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 투자자와 개인 투자자의 차이 #1
Summary
- 오늘날에도 통용되는 한 펀드 매니저의 20년 전 이야기
- 기관 투자자가 개인 투자자를 이기기 위해서는 투자 시기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함
-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주식을 대량 매입한 것 역시 같은 맥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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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펀드매니저의 20년 전 통찰력 '유끼 코리아'라는 투자 컨설팅 회사가 2000년부터 2년에 걸쳐 무료 세미나를 한 적이 있습니다. 국내 유수의 자산운용사 임직원들이 주 대상이었습니다. 대리 진급하며 펀드 운용을 시작한 지 채 1년도 안 된 신입 매니저인 제가 운 좋게 유끼 씨의 강연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근무한 회사의 사장으로 부임하신 대장님*의 배려 덕분입니다.
당시는 98년에서야 EV/EBITDA, FCF와 같은 개념들이 소개될 정도로 국내 운용산업이 해외에 비해 상당히 낙후되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주가를 조작하는 작전이 난무했던 어지러운 시기. 이런 판국에 무슨 이득을 얻겠다고 롯데호텔 연회장을 자비로 빌리면서까지 무료로 펀드 매니저 교육을 시켜주는 까닭이 무척 의아했습니다. 유끼 씨는 15년 이내로 장차 국내 가계금융자산이 최소 2천 조 원** 이상 늘어날 걸 감안하여 자산운용사(당시는 투자신탁사)와 같은 기관 투자자에게 투자 자문을 하기 위한 사전 마케팅 차원이라고 밝혔습니다.
강산이 두 번 바뀐 지금, 오래전에 무릎을 쳤던 것들 중에는 시대에 뒤떨어진 내용들이 꽤 있습니다. 하지만 2020년대, 아니 투자를 한다면 언제나 기억해야 할 금과옥조 역시 상당히 많습니다. 기관 투자자가 아닌 개인 투자자라면 더욱 알아야 할 교훈이기도 합니다. 유끼 세미나를 통해 넓힌 지평을 공유하고자 몇 차례로 나눠서 간략히 소개하겠습니다.
* 그때 몸담았던 운용본부에서는 신임 사장님을 대장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격의 없고 대쪽 같은 선비 스타일이 마치 구한말 의병대장 같다는 의미에서 붙인 별명입니다.
** 2015년 말 한국의 가계금융자산은 3,182조 원. bull case로 봤던 2,500조 원을 가볍게 상회했습니다.
기관은 개인을 이길 수 없다 유끼 씨(이하 유끼로 호칭)는 80~90년 대 미국 피델리티 본사에서 보기 드물었던 아시아계 펀드 매니저였습니다. 유끼는 은퇴 후에 일본을 거점으로 동북아에서 투자 자문 사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 일환으로 피델리티에 백만 달러를 지불하여 밸류에이션 모델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게 됩니다. 당시 유끼는 현대투자신탁회사(현 한화자산운용이 합병)에서 운용본부 고문으로 활동했습니다.
첫 세미나를 시작하자마자 유끼가 던진 화두가 너무나도 강렬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도 운용업계 지인들에게 이 문장을 자주 인용합니다.
"In terms of the act of investing itself, there is no difference between an individual investor and an institutional investor. However, the best performer year after year has been an individual investor. It is difficult for an institutional to be an institutional investor." - 피델리티 CEO, 에드워드 존슨 3세 -
피델리티를 창업한 아버지 존슨 2세를 이어받은 에드워드 존슨 3세는 마젤란 펀드의 피델리티조차도 개인투자자의 수익률을 이기기 불가능하다고 단언했습니다. 주식을 사고파는 매매 그 자체의 행위는 사실 기관과 같은 프로나 아마추어 개인에게 똑같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기관 투자자는 포트폴리오를 구성한 탓에 수익률 1등 종목도 있고 꼴등 종목도 있을 수 있어 수익률이 평균화됩니다. 이에 반해 개인 투자자는 확신만 있다면 1 종목에 올인할 수 있으니 매년 베스트 수익률은 개인이 달성한다는 것이죠. 테슬라로 조기 은퇴한 드볼트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1년 반 동안 +2,000% 수익률 달성! 한마디로 기관이 개인 투자자에게 수익률 게임을 해서 이길 수 없습니다.
