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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음악으로 남은 거장…엔니오 모리코네 별세

헤럴드경제

[AP 연합]

영화음악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가 별세했다. 향년 91세.


6일(현지시간) 이탈이나 ANSA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모리코네는 지난주 낙상으로 대퇴부 골절상을 입어 병원 치료를 받아오다가 전날 밤 숨을 거뒀다.


1928년 로마에서 태어난 엔니오 모리코네는 영화가 가지는 음악의 힘을 전 세계에 알린 20세기 최고의 영화 음악가다.


재즈 트럼펫 연주자인 아버지의 권유로 여섯 살 무렵부터 음악을 시작한 엔니오 모리코네는 이탈리아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서 트럼펫과 작곡을 공부한 클래식 전공자였다. 생활고로 인해 방송·영화 음악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금세기에 길이 남는 명작들을 내놨다.


고인이 영화 음악에 처음 데뷔한 것은 1961년이다. 루치아노 살체 감독의 영화로 데뷔한 이후 1960년대 ‘스파게티 서부극’이라는 장르를 개척한 세르조 레오네 감독의 ‘황야의 무법자’(1964) 등을 통해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모리코네의 서부 영화 음악 시대가 이 때 열였다. 그의 음악은 종전의 영화 음악과는 달랐다. 휘파람 소리로 시작하는 ‘황야의 무법자’, 팬플루트 선율로 각인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 등은 파격적인 장치를 사용하면서도 아름다운 멜로디로 남은 명곡이다. 모리코네의 음악에는 바흐 시대와 현대음악의 시대의 불협화음이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엔니오 모리코네가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사랑받은 작품은 로랑 조페 감독의 ‘미션’(1986)이다. 클래식 전공자였던 고인이 영화 음악에 처음으로 오케스트라를 활용한 것도 이 작품이다. 그 이전 영화 음악들의 경우 제작 여건상 오케스트라를 활용하기 어려웠다. 특히 이 작품은 국내에서 뮤지컬로 제작돼 관객과 만났다. 그의 아들인 안드레아가 참여한 작품이다. 뿐만 아니라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시네마 천국’(1988) 등이 국내에서 특히나 사랑받았다.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무려 500여편의 영화 음악을 남겼지만, 영화 음악 시상식인 아카데미와의 인연은 한 번뿐이었다. ‘천국의 나날들’(1978), ‘미션’(1986), ‘언터처블’(1987), ‘벅시’(1991), ‘말레나’(2000)로 다섯 차례 음악상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하지 못했다. 특히 ‘미션’으로 후보에 올랐던 당시를 떠올리며 엔니오 모리코네는 생전 인터뷰에서 “‘미션’은 상을 받을 줄 알았다”며 이례적으로 아쉬움을 전하기도 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2007년 공로상을 받았으며, 9년이 2016년 여든여덟의 나이에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더 헤이트풀8’로 음악상을 받았다.


모리코네의 음악은 세대를 초월해 많은 뮤지션에게 영감을 줬다. 그 중 미국 헤비메탈 밴드 메탈리카는 엔니오 모리코네의 오프닝 음악으로 모든 공연을 열고 있다. 메탈리카와 이탈리아 성악가 안드레아 보첼리, 캐나다 팝스타 셀린 디옹, 미국의 프로듀서 퀸시 존스 등은모리코네 헌정 앨범 ‘위 올 러브 엔니오 모리코네’를 발표하기도 했다.


모리코네와 한국의 인연도 깊다. 고인은 2007년 첫 내한 공연을 가졌고, 이후 2009년과 2011년에도 한국을 찾았다. 2011년에는 데뷔 50주년을 맞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2011 엔니오 모리코네 시네마 오케스트라’를 열었다. 당시 뮤지컬 배우 옥주현이 영화 ‘미션’의 삽입곡 ‘가브리엘의 오보에’에 영어 노랫말을 붙여 만든 ‘가시 속의 장미’를 불렀다.


한국을 찾았을 당시 고인은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난 그저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다. 음악 작업을 잠깐이라도 멈추게 되면, 나의 창의적인 불빛이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 자주 든다.” 오랜 시간 음악과 함께 하며 시대를 넘나든 고인은 ‘영원한 음악’으로 우리 곁에 남게 됐다.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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