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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된 빌라의 대변신... 골목의 역사를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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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남구 봉선동의 다가구 주택 '220'의 전면부. 대수선을 거치며 다세대 주택(공동주택)에서 다가구 주택(단독주택)으로 바뀌었다. 살림집 4가구와 1층 상가(오른쪽 1층)로 구성돼 있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제공

20년. 사람이라면 스무 살 꽃다운 청춘이겠지만, 건생(建生)에선 '노후' 딱지가 붙기 시작하는 세월이다. 정연근(54), 황경주(53)씨도 2002년 준공된 광주 남구 봉선동의 다세대 주택 '대영빌라'를 매입하고 고민을 거듭했다. 별다른 건축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도 아니고 골목에 흔한 한 동짜리 빌라였다. 헐고 새로 지을 것인가, 수선해 살 것인가. 건축주는 고민 끝에 후자를 택했다. 다가구 주택 '220(대지면적 412.35㎡, 연면적 638.97㎡)'은 대영빌라를 대수선한 결과다. 건축가와 건축주는 "아무리 사업성만 생각해 지은 건물이라 하더라도 20년이란 시간 또한 건물의 역사로 존중할 만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가구 수 줄이고, 다양한 평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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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빌라'일 때의 모습. 외벽 마감재가 대수선을 거치며 흰색 돌(석재) 타일에서 붉은 벽돌로 바뀌었다. 가구 수는 8가구에서 4가구로 줄었다. 필동2가아키텍츠 제공

지난해 1월, 11개월간의 공사를 마친 건물은 철근 콘크리트 뼈대만 빼고 싹 바뀌었다. 주 출입구를 가운데 두고 마치 양날개를 펼친 듯한 건물 형태에, 어렴풋히 과거의 모습을 겹쳐 볼 뿐이다. 건물 외벽은 때 묻은 흰색 돌(석재) 타일을 벗고, 붉은 벽돌 옷을 입었다. 가용 면적 안에 꽉 들어차 있던 8가구는 대수선을 거치며 4가구와 상가 한 곳으로 줄었다.


기존에는 8가구가 모두 65㎡의 일률적인 평면으로 구성돼 있었다면, 지금은 4가구의 면적과 평면이 각기 다르다. 또 임대 가구인 101호와 주인 가구인 201호는 단층을 복층으로 개조했다. 복층은 층고의 최대 높이가 6m까지 나온다. 설계를 맡은 조경빈 필동2가아키텍츠 소장은 "사람은 공간에서 단순히 바닥 면적이 아닌 부피를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다양한 평면과 구조로 세입자들에게 선택권을 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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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 가구인 101호의 실내 모습. 복층 구조로, 한집 안에서도 층고가 2m 40㎝~6m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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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 가구인 101호의 실내 모습. 65㎡의 동일한 면적, 일률적인 평면으로 구성됐던 대영빌라의 8가구는 대수선을 거치며 면적과 평면이 다양한 4가구로 바뀌었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제공

가구 수를 줄인 것도, 다양한 평면을 시도한 것도 건축주가 임대 사업의 수익성만 따지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기존 건물에서 거주자에 대한 배려는 찾기 어려웠다. 단열이 제대로 되지 않아 외풍이 심했고 곳곳에 곰팡이가 피었다. 건축주는 "기본적으로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한, 누구나 사는 동안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집이 되는 게 중요했다"고 말했다.


이를 원칙으로 주인 가구와 임대 가구에 동일한 등급의 자재를 썼다. 전 가구에 시스템 창호를 설치하고 친환경 페인트로 마감했다. 내 소유라도 내가 살지 않으면 세입자의 주거 환경은 고려하지 않은 채, 비용 줄이기에 급급한 부동산 셈법을 따르지 않았다. 건축주는 "양심상 그렇게 할 수 없었다"며 "다 내가 사는 집이라고 생각하고 공사했다"고 말했다.

