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반도체 기술 개발, 새로운 단계 돌입
Summary
- ‘국경 간 반도체 산업 서비스 공작 위원회’를 출범한 중국
- 미국의 대중 제재에도 중국과 거리를 두기에는 애매한 해외 반도체 기업들
- 미국의 대중 제재는 역설적이게도 중국의 자체 반도체 기술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됨
얼마 전 중국 정부는 ‘국경 간 반도체 산업 서비스 공작 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었다. (관련링크) 우리에게는 생소한 단어가 들어가 있어 언뜻 이해가 되지 않으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국제 반도체 연구 개발 추진 실무 위원회 정도에 해당한다. 미국과 서방의 반도체 기술 제재가 날이 갈수록 강화하는 현실 속에서 중국은 어떻게 반도체 기술의 국제 개발을 추진하겠다는 것일까?
서방 기업과의 협력 모색 나선 中 이 위원회는 이미 2021년 10월 22일 중국 상무부가 개최했던 ‘국제 반도체 산업 서비스 교류회’가 그 시작이다. 당시 중국 상무부는 외국 기업으로는 유럽의 ST 마이크로와 인피니온, 그리고 미국의 인텔을, 제조 장비 기업으로는 Merck, 캐논, AGC 등을 초청했다. 그리고 세계적인 반도체 관련 협회인 SEMI도 초청됐다.
중국 쪽에서는 통푸(通富微电), SMIC(中科芯), 베이팡(北方集成电路中心), 디엔커(电科研投基金), 칭화 우시웬(清华无锡院), 즈첸옌(智前沿), 이루즈쉰(一势咨询) 등 중국 내 반도체 산업 각 분야를 대표하는 기업들이 참가했다. 그러니까 중국 상무부는 반도체 제조사, 설비 회사, 재료 회사, 관련 협회 등을 포괄적으로 선정한 것이다.
당시 중국 상무부는 회의 목적을 크게 세 가지라고 밝혔다.
- EDA, IP 코어, 패키징 및 테스트, 생산 능력 조정 등의 협업 기능 촉진
- 국제 협력 프로젝트 타당성 조사, 투자 및 자금 조달 및 관리 컨설팅, 인재 도킹, 지적 재산권 제공 시너지, 산업 공통성 이슈와 표준에 대한 상호 인정 연구 등 추진
- 반도체 전문 인력의 소개 및 고품질 산업 자원 유치를 통한 반도체 산업 인큐베이션 기반과 산업 클러스터 형성
이것은 사실상 반도체 제조부터 인력까지 반도체 산업 전분야를 아우르는 말이다. 곧, 서방의 유력한 반도체 기업과 전분야에 걸친 협력을 도모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어느 영역이든 성과를 올리고 싶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소위 교류회로부터 약 4개월 정도 경과한 시점에서 다시 ‘실무위원회’가 조직됐다. 이는 교류회의 결과를 구체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중국과 해외 반도체 산업 간의 협력 강화를 통한 미국 제재 돌파가 목적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 싱크탱크 CSIS의 제임스 루이스는 미국의 제재로 반도체 기술 유입의 길이 막힌 중국이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노력이라고 평가했다. (관련링크)
교류회 → 위원회 가장 큰 변화는? 실무위원회에 참석하는 기업에 변화가 조금 있었다. 먼저 중국 측의 주요 기관이 칭화 대학으로 변경됐다. 그리고 베이징 대학, 중국 과학원, 공업 및 신식화부 산하의 연구소 등도 참여한다. 중국의 공업 및 신식화부는 우리나라의 과기통신부에 해당된다. 칭화 대학은 얼마 전 반도체 학원, 우리나라로 보면 반도체 대학을 설립했다. 이제 중국 정부에서 추진하는 반도체 기술 개발은 바로 이 칭화 대학이 주축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간 해외 반도체 관련 기술 기업들을 지나치게 인수하여 문제가 되었던 칭화유니 역시 칭화 대학에서 출범한 기술 기업이다. 이를 고려하면 베이징 대학과 정부 산하 연구소들을 모두 칭화 대학으로 모아 힘을 집중시키려는 듯하다.
