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의 시간’ 그 후 윤성현 감독,“내러티브로 좀 더 친절했어야 했다”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넷플릭스를 통해 지난 4월 독점 공개된 영화 ‘사냥의 시간’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 채 석 달이 지났다. ‘사냥의 시간’은 윤성현 감독이 극찬을 받았던 영화 ‘파수꾼’(2011년) 이후 9년만에 내놓았던 작품으로 2020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에는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
‘사냥의 시간’은 위험한 작전을 계획한 네 친구들과 정체불명의 추격자가 이들의 뒤를 쫓으면서 시작되는 숨 막히는 추격 스릴러다. 하지만 스토리가 부족하다, 이야기가 없다는 등의 반응이 나왔다. 평점 테러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윤 감독은 서사보다는 긴장감, 재미에 초점을 맞춘 영화라고 했다. ‘파수꾼’이 좋은 서사구조를 지녔다고 평가받은 것과 정반대의 반응이 나온 데 대해 다소 의아한 듯 했다.
“내러티브가 없지는 않았고 단순한 거다. 외국에는 고양이가 쥐를 쫓듯이 단순히 쫓고 쫓기는 ‘캣 앤 마우스‘(Cat and Mouse) 장르가 있다. ‘터미네이터’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처럼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다보면 어느 순간 이해는 없고, 서스펜스만 남는 그런 장르를 시도했다.
윤 감독은 “외국에는 서사가 단순한 영화가 많다. 대사 위주의 ‘파수꾼’이 인간 감정에 맞췄다면 ‘사냥의 시간’은 영화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고 했다.
“나쁘게 봤을 때는 배신감이 들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긴장감을 따라가면 재밌는 부분 이 있다. 저는 서사를 위한 떡밥보다는 저 너머의 상상할 여지를 주었다. 굳이 설명이 필요할까 생각했는데, 지나고 나니 조직과 경찰의 관계 등 좀 더 친절했어야 했다.”
윤 감독은 “도박장안의 CCTV의 내용으로 조직과 경찰이 유착돼 있다는 식으로 조합하면 너무나 뻔한 클리셰가 된다”면서 “그래서 너무 설명 하기보다 상상으로 정보를 전달하려 했다. 이게 덜 대중적인 영화가 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추격자 한(박해수)은 영화적 인물로 존재 자체가 주체적이며 서스펜스를 기반으로 하는 인물이다. 한은 친숙함에서 나오는 캐릭터가 아니다. 잘 모르는데서 공포가 생긴다”면서 “과거 군인이었고, 총기 다르는 방식도 다르다. 전쟁을 치러본 경험이 있어 광기 같은 게 느껴지는 인물인데, 귀를 잘라 목걸이를 한다는 충격적인 얘기도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이를 자세히 설명하는 순간 공포는 사라진다. 그래서 한은 모호한 인물로 그려졌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단순한 네러티브 안에서 생존 이야기를 해보려던 윤 감독의 의도는 충분히 전달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현상 자체에 대해 정답을 명확하게 제시 하지 않은데서 오는 효과가 있다. 한을 부패세력과 결탁한 사람으로 너무 구체적으로 제시하기 보다는 예측할 여지는 충분히 주면서, 재밌는 상상력을 주고싶었다. 해외영화를 보면, 떡밥을 꼭 회수하지는 않는 영화도 있다. 우리는 그런 영화가 없다.”
윤 감독은 “떡밥 회수의 강박이 있는 영화를 별로 안좋아한다. 상상의 여지를 주는 걸 좋아한다”면서 “그런데 내용이 허술하다고 하니 나도 고민했다. ‘파수꾼’은 스토리의 끝장판 소리를 들었는데, 너무 극과 극의 반응이 나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고 전했다.
윤 감독은 ‘사냥의 시간’에 대한 국내와 해외 반응이 다르다고 했다. “우리는 유치하다고 한다. 한(박해수)에 대한 기반 설명이 없다 보니 그런 것 같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그런 반응이 전혀 없다”는 것.
“한(박해수)이 왜 이제훈(준석)은 죽이지 않고 살려주는가”라는 질문에는 “한은 죽음앞에서 토끼같이 살려달라고 하면, 가차없이 죽인다. 준석의 표정을 보면 죽음을 인정하고, ‘너 얼굴 한번 보고, 지옥 끝까지 가져가겠다’는 느낌이다. 한은 ‘넌 시시콜콜한 놈이 아니구나’ 하고 그것을 인정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위기에 오히려 덤덤해질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윤 감독은 “그런데 그것이 한이 여지 없이 쐈는데 주인공은 안죽어? 라는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분들도 있었다“고 했다.
영화 전체의 분위기는 디스토피아 같은 음산함을 깔고 있다. 윤 감독은 ”헬(지옥)이라는 단어에서 시작해 어떤 헬을 보여줄 것인가를 생각했다. 1970~80년대는 직업적 기회도 많았지만 지금은 생존이 더 어려워졌다. 지옥이라는 형태를 상정하고, 이를 디스토피아적인 세계로 그려냈다“고 했다.
이어 윤 감독은 “‘사냥의 시간’은 서스펜스로 몰고갈 수 있는 영화라서 오락적으로 봐줬으면 했다. 국내팬들은 이걸 별로 평가하지 않았지만, 아무튼 국내에선 내러티브로 다가가는 게 좋다는 걸 알게됐다. 영화를 보신 분들이 이런 생각과 감상을 얘기해준 것만도 감사하다. 영화는 관객이 있어야 한다. 이번 영화는 좋은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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