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브리지 오르고 크루즈·헬기 타고… 보석 같은 도시 '3색 투어'
시드니 육·해·공 여행... 도심 헬기투어, 달링하버 크루즈, 하버브리지 등정
시드니 여행은 하버브리지와 오페라하우스가 중심이다. 약 20분간 진행되는 '시드니 헬리투어'를 이용하면 세계적인 관광 도시 시드니의 아름다움을 한눈에 만끽할 수 있다. 좌우로 선회할 때마다 영화 속으로 빨려드는 느낌을 받는다. |
“승객 여러분, 기내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도 꼭 쓰시고 싶은 분은 승무원에게 얘기하면 마스크를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지난 7일 오후 인천공항에서 출발해 시드니로 가는 호주 국적기 콴타스항공(주 4회 운항)의 안내 방송이다. 한국은 여전히 대중교통 마스크 착용이 의무였던 때라 반갑고도 당황스러웠다. 돌이켜보면 호주는 세계에서 가장 혹독하게 코로나19 봉쇄 정책을 펴온 나라다. 무려 600일이나 외국인은 말할 것도 없고 자국민의 입국조차 허용하지 않았던 나라다.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고 구름 아래로 하강하자 시드니 근교 평원과 바다가 산뜻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미세먼지 하나 없이 지평선까지 선명하다. 가지런히 자리 잡은 주택가 주변에 숲이 무성하고, 구불구불 푸른 강이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바다와 만난다. 시드니의 첫인상은 ‘블루’와 ‘그린’이다.
결코 아름답지 못한 세계 3대 미항의 시작
시드니는 호주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이탈리아의 나폴리,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와 함께 세계 3대 미항(美港)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 도시의 시작은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이곳에 첫발을 디딘 이들에게는 천형의 땅이었다. 영국은 늘어나는 죄수들을 감당하기 힘들자 이들을 해외 식민지로 유배 보낼 계획을 세웠다. 호주는 죄수들이 형기를 마치더라도 다시 돌아올 생각조차 하지 못할 머나먼 땅, 사회의 ‘쓰레기’를 영구히 격리시킬 최적의 장소였다. 그러나 선발된 죄수 중에 실제로는 흉악범보다는 경범죄자가 다수였다고 한다. 연령도 10세 미만의 어린이부터 80대 노인까지 다양했다.
하버브리지 교각인 철탑전망대(Pyron Lookout)에 오르면 오페라하우스를 중심으로 한 시드니 도심 풍광이 시원하게 조망된다. |
1788년 736명의 죄수와 해군, 선원을 포함해 1,400여 명을 태운 11척의 첫 번째 선단(First Fleet)이 시드니 입구 보터니베이에 도착했다. 장장 8개월간 대서양과 인도양을 지나 2만4,000㎞에 이르는 목숨을 담보로 한 긴 항해였다. 이 과정에서 햇빛 구경도 하지 못하고 갑판 아래 갇혀 지내던 69명의 죄수가 사망했고, 14명의 아이가 태어났다고 한다. 어디인지도 모를 낯선 땅에 발을 디딘 이들의 두려움과 막막함이 어땠을지는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
초대 총독이기도 한 필립은 당시 첫발을 디딘 곳이 생존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해 3일간의 정찰 끝에 현재의 오페라하우스 부근을 최종 정착지로 정했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항구’라 판단했다지만, 그를 포함한 일행 누구도 시드니가 현재처럼 세계적인 관광지로 발전하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했으리라. 도시 명칭인 시드니는 호주를 유배지로 최종 확정한 당시 영국 내무장관의 이름이었다.
시드니하버(왼쪽)과 달링하버 사이에 시드니 도심의 고층빌딩군이 형성돼 있다. |
시드니 하버브리지는 도시의 상징이자 자동차와 기차, 보행자가 함께 이용하는 다리다. |
시드니에 한번도 간 적이 없는 이들에게도 이 도시의 풍광은 낯설지 않다. 시드니만을 가로지르는 하버브리지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새해를 알리는 불꽃놀이로, 오페라하우스는 세계적인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화려하게 경관조명을 밝혀 도시의 존재감을 각인시킨다. 시드니 여행도 두 개의 이 기념비적 건축물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강인 듯한 바다, 이를 둘러싼 평원, 그 대지에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로 지어진 두 건축물과 고층빌딩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 시드니 도심 풍광이다.
