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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로 물러진 복숭아 대신 '단짠' 천도복숭아 어때요

이용재의 세심한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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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복숭아는 생으로 먹어도 좋지만 구워서 빵 재료로 사용해도 한층 풍부한 맛을 낸다. 게티이미지뱅크

당산역 사거리를 지나치다가 천도복숭아를 충동구매했다. 한 광주리에 든 예닐곱개가 5,000원. 아무래도 현명한 처사는 아니었다. 일대에 4년 동안 살아서 그 가게의 물건이 썩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게다가 집에 이미 천도복숭아가 있었다. 전날 백화점에서 할인을 업고 열 개나 사다 놓았다. 원래 여섯개 1만원인데 적당히 물렁해졌다고 봉지에 담아 놓은 걸 낼름 집어 왔다. 이래저래 더 살 필요도, 거기에서 살 이유도 없었는데 나는 왜 그랬을까. 엉뚱하게도 복숭아에 화가 났기 때문이었다. 최근의 복숭아 일진이 너무 좋지 않았다. 백화점에서 8개에 3만 5,000원짜리 가장 비싼 백도를 사왔는데 맛이 참으로 실망스러웠다.


그렇지 않아도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질질 끄는 장마 탓에 일조량이 적어 복숭아의 맛이 예년보다 좋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너무 안 좋아서 아예 팔 생각도 안 하고 따서 묻어 버렸다거나, 매년 보내주는 과수원에서 올해는 도저히 안 되겠다며 받을 생각을 말라는 이야기 등을 들었다. 내가 산 복숭아에서도 그런 이야기의 방증 같은 맛이 났다. 단맛은 아예 없고 신맛이 가볍게 머물다가 쓴맛에게 자리를 넘기고 도망쳤다. 과연 이게 최악일까. 오기가 끓어 오르는 한편 궁금해져 일주일 뒤 또 백화점에 가서 복숭아를 사왔다. 이번에는 두 번째로 비싼, 10개에 3만원짜리였다. 오, 신이시여. 사온 지 하루 만에 무르고 멍들기 시작한 복숭아를 썰어보니 아예 속이 곯아 있었다. 정말 조금의 과장도 없이 인생 최악의 복숭아였다.

맛의 편차 적은 천도복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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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복숭아는 비교적 맛의 편차가 적고, 보기 드문 신맛이 난다. 게티이미지뱅크

이런 날씨에 복숭아가 맛있으리라고 믿은 내가 잘못인 걸까. 광복절 연휴 동안 먹으려던 과일의 절반이 먹을 수 없는 것으로 판명나면서 나는 이성을 약간 잃은 동시에 천도복숭아의 소중함을 곱씹었다. 천도복숭아는 거슬리는 솜털도 없이 껍질은 매끈하면서도 굳이 벗겨낼 필요가 없을 만큼만 적당히 질기다. 빛나는 노란색의 과육은 복숭아만큼 조심스레 다루지 않아도 될 만큼 힘을 갖췄다. 그리고 무엇보다 요즘 과일에서 찾기 힘든 신맛이 살아 있다. 싸나 비싸나 맛의 편차가 엄청나게 크지 않기도 하다.


너무 맛있는 나머지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이 마셨다는 음료(혹은 술) 넥타르(nectar)와 같다(ine)고 해서 천도복숭아는 영어로 ‘넥타린(nectarine)’이다. 그런데 왜 보통 복숭아보다 못한 과일 취급을 받는 걸까. 이처럼 맛없는 복숭아에 한 번, 천도복숭아를 천대하는 현실에 또 한 번 분노를 느껴 나는 천도복숭아를 충동구매하고야 말았다. 아니나 다를까, 집에 가져와 보니 개당 두세 군데씩 멍이 들어 있었다. 싼 게 다 이유가 있지. 조금이라도 오래 두고 먹고자 천도복숭아를 뜨거운 수돗물에 담갔다가 씻으며 나는 후회했다. 충동구매 따위 하는 게 아니었는데. 그것도 물건이 어떤지 뻔히 아는 가게에서.


