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담아 산을 닮다... 1500년 전 대가야 시간 산책
고령 지산동고분군과 이운순례길
고령 지산동고분군에서 가장 큰 44호 무덤. 순장 풍습이 최초로 확인된 무덤이다. 지산동고분군에는 주변 산 능선을 닮은 대가야 무덤 700여 기가 밀집돼 있다. |
경북 고령은 고대국가 대가야의 중심이다. 박물관, 전시관, 수목원은 물론 식당, 카페, 생활편의시설까지 ‘대가야’를 앞에 내세운다. 군청 소재지도 고령읍에서 대가야읍으로 행정 지명을 바꾸었으니 고령 여행은 대가야의 자취를 따라가는 산책이다.
팔만대장경은 어떻게 해인사까지 운반됐을까
고령 여행의 또 다른 줄기는 팔만대장경 이운순례길이다. 시작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대구 달성군과 마주 보고 있는 개경포기념공원이다. 개경포는 개포나루, 개포진, 개산포, 가혜진 등으로도 불렸다. 과거 낙동강 수로를 이용해 대가야읍으로 들어올 때 가장 빠르고 쉬운 경로였다.
개경포(開經浦)라는 이름은 합천 해인사에 보관된 고려대장경(팔만대장경)을 개포나루를 통해 옮긴 것에서 유래된다. S 자 모양으로 흐르는 낙동강 곡류 구간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해 해인사와 가까운 지점이다. 조선시대 한창 번창했을 무렵 개경포에는 세곡을 저장하는 창고와 함께 200여 채의 집과 30여 개의 객주가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지금의 개경포공원은 시골 도로변의 한갓진 휴게소와 비슷하다. 주차장 외 편의시설이라고는 간단한 요깃거리를 판매하는 초가지붕 주막이 전부다.
팔만대장경 이운순례길 출발지인 개경포기념공원에 작은 주막이 들어서 있다. |
개경포기념공원 부근 낙동강 물길이 휘어 흐르고 있다. 개경포는 낙동강으로 이송된 팔만대장경이 해인사로 옮겨진 곳이다. |
개경포기념공원에 팔만대장경 이운 행렬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
눈길을 끄는 건 경판을 이고 진 남녀가 관원과 스님의 뒤를 따르는 석상 행렬이다. 한 장의 무게가 대략 3.25㎏, 전체 280톤에 이르는 목판을 이송했을 모습을 상상하면 이를 재현한 조각상은 오히려 수수하다.
고려는 부처님의 힘으로 몽골군을 물리치려 강화에 대장도감 본사(本司)를, 진주에 분사를 설치하고 고종 23년(1236)부터 약 15년간 '초조고려대장경'을 바탕으로 팔만대장경을 만들었다. 강화도 선원사에 보관됐던 대장경은 조선 태조 때 해인사로 옮겨졌다. 남한강 수로를 거쳐 조령을 넘고 상주에서 낙동강을 타고 내려왔는지, 서해와 남해를 거쳐 낙동강 하구에서 강을 거슬러 왔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정확한 시기와 경로에 대해 견해가 다양하지만, 이곳 개경포를 거쳐 해인사로 이운됐다는 데에는 대체로 의견이 일치한다.
개경포에서 해인사까지의 이운 경로도 불명확하기는 마찬가지, 현재 가능성이 있는 두 갈래로 이운순례길이 조성돼 있다. 하나는 성주 가야산 자락 심원사를 거쳐 해인사로 넘어가는 ‘성찰의 길’이고, 또 하나는 고령 미숭산을 거쳐 합천으로 가는 ‘순례의 길’이다. 어느 길이나 대가야읍을 거쳐가는데 개경포에서 금산재를 넘는다. 해발 120m의 낮은 고개로 도로가 개설돼 있다.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대구로 가는 주요 통로였으나 터널이 생기며 현재는 이용하는 차량이 많지 않다. 고갯마루에 오르면 멀게는 가야산의 우람한 바위 능선이 아른거리고, 가까이는 대야가의 상징 지산동고분군이 손에 잡힐 듯하다.
