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최순실 집사, 옵티머스 설립자, 희대의 기업사냥꾼… 여전히 해외 도피 중인 피의자들

"나라마다 공조 절차 달라 송환 쉽지 않아"

한국일보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변호사비 대납 및 쌍방울그룹의 배임·횡령 등 의혹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8개월간 해외 도피 끝에 태국에서 검거됐다. 송환을 거부하며 재판 절차를 거칠 것이라는 전망과 달리 자진 귀국 의사를 밝혀 이르면 내주 초 본격적으로 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당초 김 전 회장이 지난해 5월 쌍방울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할 무렵 해외로 도피한 사실이 알려졌을 때만 해도 이처럼 비교적 빠른 시간 내 붙잡혀 국내로 송환될 것이라는 기대는 많지 않았다. 대형 사건의 핵심 피의자 내지 이른바 '키맨'들이 해외로 도주한 앞선 사례들을 살펴보면 아직도 행방을 알 수 없거나 붙잡혀도 해당 국가에서 송환 거부 절차를 거치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최순실 집사' 네덜란드서 송환 거부 중
한국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국정농단'의 주범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 일가를 17년간 보필해 '최순실 집사'로 알려진 독일 국적의 데이비드 윤(한국명 윤영식)씨다.


윤씨는 최씨를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사업 청탁을 해주는 대가로 3억 원을 받아 챙긴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를 받고 있다. 검찰은 국정농단 수사 과정에서 윤씨가 한모씨와 공모해 2016년 서울 서초구 내곡동 헌인마을이 국토교통부 '뉴스테이' 사업지구로 지정되도록 박 전 대통령을 움직이게 해 준다며 사업자로부터 착수금 명목으로 뒷돈을 받아 챙긴 것으로 파악했다. 두 사람은 사업 지정이 이뤄지면 총 50억 원을 받기로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또,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의 가짜 한국지사를 설립한 뒤 가방을 팔아 4억8,300여만 원을 가로챈 사실도 드러났다.


당시 구속기소된 한씨는 2019년 4월에 징역 3년 6개월 및 1억5,000만 원 추징이 확정됐지만,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지자 행방을 감췄던 윤씨는 2019년 6월 네덜란드 공항에서 체포됐음에도 여전히 네덜란드에 있다. 2심제인 네덜란드 송환 재판에서 모두 패소했지만, 다시 행정소송을 제기하며 시간을 끌고 있다. 앞서 고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장녀 유섬나씨가 사법 공조 끝에 체포·수감된 후 범죄인 인도 재판 및 송환 불복 소송 등을 거치며 약 3년 만에 송환된 것과 유사한 상황이다.


윤씨가 송환되면 기소중지됐던 헌인마을 관련 혐의 등 조사를 받는 것 외에도 삼성 측과 최씨 간 '말 거래' 및 최씨 일가의 재산 은닉에도 관여한 정황에 대한 사실관계 확인도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옵티머스' 전 대표, 이혁진 미국서 김치 사업
한국일보

옵티머스자산운용 전 대표 이혁진씨가 2018년 3월 21일 대통령 베트남 순방 때 열린 동포간담회 행사에 참석한 모습. 이씨 페이스북 캡처

3,200여 명의 투자자들에게 5,500억 원대 피해를 준 옵티머스자산운용(옵티머스)의 전 대표 이혁진씨도 수사 대상이지만 해외 체류 중이다. 이씨는 옵티머스 설립 초기 70억 원대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입건됐지만 수사 도중인 2018년 3월 미국으로 출국, 사실상 도피해 검찰이 기소중지 처분을 내렸다.


이후 서울중앙지검에서 옵티머스 환매 중단 사태와 관련해 대대적으로 수사를 벌이며 범죄인 인도 청구가 추진됐다. 이씨는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의 선거캠프 금융정책특보를 맡았고,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는 대학 동문이다. 이씨는 지명수배 중이지만 현재 미 샌프란시스코 인근에서 김치판매 사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의자 신분이었지만 해외로 출국해 지난 정권 인사들로부터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는 한때 일부 언론에 자진 귀국해 검찰 조사를 받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감감무소식이다.

'계엄령 문건' 조현천 전 사령관 귀국 의사만 밝혀
한국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조현천 전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 사령관도 이씨처럼 검찰 수사를 피해 미국으로 도피한 뒤 돌아오지 않고 있다. 조 전 사령관은 박근혜 정부 시절 촛불집회 계엄령 검토 문건 작성을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2017년 9월 전역 후 석 달 뒤 미국으로 출국했다. 계엄령 문건 작성 및 지시의 핵심 당사자로 지목된 그가 검찰 소환에 응하지 않자, 정부는 2018년 그의 여권을 무효화하는 등 조치에 나섰지만 달라진 건 없다.


지난해 9월 현지 변호인을 통해 "계엄 문건 작성의 최고 책임자인 저는 계엄 문건의 진실규명을 위해 자진 귀국해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며 "귀국 절차 및 시기는 관계기관과 협의해 추진하겠다"는 입장만 내놓은 상황이다.

희대의 '기업사냥꾼' 홍석종, 여전히 배후조종 의심
한국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무자본 인수합병(M&A) 및 시세 조종, 횡령·배임, 유가증권 위조 등 20건 이상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도중 해외로 도피한 희대의 ‘기업사냥꾼’ 홍석종씨도 행방이 묘연하다. 홍씨는 2010년부터 수사선상에 올라 2014년 체포돼 검찰 조사를 받던 도중 "저녁 먹고 오겠다"며 빠져나가 그 길로 밀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후 성형수술을 받고 위조여권을 만들어 중국과 동남아 일대, 이탈리아 등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국내 추종 세력들과 연결해 지속적으로 무자본 M&A 및 주가 조작 등의 범행을 배후 조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들은 홍씨가 연락책을 통해 이혼한 전 부인 A씨와 자녀의 생활비와 양육비 명목으로 현금을 꾸준히 전달하고, 심지어 입국해 국내 유명 호텔에서 숙박하다 출국하는 등 국내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해외로 도주한 피의자들을 검거하고 송환하는 절차가 나라마다 달라 쉽지 않다"면서 "사법 당국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해당 국가들과 협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오늘의 실시간
BEST
hankookilbo
채널명
한국일보
소개글
60년 전통의 종합일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