그나마 천도복숭아는 가능성이 이모저모 많은 과일이라 다행이다. 그저 물에 씻어 생으로 먹기 외에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요령이 여러 갈래다. 다만 요즘 과일 대부분이 그렇듯 '후숙'을 시켜야 한다. 유통 도중 손상을 막고자 과일을 익기 전에 따서 유통시키는 경향이 있는데 천도복숭아도 자유롭지 않다. 천도복숭아의 과육은 단단한 편이지만 베어 물었을 때 이에 저항이 없을 정도의 부드러움은 갖춰야 먹기에도 편하고 맛도 좋다. 하지만 그 정도로 익힌 걸 파는 경우가 드무니 사온 천도복숭아는 종이봉투나 신문지 등에 함께 담거나 싸서 둔다. 과일에서 배출되는 에틸렌이 후숙을 촉진시켜 이틀이나 사흘이 지나면 부드러워진다.

천도복숭아 활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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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복숭아는 초생달 모양으로 깍둑 썰어 샐러드로 활용 가능하다. 게티이미지뱅크

생으로 먹기 외에도 맛있는 요령이 여러 갈래라 했다. 난이도 순으로 천도복숭아 요리의 세계를 살펴보자. 일단 초보에게는 프로슈토나 하몽 등 햄을 포함한 가공육과의 짝짓기를 권한다. 소금도 불도, 심지어 칼도 필요 없어 쉽고도 간단하다. 이들 가공육류에는 멜론이 좋은 짝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특유의 신맛이 균형을 잘 잡아줘 천도복숭아만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그저 천도복숭아를 잘 씻어서 햄과 한 입씩 번갈아 먹으면 그만이다. 이게 너무 쉬워서 칼이라도 쓰고 싶다면 다음 단계로는 샐러드가 있다. 천도복숭아는 과일이지만 채소의 한 종류라고 생각하고 다뤄도 좋다. 아래에 소개한 갈레트 레시피의 손질법을 참고해 반으로 가른 뒤 초생달 모양으로 혹은 깍둑 썰어 오이, 양파 등 좋아하는 채소와 함께 비네그레트 같은 드레싱으로 버무려 먹는다. 페타, 블루치즈, 염소젖 치즈 등 부드러운 치즈와 잘 어울리니 샐러드에 더하면 ‘단짠’의 즐거움도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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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복숭아는 가공육인 햄 등과도 잘 어울린다. 게티이미지뱅크

같은 난이도에서 천도복숭아로 디저트를 만들고 싶다면 스파클링 와인 절임을 고려해 보자. 샴페인은 대체로 가격대가 높게 형성돼 있으니 프로세코(프랑스)나 카바(스페인) 같은 스파클링 와인이 좋다. 이들 스파클링 와인은 대체로 단맛은 아주 적고 신맛이 제법 두드러지니 설탕을 넉넉히 써야 균형이 맞는다. 천도복숭아 500g에 스파클링 와인 200㎖, 설탕 50g 수준의 비율을 기본으로 정하고 과일의 신맛에 따라 설탕의 양을 조절한다. 적당한 크기의 볼에 셋을 담고 잘 섞은 뒤 플라스틱 랩을 씌워 냉장고에 1~8시간 두었다가 먹는다. 물론 수박이나 멜론 등 다른 여름 과일을 손에 잡히는 대로 함께 초대하면 맛의 잔치가 한층 더 풍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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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복숭아를 구워 아이스크림이나 치즈와 곁들이면 디저트로 손색없다. 게티이미지뱅크

칼 다음에는 불이 기다리고 있다. 특유의 과육과 껍질 덕분에 천도복숭아만큼 구워 먹기 좋은 과일도 없다. 전자레인지에 30초쯤 돌려 완전히 녹인 버터를 반 잘라 씨를 들어낸 천도복숭아에 바른다. 중불에 충분히 뜨겁게 달군 팬에 갈라 버터를 바른 면이 아래로 오도록 천도복숭아를 올려 5분 정도 충분히 구운 뒤 뒤집는다. 팬에 은박지를 덮고 약불로 줄여 과도의 끝이 저항 없이 들어갈 때까지 부드럽게 마저 익힌다. 익힌 뒤에는 껍질이 질기다고 느낄 수 있으므로 적당히 식힌 뒤 취향 따라 벗겨도 좋다. 이렇게 구운 천도복숭아는 앞서 소개한 대로 샐러드를 만들어 먹어도 좋고, (바닐라) 아이스크림이나 마스카르포네 치즈 등을 곁들이면 꽤 그럴싸한 디저트로 업그레이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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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레트는 천도복숭아로 구워 먹기에 좋은 타르트 혹은 파이의 일종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마지막 단계로는 제과 레시피를 소개한다. 틀이 필요 없이 편하게 모양을 잡아 구울 수 있어, 갈레트는 천도복숭아로 구워 먹기에 좋은 타르트 혹은 파이의 일종이다. 버터를 다루는 껍데기(크러스트)가 부담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특별한 도구 없이 맨손으로도 금방 만들 수 있다. 구운 천도복숭아와 마찬가지로 아이스크림이나 마스카르포네는 물론, 생크림이나 그릭 요거트 등을 얹어 먹으면 한층 더 맛있다.

