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대만 반도체 시장 리뷰
2020년 1월 이후, 38개월 만에 대만 출장을 다녀왔다. Zoom으로만 보던 현지 지인들을 만나 그동안의 안부를 묻고 회포를 풀었다. 코로나로 인해 오랫동안 방문하지 못했던 고객사를 직접 방문해 현황을 파악하고 신규 제품에 대한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3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할 만큼 대만의 날씨와 음식, 그리고 정겨운 지인들은 모두 그대로였다. 앞으로 자주 대만을 방문할 수 있길 기대하며 2월 대만 반도체 시장에 대한 리뷰를 시작하고자 한다.
지난 1월에 이어 2월에도 대만 반도체 시장의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다. 작년 2월 매출 대비 올해 2월 매출이 감소했다는 점은 OSAT업체들에게 있어 뼈아픈 결과이다. 2022년 설연휴는 2월 첫째 주에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업체들은 2월 첫째 주 가동률이 낮았다. 올해 설연휴는 1월 말에 있었기에 2월의 조업 일수는 작년보다 일주일 많았다. 그럼에도 매출이 작년대비 줄었다는 건 업황의 개선에 아직 시일이 많이 필요함을 뜻한다. 어찌 보면 작년보다 조업일수가 많았기에 YoY 매출액 감소폭을 줄일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출장 중 고객사들을 직접 방문해서 인터뷰한 내용에 따르면 규모가 작은 업체들이 예상하는 업황 회복의 예측 시기가 규모가 큰 업체들에 비해 상당히 늦었다. 올해 2월 들어 생산량이 대폭 감소한 SPIL은 3분기부터 업황이 개선될 것으로 본 반면, 규모가 작거나 저사양 반도체에 사업 역량이 집중된 업체들은 4분기 이후로 예상했다. 글로벌 No. 1 OSAT인 ASE는 2분기를 넘어서면서부터 원자재 발주량이 점차 늘어날 것이라고 답했다. 말미에는 ASE Group 자신들만에 한해서 일 것이라는 단서가 붙었다. 업황 회복 시점을 너무 빠르게 예측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들지만 코로나 기간 중 대만 남부의 대도시 가오슝에 신축된 대규모 생산 공장들을 보고 있자면 그들의 자신감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다만 모든 업체들이 Order Cut으로 인한 Foundry업체들의 Wafer 생산량 급감에 대해 큰 우려를 토로했다. OSAT가 가진 업의 본질은 Wafer를 위탁받아 패키징하고 테스트하는 것이다. Wafer의 공급량이 줄어드는 것은 OSAT 업체들에게 있어 생존과 직결된 심각한 문제이다. 전방 산업의 전자 기기 출하량이 줄면서 아직도 전자 기업들의 창고에는 반도체들이 한가득이다. 이런 상황에서 엎친데 덮친 격으로 Wafer 생산량까지 줄어들며 대만 OSAT업체들은 진퇴양난에 놓여 있다. 이미 ASE와 SPIL까지 Wafer 유입량 감소에 따라 공장 가동률이 50% 이하로 떨어지면서 오퍼레이터들의 특근과 잔업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대만 1, 2위 업체들의 상황이 이럴진대 규모가 작은 업체들의 상황은 더 암담할 수밖에 없다.
대만 OSAT업체들에 문의해 보니 그들도 우리나라 OSAT들이 메모리 반도체와 DDI 칩의 수요감소로 인해 가동률이 떨어진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가동률 감소폭이 그들 예상보다 낮고 이미 무급 휴가와 단축 근무가 시행되고 있다는 얘기에는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직 자신들의 상황은 괜찮다는 입장을 전했으나 그들 역시 멀지 않은 시기에 동일한 상황에 놓일까 걱정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작년 초부터 소규모 Foundry를 시작으로 매출액 감소 현상이 나타났다. Foundry 업체의 매출액 감소는 가공된 Wafer의 출하량 감소를 뜻한다. 규모가 가장 작은 Win Semiconductor를 시작으로 nuvoton, Powerchip, UMC 순으로 Wafer 출하량 하락에 따른 매출액 감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아직 TSMC만 건재해 보이지만 1분기를 지나면 TSMC도 가동률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Foundry업체의 규모는 그 회사가 가진 생산 능력과 기술력을 뜻한다. 규모가 가장 작은 Win Semiconductor는 他경쟁업체들 대비 선단공정의 비중이 낮고 저사양 반도체를 설계하는 Fabless들이 주요 고객사로 있다. 저가의 저사양 반도체 Wafer를 생산하는 Win Semioconducotor는 이미 2021년 말부터 Wafer 출하량이 감소했다. 반도체 다운사이클의 신호탄은 언제나 생산 리드 타임이 짧고 범용으로 구하기 쉬운 저사양 반도체로부터 시작된다. 이번에도 저사양 Wafer의 위탁가공을 맡기는 Fabless업체들의 주문이 가장 먼저 말랐다. Fabless와 IDM의 Order cut은 작년 하반기 DDI, 통신칩, 메모리를 지나 올해 CPU와 GPU, 인공지능 칩을 겨냥하고 있다.
