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여행] 100년 농가가 부티크 호텔로… 일상이 녹아 있는 ‘오래된 새집’
빈집 프로젝트로 재생한 제주의 이색 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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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고급 호텔의 홍보 문구에는 ‘내 집처럼 편안한’이라는 표현이 자주 쓰였다. 다국적 숙박공유 플랫폼 A사는 ‘현지인처럼 살아보기’를 꾸준히 밀고 있다. 멋진 풍광을 찾아가는 ‘관광’에서 휴식에 주안점을 둔 ‘일상’으로 여행의 흐름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빈집 재생 스타트업 ‘다자요’와 지속가능한 제주 여행을 앞세운 ‘제주패스’가 최근 이색 숙소 세 채를 개설했다. 유명 관광지가 아니라 평범한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빈집을 개조한 숙소다.
‘하천바람집’은 제주에서도 바람이 센 표선면 하천리에 자리 잡고 있다. 마당에는 감나무 몇 그루가 자라고, 뒤편은 넓은 감귤밭이 감싸고 있다. 이 집의 역사는 70년 전 한 부부가 초가와 축사를 지으며 시작됐고, 이후 아들이 물려받아 대를 이었다. 아들의 세 자녀 모두 이 집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등 가족의 추억도 켜켜이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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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한 집은 짙은 주황색 지붕만 그대로일 뿐, 외벽과 내부는 완전히 딴 집이다. 디지털 잠금 장치가 설치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맞은편 작은 창으로 초록 넝쿨 뒤덮인 담장이 보이고, 왼편으로 방향을 틀면 고풍스런 거실로 연결된다. 옛집 그대로의 천장 서까래에 애자를 박아 전선을 연결했고, 경첩을 단 목재 가구가 한쪽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마루 끝에 놓인 책장에는 배우 류승룡이 기증한 책과 장식물이 놓여 있다. 제주를 여행하던 류승룡은 우연한 기회에 빈집 프로젝트를 알게 됐고, 하천바람집을 재생하는 일에 마음이 닿았다고 한다. 집 곳곳에 그의 아이디어가 숨어 있는 이유다.
한립읍 월령리 바닷가의 ‘월령바당집’은 100년이 넘은 집이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외관이 완전히 변했다. 내부 기둥과 외벽에 남긴 현무암에만 옛집의 정취가 남아 있다. 현대적 감각의 인테리어에서 가장 돋보이는 공간은 2층 다락방이다. 인디언텐트 같은 삼각형의 지붕 아래에 직사각형의 창이 액자처럼 걸렸고, 그 창으로 월령 바다가 그림처럼 담긴다. 욕조 창밖의 담장 아래에는 선인장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월령리는 200여 년 전 조류에 떠내려온 멕시코 원산 선인장이 제주에 처음 뿌리를 내린 곳이다. 선인장이 마을의 상징이나 마찬가지다. 자갈 바닥에 야자수와 선인장으로 장식한 마당도 이국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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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면 두모리의 ‘두모옴팡집’은 이름대로 마을 골목길보다 낮은 옴팡진 지형에 터를 잡았다. 담장 밖에서는 초록 지붕만 보일 뿐, 대문도 마당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중정과 창문으로 햇살이 풍성하게 들어와 따스하고 아늑하다. 100년 세월을 이어온 안거리(안채)와 밖거리(바깥채)는 현관을 겸한 통로로 한 채가 됐다. 거실과 침실, 주방과 욕실 외에 뒤뜰의 작은 정원도 매력적이다.
세 채의 숙소는 독립 민박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실상은 개성 만점의 부티크 호텔이다. 주방에는 고가의 B사 토스트기와 원두를 갈아 내릴 수 있는 커피 세트를 갖췄고, 식탁에는 쑥쫀드기와 보리개역, 흑돼지 육포와 한라봉 젤리, 유정란과 마시는 요구르트가 증정품(어메너티)으로 놓였다. 모두 제주의 소기업에서 협찬한 홍보용 물품이다. 욕실에는 고급 브랜드로 인식되는 D사의 헤어드라이어를 비치했고, 욕실 외에 은은한 비취색 타일의 욕조도 갖췄다. 마당에서는 해녀들이 몸을 녹이던 불턱에 모닥불을 피울 수 있고, 바비큐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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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 한 채를 고치는 데는 2~3억 원의 비용이 들어간다. 업체는 재생한 집을 10년간 숙소로 운영한 후 주인에게 반환한다. 제주에는 공식적으로 3만5,000여 채의 빈집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고, 통계에 잡히지 않는 미등기 건물이 많은 점을 감안하면 실제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주패스 운영사인 ㈜캐플릭스 윤형준 대표는 빈집 재생으로 1,000실의 숙소를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잡고 있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렇게 하면) 그만큼 대규모 리조트를 지을 필요가 없고, 환경 훼손도 막을 수 있죠. 마을을 지키는 것이 제주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기도 하고요.” 재생 숙소 이용료의 1.5%는 마을 발전기금으로 사용된다. 또 ‘그린앰베서더’ 회원으로 가입하면 재주패스 이용료의 1%를 회원 이름으로 제주의 환경과 다양성을 지키는 활동과 단체에 기부한다. 가격보다 가치를 중시한다는 이 회사의 ‘메이크제주베터(Make Jeju Better)’ 실험이 성공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제주=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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