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건국전쟁’ 71만 돌풍… 장르 영화처럼 보는 정치 다큐 시대
우파 다큐멘터리영화로 이례적 흥행
100만 관객 돌파 가능하다는 전망도
"우리 사회 진영 대결 극장으로 확장"
이승만 전 대통령이 1954년 미국을 국빈 방문해 뉴욕에서 카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건국전쟁'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장면이다. 다큐스토리 제공 |
이승만(1875~1965) 전 대통령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이 관객 71만 명(18일 기준 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을 모았다. 관객 100만 명 달성도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큐멘터리 영화가 수십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건 이례적인 현상이다. 다큐멘터리 영화가 장르 영화처럼 소비되고 있는 시대 흐름을 반영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좌파 독무대에 등장한 우파 다큐
'노무현입니다'는 185만 명이 봐 정치 다큐멘터리 영화로서는 최고 흥행 기록을 지니고 있다. 영화사 풀 제공 |
‘건국전쟁’은 우파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첫 흥행작이다. 그동안 정치 다큐멘터리 영역은 좌파의 독무대였다. 흥행작이 여럿 나오기도 했다. ‘노무현입니다’(2017)는 185만 명이 봐 정치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최고 흥행 기록을 지니고 있다. ‘그날, 바다’(2018)는 54만 명, ‘그대가 조국’(2022)은 33만 명이 각각 관람했다. ‘무현, 두 도시 이야기’(2016·19만 명)와 ‘자백’(2016·14만 명), ‘길위에 김대중’(상영 중·12만 명), ‘문재인입니다’(2023·11만 명) 등 관객 10만 명을 넘은 영화도 꽤 있다. 상업 영화와 달리 다큐멘터리 영화는 관객 10만 명만 모아도 '대박' 수식이 따라붙는다.
이승만 업적만 집중 부각
‘건국전쟁’은 이 전 대통령의 업적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독립운동가로서 미국에서의 활약, 자유민주주의 체제 도입, 토지개혁,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등을 부각시킨다. 독립운동가 김구의 이중적인 언행, 1954년 미국을 국빈 방문한 이 전 대통령의 카퍼레이드 영상 등 종전 다큐멘터리에서는 접하지 못했던 내용도 담겼다.
좌파의 이 전 대통령 지우기 작업으로 그의 업적이 온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발췌개헌안 통과, 사사오입 개헌 등 이 전 대통령 집권 당시 발생한 부정적인 사안은 언급하지 않는다. 이 전 대통령은 장기 집권을 했을 뿐 독재자는 아니라는 주장을 설파하기도 한다. 제작사는 “그동안 과만 지나치게 다뤄져 공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려 했다”는 입장이다.
다큐 태생적으로 편향… 극장의 유튜브화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포스터. 다큐스토리 제공 |
극우 성향 단체 트루스포럼이 ‘건국전쟁’의 공동제작사이다. 트루스포럼의 김은구 대표는 ‘건국전쟁’에서 주요 발언자로 등장한다. 여느 정치 다큐멘터리 영화보다 편향성이 강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김효정(한양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는 “다큐멘터리는 태생적으로 편향성을 지녔고 정치 다큐멘터리는 더더욱 목적이 분명하니 더 편향적일 수밖에 없다”면서도 “제작 관계자 출연은 최소한의 객관성이라도 추구하려는 다큐멘터리 제작 원칙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제작 방식을 통한 다큐멘터리의 객관성 유지는 이미 폐기된 원칙이라는 주장도 있다. 2004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다큐멘터리영화 ‘화씨 9/11’은 미국 좌파 감독 마이클 무어가 제작과 연출, 출연을 겸했다.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영화적 제어 장치를 아예 포기한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 사회 진영 대결이 극장으로 확장됐다는 의견이 있다. 좌파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다큐멘터리 영화 영역에 우파가 성공적으로 진출하며 ‘극장의 유튜브화’ 현상이 가속화하게 됐다는 것이다. 김영진(명지대 교수) 영화평론가는 “관객은 정치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 평소 생각을 확인하는 쾌감을 얻으려 한다”며 “장르 영화를 소비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김 평론가는 “사회 전반에서 이념 전쟁이 진행 중이고 정치 다큐멘터리 영화의 흥행도 그 흐름 안에 있다”며 “극장 영화를 통한 확증편향이 강화되는 시대”라고 덧붙였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