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린 발목 21개, 13년 간 해변가로… 자연이 만든 미제인가
세계의 콜드케이스
<6> 세일리시해 연쇄 발목 절단 사건
※‘콜드케이스(cold case)’는 오랜 시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범죄사건을 뜻하는 말로, 동명의 미국 드라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는 격주 금요일 세계 각국의 미제사건과 진실을 쫓는 사람들의 노력을 소개합니다.
2007~2019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와 미국 워싱턴주 사이에 위치한 세일리시해에서 발생한 연쇄 발목 절단 사건의 증거품 운동화. |
2007년 8월 20일 캐나다 서부 브리티시컬럼비아(BC)주(州) 제데디아 섬. 미국 워싱턴주에서 보트 여행을 하러 섬을 찾은 12세 소녀는 해안가에 떠밀려 온 신발 더미를 무심코 바라보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300㎜짜리 남성용 러닝화 안에 발목이 잘린 발이 들어 있었던 것. 바닷물에 휩쓸려 부패는 상당히 진행됐지만 분명히 사람의 발이었다.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흉기에 의한 고의 훼손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광범위한 조사를 벌였다. 그러나 시신의 신원만 확인됐을 뿐, 용의자는커녕 사인을 밝힐 만한 단서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이 운동화가 13년 후 ‘연쇄 발목 절단’이란 꼬리표가 붙은 미제 사건의 시작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2019년까지 BC주와 인접한 워싱턴주 사이 세일리시해 해변에서 무려 21개의 잘린 발목이 발견된 것이다. 지금까지 수사에서도 인신매매나 성(性)도착자에 의한 범행인지, 극단적 선택인지 진실은 규명되지 않았다. 우연, 즉 자연의 소행이란 가설이 유력한 정도다. 분명한 건 억측만 무성한 채 잊을 만하면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흉측한 발목 사진 탓에 주민들의 공포심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태평양 해변에 밀려든 잘린 발
첫 사건 발생 엿새 뒤 이번엔 BC주 나나이모 가브리올라 섬에서 잘린 발이 든 남성용 러닝화가 또 발견됐다. 여태껏 이 신발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듬해에는 5개의 발이 무더기로 나왔다. 2008년 2월 4년 전 실종된 21세 남성의 발을 시작으로 5월(BC주 커클랜드 섬, 여성), 6월 (BC주 웨스트햄 섬, 남성), 8월(워싱턴주 피시, 남성), 11월(BC주 리치먼드, 여성)에서 유사 사건이 잇따라 보고됐다. 조사 결과, 5ㆍ7차 사건의 사체 일부는 3ㆍ4차 사건 피해자들의 나머지 한쪽 발이었다.
잠잠하던 사건은 1년 뒤 재연됐다. 2009년 10월 리치먼드 근처에서 남성용 나이키 운동화(8차)가 신고됐다. 2010년에는 모두 어린이로 추정되는 두 사람의 발이 워싱턴주에서(9ㆍ10차)나왔다. 이후로도 BC주 폴스크릭과 시애틀 레이크유니언, 밴쿠버 등의 해안가에서 절단된 발이 끊이지 않고 발견됐다. 마지막 사건은 2019년 1월 1일 워싱턴주 에버렛 인근의 인공섬 제티 아일랜드 해변에서 찾은 발이다. 수사당국은 13년간 BC주에서 15개, 워싱턴주에서 6개의 잘린 발을 수거했다.
제자리 수사에 추측만 난무
사건 초기 수사팀은 연쇄살인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2차 사건이 발생하자 캐나다 연방경찰 수사관인 개리 콕스는 일간 밴쿠버선에 “발목 한쪽이 발견된 건 그저 우연일 수도 있지만 연이어 같은 사건이 재발한 사실은 누가 봐도 미친 상황”이라고 말했다. 흉악 범죄가 확실하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비슷한 사건이 계속되면서 다양한 추측이 제기됐다. 먼저 항공기 추락 사고 유해설이다. 5차까지 사건 발생 장소가 2005년 세일리시해 북부 쿼드라섬 인근에서 일어난 비행기 충돌 사고 지점과 일치했던 것이다. 당시 항공기에 탑승한 5명의 남성은 모두 실종 상태였다. 그러나 유전자 감식 결과, 4차(커클랜드 섬) 사건의 피해자는 여성으로 드러났다. 이후에도 BC주 전역과 워싱턴주에서 잘린 발 유해가 나오자 이 가설은 폐기됐다.
