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가 지켜온 황복매운탕 별미… 금강 유역의 '전국구' 백년가게
<57> 강경 황복매운탕 전문점 황산옥
기수지역에서 잡은 황복·우어 요리 별미
충남 논산시 강경읍 금강변에 자리한 황산옥. |
충남 논산시 강경읍에 위치한 금강 황산나루터는 서해와 닿은 강 하구로, 민물고기와 바닷고기를 모두 잡을 수 있는 곳이다. 106년 전 한만례씨는 나루터 앞 일본식 가옥에서 아담한 식당 ‘황산옥’을 차리고 남편이 잡아온 물고기를 손질해 매운탕을 끓였다. 황복매운탕과 우어회는 나루터를 오가는 길손들의 허기를 달래줬다. 나루터는 황산대교가 건설되기 전까지 강경과 부여 세도를 잇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한씨가 흔한 민물매운탕 대신, 황복매운탕과 우어회를 고집한 건 금강 하류의 지리적 특성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황산나루터에선 4~5월이면 기수지역에서만 나오는 황복과 우어를 많이 잡을 수 있었다.
황산옥 3대 주인 모숙자씨가 106년 전통의 육수로 복어탕을 끓이고 있다. |
황복은 바다에서 살다가 봄이 되면 알을 낳으러 강으로 올라온다. 맛이 좋아 민물에서 잡히는 물고기 중 가장 비싸게 팔리는 고급어종이다. 지금은 보호어종으로 지정돼 있어 허가를 받아야만 잡을 수 있다.
우어의 본래 이름은 웅어지만 충청도와 전라도에선 우여 또는 우어로 부른다. 생김새가 멸치와 밴댕이를 섞어 놓은 듯 생겼다. 산란을 위해 몸을 살찌워 강으로 거슬러 올라오는데, 내장을 걷어내고 뼈째 썰어 회로 먹으면 기름기가 많아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우어를 잡을 수 있는 기간은 황복보다 길지만 보리이삭이 패기 전에 먹어야 제맛이다. 5월을 넘기면 뼈가 굵어져 뻣뻣해진다.
귀족생선으로 불리는 황복. |
당시 황산옥의 메뉴는 두 개가 전부였지만 황복매운탕이 맛있다는 입소문을 타면서 명소로 자리 잡았다. 한씨는 금강에서 잡은 재첩으로 육수를 내 민물고기의 감칠맛을 제대로 살린 조리법을 완성했다. 다른 식당과 달리 맑은탕(지리)보단 고추장으로 맛을 낸 매운탕에 주력했다. 차별화한 독특한 맛은 개업 초기부터 30여 년간 논산과 부여의 손님을 끌어모았다.
일반 식당의 매운탕과 복국은 물고기를 토막 내 끓이지만 황산옥은 물고기를 세로로 길게 잘라 머리부터 꼬리까지 통째로 끓인다. 살점을 한입 가득 넣어 먹을 수 있고 쫀득한 껍질 맛도 음미할 수 있다. 시원하고 개운한 국물은 말할 것 없는 별미다.
우어회 |
1대 주인의 조리 비법은 며느리 한상례(85)씨에게 이어졌다. 1955년 시집 와 시어머니 아래에서 육수의 비법을 물려받고 2대 주인으로 나선 며느리 한씨는 45년간 주방을 지키며 황산옥을 전국구 맛집으로 만드는 데 초석을 다졌다.
1990년대 후반 전북 군산과 충남 서천을 잇는 금강하구둑공사로 인해 강경 일대의 금강에서 재첩이 사라지자 위기가 닥쳤다. 한씨는 매운탕 국물의 생명인 육수 맛을 지키기 위해 온갖 실험을 다해야 했다. 음식맛이 변했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 안간힘을 기울인 끝에 황태와 새우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육수를 찾아냈다.
