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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든 도시의 내부망명자 : 사진가 김정욱

카메라를 든 도시의 내부망명자 : 사

출처 : 김정욱 작가 블로그 (https://blog.naver.com/onefate)

설명도 실명도 없는 블로거

소개팅에서 서로의 첫 인상을 결정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3초라고 한다. 예술 작품을 마주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론적, 개념적 장치를 떠나서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좋은 작품’이라는 판단은 순식간에 이뤄진다. 언젠가 검색 중에 우연히 어떤 블로거의 사진에 시선이 머물렀다. 그게 무슨 사진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골목길에 있는 스티로폼이거나 가로수에 걸린 현수막 따위였을 것이다. 느낌이 좋았다. 첫 인상이 좋은 상대에게 애프터를 신청하듯 나는 그날부터 그의 블로그를 내 피드에 추가해서 매일 방문하기 시작했다. 아마 다음 날은 지하철 전단지를 찍은 사진을 올렸고, 그 다음 날은 건물 앞에 버려진 쓰레기 사진을 띄웠을 것이다.

 

그렇게 5년이 되었다. 그동안 유례없는 한파가 찾아와 수도관이 동파되거나 기록적인 폭염이 내리쬐어도, 또 세월호가 침몰하거나 대통령이 탄핵되는 날에도, 그는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사진을 올렸다. 제목도 없고 설명도 없는 사진을 매일 세상을 향해 무심히 툭툭 던졌다. 블로그 기록을 올라가보니 그는 무려 10년 동안 매일 사진을 올리고 있었다. 이 사람 뭘까.

 

나를 포함한 많은 작가들이 운영하는 SNS와는 다르게 그의 블로그에는 그 흔한 전시 경력이나 전시 소식, 학력도 기재되어 있지 않았고 심지어 실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더군다나 그는 파워블로거나 SNS스타도 아니었다. 왜 때문에? 이렇게 공을 들이는데? 신비주의인가? 잠깐의 호기심이 일었지만 더 알아볼 방법은 없었다. 마치 ‘다른 것은 신경 끄고, 사진이 좋으면 보고 아니면 말든가’ 라는 무언의 고집이 느껴졌다.

카메라를 든 도시의 내부망명자 : 사

출처 : 김정욱 작가 블로그 (https://blog.naver.com/onefate)

흔적으로 전하는 스토리텔링

도시는 자신의 과거를 직접 말하지 않습니다. 도시의 과거는 마치 손금처럼 창살에 난간에 계단에 안테나에 그 자체로 긁히고 잘려나가고 조각나고 소용돌이치는 그 모든 단편들에 숨 죽여 존재합니다. - 이탈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들> 中

그의 블로그 아이디는 Flaneur 이다. 번역하면 도시를 산책하는 ‘만보객’ 이라는 뜻이다. 산책하는 사람은 도시에 깊숙이 들어가 모든 것을 관찰하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어떤 일에도 관여하지 않는다. 만보객이 언제나 도시에서 차가운 관찰자의 태도를 유지하듯 그의 사진도 직접적으로 뭔가를 말하는 법이 없다. 그는 사건을 찍지 않고 사건이 지나간 흔적을 찍는다. 또 다른 공간에서 찍은 두 장의 사진을 위아래로 배치함으로써 묘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카메라를 든 도시의 내부망명자 : 사

출처 : 김정욱 작가 블로그 (https://blog.naver.com/onefate)

그가 내뱉은 두 장의 사진을 보자. 인형 뽑기 사진이 있다. 이어서 스크롤을 내리면 공사장 크레인이 보이는 도시의 전경이 보인다. 아무런 설명 없는 사진들을 순차적으로 감상하다보면 둘의 관계에서 어떤 메시지가 서서히 드러난다. 인형이 뽑히듯 매일 뽑혀나가는 도시의 표정이 생각난다. 지금 이 글을 쓰려고 동네 카페에 오는 순간에도 미용실이 철거되는 장면을 목격했다. 철거되는 삶을 목격하는 것은 서울에서 흔한 일이다. 작가는 매일 뽑혀나가는 도시인의 삶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공교롭게도 화려한 불빛의 인형 뽑기 기계 뒤에는 공인중개사 건물이 빅브라더처럼 어두운 존재감을 내뿜고 있다.

카메라를 든 도시의 내부망명자 : 사

출처 : 김정욱 작가 블로그 (https://blog.naver.com/onefate)

꽃 사진이 보인다. 화려한 색을 자랑하지만 그냥 평범한 꽃 사진이다. 스크롤을 내리면 그 꽃이 위치한 어느 골목길 풍경 사진이 등장한다. 화단 위 아래로 “쓰레기 대신 꽃이 있어 행복합니다!!” 라는 문구가 전투적으로 설치되어 있다. 묘하다. 도대체 누가 말하고 누가 듣는 것일까? 무려 느낌표 두 개가 붙은 문장은 은연한 명령일까? 스스로의 세뇌일까? 아무도 없는 골목에 유령 같은 문구가 공허하게 매달려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저 설치된 문구의 디스플레이는 시각적으로 쓰레기보다 딱히 나을게 없어 보인다.

