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이집트 탐방기①] 아이다 공주의 누비아가 없었다면 [함영훈의 멋·맛·쉼]
[新이집트 탐방기①]
문화,전통,경제,과학 다 있는 나일강 상·중류
아스완~아부심벨…찬란한 이집트 문명 완성
람세스2세 누비아 품기, 여유·명랑한 시민들
아부심벨 레이저쇼와 청정 밤별들 향연 감동
아스완 펠루카, 낭만 아이콘…최고 석재 생산
클레오파트라 신혼여행, 아가사 추리문학 활짝
필래 이시스,콤옴보,에드푸 신전엔 多문화 흔적
룩소르 유적서 공연되는 오페라 ‘아이다’에 열광
[헤럴드경제, 아부심벨=함영훈 기자] 세계사 교과서에서 인류문명을 발생시킨 주역으로 등장한 이집트는 그 뒤론 거의 나오지 않는다. 왜일까. 독립한 지 110년. 알렉산드리아 침략이후 2500년 가까이 외세를 지배를 받거나 영향력 하에서 이집트 문명은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 이집트는 분주하다. 카이로의 중심도로 ‘나세르 가도(Nasr-Rd)’ 곳곳에선 건물 공사가 한창이다. 교육기관도 늘리고, 한국 등에 자동차 첨단 산업 유치를 요청하며, 수에즈운하에 KT ‘기가 와이어’를 도입하는 등 현대문명을 쫓느라 분주하다.
이집트 문화 재발견을 위해 찬란한 문명의 6000년전~3000년전을 향해 가고 있는데, 현대 문명 대열의 후미에서 앞선 주자를 따라잡기 위해 몸부림 치는 이집트의 모습에서 모종의 인지부조화가 느껴진다.
재발견의 핵심은 지중해-홍해 쪽이 아닌 중남부 ‘누비아(Nubia)’ 문명. 남쪽 국경선 근처 아부심벨에 대한 람세스2세왕의 애착, 누비아 공주 스토리 오페라 ‘아이다’에 대한 이집트인의 열광이 단초를 제공했다.
이집트의 ‘참새 방앗간’ 피라미드를 둘러본 뒤 다음날 꼭두새벽 날아간 곳은 아부심벨이었다. 누비아 문화는 북쪽으로 아스완까지 이어지고, 남쪽으로는 과거 에티오피아 영역이던 지금의 수단 북부를 포함한다.
베르디(G.F.Verdi)가 1869년 수에즈운하 개통 및 카이로 오페라극장 건립 기념으로 만든 ‘아이다’의 주인공은 누비아의 공주다. 이집트(나일강 하류 지역을 지칭)에 잡혀와 왕실 하녀가 되고, 왕의 사위 후보로 유력한 이 나라 장군의 구애를 받아 사랑에 빠진다. 애절한 사랑은 죽음으로 끝맺지만, 이 오페라는 누비아 문화에 대한 이집트의 포용이라는 정치적 담론도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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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최고전성기를 일궈낸 람세스2세(재위 BC 1301∼1235)는 남쪽 끝 섬 아부심벨에 자신과 왕비 네파르타리 신전을 지었다. 부서지기 쉬운 사암 바위산을 위와 옆에서 깎아 들어가는 고난도 기법이었다.
대신전 정면 높이 32m 중에서 높이 22m짜리 왕의 석상 4개가 왕좌에 앉아있다. 같은 인물인데, 상(上)이집트 왕관 쓴 석상, 하(下)이집트 왕관 쓴 석상 등으로 의관을 달리했다. 초대 왕 메네스(BC 3150년) 이후 이집트 재통일의 주역임을 알린 것이다. 좁은 의미의 이집트는 나일강 하류의 하이집트이고, 상이집트는 남쪽 누비아문화권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왕의 건강을 상징하는 ‘쩍벌(다리 벌려)’자세 적군 공격 등 승전 부조들이 벽을 장식한다. 이시리스 신에게 영혼을 바치고, 의식을 행하는 모습으로 가득한 2실과 3실 사이 벽에 누군가 구멍을 뚫었다. 문화재 훼손이지만, 구멍을 통해 옆방 친구를 찍어주는 사진 명소가 돼 버렸다.
동쪽 방향인 신전은 매년 두차례(2월22일, 10월22일) 어두침침한 내실 끝 지성소까지 빛이 환하게 들어오도록 설계됐다. 이때 여기서 빛의 축제를 연다. 4670년전 피라미드에서 발휘된 이집트인의 과학기술이 3200년전에도 계속 구현되고 있었던 것이다.
왕비 이름 중 네페르는 ‘아름답다’는 형용사이다. 이집트 사람들은 역대 왕실미모 2위로 클레오파트라, 1위로 네페르타리를 꼽는다. 람세스2세가 사랑했지만, 신전 규모는 자기 신전의 1/3 정도로 만들었다. 정면에 10m 석상 6개 중 왕의 것 4개, 주인 것 2개이다. 석실에도 부인 말고 ‘만능 도우미’ 하토르 여신상들을 두었다. 요즘 같았으면 남존여비 심한 가부장이란 소릴 들었을 것이다.
