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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각: 가치주와 성장주 - 두 얼굴의 야누스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야누스(Janus)라는 신이 등장한다. 

야누스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두 얼굴의 존재다. 이중성과 양면성을 상징한다. 상당히 부정적인 뉘앙스가 담겨 있으나 고대 로마인들이 야누스에 양면성을 부여한 데는 나름의 철학이 있다. 야누스는 단순히 양면성을 상징하기에 앞서 문(門)의 지킴이다. 그리고 하나의 문은 동시에 입구이자 출구다. 동일한 사물에 두 가지 다른 면이 있다는 것 혹은 두 가지 다른 모습을 통해 하나의 사물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 - 이것이 바로 야누스가 의미하는 바다. 

생각해 보면 세상만사에는 피상과 이면이 있다. 동시에 정과 반이 존재한다. 물리학에는 양자역학과 고전역학이 있고 경제학에는 미시와 거시가 있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투자에는 가치 투자(value investing)와 성장주 투자(growth investing)가 있어 이 둘은 지금까지 충돌해왔다. "가치 투자 VS 성장주 투자"의 구도는 오랫 동안 투자업계를 주름 잡아온 화두 중 하나다. 

 

| "밸류(Value)의 죽음"

지난 10년 간 투자 패러다임을 지배한 것은 명백하게 성장주 투자(Growth Investing)다. 그리고 해당 패러다임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기점으로 심지어 더욱 강화됐다. 언택트 및 자동화의 물결은 기존의 정통 산업보다 IT 기업들에 보다 우호적인 여건을 마련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변화는 주가에 그대로 반영돼 테크 기업들의 주가는 어느 때 보다 높다. FANG + 마이크로소프트의 시가총액 합은 한 때 미국 S&P 500 지수의 25%을 차지하기까지 했다. 추가로 희대의 기업인 테슬라가 나타나 성장주 주도 장세에 정점을 찍어 가고 있다.

 

지난 10년간 S&P 500 성장주 지수: 100 ▶ 400(4x)

지난 10년간 S&P 500 가치주 지수: 100 ▶ 200(2x)

 

출처: S&P

 

다만 성장주 패러다임을 처음 형성한 것은 단순 기술에 대한 환상이 아니다. 바로 저금리다.

09년도 금융 위기 이후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은 기준 금리를 0.25%로 인하하며 성장주 패러다임의 토양을 제공했다. 저금리가 가치주보다 성장주에 우호적인 풍토를 만드는 이유는 성장주에 기대되는 높은 미래의 현금 흐름이 현재 가치로 할인될 때 저금리로 갈수록 할인폭이 감소되기 때문이다(노란색 테이블). 간단히 표현하면 성장주의 미래 기대 현금흐름성장률이 크기에(예시 성장주: 20% vs 가치주: 10%) 이를 분모에 할인하는 금리가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20%라는 높은 성장률을 온전히 현재 가치로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지난 10년 간 성장주가 투자 패러다임을 지배하다 보니 오죽하면 다음과 같은 표현이 나오기까지 했다(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가치투자의 성과는 성장주 투자 대비 매우 부진했다).

 

"Death Of Value(가치투자의 죽음)" (관련링크)

 

| "통화정책에 이어 재정정책의 등장"

다만 매우 흥미롭게도 코로나로 인해 야기된 기술주 주도 장세에서 최근 Value 주식들이 다시금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출처: Financial Times & Bank of America

 

기존 성장주 랠리의 배경에 저금리가 있고 여기에 코로나로 인한 언택트 시대가 한몫을 했다면 예상되는 가치주 랠리의 배경에는 미국 바이든 정부가 실행할 대규모 부양정책이 존재한다. 현시점에서 예상되는 규모만 1조 9,000억 달러(~2,000조 원)다. 그리고 상하원을 모두 장악한 점을 고려하면 민주당의 부양책은 추가로 더 나올 가능성이 다분하다.

재정정책이 통화정책(금리)과 달리 가치주에게 유리할 것이라 시장이 보는 이유는 정부 재정의 활용이 보다 섬세하게 타겟팅 되기 때문이다. 가령 이번 부양정책의 핵심은 중소기업 및 친환경 그리고 인프라 투자다. 정부가 의도적으로 이러한 분야로 재정을 투입하겠다는 뜻이다.

