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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된 일본역전

Summary

- 누그러진 반일 정서는 ‘일본을 앞섰다’라는 자신감의 표현

- 한국의 1인당 GDP가 곧 일본을 역전할 전망

- 서울 한복판에 일본역전을 기념하는 역사적 상징물이 세워질 가능성

- 저출산, 저성장에 따른 성장률 악화는 여전히 숙제로 남음

 

© iStock

 

요새 축구 유튜브 채널에서 자주 다루는 주제가 있습니다. ‘왜 한국 축구 대표팀은 일본에 지는가?’ 국가대표뿐만 아니라 연령별 대표팀에서도 우리 축구대표팀은 일본에 지고 있습니다. 아깝게 ‘1대0’, ‘2대1’ 이렇게 지는 게 아니라 ‘3대0’으로 집니다. 축구에서 ‘3대0’이라는 숫자는 ‘확연한 실력차’를 의미합니다. 공격과 수비 모두 격차가 크다는 뜻이죠.

 

'한일전’ 검색 화면 캡처. 최근 A대표팀 경기에서 연거푸 3대0으로 진 것을 알 수 있다.

 

과거 한일전 때와 비교해 우리 대표팀이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일전의 의미가 퇴색된 것도 있지만, 정신력 싸움에서 우리 대표팀이 예전 같지 못해서이지 않을까요?

사실 우리나라에는 손흥민, 박지성 등 특출난 선수들이 있어서 그렇지, 전체적인 수준과 선수 인프라 측면에서 일본에 뒤처진다는 게 정설입니다. 이런 실력 차이를 그간 ‘정신력의 승리’와 ‘특출난 선수의 영웅적 활약’에 따라 줄일 수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다시 말하면 과거 선배들은 거의 목숨 걸고 한일전에 임했다는 뜻입니다.

왜일까요? 아마 이런 이유도 있지 않을까요? 과거 한국인들에게 축구 등의 ‘한일전’은 일본을 이겨볼 유일한 기회였을 것입니다. 국력과 국격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었으니 더더욱 그랬겠죠.

그런데 지금은 다릅니다. 일본과의 1인당 GDP 격차도 많이 줄어든 데다 코로나19라는 국제적 팬데믹을 거치면서 한국인들이 갖는 자부심이 커졌습니다. 드라마와 가요 등 우리 문화 상품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날로그 시대에 머물러 있는 일본과 비교되면서 한국이 더욱 돋보이고 있습니다. 굳이 스포츠가 아니더라도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한국이 일본보다 나은 게 많이 늘었다는 뜻입니다.

 

아일랜드 수도에 세워진 ‘더 스파이어’ 우리나라와 역사적 정서가 비슷한 나라가 있습니다. 아일랜드와 폴란드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중 아일랜드는 척박한 땅에서 수천 년간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인접 영국의 압제와 속박에 시달리곤 했습니다.

 

The Spire © 위키피디아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 가면 높다란 탑 하나가 있습니다. ‘더 스파이어(The Spire)’라는 이름의 탑인데요. 송곳을 세워놓은 것처럼 투박하기 이를 데 없는 디자인입니다. 2003년 아일랜드의 1인당 GDP가 영국을 역전한 해에 세워졌습니다. ‘영국을 이겼다’라는 자신감의 상징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원래 이 탑이 세워진 자리에는 영국의 전쟁영웅 넬슨 제독의 동상이 서 있었습니다. 프랑스 나폴레옹을 몰락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인물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세종로 한복판에 일본 전쟁영웅의 탑이 세워져 있는 셈이죠.

이 동상은 1966년 폭탄 테러로 폭파됩니다. 보통의 아일랜드 사람들이 보기에도 치욕적이었다는 뜻이죠. 여러모로 ‘더 스파이어’는 아일랜드인의 자부심이자 역사적 오점을 씻어내는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30년 뒤의 일이긴 하지만 한국도 비슷한 맥락에서 ‘조선총독부’ 건물을 해체했습니다. 그 자리에 경복궁을 복원했고요. 지난 100여 년간 겪었던 치욕의 역사를 걷어내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조선총독부 건물

 

다만 1960년대 아일랜드가 그랬듯, 1996년 한국도 강력한 이웃나라 일본의 경제적 영향력 하에 있었습니다. 대일 무역적자가 엄청났고, 금융 부분에서도 일본에 상당 부분 의존했습니다. 저리의 일본 엔화 자금이 한국 대부 시장을 휘어잡기도 했습니다. 거품경제가 꺼졌다고 해도 일본은 여전히 세계적인 경제부국이었습니다.

한국은 경제 성장을 위해 일본 차관을 많이 들여왔습니다. 우리 기업인들도 일본 기업의 기술을 도입하려고 했고, 그들의 모습을 따라 하려고 했습니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은 ‘일본이 싫지만, 그래도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고요.

일본은 한국을 경제적으로 길들이고자 했습니다. 실제로 김영삼 정부의 ‘역사 바로 세우기’에 대한 감정적 보복으로, 경제적 도움을 구하는 한국의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바로 1997년 외환위기 때였습니다.