마당 역할하는 5평 '옥상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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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가구의 3층 옥상 정원. 건축주 가족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으로, 단독주택의 '마당' 역할을 한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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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가구의 1층 식당에서 계단 쪽을 바라본 모습. 1층은 주방과 거실의 공용 공간, 2층은 가족 구성원의 방과 옥상 정원이 있는 사적 공간으로 배치했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제공

건축주 가족은 부부와 성인 자녀 셋으로 구성돼 있다. 주인 가구가 거주하는 집은 190.79㎡ 크기로 아래층(2층)에 주방과 거실이, 위층(3층)에 가족 구성원의 방과 옥상 정원이 위치한다. 이들은 직전까지 이 집에서 600m 거리의 아파트에 살았다. 그러다 "도시에 살더라도 정을 느낄 수 있는 동네에서 이웃과 교류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에 집을 짓기로 했다. 특히 도심의 이면도로에 있는 이곳의 아늑한 골목이 마음에 들었다. "골목을 구경하면서 다니면 재미있어요. 출근하기 전에 골목 한 바퀴 돌면서 쓰레기를 줍기도 하고, 그러다가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하고 인사하고 이야기하다 보면 마음에 여유가 생긴달까요." 건축주는 그래서 이 집을 "골목 안 정겨운 벽돌집"이라고 소개한다.


이들 집의 가장 깊숙한 공간에 자리한 3층, 약 5평의 옥상 정원은 가족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다. 가족이 모이는 외부 공간으로서 단독주택의 마당 역할을 한다. 한 켠에 채소도 심고, 차도 마신다. "계절별로 작물을 심고 자라는 모습을 보고 수확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공간이에요. 집에서 쉴 때는 이곳에서 시간을 많이 보냅니다. 어느 날은 텐트를 치고, 누워서 하늘을 봤는데 어렸을 때 시골에 살던 기억이 떠오르더라고요. 아, 진작 이렇게 살아야 했는데 싶더라고요."

20년간의 흔적을 남기다... 우리의 재해석이 또 재해석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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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출입구의 캐노피 윗부분은 과거 대영빌라의 간판이 붙어 있던 자리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제공

건물 곳곳에는 20년이란 시간의 흔적이 남아 있다. 건물 외부의 기단, 담장, 주 출입구 캐노피 윗부분은 콘크리트 구조체를 그대로 노출시켜, 신축처럼 보이는 이 건물의 근간이 실은 2002년 준공된 건물임을 드러낸다. 모든 가구가 공동으로 이용하는 건물 내부의 계단실도 별도의 마감을 하지 않았다. 기존 계단실의 도장인 본 타일을 벗겨냈을 때 드러난 콘크리트 면을 그대로 두었다.


건축가는 "치장을 벗겨내는 방식으로 오래된 흔적을 남겼다"며 "건물을 돌아다니면서 옛 흔적을 발견하고, '신축인 줄 알았는데 이건 뭘까' 궁금증을 자아내는 게 이 건물의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2000년대의 기억을 안고 있는 2020년대의 건물인 셈이다. 2층 계단실 현관문의 흔적은 건축가의 이런 의도가 가장 두드러지는 지점이다. 단층 가구가 일부 복층이 되면서 현관문을 막은 자리인데 건물은 계단실과 현관문이 있던 자리의 경계, 그 갈라진 틈을 애써 감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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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층이 복층으로 바뀌면서 막힌 현관문의 옛 흔적. 매끈하게 마감해 경계를 감추기보다는 그대로 드러내는 방식을 택했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제공

'220'은 지난해 광주시 건축상 주거부문 최고상인 금상을 수상했다. 심사위원단은 "시간의 흔적을 살림과 동시에 사람 중심의 공간 배치로 편의성에 중점을 둔 설계"라며 "앞으로 소규모 공동주택의 재생 방법 및 리모델링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편의성만 고려하면 대수선보다는 신축이 낫다. 대수선은 기존 건물이라는 틀을 유지한 채 공사가 이뤄지니 설계부터 여러 제약이 따른다. 신축과 비교해 비용 절감 효과가 그리 크지도 않다. 업계에서는 통상 10~30% 정도 절감된다고 본다. 물론 장점도 있다. 현재의 강화된 건축법을 따르지 않고, 건물이 지어질 당시의 건축법을 적용받아 공간 활용 면에서 훨씬 유리한 경우가 많다. 이번 사례도 건축주가 건물을 새로 올렸다면, 주차 면적 확보를 위해 1층은 모두 필로티 주차장이 됐을 가능성이 크다. 선택은 건축주의 몫이다.


이 프로젝트는 건축 행위가 이뤄질 때 꼭 철거만이 답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건물이 비록 과거에 수익만을 쫓아 지어졌다 하더라도, 어떻게 재해석하는지에 따라 현재의 쓰임과 가치는 달라질 수 있다. 건축가는 "건축을 개발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너무 쉽게 철거, 멸실하고 새로 짓는 행위가 반복돼 왔다"며 "오래된 건축물을 재해석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더 많아지고, 이 건물에 대한 우리의 해석도 미래에 다시 재해석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광주=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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