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소일 지나도 벌금 안내고 노역... 수백억 자산 ‘사채왕’ 노림수는
한국일보 자료사진 |
‘명동 사채왕’이라 불리는 사채업자 최진호(66)씨가 사기와 특수 협박 등 13개 혐의로 징역 8년 확정을 받은 판결에 부과된 벌금을 내지 않아 만기 출소일이 지나고도 노역을 사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채업 등으로 수백억원의 자산을 보유했다고 알려진 최씨가 아직 끝나지 않은 다른 재판에서 구속 여부가 결정될 때까지 벌금 45억원을 고의로 안 내며 ‘간 보기’를 한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19일 한국일보 취재 결과, 징역형을 살던 최씨는 만기 출소일인 이달 3일부터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벌금 미납으로 인한 노역을 하고 있다. 2016년 확정 판결에 따라 1일 900만원짜리 노역이어서 최씨가 벌금 45억원을 납부하지 않는다면 500일 뒤인 2021년 8월 16일에 출소하게 된다. 일당 10만원대의 일반 형사사건 수용자들에 비해 ‘황제 노역’을 하는 셈이기도 하다.
하지만 상습 사기 도박과 오랜 고리대금업으로 부를 축적한 최씨의 재산은 900억원대에 달한다는 게 최씨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실제로 최씨가 수감 중이던 2013년 구치소 접견록에는 “330개(330억원)가 있다. 걱정하지마”라는 친형의 말을 들은 최씨가 “관리 잘하라”는 취지로 답하는 대목도 발견된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최씨가 진행 중인 다른 사건 재판에서 다시 구속될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일부러 벌금을 내지 않는 꼼수를 쓰는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만기 출소 전에 벌금을 낼 수 없어 장기 노역을 해야 할 처지라면, 재판부가 최씨의 구속영장을 새로 발부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씨가 2015년 1월 사기 도박ㆍ대부업법 위반으로 추가 기소된 사건을 심리 중인 재판부는 최씨의 만기출소일 이틀 전인 지난 1일 구속 심문 기일을 열어 최씨의 구속 필요성을 검토했다. 통상 재판부는 앞선 사건으로 징역형을 사는 피고인이 재판 도중 출소를 앞두면 심문 기일을 열고 계속해서 구속할 필요성이 있는지 살핀다.
피해자들은 최씨 구속영장이 새로 발부되지 않아 최씨가 벌금을 한꺼번에 내고 나오는 상황이 되면 가뜩이나 극심하게 지연 중인 최씨 관련 다른 재판들이 더더욱 지연되거나 사건이 왜곡 처리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판사와 수사기관 종사자도 매수하고 자신에게 찍힌 사람에게 마약 소지 누명까지 씌우는 최씨가 불구속 재판을 받게 되면 사건 관계인들의 증인 출석을 막거나 허위 진술을 하도록 협박ㆍ회유할 가능성이 크다고도 우려한다. 검찰도 피해자들의 호소를 감안한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실제 진행 중인 사기도박 등 사건 재판에선 최씨가 수감 중임에도 최씨에 대한 두려움 내지 채권ㆍ채무 이해관계 등으로 법정에 불출석하거나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한 증인들이 수두룩해 만 5년이 지나도록 1심 선고조차 기약이 없는 상황이다. 법원과 검찰은 올해 안에 1심 재판을 마무리할 계획이지만 증인 신문이 남은 상황에서 최씨 출소는 중대한 변수가 될 수 있다.
최씨가 출소하면 최씨로 인해 누명을 쓴 신모(61)씨의 재심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신씨는 2001년 최씨 일당의 사기 도박에 걸려 날린 돈 문제로 서울 방배경찰서 인근 다방을 찾았다가 최씨 일당이 몰래 호주머니에 넣은 마약 봉지 탓에 누명을 쓰고 벌금형을 받았다. 최씨는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건강상 이유 등으로 불출석하는 상태다. 이런 사정들로 최씨의 만기 출소 전후로 그의 구속을 촉구하는 탄원서가 속속 법원에 제출되고 있다. 재판부는 조만간 최씨의 구속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윤주영 기자 roza@hankookilbo.com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