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력으로 이겨내면 안 되냐고요?”…비수가 된 ‘한마디’
-“죽을 용기로 살아라”…우울증 환자들 더 절망케해
-자살 징후 ‘소리없는 비명’…80% 주위서 인지못해
지하철 목동역. 시민 박소라 씨의 시 ‘위로’. [사진=김유진 기자/kacew@heraldcorp.com] |
“죽을 용기로 살라고요? 상투적인 위로는 칼이 됐어요.”
자살사망자 대부분은 생전에 말 혹은 정서 상태 등의 변화를 통해 주변에 징후를 드러낸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5명 중 4명이 이같은 신호를 인지하지 못한다. 중앙심리부검센터의 2018년 심리부검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주변인 78.6%는 고인의 자살신호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타인의 ‘소리없는 비명’에 둔감한 사회는 껍데기뿐인 위로의 말을 건네지만, 죽음을 생각해본 사람들에겐 오히려 비수가 돼 꽂힌다.
고통의 크기를 가늠하고 비교하는 반응은 우울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빈번하게 겪는 상황이다. 몇년전 우울증으로 정신상담을 받은 적 있는 A(27)모 씨는 “주변에 하소연할 곳이 없어 인터넷에 고민을 올렸더니, 자식이 바다에 수장된 사람들도 있지 않냐며 힘내라는 댓글이 달렸다”고 회상했다. 그는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을 발판 삼는다고 해서 우울을 극복할 수 있다면 누가 우울증에 시달리겠냐”고 하소연했다. 죽을 용기로 살라거나 정신력으로 이겨내라는 상투적 조언 역시 마찬가지다.
고민의 당사자에게 공감하기보다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기를 강요하는 반응 역시 대표적인 잘못된 조언 중 하나다.
부모님과의 관계로 우울증을 겪고 자살 충동까지 느끼는 자식들의 경우 “그래도 부모님이지 않냐”는 교조적 반응이 절망스럽다고 말한다. 성장 과정에서 부모에게 정서적 학대를 당했던 B모(30) 씨는 주변에 고민을 털어놓을 때마다 “살아계실 때 잘해야지 안 그러면 나중에 후회한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사람도 있는데 그래도 두분 다 살아계신 게 어디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난 잠시 부모님과 사이가 틀어졌거나 싸운 사람이 아니다. 내게 부모는 우울을 겪게 된 원인이자 너무나 큰 원망과 분노를 가진 대상인데, 내 감정보단 천륜이나 도덕부터 훈계하는 반응들에 절망할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자살 충동을 느끼는 사람들 대다수가 주변으로부터 해당 충동을 억제할만한 피드백을 받지 못하는 상황은 조사로도 드러난다.
2015년부터 2017년도까지 3년 간 중앙심리부검센터로 신청 의뢰된 자살사망자 289명 사례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자살사망자 대부분(92.0%)은 사망 전 언어ㆍ행동ㆍ정서상태(죽고싶다, 주변정리, 우울·불안 등)의 변화를 통해 자살징후를 드러내는 경고신호를 보낸다. 그러나 자살의사를 확인하거나 전문가에게 연계하는 등 적절하게 대처한 경우는 많지 않다.
전문가들은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징후를 포착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데 주변인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중앙자살예방센터는 주변인의 자살징후를 파악하고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자살예방 게이트키퍼’(GateKeeper)를 양성하고 있다. 자살 위험에 처한 주변인의 ‘신호’를 인식하는 방법을 배우고, 이를 통해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기관이나 전문가에 연계하는 지렛대 역할을 하게 된다.
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