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리더십'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울산 현대의 4연승 비결은..."
"선수들과 신뢰 바탕 소통...자기 주도적 결정하게"
"호랑이 감독? 난 원래 화 안내고 부드러운 사람"
"클린스만 감독 좋은 분...대표팀 한 단계 발전했으면"
2022년 팀을 17년 만에 K리그1 우승으로 이끈 홍명보 울산 현대 감독은 올 시즌에도 초반 4연승으로 단독 선두를 이끌고 있다. 울산 현대 제공 |
출발이 좋다. 프로축구 K리그1 울산 현대는 4라운드까지 진행된 리그전에서 4승을 챙기며 단독 선두(4승·승점 12)로 치고 올라섰다. 2주간 국가대항전(A매치) 휴식기를 보내고 다음 달 1일부터 재개하는 5라운드 첫 상대는 아직 1승을 챙기지 못한 제주 유나이티드(10위·2무 2패·승점 2)로 5연승을 달성할 가능성도 있다.
최근 울산 현대 축구단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홍명보 감독은 그러나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제주도 만만치 않은 팀이라 방심할 수 없어요. 게다가 저희는 A대표팀, 올림픽·아시안게임 대표팀 등 차출된 주전 선수만 8명이죠. 오는 주말 경기에 나서려면 충분한 휴식이 필요한데, 우리에겐 어려운 게임이 될 수 있어요."
그래도 4연승을 이룬 팀 분위기가 밝아진 건 사실이다. 홍 감독은 특히 지난 19일 수원FC와의 경기(3-0 승)에 높은 만족감을 표시했다. 그는 "우리 선수들이 열심히 해줘서 승점을 계속 쌓아가고 있는 것은 좋은 일"이라며 "게다가 수원FC와 경기는 우리 팀이 가지고 있는 것을 많이 보여줘서 다행이라 생각한다"고 피력했다. 공격과 수비 모든 게 완벽했다는 얘기다. K리그 감독 3년차를 맞아 전술과 팀워크가 한층 업그레이된 흠잡을 데 없는 출발이다.
'홍명보 리더십'...책임감·신뢰·소통
홍명보 울산 현대 감독이 2022시즌 K리그1 우승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울산 현대 제공 |
홍 감독은 지난해 17년 만에 울산에 리그 우승을 안기며 큰 감동을 선사했다. 리그 최종전에서 보여준 선수들의 투지와 열정은 울산을 모르던 사람도 팬이 되게 만들 정도였다. 유튜브 등 온라인을 통해 퍼진 울산의 마지막 경기는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올해도 다르지 않다. 홍 감독은 선수들에게 '승리 DNA'를 주입하려 한다. 그가 요즘 선수들에게 강조하는 건 '자기 주도적'이고, '자기 통제력'을 키우는 일이다. 울산을 더욱 강함 팀으로 만들려는 의지다. "자기 주도적이 되면 책임감이 따릅니다. 자신이 판단해서 선택했기 때문에 책임감을 갖게 되는 거죠. 자기 통제력을 가지면 그 안에 규율이 생기게 됩니다. 그 규율은 군대처럼 상하 규율이 아닌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해 주는 것이죠."
그의 선수 관리 철학은 명확하다. "축구는 매 순간 자신이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것. 그는 선수들에게 항상 "좋은 결정을 하고 좋은 판단을 하라"고 당부한다. 그래서 홍 감독은 선수들에게 결정권을 주는 편이다. 그러다 보면 스스로 책임감이 생기고 경기장에서 자기 주도적으로 축구를 하게 된다는 논리다.
이런 과정에는 감독과 선수 간 신뢰 관계가 보장돼야 한다. 홍 감독이 중시하는 부분도 소통이다. 훈련할 때 운동장에서 최대한 선수들과 얘기하는 편이라고. 그는 "매일 만나서 차 마시며 얘기하는 게 소통이 아니다. 그런 거는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다"며 "선수들과 사석에서는 절대 만나지 않는 게 철칙이다. 운동장에서 직접적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선수들의 생각을 듣고 있다"고 밝혔다. 홍 감독이 선수들에게 강조하는 말도 "24시간 중에 1시간 반 또는 2시간만 나한테 너희들의 모든 것을 줘라"라는 것이다.
"선수들이 전술적인 부분에 대해 의견을 냈을 때 저는 받아들여요. 질문도 많이 하면서. 또 '네 옆에 누가 섰으면 좋겠니?' 등 은밀하게 묻기도 합니다. 선수들은 잘 얘기를 하는 편이에요. 만약 거기서 선수가 자신의 생각을 밝히지 않으면 소통이 잘 안 된다는 건데, 저희 선수들은 얘길 잘해요(웃음). 되도록이면 선수들의 생각이나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편입니다."