카메라를 든 도시의 내부망명자 : 사

출처 : 김정욱 작가 블로그 (https://blog.naver.com/onefate)

바닷가 철조망에 생선을 말리고 있는 사진, 그리고 공사장 철조망에 깃발 같은 것이 매달려 있는 사진이 역시 위아래로 배치되어 있다. 개인적인 방문 경험으로 유추하자면 아래 사진은 강정마을 해군기지 공사 현장이 아닌가 싶다. 철조망에 걸린 깃발은 공사를 반대하며 자연과 평화를 염원하는 사람들의 흔적일 것이다. 나는 이 두 사진에서 ‘불가능한 환경 속에서도 끝없이 희망을 쫓아 행동하는 인간의 모습’을 읽었다. 철조망은 접근하지 말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품고 있는 사물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럼에도 다가간다.

카메라를 든 도시의 내부망명자 : 사

출처 : 김정욱 작가 블로그 (https://blog.naver.com/onefate)

설명이 필요 없다. 두 사진을 보고 있으면 작가의 재치가 느껴진다. 전혀 다른 두 풍경에서 시각적 유사성을 직관적으로 연결할 수 있다. 작가는 결정적 한 방이 담긴 사진을 노리지 않는다. 그보다는 사진과 사진을 충돌시켜서 그 중간에 오묘한 맥락을 발생시키는 능력이 그의 무기다. 공간예술인 사진 장르를 마치 웹툰처럼 위아래로 스크롤해서 보여줌으로써 시간성을 만들어내고 있다. 가로수 바닥에 낀 담배꽁초 사진과 건물 사이에 낀 형광등 사진에는 사람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바쁘고 팍팍하게 사는 도시인’이 떠올려진다.

도시의 내부망명자 김정욱

“만나고 싶습니다.” 블로그에 댓글을 달았다. 그렇게 무더운 여름날에 어느 카페에 앉아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고등학교 때부터 사진을 찍었지만 사진과에 진학하려면 개인 암실이 있어야 한다는 정보를 듣고 포기했다는 이야기, 결국 시각디자인과를 나와서 디자인 회사를 잠깐 다니다가 너무 힘들어서 관뒀다는 이야기, 그림과 일러스트도 작업도 중간에 했지만 꾸준하게 해온 것은 사진 뿐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왜 사진에는 제목과 설명이 없습니까?”, “왜 당신 사진에는 사람이 거의 등장하지 않나요?”, “도대체 카메라를 들고 어딜 돌아다니시는 겁니까?”, “왜 신비주의 콘셉트인 것이죠!?” 나는 질문을 쏟아냈다. 하지만 정말 궁금해서 던진 질문은 아니다. 돌아오는 답도 예상 가능한 것이었다. 설명이 없고, 대부분 사람이 등장하지 않고, 어디에서 무얼 찍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이미 그의 말 없는 사진이 모두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오랫동안 지켜본 한 명의 팬으로써 김정욱 작가와 무엇이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을 뿐이다.

 

그는 자신을 내부망명자라고 칭했다. 사진에서도 느껴지듯이 도시에 있으면서도 도시와 거리를 두는 차가운 관찰자의 면모가 그대로 담긴 정의였다. 그의 사진에 제목과 설명은 없지만 항상 corea라는 태그가 달려 있었다. korea가 아닌 corea라는 태그를 다는 이유도 국호의 역사적 배경을 미루어 짐작해봤을 때 이해가 갔다. 망명자처럼 항상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로 모든 사물을 바라보겠다는 그의 다짐이었다.

카메라를 든 도시의 내부망명자 : 사

출처 : 김정욱 작가 블로그 (https://blog.naver.com/onefate)

신비주의? 매일 작품을 전시할 뿐

김정욱 작가에게 정말 궁금한 것은 하나였다. 왜 굳이 블로그에 실명도 밝히지 않고 다른 작가들처럼 전시 경력을 내세우면서 오프라인 활동을 도모하지 않는지 였다. 그의 답은 간단했다. 그런 외부적 활동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속된 말로 이미 ‘와꾸’가 보이는 판에 굳이 끼고 싶지 않다는 말도 했다. 같은 작가로서 그게 무슨 말인지 단번에 이해가 갔다. 인맥 정치로 작동되는 예술계와 밑 빠진 독에 돈 붓는 전시 환경이 자신과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속세에서 초월한 그의 태도를 마주하고 있자니, 코딱지만 한 활동 이력이 하나라도 생기면 바로 이력에 업데이트하는 나의 세속적인 모습과 비교되어 괜스레 부끄러워졌다. “왜 전시를 하지 않느냐?” 라는 나의 질문은 돌이켜보면 매우 부끄러운 질문이었다. 은연중에 온라인 블로그 전시는 ‘진짜’ 전시로 인정하지 않는 암묵적이고 세속적인 나의 태도가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매일 전시하는 작가였다. 하루도 빠짐없이 10년간 매일 작품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사진 폴더를 열고 어울리는 작품을 골라 큐레이팅하는 고통스런 창작의 과정 매일 행하는 작가였다. 그런 작가에게 전시하지 않느냐는 내 질문은 무례한 것이었다. 그에게 전시 경력과 학력을 내세워서 작품을 보여주는 것은 사회적으로 공인된 타인의 활동 방식일 뿐이었다. 어릴 때부터 남들과 비교하고 경쟁하는 데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는 김정욱 작가는 작품 활동이라는 본연의 의미를 가장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작가이기도 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의 블로그에는 말 없는 사진이 전시될 것이다.

 

글 시민기자단 오재형

디자인 이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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