여기에 투자 기간을 1년으로 제한하면 기관과 개인의 차이 구분이 더 힘들어집니다. 최소한 기업이 구조조정을 하거나 사업 포트폴리오를 변화시켜 그 성과를 증명하는 데 2~3년 이상 걸릴 테니까요. 기관 투자자가 모래밭에서 보석을 발굴하듯 투자 유망한 종목으로 개인과 차별되려면 최소한 3년 이상의 수익률로 평가를 받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해외 자산운용사들은 펀드 매니저를 평가하는 기간을 최소 3년 내지 5년, 좀 더 길다면 10년으로 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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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에도 적기가 있다 그렇다면 매년 투자 성과가 최고 수익을 얻는 개인에 비해 뒤떨어지는 기관투자자가 무슨 근거로 고객들에게 투자 자금을 맡겨 달라는 걸까요? 수익률 게임에서 애당초 상대가 되지 않는 기관투자자가 낯부끄럽지 않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비장의 무기는 무엇이어야 할까요? 존슨 3세는 기관투자자라면 성과의 지속성이 달라야 함을 강조합니다. 앞서 얘기했던 6개월, 1년으로 평가받는 게 아니라 3년 이상의 중장기 기간 동안 꾸준한 성과가 중요하다는 거죠.
그러나 다음으로 거론한 이유가 제게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바로 주식 투자를 해야 할 시기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주식을 반드시 투자해야 할 시기에 투자를 안 하면 기회 손실이 발생합니다. 반대로 주식투자를 피해야 하는 시기에 투자를 하게 되면 금전적으로 상당한 데미지를 받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시기란 주가가 오르거나 빠지는 짧은 사이클이 아니라 주식 투자에 알맞은 경제 환경과 장기 추세를 뜻합니다. 보통 한 나라에서 주식 투자에 적합한 시기가 형성되면 짧게는 10여 년, 길게는 20여 년 추세가 유지된다는 것이죠. 이 시기가 끝나면 다시 호시절이 올 때까지 바지저고리 잡듯 안 되는 시장을 쓸데없이 붙잡지 말고 다른 나라로 투자처를 옮기라는 조언입니다. 그러면 언제 투자 지역을 옮겨야 할까요? 바로 자국 기업의 이익 성장이 기조적으로 해외 기업에 뒤쳐질 때입니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어 IMF로 온 나라가 암울했던 98~99년에 외국인 투자자들이 미친 듯이 한국 주식을 매수했습니다. 재계 3위 대우 그룹이 부도에 몰리고 한국 경제가 망한다고 국내 기관투자자들이 주식을 팔아 제치던 때였습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왜 지난 2년간 한국 주식을 쓸어 담았을까요? 한국이 불쌍하니 도와주고 싶어서? 절대 아닙니다. 자본주의가 태동한 18세기 이래로 온 지구를 구석구석 떠돌면서 투자 수익에 혈안이 된 이들이 자선 사업하려고 한국에 들어온 게 아닙니다."
유끼는 IMF 이후 공격적인 행보를 보였던 해외 자본이 가진 글로벌 투자 스탠더드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97년 한국의 가계금융자산이 400조 원 미만이었습니다. 피델리티는 한국의 가계금융자산을 낙관적 시나리오로 2005년 1,000조 원, 2015년 2,500조 원이 될 것으로 추정했어요. 비관적으로도 2005년 700조 원, 2015년 2,000조 원에 달할 걸로 예측합니다. 금융자산이 커지는 만큼 주가가 장기적으로 오를 테니 안 살 이유가 없어요. 누가 먼저 찜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죠."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중남미를 식민지로 삼아 경제 이권을 꼼꼼하게 챙긴 구미 투자자들이 한국이 예뻐 투자한 게 아니라는 설명이 그렇게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그들의 예측대로 한국 가계금융자산은 2005년에 1천 조원을 돌파했고 2015년에는 3천 조 원을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에 투자해서 과실을 챙겼고 우리는 그 덕분에 경제 주권을 유지하며 지금의 규모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좋게 해석하면 서로 윈윈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경제는 언제까지 주식 투자를 하기 좋은 시기일까요? 저출산, 저성장이 고착되어 미래가 암울한데 과연 주식투자를 해도 되는 것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은 다음 기회에 정리하겠습니다.
*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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