시드니만의 여유, 달링하버에서 출발하는 선상 크루즈
한국 여행객에게 시드니의 일상은 여유 그 자체다. 호주에서 가장 큰 도시여서 교통체증이 심하고 인파로 붐빈다고 하지만, ‘감히’ 서울에 견줄 수준이 못 된다. 도심에서 곧바로 대형 공원과 연결되고, 인도는 넓어 서로 어깨를 부딪히는 일이 드물다. 더구나 바다가 바로 옆이니 어디를 가든 숨통이 트인다.
시드니 풍광을 즐기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배를 타는 것이다. 선상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유람선이 달링하버에서 출발해 시드니만 외곽까지 돌아온다. 별난 음식이 아니어도 그 분위기로 별난 식사가 된다. 선상에서 즐기는 토스트와 맥주, 포도주, 샴페인은 이곳이 시드니여서 더욱 특별하다.
시드니 달링하버에서 출발하는 선상크루즈. 평범한 음식과 음료로도 특별한 식사가 된다. |
달링하버 선상크루즈에서 보는 시드니의 스카이라인. 공기가 맑아 거리를 가늠하기 힘들다. |
달링하버에서 출발하는 크루즈를 이용하면 하버브리지와 오페라하우스를 중심으로 한 도심 풍광을 두루 살필 수 있다. |
달링하버를 빠져나간 유람선은 서서히 속도를 높여 하버브리지 아래를 통과한다. 크고 작은 요트와 대중교통으로 활용되는 여객선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푸른 물살을 가른다. 오페라하우스를 돌아 외곽의 공원과 고급 주택가를 천천히 유람한다. 가을로 접어들지만 날씨는 들쑥날쑥하다. 걸러지지 않은 따가운 햇살, 기온은 30도를 오르내리지만 물기 없는 공기는 보송보송하다. 해변으로 이동하면 바닥까지 투명한 에메랄드 물빛이 상쾌함을 더한다. 하버브리지와 오페라하우스를 배경으로 길쭉하게 스카이라인이 펼쳐진다. 제법 먼바다로 나온 듯한데 눈 닿는 데까지 선명해 거리를 가늠하기 힘들다. 한국에선 좀처럼 접하기 힘든 쾌적한 공기 속에 즐기는 이국적인 투어다.
크루즈 운영사인 라이프스타일차터스(lifestylecharters.com.au)의 경우 25인승 요트 1시간 이용 요금이 750호주달러(약 66만 원)다. 개인보다는 기업, 단체 여행객에게 적합해 보인다.
가장 시드니다운 여행, 하버브리지 꼭대기 오르기
하버브리지 등정은 시드니의 가장 상징적인 여행 상품이다. 시드니만 남북을 잇는 1,149m 길이의 다리를 매달고 있는 130m 높이의 아치 꼭대기까지 걸어서 왕복하는 방식이다. 하버브리지는 1923년 공사를 시작해 세계 경제가 대공황의 수렁에 빠져들던 시기를 거쳐 1932년 완공됐다. 이 대형 프로젝트로 힘든 시기 수많은 일자리가 창출돼 ‘철로 만든 인공호흡기(Iron lung)’라고도 불렸고, 거대한 아치 모양 때문에 ‘옷걸이(Coathanger)’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길이 503m의 둥그런 철 구조물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아치였다. 건설 과정을 찍은 사진을 보면 아치를 먼저 완성하고 꼭대기에서 자재를 매달아 내려 상판을 완성했음을 알 수 있다. 바다 위 59m에 떠 있는 다리로 현재 자동차와 기차가 다니고 보행자용 걷기 길이 따로 있다.