다른 추정은 쓰나미(지진해일) 피해자 가능성이다. 2004년 12월 24만명이 숨진 인도양 쓰나미 참사 희생자들의 사체가 1,000마일(약 1,609㎞)을 이동해 북태평양 연안으로 밀려든 것 아니냐는 추론이다. 피해자 신발들의 제조일자가 최소 2004년 이전이고, 해류가 북쪽으로 움직이는 점 등이 근거로 제시됐다. 실제 2011년 일본 도호쿠(東北) 대지진 때에도 한참 뒤에 밴쿠버나 시애틀 연안에서 일본어가 적힌 축구공 등이 발견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 쓰나미는 빈번하게 생기는 자연현상이어서 증거 발견 시점이 시기적으로 너무 늦다는 반론이 나왔다. 또 일각에서는 오랜 이동 시간 동안 갑각류 등 해양생물이 뜯어 먹어 피부가 온전히 남아 있기 어렵다며 주장을 일축했다. 캐나다 프리랜서 기자 에스더 잉그리스-아르켈은 2010년 블로그에 글을 올려 “9차 사건까지 3명의 피해자는 확실히 지역 주민으로 확인돼 쓰나미 이론은 힘을 잃게 됐다”고 말했다.
한때 잘린 발목이 투신한 사람들의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확인된 1차 사건 피해자는 우울증에 걸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였고, 4ㆍ7차 사건 주인공도 BC주 뉴웨스트민스터 다리에서 뛰어내린 여성으로 밝혀졌다.
피해는 지속되고 대중의 관심은 커지는데, 해결 조짐은 안보이니 ‘모방 사건’도 잇따랐다. 2008년 6월 5차 사건 발생 이틀 만에 밴쿠버 아일랜드에서 잘린 발이 또 발견됐다. 사람들은 6번째 사건이 일어났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알고 보니 동물 발목뼈에 양말을 씌우고 신발을 신긴 가짜였다. 2011년 8월에도 해변가에 버려진 발이 있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으나 역시 생고기를 뭉쳐 발목처럼 꾸민 장난이었다.
시간은 자연을 범인으로 지목
[저작권 한국일보] 잘린 발 발견 지점. 김문중 기자 |
수사당국이 사건 배후나 원인을 점치기 어려웠던 가장 큰 이유는 절단된 발이라는 결과 외에 각각의 사건을 잇는 접점이나 유사성이 전무했다는 점이다. 우선 절반이 넘는 13개 발의 주인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들이 왜 죽음을 맞았는지 파악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신원이 확인된 피해자들도 연결고리를 단 한 건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위력에 의한 사망, 즉 연쇄 살인 가능성은 점차 설득력을 잃어 갔다.
그러자 전문가들은 자연으로 눈을 돌렸다. 맨발로 발견된 9차 사건을 제외한 나머지 사건 전부 잘린 발이 러닝화나 등산화에 들어 있었다는 공통점이 단초가 됐다.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대 법의학연구센터의 공동 책임자 게일 앤더슨은 미 매체 복스에 “물 속에서 발이 운동화에 부착되면 발목 윗부분은 쉽게 분리되고, 요즘 신발은 부력도 좋아 해변으로 쉽게 떠내려 온다”고 말했다. 설명하면 이렇다. 극단적 선택, 혹은 어떤 이유에선지 숨진 사람들의 사체가 물에 떠다니다 나머지 부분은 떨어져 나가 분해되지만, 단단하고 밀폐된 신발에 싸인 발 부분은 오랫동안 형태를 유지하다 주민들의 눈에 뜨인다는 것이다. 실제 힐이나 슬리퍼, 샌들을 착용한 상태에서 발견된 경우는 없었다.
신고된 사건 중 외상 징후가 있는 사례가 없다는 점도 자연발생에 따른 절단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미 폭스뉴스는 “인간의 자발적 활동과 개선된 신발 기능, 대자연의 힘이 뒤섞여 일으킨 미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손성원 기자 sohnsw@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