반면 중앙은행이 실행하는 통화정책은 광의적이다. 금리를 인상하고 인하한다. 금리를 인상해 시중의 돈을 거둬들여 버블을 방지하고 반대로 금리를 인하해 경기를 촉진한다. 단 아무리 금리를 내려도 기업과 가계가 돈을 빌려 투자를 하거나 소비를 하지 않으면 통화정책은 유명무실해진다. 더 나아가 통화정책은 어떤 섹터 및 산업을 육성할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 간단히 비유하면 통화정책은 돈의 가격을 낮춰 돈을 쉽게 빌리게끔 유도하는 것이고 재정정책은 정부가 직접 문 앞으로 찾아와 기업과 가계의 호주머니에 돈을 꼽아주는 행위다. 이러한 이유에서 대규모 재정정책의 출현은 지금까지 통화정책에만 의존했던 금융 시장에 새로운 플레이어가 등장했음을 의미한다.

 

| "야누스의 통합"

재정정책은 확실히 가치주에 긍정적인 재료다. 다만 그렇다고 성장주의 상승세가 꺾일 것이냐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다. 우선 성장주 가치를 견인하는 (1) 저금리와 (2) 언택트 테마가 근 시일 내에 사라질 것 같지 않다. 최근 대규모 부양책으로 인해 인플레이션 기대치가 오르고 장기금리가 소폭 상승해 저금리 기조를 위협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금리 상승 시기까지는 한참 남았다. 코로나가 창궐한 지 1년이 되지 않은 시점으로 아직도 세계 경제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사투 중이다. 이 시점에 금리를 인상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그리고 기술주 주도의 언택트 테마는 이미 new normal이다. 설사 코로나가 종식되더라도 과거처럼 사람들이 오프라인 생활 방식으로 회귀할 가능성은 낮다.

그렇기에 향후 투자의 판도는 개인적으로 가치 투자와 성장주 투자의 방식이 공존할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처럼 성장주와 가치주를 양분해 구분하는 것은 의미를 잃을 것이다. 상반된 두 얼굴이 하나의 전체를 구성하는 야누스의 얼굴처럼 밸류(Value)와 성장(Growth)의 두 면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생각해 보면 모든 투자는 결국 가치 투자이다. 왜냐면 누구도 가치가 없는 것을 사고 싶지 않아 한다. 가치 대비 비싼 값을 주고 매수하지 않을 것이다(정확히 표현하면 비싼 가격에 매수하지 않으려 한다에 가깝다. 상투 잡는 것이 빈번함을 고려하면 비싸게 사서 싸게 파는 것은 흔하게 볼 수 있다). 동시에 모든 투자는 결국 그로스 투자다. 왜냐면 어느 누구라도 향후 가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자산에 투자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성장세가 꺾인 산업(가령 석유 기업)에 투자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간단한 예를 들면 나스닥 지수는 글로벌 금융 시장 중 어느 지수보다 성장주에 가깝다. 지금까지 계속 올라왔고 앞으로도 장기적으로 오를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의미에서 나스닥에 투자하는 것은 그로스 투자가 맞다. 하지만 나스닥 지수의 진입 시점이 모두 적절하냐 한다면 그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예가 2000년도 초반의 닷컴 버블이다. 닷컴 버블이 터지기 직전 나스닥 지수는 4,900을 기록했다. 해당 지수는 이후 1,300까지 하락하고 다시 4,900을 기록한 시점은 2015년이었다. 닷컴 직전에 투자할 경우 원금을 회복하기까지 15년이 걸린 셈이다. 매우 고통스러운 15년일 것이다. 단 그 이후 나스닥 지수는 3배가량이 상승해 현재는 13,000이 됐다.

닷컴 버블의 전례는 가치 투자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사례다. 하지만 13,000까지 오른 나스닥의 현주소는 장기적 관점에선 결국 혁신과 성장이 모든 것을 결정함을 알려준다. 그렇기에 이 둘은 함께 가야 한다. 투자의 대가 하워드 막스가 최근 언급했듯이 정보가 점차 투명해지고 기술의 혁신이 가속화되는 지금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은 점점 더 무의미해질 것으로 생각된다.

야누스의 두 얼굴이 합쳐져 하나의 야누스가 되는 것이다. 투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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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 자산운용사 상품팀 금융인. ETF와 지수에 대해 모든 걸 설명하겠습니다. “It started out as a product, and it became an industry” (일개 상품으로 시작한 ETF는 이내 그 자체로 산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