토 페스티벌 위원장을 맡은 뒤로 기존의 베세토 연극제가 페스티벌 개념으로 확장되고, 참가국도 기존 한·중·일 3개국을 넘어 홍콩으로까지 넓어졌어요. 이처럼 파격을 추구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21세기 연극의 모습은 미디어아트까지 포함해 다양하게 변모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가 위원장을 맡으면서부터는 장르를 연극으로 국한하기보다, 퍼포밍 아츠를 아우르는 페스티벌 개념으로 성장하길 바랐어요.
3년마다 열리는 베세토 페스티벌이 올해 개최되는데요, 간단한 소개 부탁드려요.
올해 베세토 페스티벌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함께합니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등 최근 떠오르고 있는 동남아 국가들이 있는데 제가 보기엔 이 나라들이 블루오션 같아요. 이제 공연 문화의 중심이 극동아시아에 머무는 게 아니라 중앙아시아로까지 넓어지면 좋겠고, 21세기에는 유럽이 아닌 아시아가 중심이 되는 페스티벌을 바라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개회식 연출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난 후 각계에서 다양한 제안을 받으셨지요. 앞으로의 계획에는 연극을 넘어선 새로운 장르에 대한 도전도 포함될까요?
제가 아직 생일이 안 지나서 만 나이로 49살, 우리나라 나이로는 51살이에요. 근데 50살이 넘은 지금 사춘기 소년처럼 진로를 다시 고민하게 됐어요. 올림픽이 큰 전환점이 된 거죠. 앞으로 어떻게, 어떤 예술을 하면서 살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사실 다른 장르에 대한 시도는 계속해왔어요. 영화, 오페라, 무용까지도요. 지금도 멀티미디어나 미디어아트에 관심이 많고, 어렸을 때의 꿈이 영화감독이라서 개인적인 꿈을 실현해볼까 생각할 때도 있어요. 연극을 떠나지는 않겠지만 새로운 장르에 대한 도전과 실험은 계속될 것 같아요. 이번에 올림픽 개회식도 연출했으니까요. 많은 제안을 받긴 했는데 아직 올림픽 끝난 지 2주도 채 안 돼서. 일단 한숨 고르고 나서 가장 하고 싶은 게 뭔지 생각해볼 계획입니다.
한동안 휴직했던 서울예대 교수직도 올림픽 마치고 올해 복귀하셨다고요.
개회식 총연출을 맡은 동안에는 병행할 수가 없어서 휴직을 했었어요. 이번 학기에 복직해서, 요즘은 인도네시아의 그림자 인형극 아티스트와 함께 5주간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학생들과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학교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일은 무대 현장에 서는 일과는 또 다른 일이겠지요. 그만큼 책임이 막중한 일이기도 하고요. 스승이자 선배로서 제자들에게 강조하는 게 있다면요?
저는 학생들에게 늘 “멋대로 상상하고 자유롭게 실험해라”라고 말합니다. 자유와 상상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요. 그들이 꿈꾸고 상상하는 모든 것이 이뤄진다는 생각으로. 어떤 경계도 한계도 없이 꿈을 꾸면 좋겠어요.
1997년 극단 여행자 창단 이래 10주년마다 굵직한 행보를 이어왔어요. 2007년 창단 10주년 때 성북동 연습실을 열었고, 2017년 창단 20주년에는 성북동 창고극장을 개관했는데요. 대표로서 앞으로 구상 중인 극단의 미래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세요.
극단 여행자는 제가 주도한다기보다, 단원들끼리 정말 자유롭게 운영하고 있어요. 다른 팀을 불러서 함께 섞이기도 하면서 <여행자 연극제>를 재미있게 하고 있고요. 제 생각에 연극은 페스티벌 같아요. 이건 꿈같은 얘기지만 저희 극장이 1년 내내 페스티벌을 진행하는 공간이 되면 좋겠어요. 그게 상설공연이 열리는 공간을 뜻하는 건 아니고요, 다른 많은 연극인들이 모여서 같이 어우러지며 노는 마당이 되길 바랍니다.
글 고경원 (자유기고가)
사진 오계옥
사진 제공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