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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E가 안되는 이유, 될 수 밖에 없는 이유

 

|긴글 요약

  • 기존 P2E가 실패한 이유는 본질적으로 창출 가치보다 보상 수준이 컸기 때문.
  • 보상 수준을 결정하는 코인의 가격은, 게임의 ‘재미’만으로 유지하기 어려움.
  • 블록체인 게임에서는 NFT의 무형자산化가 핵심. 남보다 강해지려는 욕구를 자극할 수 있을 때, 아이템/NFT는 비로소 가치를 가진 무형자산이 됨.
  • 세계관 내 자본의 축적은, 한국이 블록체인 게임을 넘어 메타버스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이유.​

 

2021년 크립토 시장의 화두였던 P2E(Play-to-Earn) 게임은 Axie Infinity가 그 포문을 열었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만으로도 한달에 300~400달러의 수익을 올릴 수 있자,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낮은 동남아를 중심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와 유사한 구조로 올해 초 론칭한 M2E(Move-to-Earn) STEPN은 더욱 파격적으로 한 달에 수백만원 가까운 수익이 가능한 서비스를 만들었다.

그러나 두 서비스 모두 그 인기를 1년도 유지하지 못했다. 게임 플레이를 통해 게임 코인을 채굴하고 그 코인을 거래소에서 매도하여 수익을 얻는 구조였는데, 코인 가격이 빠르게 하락하자 수익이 급감하면서 더 이상 게임을 지속할 동기부여를 얻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유저가 게임에 투입하는 전체 비용 및 가치 창출보다 보상 수준이 컸기 때문에 지속 불가능한 형태였던 것이다.

 

 

애초에 그렇게 큰 보상이 가능했던 이유는, 게임 코인의 가격에 막대한 유저 트래픽을 기반으로 형성될 미래 경제가치가 일시적으로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장미빛 미래가 충분히 빠르게 오지 않았고, 기존 유저들은 인내하는 대신 신규 유입자들에 코인을 떠넘겨 매도하는 폰지 구조로 귀결된 것이다.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P2E 게임에 대한 회의감이 확산된 반면, 글로벌 투자자 및 대형 게임사의 블록체인 게임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높다. 애시당초 게임에 블록체인이 이토록 중요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P2E의 문제, 작업장의 문제

앞서 언급한 Axie Infinity같은 P2E 게임이 도태될 수 밖에 없는 배경에는 채굴이라는 개념이 있다. 사실 이는 본래 코인이 아니라 리니지에서 탄생한 용어다. 보통 단순 노동의 성격을 띄는데, 소위 작업장이란 곳에서는 이를 집중적으로 수행한다. 작업장이라는 단어는 이러한 ‘공장’ 또는 단순노동를 통한 채굴 자체를 뜻하는 중의적인 표현이다.

P2E가 다른 점이 있다면 획득한 재화를 거래소에서 팔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유저가 게임 자체보다는 코인 가격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데 가격의 근거가 게임의 불확실한 미래에 달려있다는 것이 문제다. 모두가 굳건히 믿을 만큼 강력한 흥행이 지속되어 소위 리니지 수준의 세계관을 형성하지 못하는 한 추락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다.

즉, 순서가 틀렸다는 것이다. 게임이 궤도에 안착하고 계속될 것이라는 믿음이 선행되어야 코인 가격이 유지될 수 있다. 계속기업을 전제하고 투자하는 주식과 같은 논리다. 문제는 이 채굴행위가 미래 펀더멘탈의 완성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채굴로 획득한 코인의 매도 압력은 가격 뿐만 아니라 게임 자체의 미래도 갉아 먹는다. 사람들은 같은 돈이라면 게임 토큰 보다 달러를 좋아하기 마련이다. 작업장의 존재는 게임의 미래에 관심 없는 하이에나들도 불러 온다. 사실 작업장의 문제는 전혀 새로운 이슈가 아니다, 암암리에 아이템 거래가 이뤄지고 있는 기존 게임에서도 작업장은 없어지는 추세다.

