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축구장 15.5배··· 핑크뮬리, 가을을 점령하다
제주에서 시작돼 경주에서 인기 절정···전국 32곳으로 늘어
알고보면 벼 사촌···우리식 이름 ‘분홍쥐꼬리새’
당신이 생각하는 가을 색깔은? 낙엽의 갈색과 단풍의 붉은색이 먼저 떠오르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40대 이상일 가능성이 높다.
지금 20·30세대의 가을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색은 누가 뭐래도 ‘핑크’다. 제주도에서 시작된 핑크 물결은 경주를 넘어 대한민국 가을을 모두 점령했다. 그 정복자의 이름은 바로 ‘핑크뮬리’다.
대표적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엔 핑크뮬리에 파묻혀 일명 ‘인생샷’을 건지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전국 지자체들도 핑크뮬리로 유혹에 나섰다. 너도나도 하천과 공원에 핑크뮬리 조성에 나섰다. 모든 공원이 핑크뮬리로 뒤덮이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나온다. 과연 핑크뮬리는 대한민국 가을을 어떻게 점령해 왔을까.
12일 헤럴드경제는 전국 32곳에 위치한 핑크뮬리 조성 장소에 대한 정보를 전수 조사해봤다.
핑크뮬리의 대한민국 점령기
현재 대한민국 가을을 통쨰로 집어삼킨 핑크뮬리는 지난 2014년 제주도에 처음 상륙했다. 그해 4월, 우리나라 최초로 핑크뮬리를 심었다 주장하는 양지선 제주 휴애리자연생태공원 대표는 “단풍만큼 가을을 대표할 수 있는 식물을 발굴하려 노력했다”며 “잡지를 읽다 우연히 발견한 뒤 수입상을 대상으로 수소문 한 끝에 겨우 종자를 구입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2015~2016년은 ‘입소문기’다. 불과 1~2년 사이에 제주를 넘어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순천만국가정원에서도 지난 2016년 핑크뮬리 단지를 조성했다. 엄숙희 순천만국가정원 화예연출팀 총괄매니저는 “제주도에서 우연히 발견한 핑크뮬리를 순천만에도 조성하려 종자를 구했지만 실패했다”며 “결국 다른 곳에서 모종 100본을 어렵게 구해 단지를 조성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17년은 가히 ‘폭발기’라 말할 수 있다. 기폭제가 된 장소는 경북 경주시 첨성대 동부사적지다. 이곳은 핑크뮬리 인증샷의 성지로 전국적인 인기를 이끌었다. 김종원 경주시청 사적관리과 팀장은 “당시 사적관리본부장이 한 식물원에서 핑크뮬리 단지를 보고 동부사적지에도 조성하도록 지시해서 심게 됐다”고 설명했다. 인증샷 성지가 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김 팀장은 “김을 다섯 번 매는데, 그 덕분에 핑크색이 더욱 아름다워 인기를 끈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전국 지자체가 앞 다퉈 핑크뮬리를 심고 있는 지금은 ‘확장기’다. 전국 지자체는 물론이고, 음식점과 카페를 운영하는 개인까지 핑크뮬리 단지를 조성하고 있기 떄문이다. 매년 심을 필요가 없다. 다년생이라 비용이 절감되고, 관리가 편한 것도 인기에 한 몫 했다.
핑크뮬리가 처음 우리나라에 모습을 나타낸 지 4년. 지난 4년 동안 핑크뮬리는 총 11만4575㎡의 면적에 식재됐다. 축구장(7140㎡) 넓이로 환산한다면 약 15.5개 크기다. 총 식재 수는 152만20본이다. 한 사람 당 핑크뮬리 한 본 씩 나눠 든다면 대전시민(약 150만명) 이상의 인구가 필요하다. 금액으로 환산한다면 4년간 약 10억6400만원이 핑크뮬리 구입에 사용됐다.
핑크뮬리, 넌 어디서 왔니?
핑크뮬리(학명 Muhlenbergia Capillaris)는 벼목 벼과의 여러해살이 식물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벼와 사촌뻘이라 할 수 있다. 우리식 이름으로는 ‘분홍쥐꼬리새’인데 꽃 이삭이 쥐꼬리를 닮은 풀이란 뜻에서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다른 이름으로는 ‘분홍억새’, ‘서양억새’ 등이 있다.
겉모습이 예쁜 핑크뮬리지만 생명력만은 억척스럽기 그지없다. 대체로 햇볕이 잘 들고 배수가 좋은 곳에서 잘 자라지만, 가뭄에도 강해 척박한 토양에서도 쉽게 시들지 않는다. 병해충에도 강하며 그늘에서도 잘 버티는 편이기도 하다.
가을이 깊어지는 만큼 SNS에 업로드 된 핑크뮬리 인증사진도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인스타그램에 ‘#핑크뮬리’를 검색하면 20만장이 넘는 사진검색 결과가 나온다.
인기를 확인하듯 전국 각지에 위치한 핑크뮬리 단지는 평일, 휴일을 가리지 않고 방문객으로 붐비고 있다.
지난 주말 경남 함안의 악양생태공원에서 핑크뮬리를 보고 왔다는 최윤정(27·여) 씨는 “사진 찍으면 예쁘게 나와 인생샷을 남기기 이보다 좋은 곳은 없는 듯하다”며 “주변사람들의 SNS에서도 핑크뮬리 인증샷이 대세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양재천 핑크뮬리 군락지에서 만난 김수환(67·여) 씨는 “핑크뮬리 꽃이 잔잔하면서 은은한 느낌이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포근하다”고 했다. 연신 사진을 찍던 윤성자(58·여) 씨도 “봄 벚꽃처럼 가을 핑크뮬리가 대세로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헤럴드경제=박이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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