중국 측 기업들은 SMIC, AMEC, 샤오미 등으로 축소되었다. SMIC는 자타 공인 중국 최고의 반도체 제조 기업이다. AMEC은 반도체 제조 설비 분야에서 최정상급 기업이다. 샤오미의 진입은 의외인데 샤오미 또한 제3세대 반도체 분야에 진입을 결정했기 때문으로 보이며, 소비자 제품군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요 창출의 기대가 있는 것 같다.
외국 기업은 ST 마이크로가 빠지고 인텔, AMD, 인피니온, ASML 등으로 바뀌었다. 이들 외국 기업들이 진지하게 이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지는 사실 알 수 없다. 필자가 접촉한 외국 반도체 대기업 고위 간부의 말로는 미국과 서방의 대중 기술 제재가 강화되고, 중국의 기술 탈취에 대한 본국 본사의 우려가 증가하고 있으며, 미일 및 유럽 등 서방 각국이 각 지역에서의 반도체 공급망 확보를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기 때문에 서방의 반도체 기업들 입장에서는 굳이 중국과의 반도체 개발을 도모하여 리스크를 늘릴 이유가 없다고 한다. 게다가 아직은 계획 단계에 불과하기 때문에 각 기업들이 탐색하는 정도라고 밝혔다.
반쪽짜리 기회 엿보는 해외 기업 그러나 인텔, 인피니온이 잔류하고 AMD와 ASML이 새로 등장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 실무회를 처음 보도한 니케이가 코멘트를 요청하자 일부 기업들은 참여 사실을 시인했고 인텔과 ASML은 답변을 거부했다고 한다. 이들 기업의 현재 입장은 중국과 거리를 두기도, 가까이하기도 애매하다는 것이 제일 정확하다.
과거 인텔이나 AMD가 장악하던 CPU 시장은 스마트폰의 AP 시장 진입을 놓치면서 영향력이 줄고 있다. 애플을 비롯하여 테크 기업들은 저마다 자신의 칩을 개발하여 채택하고 있는 중이다. PC용 CPU에서는 인텔과 AMD가 여전히 세계 시장의 95%를 점유하고 있지만, 화웨이의 기린칩이 다운그레이드 방식으로 재개됐다. 바이두 역시 쿤룬(昆仑)칩을 개발했으며 신동커지(InnoSillicon, 芯动科技)는 중국 최초의 서버급 4K 고성능 그래픽 GPU 개발에 성공했다고 발표해 이들로서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들 기업은 중국 시장을 포기하기보다는 중국 시장에서 역전의 발판을 마련할 가능성을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
바이두의 쿤룬칩 © eet-china
중국 기술 개발에 초조해진 ASML 무엇보다 중국이 가장 원하는 EUV 장비를 공급하는 ASML이 들어가 있다. 중국은 2017년 ASML에게 대규모 EUV 장비 발주를 해 놓고도 미국의 제재로 지금까지 장비를 받지 못했다. 이는 중국에 막대한 타격임은 말할 나위 없지만 ASML에게도 타격이다. 그 후 중국은 수위 거국 체제로 EUV 장비 개발에 나섰다. 많은 이들이 중국의 기술 수준은 아직 TSMC나 삼성과의 격차가 커서 따라잡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필자가 보기에는 이런 인식은 시장 상황과는 조금 차이가 있을 수 있다.
7나노 이하급의 첨단 반도체 기술은 뉴스와 미디어를 장식하여 우리의 눈과 귀를 현란하게 하지만 정작 가장 수요가 많은 반도체들은 대부분 28나노 이상의, 그러니까 중위 기술의 반도체 시장이다. 여기서 하나의 분기점으로 작용하는 것이 7나노급의 정밀도이다. 산업계의 말로는 7나노급 정밀도이면 5G 칩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즉, 제품 경쟁력에서 서방에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현재 중국이 국가 전략적으로 필요로 하는 기술은 비싸거나 성능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구현할 수 있다는 의미다. 중국은 이런 차이는 국가 보조금을 주어 해결해 오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중국의 자체 기술 개발이 소리 소문 없이 어느덧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다. 가장 핵심 장비인 EUV를 중심으로 알아보자. 중국의 EUV 개발은 2020년 ANXINSEC(福建安芯半导体)가 포토 리소그래피 2대를 국가 기관에 납품한 것이 시작이다. 이때의 장비는 핵심 부품을 기존 중고 외국 설비의 부품을 재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SMEE(上海微电子)라는 회사가 자체 EUV 개발에 성공했다. 그리고 2021년 9월 28나노 DUV 개발에 성공했다. 여기에 AMEC도 5 나노급 식각 장비 개발에 성공했다. AMEC은 미국의 관련 업계 중국계 핵심 전문가가 함께 일하던 18인의 중국계 엔지니어를 데리고 귀국하여 설립한 회사이다.
