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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2번 버스여행

대정마을 ~ 예래마을

702번 버스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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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이고 계속되던 비가 멈춘 어느 날, 흐리고 쌀쌀한 날씨에도 버스에 몸을 실은 우리를 칭찬하기라도 하듯 따스한 햇볕이 구름을 뚫고 내려왔다. 어느덧 세번째 702번 버스여행. 노선의 끝자락을 타고 대정과 안덕, 대평, 예래… 제주 서남쪽 마을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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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2번 버스여행

1 대부분의 버스정류장마다 전광판이 있어 버스가 어디쯤 왔나 확인이 가능하다. 2 추사의 작품 「세한도」를 본 따 만든 절제미가 돋보인다. 3 유배지 울타리는 탱자나무로 둘러 감호하는 주인 외에는 드나들 수 없도록 하였다. 4 추사가 가장 긴 유배기간을 보냈던 강도순의 집을 복원하여 만들었다 .

시간을 거슬러, 대정마을

버스에서 내리니 검은 현무암이 용처럼 굽이굽이 이어지는 대정읍성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대정의 옛 이름은 대정현으로 지금의 제주시 원도심 부근인 제주목, 성읍민속마을이 있는 정의현과 함께 제주의 가장 큰 세 고을 중 하나였다. 하지만 격동의 근현대기를 거치며 예전의 모습이 거의 사라져버렸고 중심지에서도 멀리 비껴나 그저 허물어진 성의 일부분만을 간직한 고요한 마을로 남고 말았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사람들이 힘을 모아 복원한 대정읍성과 추사 김정희 유배지, 새롭게 지은 추사관, 옛 모습 그대로의 대정향교와 돌하르방이 대정마을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대정읍성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오면 보이는 감자창고 같은 건물이 바로 추사관으로 제주에서 10년에 가까운 유배 기간을 보냈던 추사 김정희를 기리기 위해 지어졌다. 하필이면 우리가 찾은 날은 재정비 중이라 둘러볼 수가 없지만 단순한 형태의 건축미와 전시를 보러 조만간 다시 찾으려 한다. 맞은편에는 그가 유배생활을 했던 집을 복원해 놓았다. 돌담을 따라 유독 가시가 날카로운 탱자나무가 빼곡히 심겨있는데 이것은 추사 김정희가 위리안치라는 형벌을 받았기 때문이다. 집 주변을 가시나무로 둘러 감호하는 주인 외에는 집에 드나들 수 없도록 한다. 이 가시나무로 모든 것이 풍족하지 않고 자유롭지 못했던 제주에서의 유배생활이 얼마나 고독하고 힘들었을지 조금이나마 짐작해본다. 그래도 그에게 학문을 배우려는 제자들과 초의선사 등 그의 벗들이 찾곤 했다니 그 덕분에 힘을 내어 추사체와 세한도를 완성할 수 있지 않았을까. 추사 김정희의 작품과 추사체, 그의 친구들에 대해 전하는 이야기가 많으니 알고 방문한다면 더욱 재미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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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복원된 대정읍성만이 대정마을이 예전에는 제법 큰 고을이었음을 보여준다. 6 계곡 중간 커다란 바위가 웅장하다. 7 안덕계곡에서 나오는 길, 어느 쪽으로 갈까? 8 떨어진 동백꽃잎이 꽃길을 만들었다. 9 비가 온 뒤라 물이 더욱 세차게 흐른다 .

신비로운 기운, 안덕계곡

다시 버스를 타고 10분이면 안덕계곡에 도착한다. 울창한 숲과 맑은 계곡, 때 묻지 않은 자연이 신비로워 종종 사극의 배경이 되기도 하는 곳이다. 다른 관광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아서 한적함을 만끽하며 산책하기에 좋다.

 

입구에서 동백꽃이 우리를 맞이한다. 분홍 꽃잎과 노란 꽃술의 대비, 바닥을 가득 메운 꽃잎, 이슬 맺힌 이름 모를 보랏빛 열매에 눈길이 빼앗긴다. 한겨울이면 빨간 동백이 맑은 계곡 위를 떠다니는 그림 같은 풍경도 연출되니 안덕계곡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은 겨울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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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2 마을에서 만난 커다란 하귤열매 3 지붕 위에서 낮잠을 청하던 고양이 4 피자가 맛있게 구워지는 화덕 5 도우가 쫄깃한 담백한 맛의 피자 6 대평박수기정 앞에서 소소한 장난

고양이가 조는 마을, 대평마을

702번 버스는 마을 안까지는 들어가지 않는다. 대평마을로 가려면 예래입구 정류장에서 내린 뒤 조금 걸어 상예입구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이동, 100번이나 120번 버스를 타야 한다. 대평은 시내버스 종점이 있는 작은 마을로 올레 8코스의 끝 지점이자 9코스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여기저기 둘러보다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 문득 빨간색 간판을 단 ‘거닐다’ 카페가 눈에 들어온다. 안을 훔쳐보니 저마다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차분히 제 할 일을 하는 가게 주인의 모습이 아늑한 분위기를 풍겼다. 가까운 곳에 보말칼국수로 유명한 맛집도 있는 이 바닷가 마을에서 피자와 파스타? 고민도 했지만 결국 문을 열고 들어서고 말았다. 샐러드와 피자, 파스타까지 골고루 주문하고 주변은 둘러보니 화덕에선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피자가 구워지고 있고 아담한 마당과 아기자기한 인테리어가 돋보였다. 직접 반죽하고 화덕에 노릇하게 구워낸 피자는 도우가 쫄깃하고 고소했고 부드러운 파스타는 담백하고 깔끔한 맛이었다.