'호랑이 감독' 이라는데
홍명보 울산 감독이 19일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수원FC와의 하나원큐 K리그1 경기에서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뉴스1 |
홍 감독 하면 '호랑이 감독' '어렵고 무서운 감독' 이란 이미지가 떠오른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으며 "저는 화를 거의 안 낸다. 지금 울산에 3년째 있으면서 화를 낸 게 거의 두세 번 밖에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선수들이 해야 할 일을 못하면 화를 내기보다 "설득하고 경고하지 화를 내진 않는다"고 했다.
대신 선수들을 질책할 때는 있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때'다. "제가 부임한 이후 울산은 연패가 거의 없었어요. 연패가 없었다는 건 참 대단한 건데, 패배 후 대처 방법을 선수들이 깨달았다는 얘기죠. 그래서 지난 시즌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역전승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러면서 홍 감독은 자신이 "원래 유(柔)한 사람"이라고도 했다. 아울러 나이를 먹으면서 좀 더 부드러워지고 마음도 많이 열리게 됐다. 선수들에게도 "모든 구성원들이 팀에 헌신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가치만 지키면 언성을 높일 일도 없단다. 다만 팀을 운영하면서 어려운 건 "경기장에 못 나가는 선수들을 어떻게 동기부여하고, 어떻게 끌고 가야 하는지"다. 홍 감독은 경기에 뛰지 못하는 선수들에게 "경기에 모두 출전시키지 못해서 미안하다"라고 먼저 얘길 한다고. 그러면서 그는 "대신 출전하지 못하는 선수의 태도는 굉장히 중요하다며 "'기분이 절대 너희들의 태도가 되지 않게 하라'고 당부한다"고 설명했다. 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축구에서 팀워크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홍 감독은 "그러나 울산에는 이름난 선수가 많지 않아도 정말 훌륭한 선수들이 많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중원을 책임지는 박용우와 이규성, 수비수 설영우 같은 경우 "화려하진 않지만 제일 많이 뛰고 팀을 위해 헌신하는 좋은 선수들"이라며 "축구 선수가 축구만 잘하면 되겠지라고 할 수 있지만 축구도 잘하고 인성도 좋으면 얼마나 더 훌륭한 선수가 되겠나. 저는 이런 점을 계속 지켜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행정가와 대표팀 그리고 클린스만 감독
2019년 10월 당시 홍명보(왼쪽 두 번째)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와 파울루 벤투 남자축구대표팀 감독, 콜린 벨 여자축구대표팀 감독이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 킥오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
홍 감독은 지난 24일 울산에서 콜롬비아와 A매치를 앞둔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등 코치진과 티 타임을 가졌다. 그는 안드레아스 헤어초크 수석코치와 선수 시절 LA갤럭시(2003~2004·미국)에서 한솥밥을 먹은 사이다. 홍 감독은 헤어초크 코치를 "앤디"라고 불렀다고. 당시 클린스만 감독도 오렌지카운티 블루스타(미국)에서 뛰며 1년간 함께 운동했다고 한다.
올림픽·아시안게임 대표팀, A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던 홍 감독은 클린스만 감독의 입장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 그는 "저도 대표팀을 맡아봤으니 잘 알지 않겠나. 클린스만 감독은 참 젠틀하고 좋은 분"이라며 "대표팀 선수들이 잘하고 있지만 한 단계 더 발전한 팀으로 만들어주면 고마운 일이다. 잘 해내셨으면 한다"고 바랐다.
최근 클린스만 감독이 부임하면서 과거 대한축구협회에서 행정가로 일했던 홍 감독이 재평가되고 있다. 축구협회가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하는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으면서 김판곤 전 국가대표감독선임 위원장이 소환됐기 때문이다. 2018년 파울루 벤투 감독을 선임했을 당시 김판곤 전 위원장은 그 과정을 언론에 낱낱이 밝히며 동의를 구했다. 그 중심에 홍 감독도 있었다. 지난 2017년 축구협회 전무이사로 3년 간 재직했던 홍 감독은 김 전 위원장을 선임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섰던 인물이다. 홍 감독과 김 전 위원장은 대표팀 감독을 어떻게 선임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모든 것을 밝히자는데 뜻을 같이 했다.
"저에게는 좋은 경험이었어요. 축구협회에서 일하는 동안 굉장히 열정을 갖고 일했던 거 같아요. 당시 김 전 위원장과 진실성 있게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얘길 했었죠. 비판을 받더라도 언젠가는 인정을 받게 된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됐네요(웃음)."
울산=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