예상했던 것과 같이 Foundry 업체들은 줄어든 가동률을 메꾸고자 할인 행사에 들어갔다. 하늘 높은 줄 모르던 Foundry업체들의 콧대도 곳간이 비어 가는 데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문제는 Foundry 업체의 가동률의 하락이 일시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이전의 다운사이클의 경우, 단기간의 Wafer 출하량 감소를 통해 시장이 정상화되었다. 이번 사이클은 마치 고속으로 달리던 트레일러가 브레이크를 밟은 것처럼 도로 위에 긴 스키드 마크를 그리며 제동에 상당한 거리를 소모했다. 이에 따라 시장에는 반도체 재고가 넘치기 시작했음에도 필요 이상의 Wafer가 지속 생산되었다. MCU와 같은 일부 자동차용 반도체의 수급 불안을 전체적인 반도체 공급망에 위기가 닥친 것으로 호도하며 반도체 업체들은 막대한 물량을 시장에 쏟아냈다.
작년에 OSAT업체들은 공장 가동률이 줄었음에도 기존에 생산해 놓은 반도체를 출하하며 버텨왔다. 쌓여 있던 Wafer가 패키징 되어 줄어들면 그만큼의 Wafer가 추가로 입고되어야 하지만 시장에 풀리는 Wafer의 수량이 줄어들면서 이를 차지하기 위해 업체 간 저가 할인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2022년에는 전자 기업들의 반도체 재고 조정으로 OSAT업체들에게 1차 충격을 주었다. 올해에는 Fabless업체들의 Order Cut이 Foundry 업체들의 Wafer 출하 물량 감소를 통해 OSAT업체들에게 2차 충격을 주고 있다. 이로 인한 파급 효과를 OSAT로 지속 전이될 경우에는 업체들이 바라는 업황 회복 시기는 뒤로 미뤄질 수밖에 없다. 원자재 업체들 입장에서는 반지하 아래 지하실을 맞이한 심정이다.
이번 방문 중 들린 FATC에서 대만 메모리 반도체 상황을 직접 들을 기회가 있었다. FATC에 따르면 Nanya에서는 22년 초부터 이미 Wafer의 생산량을 통제하며 실질적인 감산이 이뤄졌다고 한다. 또한 Wafer 패키징을 최대한 지연시키며 메모리 반도체 가격 하락에 대응하기 위해 총력을 다했다. 하지만 DRAM가격의 급격한 하락으로 인해 Nanya의 매출액은 속절없이 추락하고 하고 있다. Nanya의 Wafer를 패키징 하는 FATC는 DRAM가격 변동과는 무관하다. Nanya의 Wafer가 지속 공급된다면 DRAM가격의 등락과 상관없이 일정한 매출을 유지할 수 있다. Nanya의 Wafer가 패키징을 지연했기 때문에 FATC는 유효기간이 도래하는 Wafer를 패키징 하며 버틸 수 있었다. 때문에 FATC의 매출액 변화는 Nanya보다 6개월가량 후행함을 알 수 있다. 2021년 8월 Nanya의 월 매출액이 정점에 올랐을 때는 FATC 월 매출액보다 10배 많았으나 2023년 2월에는 채 3배가 되지 못한다.
FATC관계자는 Nanya의 매출액이 당분간 회복되기 어렵고 줄어든 매출액이 장기간 횡보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한 Nanya가 출하 지연을 했던 Wafer가 바닥나고 Wafer 감산 영향이 2분기에 본격적으로 FATC 생산량에 영향을 주면서 FATC는 힘겨운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라고 했다. 현재 FATC가 직면한 상황은 다른 메모리 패키징 업체인 PTI, OSE, Walton이 겪고 있는 상황과 유사하다. 다만 FATC의 매출액 중 Nanya가 차지하는 부분이 크다 보니 Nanya의 부침이 FATC에게는 더 고통스럽게 다가온다. Nanya와 FATC의 현 상황은 우리나라의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 그리고 그들과 협력관계에 있는 우리나라 OSAT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제 우리나라와 대만 양국의 메모리 반도체 OSAT들은 혹독한 다운 사이클의 격랑 속에 진입했다.
Micron은 지난 실적 콘퍼런스 콜에서 반도체 시장 악화로 15%의 인력 감축을 예고했다. 이에 따른 여파로 지난 2월 Micron Taiwan에서는 600명에 달하는 인원이 일자리를 잃었다. 불과 한 달반 전에 진행된 화상회의에서, 웃으며 헤어졌던 이들 중 몇 명은 이미 Micron을 떠났다. 자리를 보전한 사람들 가운데 Senior Level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지속적인 퇴사 압박이 가해진다고 한다.
국내 일부 OSAT에서 무급휴가나 일주일에 2~3일만 출근하는 방식의 단축 근무를 시작했다. 앞으로 원청업체들의 감산이 본격화되면 OSAT의 가동률은 더욱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014년~2016년 사이, 메모리 반도체 공급과잉으로 인한 혹독한 보릿고개가 다시 도래했다. 디스플레이 쪽 상황도 좋지 않아 DDI칩과 관련된 Bumping & 패키징 회사도 저조한 가동률을 보이고 있다.
자본시장에서는 비트코인인 급등하고 2차 전지 업체의 주가가 신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하지만 반도체를 포함한 전자 산업 전체가 가라앉는 듯한 느낌이다. 시장의 사이클이 곤두박질치는 충격에 상당수의 업체들이 떨어져 나간다. 모쪼록 많은 OSAT들이 기대한 것처럼 올해 3분기 무렵에는 반도체 시장이 회복될 시그널이 나타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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