하버브리지 등정은 시드니 관광의 핵심으로 꼽힌다. 높이 130m 아치 꼭대기에 두 개의 호주 국기(공식 깃발과 선주민을 상징하는 깃발)가 걸려 있다. |
하버브리지 등정은 시드니의 대표적 관광 상품이다. 아치에 오르면 시드니 중심부 풍광이 한눈에 조망된다. |
하버브리지 등정은 시드니의 대표적 관광 상품이다. 아치에 오르면 시드니 중심부 풍광이 한눈에 조망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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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브리지 등정은 위험이 따르는 만큼 절차가 까다롭다. 우선 안전사고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서약서 쓰고, 주의사항을 듣고 안전복을 착용한다. 이어 음주 테스트까지 거치고 가지고 있는 모든 짐을 맡긴 후 안전장비를 착용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연습용 구조물에서 안전고리를 채우고 이동하는 실전까지 거친다. 전체 3시간의 투어 중 출발하기까지 거의 1시간이 소요된다.
드디어 안전줄에 고리를 끼우고 일행과 줄지어 상판 아래로 이동한다. 교각 아래로 요가나 산책을 즐기는 시민들, 바로 옆 호텔 옥상 수영장에서 쉬고 있는 여행객들이 여유롭게 보이지만,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제대로 발을 떼기 어렵다.
수평 이동 구간이 끝나면 수직계단이 나타난다. 다리 아래에서 아치 입구까지 4층 구조로 수직계단이 이어진다. 안전줄에 연결돼 있지만 한 계단씩 오를 때마다 오금이 저리다. 수직계단이 끝나면 활처럼 휘어진 아치 상부를 걷는다. 생각보다 폭이 넓고 완만해 계단에 비하면 고속도로나 마찬가지다. 가이드가 아치 입구와 중간, 정상에서 각각 기념사진을 찍어준다. 등정이 끝난 후 인쇄된 ‘인증사진’ 1장과 함께 메모리카드에 넣어 구입할 수 있다.
정상에 다다르면 이마에 살짝 맺힌 땀이 바닷바람에 시원하게 씻긴다. 오른 만큼 작아진 오페라하우스 주변으로 더 넓어진 바다가 감싸고, 요트며 유람선이 경주를 펼치듯 하얀 물살을 가른다. 따갑게 내리쬐는 햇살이 에메랄드 수면에 반짝거린다. 앞장선 가이드가 무선 헤드셋을 통해 다리의 건설과정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끊임없이 풀어놓지만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치 꼭대기를 넘는 시원한 바람, 상쾌한 공기, 발아래 펼쳐지는 시드니항의 그림 같은 풍광 그것으로 충분하다. 정상에서 내려올 때는 발걸음이 가볍다. 구석구석 바닷물이 파고들어 항구가 만들어지고 마을이 형성되고 마침내 거대 도시를 이룬 시드니의 풍광이 두루 조망된다.
무서워서 도저히 브리지 투어를 하기 힘들다면 대안이 있다. 아치 옆 4개 교각 중 하나가 전망대(Pylon lookout)로 조성돼 있다. 200계단을 오르면 사방으로 시드니 풍광을 두루 즐길 수 있다. 브리지 투어에서 불가능했던 사진도 마음껏 찍을 수 있다. 하버브리지 등정(pidgeclimb.com)은 시간대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보통 평일 낮 시간대 요금은 348호주달러, 바로 옆 철탑전망대 입장료는 19호주달러다.
