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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독립영화상영관 '극장판'

이태원 독립영화상영관 '극장판'

‘영화’라는 콘텐츠가 대중적인 문화콘텐츠의 중심에 자리 잡은지도 오래됐다. 점점 발전하고 있는 영화산업은 연간 개봉하는 영화 편수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한 기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는 총 1,095편의 영화가 개봉했고 6년 전인 2008년 380편이 개봉했던 것과 비교하면 약 3배가 늘었다고 한다. 반면 같은 기간 영화가 상영되는 스크린 수는 약 10% 늘어났을 뿐이다. 영화의 홍수 속에서 살아남는 작품들이 소수에 한정되고 있는 형편 속에서, 작은 독립영화들이 관객들에게 알려지기란 쉽지 않다.

독립 + 영화

이태원 독립영화상영관 '극장판'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독립영화를 몇 편이나 본 적이 있는가? 영화를 전공하며 단편영화 제작 경험이 많은 사람으로서 독립영화에 대한 동정심은 자연스럽게 마음 한 켠에 자리잡고 있다. 열악한 환경과 독립영화인으로서 설 곳이 많지 않은 현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태원 독립영화상영관 '극장판'

‘인디 영화’라고도 불리는 ‘독립영화’는 상업영화와 다르게 상업적 자본으로부터 독립하여 감독 및 창작자의 의도대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이러한 독립영화들은 대규모 상업영화들에 밀려 빛을 발하지도 못한 채 묻히는 경우가 많다. 상업영화에서 볼 수 없는 참신한 주제의식과 촬영 기법이 있다고 해도 홍보-마케팅 측면에서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스크린에 상영될 기회, 즉 관객을 만날 기회 자체가 없는 영화가 있다는 것은 분명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독립영화인들은 직접 상영 공간을 만들고 관객을 찾는 등 다방면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태원의 숨은 무비 플레이스

이태원 독립영화상영관 '극장판'

청년 아티스트들의 에너지 넘치는 공간들로 채워지면서 활기를 띄고 있는 이태원 ‘우사단길’. 다양한 볼거리와 나만 알 것 같은 골목길의 운치는 '우사단길'을 핫 플레이스로 자리잡게 했다. 그 중에서도 우사단로 구불구불 주택가 골목에 위치한 독립영화상영관 ‘극장판’은 상영할 기회가 적은 독립영화를 위한 공간이다. 다양한 독립영화 중에서도 러닝타임이 짧은 단편영화만을 상영하는 이곳은 영화 연출을 전공한 감독과 그의 지인이 함께 시작하여 부평에서 첫 운영을 하다가 2014년 12월 이태원으로 이전했다.

이태원 독립영화상영관 '극장판'

달랑 주소 하나만으로 찾아가야 했던 ‘극장판’은 이태원의 언덕과 한없이 기나긴 구불구불 골목을 지나 겨우 만날 수 있었다. 몇 블록 앞에서부터 전봇대에 붙어 있던 알림판이 너무나 반가웠을 정도로 꼭꼭 숨어 있었다. 허름한 가정집을 개조해서 만든 것 같은 외관에 한 번 놀라고 그와 다르게 알찬 상영관 내부에 한 번 더 놀랐다. 대문을 열고 작고 좁은 통로를 지나 들어서면, 현재 상영하고 있는 단편영화의 포스터들과 다양한 종류의 DVD들이 이곳이 영화관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해준다. 한 켠에는 각종 수공예 제품과 음료를 판매하는 잡다구리 매점뽕까지 색다른 컨셉으로 꾸며 놓았다. 영사실부터 시작해서 좌석배치도, 관람 티켓까지 구비하여 한껏 분위기를 냈다. 아기자기하면서도 유니크한 인테리어에서는 운영자들의 개성을 엿볼 수 있었다.

이태원 독립영화상영관 '극장판'

'극장판' 운영에서 가장 독특한 점은 상영시간표가 따로 없다는 것이다. 방문했을 때 관객이 없을 경우 바로 영화를 관람할 수 있고 만약 상영중이라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단편영화 특성상 러닝타임이 짧기 때문에 대부분 30분 이내의 대기시간이면 충분하다. 정형적인 시스템이 아닌 관객 중심의 운영은 이 공간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극장판'에서는 한 달에 보통 3~4편의 단편영화가 고정적으로 상영되지만 그 수가 유동적이고 매달 상영작들이 바뀐다. 시즌별 공모를 통해 선정된 작품들을 상영하기도 한다. 그 외에는 자체적으로 운영자들이 작품들을 선정하여 선보인다. 게다가 영화 시사, 영화 관련 스터디 등을 목적으로 대관을 할 수도 있다. 이렇듯 '극장판'은 다양한 작품들에게 상영 기회를 제공하고 관객들과의 만남을 주도하는 의미있는 공간이다.

그 누구를 위한 공간

이태원 독립영화상영관 '극장판'

비가 보슬보슬 내리던 그날의 극장판은 마치 내가 통째로 대관한 듯 나만의 공간이었다. 다른 관객이 없었기에 여유 있게 둘러볼 수 있었고, 영화 연출이라는 교집합을 가지고 있는 운영자 분과 이런 저런 대화도 나눌 수 있었다. 이런 공간이 너무 신기했던 나는 한참을 빙빙 돌며 머물렀다. 7월 한 달 동안에 상영되는 네 편의 영화 중 무엇을 봐야할 지 고민하던 나에게 운영자분은 친절하게 상영작들의 소개가 담긴 아이패드를 건네주었다. 한참을 고심하다 선택한 영화는 약 17분가량의 '우리 공주님'. 극장판이 그려진 귀여운 영화 티켓을 받고 상영관으로 입장했다. 다른 관객이 없었기 때문에 대기시간 없이 바로 관람할 수 있었던 것은 그날의 행운 중 하나. 하지만 대기시간이 있었어도 불평은 없었을 것이다.

이태원 독립영화상영관 '극장판'

상영관에 들어서자마자 향긋한 방향제 냄새가 코끝 가득 기분 좋게 차올랐다. 여섯 개의 아담한 소파로 구성된 상영관 내부는 5평 남짓 될까 말까한 아주 작은 규모였는데 커다란 검은 커튼이 외부와 상영관을 차단하는 역할을 했다. 그 가운데에 혼자 앉아 있으니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오로지 나만을 위한 영화관이라 생각하니 특별한 이벤트를 받는 느낌에 괜시리 행복해지는 순간이었다. 20분이 채 안되는 단편영화를 보고 그 영화가 주는 여운을 되새겨 보기도 전에 자꾸 공간에 대한 기억만 맴돌았다. 단순한 영화 관람이 아니라 공간이 주는 의미에 대해서 자꾸만 생각해 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극장판’은 연인, 친구, 가족들 등 누구와 함께라도 부담없이 오붓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한 편당 2000원이라는 티켓 가격은 오히려 너무 싸다고 느껴질 정도로 알차다. 뻔한 상업영화와 복잡한 대형 영화관이 싫증난다면 한번쯤은 독립영화에도 관심을 가지고 이곳을 방문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생경한 외관에 너무 놀라지 말고 영화를 감상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고민하며 즐겨보기를 바란다.

 

블로그(http://blog.naver.com/geukjangpan)를 통해 자세한 운영시간과 상영작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에디터 임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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