개경포에서 대가야읍으로 넘어가는 금산재에서 멀리 가야산 능선이 우람하게 솟아 있다. |
대가야수목원 초입에 산림녹화기념숲 표석이 커다랗게 세워져 있다. |
대가야수목원은 넓은 주차장에 탐방로가 잘 조성돼 있어 가볍게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
금산재 아래에는 대가야수목원이 조성돼 있다. 수림이 울창하지 않지만 주차장이 넓고 탐방로가 잘 닦여 있어 가볍게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수목원 초입의 ‘산림녹화기념숲’이라는 커다란 표석이 인상적이다. 1946년 사방사업을 지도하기 위해 출장 왔다가 금산재에서 차량이 전복돼 숨진 3명의 산림공무원을 기리는 상징물이다. 대가야수목원은 식민지 수탈과 전쟁으로 황폐해진 산림을 푸르게 가꾼 업적을 기념하는 숲이다.
대가야 읍내를 우회해 미숭산 자락으로 접어들면 우륵박물관이 있다. 악성 우륵과 그가 창제한 가야금을 테마로 한 박물관이다. 박물관이 위치한 쾌빈리는 우륵이 태어나고 활동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자연 부락인 정정골은 가야금 소리에서 유래한 것으로 해석한다.
전해오는 이야기로 박물관까지 지을 일인가 싶고, 그냥 둘러보면 전통 현악기를 나열해 놓은 공간에 불과하다. 그래서 전시관을 둘러볼 때는 꼭 상주하는 해설사의 설명을 들어보기를 추천한다. 악기의 특성과 역사를 알고 실제 소리를 들으면 전통음악에 문외한이라도 충분히 흥미롭다.
박물관 위 중화저수지는 우륵공원으로 조성돼 있다. 호수를 가로지르는 덱 산책로가 놓였고, 수면에 주변 산자락이 그림처럼 비친다. 이곳부터 미숭산자연휴양림까지는 산골마을의 정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점점 좁아지는 골짜기에 듬성듬성 마을이 자리 잡았고, 주변에 다랑논이 형성돼 있다.
우륵박물관 입구에 가야금을 켜는 우륵 석상이 세워져 있다. |
우륵박물관에서에서는 상주하는 해설사로부터 전통악기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
미숭산자연휴양림 숲속 탐방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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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숭산자연휴양림에는 솦속 탐방로와 쉼터가 잘 조성돼 있다 . |
미숭산(757m)은 고령에서 가장 높은 산이자 합천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고려말 정몽주의 편에 선 이미숭 장군이 이성계에 대항하다 순절해 상원산이라는 이름이 이렇게 바뀌었다 한다. 산 중턱에 조성된 자연휴양림 주변으로 탐방로가 잘 정비돼 있어 가볍게 산책을 즐길 수 있다. 휴양림에서 산 능선까지는 경사가 가파른 편이다. 그 옛날 무거운 경판을 이고 지고 이 험한 길을 넘었으리라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산 전체가 대가야 무덤, 지산동고분군
미숭산보다는 지산동고분군 쪽으로 돌면 합천 가는 길이 한결 수월하다. 현재 고령에서 합천으로 이어지는 26번 국도도 고분군 아래쪽 하천을 따라 연결돼 있다. 이운순례길에 포함되지 않지만 높은 고개가 없어 좀 돌더라도 이 길을 택했을 듯하다.
대가야(42~562년) 지산동고분군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가야고분군 중에서 밀집도나 규모가 다른 지역을 압도한다. 금산재에서 보듯 대가야 읍내 뒷산(주산) 능선과 남쪽 사면이 고분으로 덮여 있다. 전체 700기가 넘어 이게 다 고대 무덤인가 의심스러울 정도인데, 오랜 세월 발굴 조사를 통해 확인된 숫자라고 한다.
지산동고분군에는 산 능선과 자락에 크고 작은 대가야 무덤이 밀집해 있다. |
대가야읍 뒷산인 주산 전체가 지산동고분군이다. |
대가야박물관은 지산동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
금관가야의 김수로왕처럼 고령에도 대가야 건국신화가 전해온다. 조선 초 지리서인 동국여지승람에 간단히 소개돼 있다. “가야산신 정견모주(正見母主)가 천신 이비가지(夷毗訶之)에게 감응되어 대가야왕 뇌질주일(惱窒朱日)과 금관국왕 뇌질청예(惱窒靑裔) 두 사람을 낳았다.”