하버브리지 옆 철탑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오페라하우스와 주변 풍경. |
시드니의 상징 오페라하우스 뒤로 도심 스카이라인이 펼쳐져 있다. |
하버브리지에서 오페라하우스까지 이어지는 시드니항은 평시에도 여행객이 가장 붐비는 곳이다. 걸어서 약 20분이 걸린다. 세계에서 가장 예술적인 건축물로 꼽히는 오페라하우스는 1973년 문을 열었다. 날렵한 곡선이 겹쳐진 지붕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조개껍데기나 요트의 돛을 형상화한 게 아닐까 짐작한다. 정작 설계자인 덴마크 건축가 예른 웃손(Jørn Utzon)은 껍질을 깐 오렌지 알맹이 모양을 본떴다고 했다. 외벽을 장식한 105만 개의 작은 타일은 스웨덴에서 제작해 공수했다. 당초 4년으로 예상된 공사기간이 14년으로 길어지며 공사비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돈 먹는 하마’라는 시민들의 비난에 웃손은 쫓기듯 시드니를 떠나야 했고, 준공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지금 오페라하우스의 유·무형적 가치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시드니 왕립식물원(로열보태닉가든) 안에 있는 뉴사우스웨일스 주지사 관저. 오후 3시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
시드니 왕립식물원 안에 있는 뉴사우스웨일스 주지사 관저. 주변이 아기자기한 영국식 정원으로 꾸며져 있다. |
시드니 왕립식물원에는 거대하게 자란 나무들이 초록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
시드니 왕립식물원에서 새 한 마리가 한가로이 먹이를 찾고 있다. 인기척에 신경 쓰지 않는다. |
오페라하우스에서 기념사진을 찍었으면 바로 뒤편 계단으로 연결되는 왕립식물원(Royal Botanic Garden)을 둘러보길 추천한다. 자연이 자원인 나라, 호주와 시드니의 여유를 한껏 누릴 수 있는 곳이다. 넓은 잔디밭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몸집을 키운 나무들이 초록 그늘을 만들고, 시민들이 한가롭게 휴식을 즐긴다. 연못가에서 먹이를 찾는 새들조차 인기척에 무심하다. 오후 3시 이전에 가면 공원 안의 또 다른 정원, 뉴사우스웨일스 주지사 저택(Government House)을 둘러볼 수 있다. 영국식 정원이 비밀의 공간처럼 숨어 있다. 모두 무료 관람이다.
색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다면, 시드니 헬기투어
헬리콥터를 타고 시드니 상공을 훑는 '시드니 헬리투어(sydneyhelitours.com.au)'도 이 도시만의 특별한 추억을 선사한다. 도심에서 약 20분 떨어진 시드니 공항 헬기장에서 이륙해 20분가량 해안과 도심을 돌아온다. 비용은 220호주달러, 절차도 하버브리지 투어에 비하면 간단하다. 비디오로 구명재킷 착용과 사용법을 익히고, 몸무게를 재서 3~4명으로 나눠 헬기에 오른 후 안전벨트만 채우면 이륙 준비가 끝난다.
헬기투어로 본 시드니 해안풍경. 깎아지른 절벽 위에 주택들이 가지런히 자리 잡고 있다. |
헬기투어에서 본 시드니 풍경. 영화의 한 장면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
헬기투어로 본 시드니 풍경. 바닷물이 내륙 깊숙이 파고든 시드니만 곳곳에 요트가 그림처럼 정박해 있다. |
시드니 공항에서 이륙한 헬기는 바로 바닷가로 직행해 해안선을 따라 북상한다. 시드니만 입구에 다다르면 넓은 바닷길을 따라 시내 상공으로 진입한다. 중심의 하버브리지와 오페라하우스를 선회한 후 헬기는 왔던 경로를 되짚어 공항으로 복귀한다. 짧은 시간 시드니의 아름다움을 한껏 즐길 수 있는 투어다. 코발트 빛 바닷물이 해안 절벽과 해수욕장에 하얗게 부서지고, 돌출된 언덕에 집들이 가지런하고, 바닷물이 파고든 둥그런 해안마다 새하얀 요트가 그림처럼 정박해 있다. 대자연과 인간이 빚은 보석 같은 도시, 시드니의 풍광이다. 발아래 전해지는 스릴은 덤이다. 하필 빗방울이 흩뿌리고 구름까지 잔뜩 낀 궂은 날씨였지만 시야는 깨끗하고 풍경은 말쑥했다. 한국에선 본격적으로 미세먼지와 황사가 겹치는 시기, 시드니의 맑은 공기가 오래도록 그리울 것 같다.
취재 협조 :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관광청(Destination NSW)
글·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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