김영삼 정부에서 경제수석을 지냈던 김인호 씨의 회고록을 보면, 우리는 IMF 구제금융을 피하기 위해 일본 중앙은행에게 통화스와프를 요구했던 걸로 보입니다. 일본 금융사들이 한국에서 자금을 회수하지 않도록 요청하는 방안도 냈고요. 일본은행(일본의 중앙은행) 총재에게 긴급 자금 지원 요청을 하기도 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결국 한국은 IMF 구제금융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때의 기억 때문일까요? 2019년 일본 정부는 한국에 무역 제재를 가했습니다. 반도체 가공에 필수적인 소재 수출을 제한한 것이죠.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자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이었습니다. 여전히 한국이 일본 경제에 예속돼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한국판 더 스파이어’ 세워질까 혹독했던 외환위기는 한국 경제에 ‘구조조정’ 기회를 부여했습니다. 민간에서는 초고속인터넷망이 펼쳐져 새로운 정보혁명이 일어났고, 기업들은 고부가가치 산업에 투자하면서 글로벌화를 서둘렀습니다.

일본은 2000년대 들어서도 장기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해서 기준금리를 0%에 유지한 채 ‘양적완화’ 정책을 단행했습니다. 엔화의 가치를 ‘사실상 마이너스’로 유지한 것이죠.

2010년대 들어 한국과 일본의 격차는 확연히 줄었습니다. 지난 2017년 구매력평가지수(PPP)에선 한국이 일본을 앞섰습니다. 이런 추세는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인이 일본인보다 돈을 쓸 수 있는 여력이 높다는 얘기입니다.

 

순위

국가 이름

1인당 PPP

1

룩셈부르크

140,694$

2

싱가포르

131,580$

3

아일랜드

124,596$

4

카타르

112,789$

-

마카오

85,612$

5

스위스

84,658$

6

아랍 에미리트

78,255$

7

노르웨이

77,808$

8

미국

76,027$

9

브루나이

74,953$

-

홍콩

70,448$

10

산마리노

70,139$

11

덴마크

69,273$

-

대만

68,730$

12

네덜란드

68,572$

13

오스트리아

64,751$

14

아이슬란드

64,621$

15

독일

63,271$

16

스웨덴

62,926$

17

호주

61,941$

18

벨기에

61,587$

19

핀란드

58,010$

20

캐나다

57,812$

21

바레인

57,424$

22

프랑스

56,036$

23

사우디아라비아

55,368$

24

영국

55,301$

25

몰타

54,647$

26

대한민국

53,051$

-

유럽연합

53,201$

27

쿠웨이트

50,919$

28

뉴질랜드

50,611$

29

이탈리아

50,216$

30

이스라엘

50,204$

31

일본

44,585$

2022년 4월 기준 PPP 순위 (IMF 추정치)

 

각 정부 채권의 부도 가능성을 금융상품으로 만든 크레딧디폴트스왑(CDS) 프리미엄, 국가 신용등급 면에서도 한국이 일본보다 더 나은 수치를 보이고 있습니다.

상징적으로는 1인당 GDP도 한국이 일본을 앞설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 엔화의 평가절하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달러 환산 1인당 GDP 격차가 급속히 줄어들 전망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8월 관련 통계가 나왔습니다. 당시 환율(한국 1달러=1316.35원, 일본 1달러=139엔)로 계산하면 한국의 1인당 GDP는 3만 1902달러가 나옵니다. 일본의 1인당 GDP는 3만 2010달러입니다. 양국 GPD 격차가 100달러를 조금 넘을 정도입니다.

일본 히토쓰바시(一橋) 대학 명예교수이자 일본 경제 석학인 노구치 유키오(野口悠紀雄)는 지난 7월 24일자 경제지 도요게이자이에 “엔화 약세로 ‘일본이 한국 보다 가난해졌다’라는 충격적 사실”이라는 칼럼을 쓰기도 했습니다.

노구치 교수는 양국의 임금, 1인당 GDP 성장률, 국민들의 영어 능력 지표를 들며 G7 회원국 중 일본이 빠지고, 그 자리가 한국으로 교체될 수 있다는 ‘선정적인’ 예측을 했습니다. 서울 한복판에 ‘한국판 더 스파이어’가 세워질 날이 가까워졌다는 뜻입니다.

 

경제 성장 걸림돌도 만만치 않아 물론 한국 상황도 녹록지 않습니다. 남북 간 대치, 일본보다 훨씬 심각한 저출산 상황, 정치 리스크 등은 한국 경제 성장의 걸림돌입니다. 일본역전 직전에서 주저앉을 수도 있습니다. 베트남 등 후발 주자에게 따라잡힐 수도 있습니다. 이른바 ‘일본화’되는 것이죠.

그러나 북한과의 긴장관계가 풀어지고 우리 경제 영토가 대륙까지 확장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일본과 격차를 벌릴 수도 있게 됩니다.

출산율 저하는 전 세계적인 문제입니다. 우리가 좀 더 이른 시간에 겪고 있을 뿐 다른 나라도 같은 고민을 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기후 변화 위협 등을 고려한다면 인구 감소가 ‘더 나은 선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지금 우리가 ‘일본역전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100년 전 조상들의 꿈이 일부나마 이뤄지는 게 아닐까요.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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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 이데일리 기자 (국제경제/IT/금융 출입) 現) 『금리는 답을 알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챗GPT』, 『금융초보자가 가장알고싶은 질문 TOP80'』 도서 저자 現) 팟캐스트·포스트 '경제유캐스트' 운영자 경제매체에서 10년 넘게 경제기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주요 출입처로는 국제경제, IT, 금융 등이 있습니다. 팟캐스트와 네이버포스트 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경제를 보는 인사이트를 전달하고 싶습니다. https://www.facebook.com/kys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