P2E라는 용어는 블록체인 게임 전체를 대변하지 않는다. 작업장의 문제에서 보다시피 돈을 벌기 위해 게임을 한다는 개념 자체가 게임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인터넷으로 알려진 Axie Infinity의 작업장 모습

 

|재미있으면 다 인가?

블록체인 게임의 미래를 논할 때 항상 등장하는 키워드는 ‘재미’다. 세상에 재미없는 게임을 할 사람은 없다. Axie Infinity가 실패한 것은 결국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다수론이다. 단순반복에 가까운 작업장의 채굴이 재미있을리 없다. 그런데 과연 Axie Infinity가 재밌었다면 코인 가격의 몰락을 막을 수 있었을까?

오락실 게임을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재미를 느끼는 한 동전을 넣으며 계속 플레이할 것이다. 만약, 게임을 즐기던 모든 사람이 다 식상해진다면 게임기는 멈춘다. 게임이 계속 살아움직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동전이 들어와야하고 그러기 위해선 끊임없이 재밌어야한다. 문제는 아무리 훌륭한 게임이라도 대부분의 경우 재미가 유한하다는 것이다.

게임 코인 가격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기존 및 신규 유저가 계속 자금을 투입할 정도로 그 게임은 영원히 재밌어야 한다. 모두가 흥미를 잃는 순간이 온다면, 한때 100달러도 기꺼이 지불했지만 100원도 아까워질 수 있다. 그렇게 코인 가격은 수직 하락하는 것이다.

 

Axie Infinity 코인의 추락

 

유저들을 게임에 머물게 한다는 것은 강을 거슬러 오르는 배와 같다. 블록체인 게임이 노를 젓는 힘에만(재미) 의지하면 아슬아슬한 상황은 계속된다. 다수의 사람들은 이 때 토큰을 팔고 달러를 살것이고, 안그래도 힘든 배를 전복시키려 들것이다.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노를 젓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갈때마다 ‘닻’을 내려야한다. 블록체인 게임에서는 자본 또는 자산이 이 닻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블록체인 게임의 핵심은 무형자산이다.

게임의 인기가 시들해진 뒤에도 게임사가 살아남는 것은 그간 유저가 지불한 돈이 쌓여있기 때문이다. 이 비용을 게임사가 아니라 코인 홀더의 DAO treasury(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 탈중앙화된 자치 조직)에 쌓인 다면 게임 싸이클이 끝나더라도 돈이 남는다. 그 자본이 앞서 언급한 ‘닻’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토큰 가격은 유지되고, P2E 게임도 생존할 수 있을지 모른다.

다만, 이 경우에는 게임사가 새로운 게임을 개발할 동기부여가 떨어지게 된다. 따라서, 기존 대부분 P2E 게임의 경우 이익이 코인 홀더의 DAO가 아닌 게임 개발사로 간다. 개발사가 코인을 buyback하며 코인 가격을 지지하기도 하는데 그 통제권은 팀에 있지 코인 홀더에 있지 않다.

그런데, 일부 게임에서는 오락실 게임과 달리 아이템 또는 NFT가 남는다. 좋은 NFT는 좋은 게임 퍼포먼스를 보장하고 그 NFT는 시장에서 비싸게 팔 수 있다. 물론, 이 문장이 참이 되기 위해서는 이 역시 다음 유저들이 그 값을 지불할 만큼 지속가능한 재미 요소를 갖고 있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게임의 목적이 단순 재미냐, 아니면 누구보다 강해지는 것이냐로 갈리게 된다. 유저로 하여금 후자의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게임만이 닻을 형성할 자본을 생산할 수 있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게임의 재미는 유한하다. 다만, 특정 그룹에서 최고가 된다는 것은 무한한 본성이다. 이를 가장 잘 실현한 게임이 리니지라고 할 수 있다. 수십억을 쓰는 유저가 흔한 리니지의 성공 비결을 두고 흔히 회자되는 요인은 개인의 권력욕을 효과적으로 자극했다는 점이다. 게임이 자본주의를 담은 현실을 따라가게되는 지점이다.