SMEE의 EUV 장비 © SMEE
중국의 자체 기술 개발은 그야말로 거국적인 지원을 받는 전쟁터를 연상하게 한다. 그러나 EUV 같은 제품은 30개 이상의 국가에서 5천 개 이상의 기업이 생산하는 10만 개의 정밀 부품이 필요하다. 중국 혼자만의 힘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인 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과학자들은 이 EUV 기술을 해결하기 위해 세 개의 관건 기술을 선정하고 개발해 왔다. 그것은 대물렌즈, 광원 시스템, 그리고 Twinscan이다. Twinscan이란 ‘웨이퍼 2장을 각각의 스테이지에 동시에 투입하여 한 장은 Lithography를 하고, 다른 한 장은 Wafer의 평탄도, overlay를 계측할 수 있는 장비’다. 반도체 산업에 전문 지식이 없는 필자로서는 아마 이 세 가지 기술이 고정밀 EUV의 제작에 관건인 모양이라고 여길 뿐이다. 그리고 중국은 이 세 가지 기술 중 광원 시스템과 Twinscan 기술의 개발에 성공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세 관건 기술 중 마지막 남은 대물렌즈 기술을 베이징 대학에서 개발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나왔다. 베이징 대학 연구팀이 반도체 저널《半导体学报》에 발표한 바에 따르면 이들은 Transmission Electron Microscope, 약칭 TEM의 개발에 성공하여 대물렌즈 영역의 기술적 제약을 돌파했다. 게다가 기존 서방에서 사용하던 독일 Zeiss의 전통적인 분광 기술보다 더 우수하다고 한다.
베이징 대학 © 중국 교육부
경악을 한 ASML은 지난 2월 중국의 동방징웬웨이뎬즈(东方晶源微电子, Orient Jingyuan Microelectronics)가 ASML의 지적 재산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며 고객들에게 이 회사와의 모든 협력을 중단할 것을 요청했다. 지금은 파산으로 해체된 중국의 XTAL이라는 회사가 ASML의 기술을 침해해 동방징웬으로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는 주장이다.
동방징웬웨이뎬즈 전시관 © Papij net
중국이 ASML의 주장을 수용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그보다는 ASML과 미국이 기술 보호용으로 3천여 개에 이르는 지재권을 출원해 놓은 것을 더 경계하는 모양새다. 자칫 주요 기술뿐만 아니라 주변 기술, 기타 협력사들의 손과 발을 묶어 놀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반도체 개발이 가져올 결과 이제 중국이 반도체 기술 개발에 더 박차를 가할 것은 틀림없다. 한계에 봉착했던 기술이 돌파되고 거대한 자본과 14억의 인력이 ‘거국 체제’로 반도체 기술 개발에 몰두한 결과는 시간의 경과와 함께 성과를 내기 시작할 것이다. 만일 중국이 기술 격차를 일정 거리 이내로 좁혀 오면 이들 외국 기업들은 중국과 공동 개발을 하는 길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아직 가시적이지는 않으나 이런 공동 기술 개발이 불가능하다면 중국은 미국 주도의 기술 표준에서 벗어나 중국 고유 기술 표준을 수립하겠다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미묘한 움직임도 있다. 어차피 서방의 기술 제재를 받고 공급을 받지 못할 바에는 중국이 서방의 기술 표준을 준수할 이유가 없다는 계산일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미중의 경제 분리가 기술 분리의 양상을 보일 때 우리 기업들이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하는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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