산신이자 여신이 대가야와 금관가야의 왕을 낳았다는 이야기다. 대부분 남성이 주인공인 고대국가의 건국 신화와 차별화되고, 금관가야와 묘하게 경쟁 관계가 느껴진다. 고분군 아래에 위치한 대가야박물관에 그 역사와 고분군 출토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토기와 철기, 금관과 장신구, 무기와 갑옷 등 당시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유산에 상세 해설이 곁들여져 있다.
박물관에 걸린 대가야 지도가 흥미롭다. 수도인 고령은 동쪽 귀퉁이에 붙어 있지만 서쪽으로 순창 임실, 북쪽으로 진안 무주까지 대가야의 영역이었다. 남쪽으로는 하동 여수 순천을 아우르고 있다. 지금의 전라도 동부, 경상도 서부 지역이 모두 대가야 땅이었다.
백제와 신라 사이의 대가야는 결국 두 나라에 의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6세기 초 백제 무령왕은 가야연맹에 속했던 전라 동부 지역을 손에 넣는다. 대가야 이뇌왕은 이를 견제하기 위해 신라와 혼인동맹을 맺지만 오히려 분열 계략에 말려 결국 562년 신라군에 의해 멸망한다. 이후 가야의 역사가 의도적으로 축소되고 지워졌으리라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꿰어 맞추기 힘든 파편 조각처럼 여전히 수수께끼 왕국이다.
지산동고분군 초입 연못에 분수가 시원하게 물줄기를 뿜고 있다. |
산줄기를 따라 대가야 무덤이 밀집돼 있는 지산동고분군. |
고분군 사이 듬성듬성 남겨 둔 소나무가 쉼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
지산동고분군 정상에 오르면 대가야읍(고령군청 소재지)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
박물관을 둘러봤다면 본격적으로 고분 산책에 나설 차례. 주차장 귀퉁이 관광안내소 뒤편에서 출발해 가장 꼭대기 무덤까지 돌아오면 약 3㎞, 여유 있게 1시간 30분을 잡으면 된다. 솔숲 사이 완만한 탐방로를 오르면 바로 여러 기의 봉분이 모습을 드러낸다. 오른편으로 눈길을 돌리면 왕릉전시관 뒤편 무덤군이 한눈에 들어온다. 크고 작은 무덤이 봉긋하게 솟아 있다. 관광객을 위해 일부러 만든 것처럼 온 산이 모두 무덤이라 실제라 믿기지 않을 정도다. 다양한 크기의 무덤 사이로 탐방로가 오솔길처럼 이어진다. 제법 경사가 있지만 험하지 않고 봉분처럼 둥글둥글 부드럽다. 커다란 무덤 사이 듬성듬성 남겨둔 소나무는 쉼터 겸 이정표다.
정상 바로 아래에 폭 27m에 이르는 가장 큰 규모의 44호 무덤이 있다. 5세기 말에 만들어진 이 무덤에서 순장 풍습이 발견됐다. 기록에만 남아 있던 순장이 실제 발견된 건 이곳이 처음이다. 40여 명의 순장자와 수많은 부장품으로 볼 때 왕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가야박물관 옆 왕릉전시관에 실물 크기로 무덤 내부를 전시해 놓았다. 바로 위 조금 작은 45호분도 11명 이상 순장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산동고분군 아래 왕릉전시관에 44호 무덤 내부의 순장 풍습을 재현해 놓았다. |
지산동고분군의 둥글둥글한 봉분이 주변 산 능선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
고령 여행 지도. 그래픽=이지원 기자 |
45호분에서 조금만 오르면 정상이다. 제법 평평한 능선에 5기의 무덤이 자리 잡았다. 바로 아래로 대가야 읍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사방으로 겹겹이 둘러쳐진 산세가 이어진다. 봉분 하나하나가 멀리 너울거리는 산 능선과 묘하게 닮았다. 삶과 죽음이 그렇듯 고대 왕국의 생멸도 자연의 순리처럼 느껴진다. 1,500년의 시간을 1시간으로 압축한 꿈결 같은 산책이다.
고령=글·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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