​현실에 준하는 세계관을 가진 게임에서 강해지기 위해서는 좋은 아이템(NFT)가 필요하다. 그 아이템은 희귀하기도하고 많은 시간과 노력, 거액이 소요되기 때문에 진명황의 집행검은 1억원을 호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제 관념이 구현되는 곳에서 아이템은 실제 가치를 지닌 무형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유사 현실에서 강해지는데 필요한 무형자산.

 

리니지의 ‘진명황의 집행검


집행검같은 게임 아이템 따위가 무형자산이라 정의될 수 있는 이유는 매우 직관적이다. 판매할 경우 실제로 돈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에 대하여는 대중 정서 뿐만 아니라, 법원 판례를 통해서도 입증되고 있다. 법원에서는 게임 아이템을 얻기 위해서는 비용, 시간, 노력 등을 투자해야 하고 현실에서 현금으로 거래되는 대상이기에 금전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평가된다고 밝혔다. 따라서 형법으로 보호하는 재산상 이익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관련 기사: 게임 캐릭터를 자산으로 인정하는 판례가 늘고 있다)

기사에 나온 판례에는 두가지 의미가 있는데, 게임 아이템을 유저가 노력을 통해 얻은 ‘자산’으로 인정한 것, 또 하나는 거래를 통해 돈을 벌 수 있는 물건으로 판단한 부분이다. 이 때부터 게임은 재미를 파는 사업이 아니라 ‘강함’ 또는 무형자산을 판매하는 사업이 된다. 세상에 영원히 재밌는 게임이 있다면, 탐욕이라는 본성과 연결된 권력, 자본, 파워 게임이다. 이 게임에서 파생된 아이템은 무형자산이 된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에서 무형자산을 통한 자본의 집약은 닻의 역할을 하게 된다. Axie Infinity는 재미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게임 내 NFT를 무형자산화 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한국 게임이 블록체인에 어울리는 이유

한국 게임이 강력한 이유는 단순 엔터테인먼트 사업이 아니라 무형자산을 생산하는 비지니스이기 때문이다. 게임사가 무형자산을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당연히 턱 없이 낮은 수준이다. 한국 게임사가 매해 어마어마한 이익을 기록하고 있는 배경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서구권 게임의 경우 “우리는 힘을 팔지 않는다(we don’t sell power)”라는 기치 아래, 모든 플레이어가 동등선에서 출발하는 스포츠의 성격을 띄고 있다. e-sports로 발전한 Starcraft와 League of Legends만 봐도 그렇다. 즉, 한국과 달리 엔터테인먼트 티켓을 파는 비지니스라는 얘기다. 이 경우, 게임의 주권은 온전히 게임사에서 가져가게 되고, 게임 세계관 내에 다른 무형가치가 쌓이지 않는다. 반면, 리니지와 같은 한국게임은 무형자산이 축적된 세계관을 이루고 있다. 실제로 리니지 내 축적된 가치의 총합은 수 조원에 달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League of Legends 경기장


한국형 MMORPG 게임에서는 실질적인 세계관 소유권이 게임사가 아닌 생산과 투자가 활발히 이뤄지는 유저 생태계에 자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아이템 및 가챠 가격 책정 시 게임사 vs 유저간의 갈등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유저 입장에서는 게임사의 무분별한 가격 조정이 재산권에 대한 직접적인 침해로 이어진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게임이 메타버스에 가장 근접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진정한 메타버스란 단순히 시공간적인 차원의 세계가 아니라 경제시스템과 자본이 집약된 디지털 버전의 현실 세상이다. 때문에, VistaLabs에서는 메타버스라는 단어보다는 디지털 국가(Digital State)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디지털 국가 내 재산을 소유한 유저 입장에서는 게임의 정책(현실의 정치 및 경제시스템)의 변화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게임사 정책에 대한 유저의 항의


