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소시지 속 아질산나트륨 불안하다고요? 결국은 선택의 문제
발색·보존·식중독 예방 효과에도
발암 우려, 자살위해물건 양면성
식약처 "일상적 섭취는 문제없다"
군침이 돌게 하는 소시지의 붉은색은 발색제로 첨가된 아질산나트륨에서 기인한다. 게티이미지뱅크 |
설 연휴가 다가오자 어김없이 상종가를 치는 선물 세트가 있습니다. 스팸입니다. 중고거래 앱에 뜯지도 않은 스팸 세트를 통째로 올릴 정도로 싫어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 오랜 세월 명절 선물로 인기가 계속되는 것을 보면 가성비와 실용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언제나 그랬듯 스팸 같은 식육가공품이 주목을 받으면 따라붙는 게 발색제로 쓰이는 아질산나트륨(NaNO2) 위해성 얘기입니다. 과하게 먹으면 뭔들 좋겠습니까마는 아질산나트륨은 치사량이 적고 발암 추정 물질로 분류돼 더욱 그런 듯합니다. 지난해 말 보건복지부는 고시를 개정해 아질산나트륨을 자살위해물건으로 추가 지정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는 식품용이 아니라 해외에서 '자살약' '안락사약' 형태로 들여오는 경우에 한합니다.
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정부 기관은 물론 의학 전문가들도 식품에 첨가되는 정도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아질산나트륨 무첨가' 햄이나 소시지가 팔리는 걸 보면 일각에서는 경계심이 여전합니다. 식품첨가물로 사용되는 아질산나트륨은 언제쯤 위해성 논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명암(明暗) 공존하는 아질산나트륨
아질산나트륨 구조식. 독성정보제공시스템 |
아질산나트륨은 자연계에 널리 분포하고 방부제나 염료, 의약품 합성, 농약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됩니다. 또한 전 세계 어디서나 소시지와 햄 같은 식육가공품에 첨가합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인데 아질산나트륨을 사용할 수 있는 식품은 명확히 정해져 있습니다. 식약처의 '식품첨가물 공전'을 보면 식육가공품과 기타동물성가공식품, 어육소시지, 명란젓, 연어알젓에만 첨가할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아질산나트륨을 식품첨가물 중에서도 식품의 색을 안정화하거나 유지 또는 강화하는 발색제로 분류합니다. 기본적으로 햄이나 소시지를 먹음직스러운 분홍빛으로 만드는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식육가공품의 보존 기간을 연장하는 보존제 역할을 하고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독소를 생산하는 보툴리누스균을 억제하는 효과도 있습니다. 보툴리누스균으로 인한 보툴리눔독소증은 1급 법정감염병입니다. 치명률이 높고 집단 발생의 우려가 커 페스트나 탄저병 수준으로 관리되는 것이죠.
식품첨가물로서의 이 같은 효용성에도 아질산나트륨이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 자체는 발암성이 없지만 육단백질 중 아민과 결합해 생기는 니트로사민 때문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2015년 아질산나트륨을 인체 발암 추정 물질(2A군)로 분류했습니다. 충분한 발암 증거가 있는 1군까지는 아니지만 잠재적 위험이 있다는 겁니다. 다만 2017년에는 일상에서 섭취하는 정도로는 발암 문제가 없다고 발표했습니다.
식품첨가물로 먹는다면 얼마큼이 안전한가
명란젓의 아질산나트륨 잔류허용기준은 ㎏당 0.005g으로 식육가공품에 비해 훨씬 적다. 게티이미지뱅크 |
독성정보제공시스템에 따르면 아질산나트륨의 '경구(經口) 반수치사량(半數致死量)'은 실험용 쥐에서 0.085g/㎏으로 보고됐습니다. 반수치사량은 실험 대상의 절반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1회 투여량을 뜻합니다. 즉 체중이 60㎏인 사람들이라면 입을 통해 아질산나트륨 5.1g이 체내로 들어갈 경우 절반은 죽는다는 겁니다. 적은 양이라도 매우 위험한 것은 맞습니다.
아질산나트륨의 표적은 혈액입니다. 다량 섭취 시 헤모글로빈을 산화시켜 산소 운반을 저해, 청색증이나 메트헤모글로빈혈증을 유발합니다.
그렇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식품에 첨가되는 아질산나트륨은 양이 철저하게 관리됩니다. 식품첨가물 공전에 규정된 식육가공품 잔류허용기준은 1㎏당 0.07g 미만입니다. 어육소시지는 0.05g/㎏이고, 명란젓과 연어알젓은 0.005g/㎏으로 더 적습니다. 국내에서 200g짜리 스팸 한 캔의 아질산나트륨 함유량은 0.014g을 넘을 수 없고 실제로는 이보다 낮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반수치사량에 이르려면 한자리에서 수백 캔을 먹어야 합니다.
우리 잔류허용기준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입니다. 우리보다 햄과 소시지를 더 먹는다는 미국은 0.2g/㎏, 유럽연합(EU)은 0.15g/㎏이고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 기준은 0.08g/㎏입니다. 식약처 관계자는 "아질산나트륨 때문에 위험한 상황이 되려면 어마어마한 양을 먹어야 한다"며 "일상에서 섭취하는 수준에서는 안전하다"고 말했습니다.
불안하다면 무첨가를 찾거나 혹은 안 먹거나
질소 비료로 키운 채소에는 아질산나트륨이 함유돼 있고 쑥갓도 그중 하나다. 게티이미지뱅크 |
그래도 불안한 이들은 '발색제로 다른 첨가물을 쓰면 되지 않나' 하는 의문을 가질 텐데, 안타깝게도 아질산나트륨을 대체할 만한 게 없다고 합니다. 국내에서 식품첨가물로 허용되는 발색제는 아질산나트륨과 질산나트륨, 질산칼륨 세 종이고 이 가운데 아질산나트륨이 가장 낫다는 것이죠.
대신 아예 아질산나트륨이 첨가되지 않은 햄이나 소시지가 있습니다. 요새 꽤 나오는데 보존제가 빠진 만큼 유통기한이 짧아 상대적으로 가격은 올라갑니다. 또 대체 첨가제로 셀러리 분말이 들어간 제품들도 있습니다. 채소들도 질산염을 함유하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시금치 쑥갓 아스파라거스 고추 무 등이 아질산나트륨이 풍부한 채소로 꼽힙니다.
소시지나 햄을 끓는 물에 몇 분 데치면 아질산나트륨을 대부분 제거할 수 있다고도 하는데, 식약처는 이에 대한 질의에 "공식적으로 검증한 적은 없다"고 답했습니다.
결국 아질산나트륨이 들어간 제품을 먹느냐 마느냐는 개인 선택의 문제일 겁니다. 다만 햄과 소시지가 아무리 입맛에 맞다고 해도 매일매일 과도한 섭취는 자제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