여행자들은 아기자기한 왕비의 소신전을 더 좋아하는 듯 하다. 비스듬한 사선 조각, 정면 석상 사이사이 칸막이 상형문자 양각 등 작품성이 더 뛰어나다는 평이다. 사진찍기에도 석상의 칸막이 속에 쏙 들어갈 수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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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열리는 ‘빛과 소리의 향연’ 레이저쇼도 장관이다. 쇼가 끝난 직후 갑작스런 어둠 위로, 청정 밤별들이 성전을 비추는 것은 또 하나의 감동이다. 가장 위대한 왕이 국경 끝 아부심벨에 쏟은 애착은 누비아를 품겠다는 강력한 메시지였다.
아스완에서는, 왜 누비아문화가 치열한 지중해 인근 지역보다 더 풍요롭고 여유로우며 명랑한지를 확인할 수 있다. 기원전 10세기 무렵부터 이방인들은 아스완을 수에네(Syene)라고 불렀다. ‘시장’이라는 뜻이다. 코끼리섬 ‘엘레판티네’는 그 귀한 상아가 거래된 데서 붙여진 지명이다.
누비안의 북쪽 종점 아스완은 나일강 상,중류 지역중 가장 넓은 수역이라 남북 국제무역의 중심지였고 수십개의 보석 같은 섬을 뿌려놓은 휴양도시이다. 클레오파트라 여왕-카이사르 부부의 신혼여행지, 아가사크리스티가 방해받지 않는 상상력으로 추리소설을 완성한 곳이다.
석재가 참 좋은 곳이기도 하다. ‘아이다’ 공연이 열리는 옛 수도 룩소르, 현 수도 카이로-기자 일대 수천년된 유적의 석재는 대부분 아스완 것이다.
역사 유적도, 누비아 특산물도, 리조트도 많고, 나일강 낭만의 대표 아이콘인 누비안 돛단배 ‘펠루카’와 크루즈가 가장 많다. 유럽 요트 운전법과 같은데, 누비안 펠루카가 원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강폭이 넓어 수산업, 농업, 무역업, 서비스업, 상공업이 발달하니, 인심과 문화가 곳간에서 난다는 말이 나올만한 고을이다. 누비안이 사는 나일 중,상류는 이처럼 ‘물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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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계에 가까운 지중해 이집션-누비안 혼혈이라 우리나라 얼굴색과 비슷한 아스완 시민들의 표정이 밝고, 여유가 넘친다. 인구 105만의 거리 풍경은 도시도시하다. 아스완댐의 남쪽은 바다 같고, 북쪽은 흔한 강이다. 폭 20m 가량의 댐 위 도로 횡단보도만 건너면 두 개의 분위기를 모두 즐길 수 있다.
아스완주(州)엔 나일강 급류지역이 아스완남쪽, 콤옴보, 에드푸 세 곳 있는데, 여기엔 일제히 신전이 있다. 신에 의탁할 것이 다른 곳 보다 많기 때문이리라.
필래에 있다가 수몰직전 아질키아섬으로 옮겨진 이시스 신전 탐방은 아쟁 같은 악기를 연주하는 호객꾼들의 ‘원 달러’ 합창 소리 듣는 것으로 시작한다. 신전의 첫 관문 벽엔 어김없이 왕이 위세를 과시하는, ‘쩍벌 자세’ 적군 공격 모습이 새겨져 있다. 3500년전에 지어진 룩소르 신전들은 정통 이집트 양식인데 비해 2400년에 지어진 이 신전은 이집션 양각 부조, 이방인들이 쉽게 새긴 음각 부조, 이집트 정교회 앵크 십자가, 로마황제의 관문 등 다양한 문명의 흔적들이 나타난다. 이시스 신전 동쪽 강변 ‘트라잔의 돌 정자’는 그리스 로마 느낌이 짙다. 강변이라 돌 벤치는 연인들의 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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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신 호루스(매), 지혜의 신 소베크(악어) 두 신에게 봉헌된 콤옴보 신전 역시 이집트와 마케도니아 등 이방인의 문화가 섞여있다. 이집트를 식민지로 만든 프톨레마이오스 7세가 두 신의 정신을 이방인인 자신이 이어받았음을 시위하는 그림도 그려져 있다. 신전의 뒷편 회랑에는 의술 지식과 재판관의 자세를 그림과 상형문자로 음각해 놓아 눈길을 끈다. 인근 악어미라박물관은 살아있는 악어 같은 미이라를 전시하고 있다.
에드푸 신전은 배에서 내려 마차로 이동한다. 보존상태가 좋고 룩소르의 카르낙신전 다음으로 두번째 큰 규모라서 그런지 강한 포스가 느껴진다. 프롤레마이오스 2세때 지었는데, 이방인인 자신도 이집트 문명 계승자임을 알리려는 뜻인 듯 하다. 르네상스식 좌우대칭 양식에다 상하대칭까지 도모했다. 입구에서 지성소 까지 발 디디는 쪽은 점점 높아지고, 기둥 위쪽과 천장 부분은 점점 낮아져, 마치 원근법의 소실점 처럼 지성소로 모든 에너지가 수렴된다.
아스완주 북쪽 에스나의 마스르아스완 대교 서쪽, ‘에스나 락(Lock)’에서는 경사진 급류에도 배가 평온하게 다니도록 고도 차이를 물빼기, 물채우기 기법으로 완만하게 조절하는 갑문 과학을 경험한다.
경제와 휴양, 과학과 문화가 다 있는 누비아를 품었기에 이집트 문화는 더욱 찬란했던 것 아닐까.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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