따라서, 한국게임에서 블록체인이 의미하는 것은, 게임의 주인이 주주인가 유저인가에 대한 해묵은 논쟁에 대한 대답이자, 유저의 사유재산 인정 등 주권적 독립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유저는 DAO를 통해 게임의 정책에도 관여할 수 있게 된다. 유저의 재산권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서구권 게임에는 적용되기 어려운 개념이다. 리니지 아이템이 시장가격을 갖추게된 토양이 되었던 아이템 거래사이트, 아이템베이의 경영진이 빗썸 창업자가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디지털 자산에 대한 이해와 순응은 한국에서는 이미 오래된 개념이었던 것이다.

|블록체인 게임의 미래와 메타버스

2021년부터 글로벌 트렌드를 꿰뚫는 키워드로 메타버스가 있었다. 메타버스는 일종의 플랫폼 성격으로 소수의 주체가 시장을 독점하는 oligopoly 형태를 보일 것이라 예상된다. 이 가운데, 메타버스를 주도할 주체가 누가 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는데, 크게 세가지 그룹을 생각해볼 수 있다. 바로, 1) 광대한 유저 베이스를 위시한 SNS 자이언트 2) 디지털자산 이념으로 무장하여 메타버스 hype을 촉발한 블록체인 기업 3) 경제시스템 구축 및 게임의 기술적 개발 능력, 충분한 유저를 보유한 게임사이다.

페이스북이 주도하는 SNS 그룹의 경우, 여러모로 주목받고는 있으나 세계관 내의 경제시스템 구축이 요원하기도 하고 그래픽 등 기술적인 부분에서 기대에 못미치는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VR 또는 고성능 디바이스라는 하드웨어의 보급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도 불리한 점이다. 블록체인 기업의 경우, 지금까지 보아온 P2E 게임과 메타버스에서 보듯이, 그래픽의 수준 및 서버 관리, 크립토라는 제한적 시장(addressable market)에서 한계점을 보이고 있다.

 

막대한 투자에도 설익은 결과물로 비판 받았던 Meta(페이스북)


한편, 게임사 중에서도 한국 게임개발사는 가상세계의 경제시스템에 대한 이해, 구축 능력, 기술적 우월함, 유저 베이스 등 여러방면에서 메타버스를 주도할 자격을 이미 갖추고 있다. 몇가지 넘어야할 관문이 있다면, Web2에서 Web3로의 순조로운 user migration과 게임사 또는 주주로부터 유저로 주권이 이양되면서 발생하는 이해상충의 해소다. (정부 규제는 별개의 사안으로 간주)

전망의 영역이긴 하지만, 이 두 문제가 순조롭게 해소될 개연성은 충분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User migration의 경우 유저들의 크립토 이해 및 교육이 전제되긴 하지만 결국 재산권 보호 측면에서 유저에 유리하고, 게임사에 대한 유저의 영향력 및 절박함(재산권)의 크기를 고려했을 때 주주와의 이해상충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게임사와 주주는 여전히 마진 높은 무형자산을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게임의 블록체인化가 게임사&주주에 가져다 주는 중요한 시사점은 바로 앱스토어로부터의 독립이다. 현재 구글 플레이스토어 및 애플 앱스토어를 통한 결제 시 무려 30%에 달하는 수수료를 플랫폼에 헌납하고 있다. 결제 시스템을 암호화폐로 하는 블록체인 게임에서는 이 비용을 아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특히, 국내 대형 게임사가 갖고 있는 IP에 대한 자신감을 고려했을 때, 앱스토어 플랫폼 종속된 현상황이 상당히 불만스러울 것으로 추측된다.

이에 따라, 블록체인 시장에서의 한국 게임의 전망을 매우 높게 보는 동시에, 치열한 메타버스의 각축전에서도 앞서나갈 수 있는 포지션을 갖추고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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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명
박태우
소개글
現) 비스타랩스 이사 前) 삼성증권 애널리스트 前) 한화자산운용 Credit Strategiest 前) 두나무투자일임 Early-stage의 암호자산에 투자하는 Crypto VC 매니저입니다. 대표적 전통자산 채권을 바라보던 시각으로, 눈앞에 다가온 블록체인 혁명을 이야기합니다. (https://t.me/vistala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