황복을 새로로 길게 갈라 넣은 황산옥 황복 매운탕. |
재첩육수와 가장 비슷한 맛을 찾아낸 그는 식당 안에서 황산포구의 정취를 느끼며 식사할 수 있도록 식당의 구조도 바꿨다. 때마침 불어온 관광 열풍은 식도락 여행으로 연결됐고, 논산 여행에서 황산옥의 황복매운탕과 우어회를 먹지 않으면 여행의 참맛을 느끼지 못한 것이란 말이 나돌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
황산옥을 창업한 1대 주인 故 한만례(왼쪽 사진)씨. 2대 주인 한상례씨(오른쪽). 황산옥 제공 |
현재는 한상례씨의 맏며느리인 모숙자(64)씨가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26세에 결혼한 그는 새댁 시절부터 식당 일을 거들었다. 주방에서 가업을 10년 넘게 익히고 나간 요리경연대회에서 입상을 하자 시어머니 한씨는 “이제 네가 알아서 해봐라”라며 열쇠를 넘겼다. 모씨는 “최소한 시어머니만큼은 맛을 내야 한다는 다짐을 하루도 잊고 산 적이 없다”며 “지금도 가끔 시어머니에게 육수와 밑반찬의 맛이 제대로 됐는지 여쭤보며 항상 확인을 거듭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번 상에 올랐던 반찬은 절대 재활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먹을 만큼만 접시에 담아 손님상에 올리고 모자란 반찬은 열 번이라도 다시 가져다주는 정성이 황산옥의 오랜 전통이다. 밑반찬 7가지도 변함이 없다. 고춧가루를 넣지 않은 배추나물과 우어젓갈은 이 집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다.
채소 위주의 밑반찬 재료는 주변 농민들이 재배한 것들이다. 대를 이어 이곳에서 살아오며 오랫동안 거래해 온 농민들이기에 말만 하면 곧바로 싱싱한 채소를 갖다 준다.
100년 넘게 이어온 밑반찬. |
1990년대 말 금강 하구언둑이 완전히 막히자 그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황복이 금강으로 올라오지 못하게 되면서 가장 중요한 황복을 조달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다른 지역의 황복을 사용하자 곧바로 두 가지 문제가 불거졌다. 맛이 달라졌고, 값이 올랐다. 모씨가 처음 일을 배우던 시절 황복매운탕 한 그릇 가격은 7,000원이었다.
수위가 높아져 80년간 이어오던 식당 문을 닫고 100m 떨어진 곳으로 옮겼다. 낡고 옹색한 옛집을 떠나 번듯한 건물을 지었지만 남편이 새로 사업을 벌이면서 한동안 식당 일에 소홀했다. 단골들의 불만이 쌓이면서 고전을 거듭했다.
금강하구둑이 수문을 막아 예전보다 수위가 올라간 금강변에 자리한 황산옥(오른쪽). |
뒤늦게 고삐를 다잡은 모씨는 2000년 무렵부터 메뉴 변화를 시도했다. 바다생선인 참복과 말복을 전통 육수에 접목시켰다. 고급스러운 황복매운탕과 대중적인 참복탕은 가격과 맛을 서로 보완해 옛 명성을 찾는 시발점이 됐다. 2019년엔 백년가게로 선정됐다. 모씨는 “한순간의 소홀함으로 시어머니가 평생 고생하며 일구어놓은 터전을 망칠 뻔했다”며 “백년가게 선정은 선대의 유업을 잘 지켜 4~5대까지 이어지는 노포 중의 노포가 되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철거 전 황산나루터 앞에 있던 황산옥 옛모습. |
가업이 자신에게서 끊길까 걱정했던 모씨는 아들이 대를 잇겠다고 나서면서 마음이 든든해졌다. 대학 졸업 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내려온 신영수(37)씨는 식당 청소부터 주차 정리, 주문과 홀 서빙 등 고객 응대에 나섰다. 아직 음식을 직접 만들지 않지만 가끔 주방에 들어와 어깨너머로 배우는 아들의 모습이 대견스럽다. 모씨는 “아들이 매끄럽게 고객 응대를 하고 세련된 식탁 세팅, 주문 정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몇 년 뒤 모두 맡겨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모숙자 대표와 아들 신영수씨. |
100년이 넘은 황산옥의 명성을 이어가겠다는 영수씨의 각오도 남다르다. 그는 증조할머니가 이룬 터전에서 할머니가 더욱 발전시키고 어머니가 꽃을 피운 황산옥의 전통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젊은 고객도 유치하기 위해 여러 구상을 하고 있다. 어른 음식인 복어요리를 다양한 연령층이 즐기는 음식으로 안착시키기 위해 고객 반응과 선호도도 유심히 관찰한다.
황산옥의 4대 주인이 될 영수씨는 “100년을 유지해온 황산옥의 전통 고추장을 활용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 언젠가 매운맛을 좋아하는 젊은 고객을 겨냥한 메뉴를 개발하고 싶다”고 말했다.
황산옥 위치 |
논산= 이준호 기자 junhol@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