 

배를 채우고 나오니 겨울이라는 계절이 무색할 정도로 날씨가 따스해졌다. 두꺼운 외투를 벗고 골목을 따라 무작정 마을을 누비다 보니 금귤나무며, 하귤나무며 집집이 다르게 꾸며놓은 마당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느 집 지붕에선 고양이 한 마리가 엎드려 따뜻한 햇볕에 졸음이 쏟아지는 듯 느리게 눈을 끔뻑끔뻑 할 뿐이었다. 일광욕하며 늘어지게 낮잠을 청할 고양이가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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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버스차창 너머로 귤밭이 지나간다. 8 해녀상과 대평바다가 어우러진다. 9 오래 걸었더니 겨울인데도 시원한 커피가 당긴다. 10 대평박수기정과 밭, 바다가 어우러지는 마을풍경 11. 낚시하는 사람들 너머로 형제섬이 보인다.

골목을 통과하니 시원한 바닷가 풍경이 펼쳐진다. 이곳 대평포구는 예전에는 제법 큰 포구로 분주히 많은 배가 오갔지만 지금은 통통배만이 정박한다. 그럼에도 이곳이 특별한건 현무암, 몽돌, 시원하게 내리꽂힌 듯한 박수기정, 헤엄치는 물고기가 그대로 들여다보이는 맑은 물까지 다채로운 바다 풍경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평포구에 특별함을 더하는 또 하나는 바로 해녀. 물질을 마치고 마무리작업에 한창인 해녀들을 만났는데 하루 동안 잡은 소라만 해도 그 양이 어마어마해서 입이 떡 벌어진다. 그렇게 잡은 소라는 그물망에 담아 바닷물 웅덩이에 보관을 하는데 제법 깊은 웅덩이를 가득 메우고 남을 정도다. 자연산 전복도 해녀들이 아니면 맛은커녕 보기도 힘들 터였다. 그런데 그 귀한 자연산 전복이 테왁마다 들어 있어 제주 바다의 풍요로움을 느끼게 했다. 평소 먹어온 전복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커서 어찌나 탐스러운지 발걸음을 떼기가 어려웠다. 유쾌한 해녀들의 웃음소리와 정겨운 사투리가 파도처럼 넘실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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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녀들의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2 큼지막한 자연산 전복의 위엄 3 마을사람들은 시간에 맞춰나와 소라나 전복을 사가기도 한다. 4 다음 목적지를 향해 굽이굽이 이어진 길을 착실히 걸어간다.

예래마을로 가는 길

예래마을로 가는 길에서 제주의 현실을 마주한다. 반짝반짝 빛나는 바다, 올레꾼들이 웃으며 오갔던 해안가의 풍경이 몇 년 사이 많이도 달라졌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호텔과 리조트, 널브러진 공사 잔해와 공사가 중단된 잿빛 건물들까지… 보는 이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멋있는 풍경과 화려한 관광지, 맛있는 음식만으로도 부족한 여행에서 어쩌면 이런 풍경과 마주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름답게만 보이는 곳에서도 그 안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수많은 다툼과 고민이 있다는 것을 버스여행으로 찾은 예래마을에서 비로소 깨닫는다. 제주를 사랑하고 아끼는 모든 사람의 바람처럼 어서 아름다운 본래의 모습을 찾기를 바라본다.

 

그래도 마을 안은 여전히 아기자기하고 정겨운 풍경으로 가득하다. 적으로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해 쌓았던 환해장성의 흔적이 남아있고 용천수와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인 논짓물이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여름이라면 시원하게 멱을 감겠지만 겨울이라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논짓물과 바다를 뒤로하고 낙엽이 쌓은 골목길을 지나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다시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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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예래마을 안 돌담과 덩굴, 귤의 조화가 아름답다. 6 논짓물에서 바다 위를 걷는 기분을 만끽한다. 7 거리 곳곳의 낙엽이 겨울의 운치를 자아낸다. 8 억새 뒤로 환해장성이 옛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귤이 있는 풍경

겨울이면 제주 어디에서나 귤이 있다. 귤을 따는 손놀림이 분주한, 일년 동안의 노고가 결실을 맺는, 제주가 가장 풍요로운 계절이다. 싱그러운 귤과 파란 나뭇잎이 삭막한 겨울풍경에 생기를 더하고 달리는 버스 차창 너머로 귤이 바람처럼 지나간다. 돌담 너머 손만 뻗으면 딸 수 있는 귤이 한 가득이다. 주인 몰래 따서 싱싱한 귤을 입에 쏙 넣고 싶은 유혹이 일지만 침만 꼴딱꼴딱 삼키며 참을 뿐이다. 귤밭 너머 하얗게 눈이 쌓인 한라산을 왼편에 두고 702번 버스는 달리고 있다.

버스여행정보

– 우리가 탄 버스는 제주시외버스터미널부터 서귀포시외버스터미널까지 서쪽으로 돌아가는 702번 버스입니다.

– 버스요금은 구간에 따라 1300원부터 3300원까지 달라지므로 행선지를 밝히고 탑승해야 합니다.

– 오전 5시 40분부터 오후 9시까지(제주시외버스터미널 기준) 20분 간격으로 운행합니다. 행선지에 따라 경유하는 노선에 주의합니다.

– 하차 시 교통카드를 태그하면 30분 동안 2회까지 환승할인이 가능하며 동일노선을 환승할인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 제주버스정보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면 좀 더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에디터 / 김지은

포토그래퍼 / 강일선

일러스트 / 김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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