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만성과 장수만세, 작곡가도 가능합니다
100세를 넘긴 현대 작곡가들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을 타고나 젊은 시절 주체하지 못하는 악상으로 불꽃같은 음악 혼을 태우고 30대에 요절하는 것이 예술가의 표본일까. 그렇게 생각하면 오산이다. 음악가의 삶도 천차만별. 70세에 작곡을 시작한 작곡가, 100세를 넘어서까지 활발하게 곡을 쓴 작곡가도 있다. 조금 생소하지만 존재하는 경우다.
천재는 오래 못 산다고 하던가? 최소한 음악에서는 슈베르트, 모차르트, 베토벤 등 단명한 천재 작곡가들이 존재하고, 이들이 짧은 생애에 남긴 주옥같은 작품들을 보면 너무나 열렬히 창작욕을 불태우는 바람에 그 불씨가 오래가지 못했나 싶을 정도로 너무나 이른 나이인 30대에 운명을 달리했다. 운동선수나 모델 등, 젊은 신체가 중요한 특정 직업을 제외하면 30대는 이제 갓 자신의 분야에 본격적으로 발을 담그고 활동하기 시작하는 시기다. 그런 시기에 요절한 이들 작곡가들과 달리 대기만성하며 오래 산 작곡가들 또한 음악사에 여럿 존재한다. 일단 하이든은 당시로서는 매우 많은 나이인 77세까지 살면서 고전주의 시대의 주요 형식(현악 사중주, 피아노 트리오, 관현악, 소나타 등)을 완성하는가 하면, 후배 작곡가인 모차르트가 사망한 이후에도 활동을 계속했다. 또한 20세기 프랑스 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작곡가 겸 오르가니스트 올리비에 메시앙은 84세까지 살며, 까마득한 후배 음악인인 정명훈 지휘자가 당신이 작곡한 투랑갈릴라 심포니를 해석한 것을 마음에 들어하기도 했다. 출세에 관심을 두지 않고 평생의 절반을 넘게 멕시코에 은둔하며 작업하던 콘론 낸캐러우(C. Nancarrow)도 환갑을 넘긴 후부터 유명해지기 시작해 85년 생애의 말년을 화려하게 보냈다.
이렇듯, 많은 작곡가가 장수하기도 하는데 우리는 이상하리만치 그들에 대해 무지하며 작곡가는 명이 짧은 직업이라고 오해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100세를 넘긴 최장수 작곡가들 중 최근까지 생존한 대표적인 이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창작열이 사그라들지 않는 작곡가 엘리엇 카터
클래식계에서 명망이 높은 현대음악 작곡가 엘리엇 카터(Eliot Carter, 1908~2012)는 하버드 대학에서 당시 미국의 대표 작곡가 찰스 아이브스(C. Ives)로부터 지도를 받으며 음악을 전공한 후 1930년대에 파리에서 공부했다. 이후 귀국해 자신의 나라 미국에서 유럽풍의 음악을 작곡하며 100세가 넘도록 활발히 작품 활동을 했다. 그가 100세 되던 해인 2008년에는 뉴욕 카네기홀에서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축하 공연이 열렸고, 이때 그해에 작곡된 곡을 바렌보임의 피아노 연주로 초연한 바 있다. 90~100세 사이에 무려 40곡이 넘는 곡을 작곡했고, 100세를 넘긴 이후에도 약 20곡을 더 썼다고 한다. 작곡가 자신이 100세 기념 음악회에서 인터뷰할 때, 자신이 쓰는 현재의 음악을 음악사 학자들이 어느 시대의 것으로 분류해야 할지 애먹는다고 밝혔다. 이미 ‘후기 카터 음악’으로 분류된 작품들을 발표한 지 수십 년이 지나버렸는데도 새롭게 곡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미국 현대음악사에 이토록 지대한 영향을 끼친 카터는 늘 밝고 긍정적인 표정으로 대중을 마주했고, 그의 건강한 삶의 태도와 늘 쉬지 않고 작곡하는 꾸준함이 장수에도 보탬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실용음악에도 기여한 로이 더글라스
영국의 작곡가이자 편곡자 로이 더글라스(Richard Roy Douglas, 1907~2015)는 여러 영화음악과 현대음악 작품을 편곡했다. 특히 김연아가 경기에 사용한 음악으로 유명해진 <종달새의 비상>을 작곡한 랄프 본 윌리엄스(Ralph V. Williams)의 어시스트로 젊은 시절의 어느 한때를 보냈는데, 윌리엄스의 말년에는 더글라스의 작품 기여도가 단순한 편곡을 넘어서는 경우가 많아서 어떤 곡은 윌리엄스의 뜻에 따라 더글라스의 이름으로 출판되기도 했다. 실내악이나 현악 오케스트라 등 순수음악을 작곡하는가 하면, 라디오 프로그램 등 실용음악에도 기여한 더글라스는 평생 결혼하지 않고 여동생과 말년까지 함께 살았다고 한다.
대기만성으로 뜻 이룬 작곡가 버나드 비어만
엘리엇 카터와 동시대를 살며 100세 넘게 장수한 작곡가 비어만(Bernie Bierman, 1908~2012)은 주로 대중음악을 작곡했다. 본래 법학을 공부해 법조계에 종사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에 3년간 참전한 이후부터 작곡을 시작해 영화음악에 쓰인 노래들로 유명해졌다. 음악이 처음부터 본업은 아니었으나, 일과를 마치고 남는 시간에 오페라를 작곡하는 등 취미 이상으로 음악에 몰두한 결과, 2차대전에 참전하고 제대하기 직전에 오페라를 완성할 수 있었다. 이는 음반으로 출시되며 그가 활발하게 활동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사라 본, 프랭크 시내트라 등의 가수들이 그의 노래를 부르기도 했으나 1952년경 작곡가로서의 커리어에 종지부를 찍고 사업가로 변신했고, 이후 수십 년간 뚜렷한 작곡 활동을 하지 않다가 1980년대에 아내의 설득에 힘입어 다시 작곡 활동을 시작해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에 나오는 노래 ‘Cuban Mambo’로 재기했다. 총 6개의 음반을 출시했으며, ‘We Have Something To Say’는 60세 노인들의 애환을 살짝 표현하기도 하는 등 연로한 작곡가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음악에 담기도 했다.
10대에 학업 성적에 따라 평생이 좌지우지될 것 같은 조급한 마음으로 인생을 시작하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는 이렇게 100년에 걸쳐 인생의 여러 다양한 시기를 거친 작곡가들의 삶이 조금은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대개는 천부적인 재능을 최대한 갈고닦아 젊은 시절에 빛을 발하고 그 성과를 말년에 누리는 삶의 형태를 표준으로 삼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삶이라면 그것이 언제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 모르기 때문에 너무 이른(?) 중년의 나이에 자신의 인생을 결론짓지 말고, 70세가 되어 다시 작곡을 시작한 비어만이나, 100세가 넘도록 작품 활동을 한 엘리엇 카터처럼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꾸준히, 느긋하게 보내는 삶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아직 이룬 것이 없는 30대의 필자도 앞에 언급한 최장수 작곡가들의 삶을 보고 용기를 얻는다. 인생은 60부터 라고 하지 않던가?
글 신지수
음대 작곡과를 졸업하고 유학을 마친 후 현재 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현대음악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음악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을 즐긴다. 홈페이지 www.jeesooshin.com | 블로그 jagto.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