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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by 헤럴드경제

[남도종가] 여왕의 버킷리스트, 소쇄원 만든 양산보의 뜻은

제주양씨 창암종가의 천재의 걸작

천혜와 지혜가 어울린 최고 별서정원

자연 속 학문의 바른 길, 절의 키운 곳

면앙정 송순, 환벽당 김윤제와 호형호제

소쇄원 연못에서 본 광풍각·제월당 일품

20대 부인 사별, 증축으로 그리움 잊었나

원래모습 그림 최근 찾아, 완전 복원 추진


‘맑고 깨끗하다’는 뜻의 소쇄원(瀟灑園)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서정원으로 담양의 상징이다. 1999년 방한했던 엘리자베스 영국여왕도 소쇄원에 꼭 가보고 싶어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눈에 담지 못한채 가슴에만 품고 귀국했어야 했다.


조선의 천재 중 한 명인 양산보(1503~1557)는 조광조(1482~1519) 문하에서 배움을 닦았는데, 스승이 희생당한 기묘사화를 전후해 16세의 나이로 과거시험에 합격했으나 스승의 고초 속에서 출사할 수 없었고, 사화 주도세력들의 질시도 염증이 나 고향 담양으로 내려와 자연 속에서 학문을 길을 걷기 위해 소쇄원을 지었다.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이곳에서 은둔하며 학문에 정진한 그의 호는 소쇄옹, 소쇄처사이다.


정원을 보여주기 전에 100여m 긴 대나무숲을 조성한 것은 원주 뮤지엄산 컨셉트 처럼, 잠시후 만날 주인공이라도 그를 더 감동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두툼한 베일을 쳐놓은 효과, ‘소통을 위한 단절’의 뜻도 있지만, ‘나의 대나무 같은 절개는 꽤나 두툼하다’는 것을 시위하는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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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제주양씨 소쇄원 연못에서 본 광풍각과 제월당 [창암종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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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쇄원 정원 진입로 대나무숲↑

정원의 숲과 계곡이 모인 자리에 광풍각 정자와 사랑채 겸 서재로 쓰던 제월당이 자리했다. 낙차가 있는 곳이면 소폭(小瀑)이 형성되는데, 비 오는날 소쇄원이 맑은 날 못지 않게 아름다운 이유이다.


양산보는 제주양씨 창암종가의 대표 인물이다. 부친인 양사원이 광산구 서창(당시는 나주 복룡)에서 창평 창암촌으로 옮겨와 종가를 열었다. 모친이 신평 송씨이고 이 가문의 면앙정 송순(1493~1582)은 양산보의 10년차 외사촌형이다.


자신을 스승에게 천거한 숙부 양팽손(1488~1545)이 조광조 시신을 수습하고 사당까지 세울 때 양산보는 어린 나이에도 함께하며 사제의 의리를 지키고, 스승이 추구하려던 개혁의 뜻을 가슴에 새겼다. 당시 임금 중종은 권력투쟁의 희생양이던 천재 소년 양산보에게 위로 선물을 보냈다고 한다. 훗날 관직 천거도 있었지만 고사했다.


광산김씨 가문의 여인과 결혼한 양산보는 스물세살때 부인 김씨와 사별하는 아픔을 겪는다. 허망함과 외로움이 컸는지, 그는 소쇄원의 증축에 나서고, 선비들과의 학문적 교류를 넓힌다. 부인에 대한 그리움을 이런 방식으로 달래려 했을 수도 있겠다.


가장 가까이 지낸 인사는 두 살 위 처남 김윤제(학당인 환벽당 주인, 송강 정철과 서하당 김성원의 스승)였다. 중장기 증축 플랜의 초기 작업은 25세 무렵 지은 초당 공부방이어서 눈길을 끈다. 이것이 바로 지붕을 풀로 덮은 초정(草亭) ‘소쇄정’이다. 질박한 자세가 엿보인다.


작은 전각, 다리도 세우고, 오동,매화 등 나무도 키워 그 터의 학문적 성취 만큼 정원 미학이 살아난다. 증축비는 면앙정과 처남 김윤제가 보태기도 했다. 학문적 교유의 폭도 넓어지면서 친자연 정원 확장은 수십년 이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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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쇄원

명칭은 면앙정 송순이 전라감사 시절인 1542년 지은 시 ‘소쇄원 가랑비 속에 매화를 찾아보다’에서 가장 먼저 사용한다.


소쇄원 초정 옆 벽오동(오동나무)은 태평성대의 상징인 봉황이 벽오동 열매를 먹기 위해 깃든다는 전설에 따른 조경이다. 자연법에 기초한 올바른 정치, 국태민안의 바람을 담은 것이다.


양산보가 50대 중반에 죽자 대선비 출신 의병대장 고경명, 조선 철학의 양대산맥 기대승, 조선명문장가 송순 등이 명문으로 애도했다. 그리고 300년쯤 뒤 그를 배향하는 도장사가 명옥헌 원림 뒤에 세워졌다. 은둔하던 학자라서 그 진면목은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빛을 냈다.


소쇄원은 16세기(임진왜란), 20세기(일제강점기) 등 간악한 일본에 의해 두 번이나 불타는 바람에 지어졌을 때의 모습이 아닌데, 2003년 15대 종손 양원로가 일본 왕실박물관에서 ‘창암촌도’를 발견함으로써 완전한 복원의 길이 열렸다.


​[헤럴드경제=함영훈 선임기자]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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