천도복숭아 갈레트


  1. 껍데기 반죽 : 중력분 210g, 소금 ½작은술, 버터 140g, 얼음물 6큰술
  2. 소 : 천도복숭아 600g (5~7개), 설탕 6큰술

1. 갈레트 껍데기 반죽을 준비한다. 넉넉한 크기의 볼에 밀가루와 소금을 담는다. 버터를 냉장고에서 꺼내자마자 1㎝ 안팎의 정육면체로 깍둑 썰어 밀가루 위에 올린다. 양손의 엄지와 검지로 버터를 한 조각씩 집어 밀가루에 비비면서 부스러트린다. 버터가 쌀알만 해져 밀가루와 구분이 잘 안 될 때까지 부스러트린 뒤 얼음물을 1큰술씩 더하며 손이나 스패출러로 반죽한다. 반죽이 적당히 뭉쳐질 때까지 물을 1큰술씩 더하되 5큰술을 넘기지 않는다. 플라스틱 랩을 뜯어 깔고 뭉쳐진 반죽을 그러모아 위에 올린다. 반죽을 랩으로 싸며 지름 10㎝로 둥글넓적하게 모양을 잡는다. 모양이 잡힌 반죽을 랩으로 완전히 싸서 냉장고에 적어도 1시간 둔다.(반죽은 냉장고에 이틀, 냉동실에 한 달까지 두고 쓸 수 있다)


2. 오븐을 190℃(컨벡션일 경우 175℃)로 예열하고 제과제빵팬을 준비한다. 유산지를 제과제빵팬의 크기에 맞춰 잘라 깐 뒤 껍데기 반죽을 냉장고에서 꺼내 랩을 벗겨 한가운데에 올린다. 벗겨낸 랩을 반죽 위에 가볍게 얹고 밀대로 반죽을 민다. 반죽이 처음에 단단하다 싶으면 밀대로 고르게 두들겨 편 뒤 민다. 지름이 30㎝가 될 때까지 미는데, 더운 날씨에 반죽이 지나치게 물러졌다 싶으면 냉동고에 넣어 10분 동안 두었다가 꺼낸다.


3. 천도복숭아를 손질한다. 가운데의 골을 따라 칼을 한 바퀴 돌린 뒤 가볍게 비틀어 절반을 떼어낸다. 나머지 절반에서 씨를 떼어내는데, 잘 안 떨어질 경우 찻숟가락으로 가볍게 주변을 파낸다. 씨를 전부 발라낸 뒤 반쪽짜리 천도 복숭아를 초승달 모양으로 사등분해 넉넉한 크기의 볼에 담는다. 설탕 5큰술을 천도복숭아에 솔솔 뿌린 뒤 숟가락이나 스패출러로 가볍게 버무린다.


4. 껍데기 반죽의 가장자리에 5㎝의 여유를 남기고 설탕에 버무린 천도복숭아를 고르게 올린다. 반죽의 가장자리를 가볍게 들어 안쪽으로 접어 올려 모양을 잡아준다. 갈레트를 종이 호일째 미끄러트려 제과제빵팬에 담은 뒤 남은 물 1큰술을 접어 올린 가장자리에 바르고 남은 설탕 1큰술을 솔솔 뿌린다. 오븐에 넣어 반죽이 노릇해질 때까지 45~50(컨벡션은 40~45)분 굽는다.


5. 다 구워진 갈레트를 꺼내 바닥의 종이 호일째 미끄러트려 식힘망에 올린다. 10분 뒤 종이 호일을 걷어내고 30분 이상 식힌 뒤 잘라 먹는다.

이용재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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