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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드 피트만 입은 게 아니다… "치마 입은 남자 배우들이 온다"

여장 남자 캐릭터 중심 뮤지컬 잇따라 개막

'마틸다' '미세스 다웃파이어' '킹키부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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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마틸다'에서 배우 최재림이 악명 높은 여교장 트런치불 역을 맡아 열연하고 있다. 신시컴퍼니 제공

최근 할리우드 배우 브래드 피트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뒤흔들었다.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신작 영화 행사 때 입은 '치마 패션' 때문이었다. 하지만 올해 하반기 한국 뮤지컬계 공연 라인업을 보면 치마 입은 남자의 모습이 그렇게 호들갑 떨 일은 아니다. 원작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 혹은 극적 재미를 위해 남자 배우가 여장을 하고 무대에 서는 라이선스 뮤지컬이 잇따라 무대에 오른다. 지난달 시작한 '킹키부츠'와 이달 말 개막하는 '미세스 다웃파이어', 10월 공연되는 '마틸다'는 여장한 남자 배우의 연기 변신이 극의 재미와 직결되는 뮤지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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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배우 브래드 피트가 19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불릿 트레인' 시사 행사에 치마를 입고 참석했다. 베를린=AP 연합뉴스

젠더 크로스 캐스팅으로 캐릭터 부각 '마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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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최재림은 뮤지컬 '마틸다'의 2018년 국내 초연에서 여교장 미스 트런치불 역할로 뮤지컬대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신시컴퍼니 제공

영국 아동문학 거장 로알드 달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뮤지컬 '마틸다'는 책 읽기를 좋아하는 소녀 마틸다가 부모와 학교 교장의 학대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마틸다 역을 비롯해 아역 배우의 활약이 돋보이는 공연이지만 마틸다를 괴롭히는 악덕 여교장 '미스 트런치불'의 존재감도 만만치 않다.


미스 트런치불은 배우가 자신의 성별과 다른 성별을 연기하는 '젠더 크로스 캐스팅'의 대표적 사례다. 한국에도 소개된 뮤지컬 '헤어스프레이'에서 주인공의 엄마인 에드가를 남자 배우가 연기한 것과 같다. 박병성 공연 칼럼니스트는 "젠더 크로스 캐스팅은 캐릭터 특징을 부각시키는 중요한 연출적 장치"라며 "에드가는 뚱뚱해진 이후로 제대로 집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는 엄마 캐릭터를, 미스 트런치불은 우락부락한 남성 같은 여성으로 설정된 캐릭터를 남자 배우가 연기함으로써 극적으로 그려낸다"고 설명했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는 "여성이 여성을 표현했을 때보다 남성이 여성을 표현했을 때 괴기스럽고 평범하지 않은 캐릭터의 모습이 더 효과적으로 구현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영국 로열셰익스피어컴퍼니(RSC)가 2010년 초연한 뮤지컬 '마틸다'는 한국에서는 2018년 첫선을 보였고 10월 10일부터 내년 2월 26일까지 대성 디큐브아트센터에서 4년 만의 재공연을 앞두고 있다.

"이번엔 할머니로" '미세스 다웃파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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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의 타이틀 롤을 맡은 정성화(왼쪽부터), 임창정, 양준모. 샘컴퍼니 제공

"윤여정·김수미 선생님을 합쳐 놓은 듯한 말투와 행동으로 저만의 캐릭터를 만들어 보고 있습니다."

배우 정성화가 지난달 19일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 제작 발표회에서 한 말이다. 1994년 개봉한 동명 영화가 원작인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이혼으로 양육권을 잃은 성우 다니엘이 다웃파이어라는 이름의 할머니로 변장하고 전처의 가사 도우미로 취업해 벌어지는 이야기다. 지난해 브로드웨이 초연 후 전 세계 첫 해외 라이선스 공연으로 30일부터 11월 6일까지 샤롯데씨어터 무대에 오른다. 대본과 음악에만 로열티를 지급하고 나머지 요소는 한국화한 '논레플리카' 버전이다.


'무대 위 여장 남자'가 퀴어·젠더 이슈를 화려한 의상과 도발적 음악으로 표현한 경우가 많다면 '미세스 다웃파이어'의 여장은 코믹한 설정에 방점이 찍혀 있다. 다니엘이 미세스 다웃파이어로 변장한 모습과 본래 모습을 오가며 분장이 뒤섞이는 게 웃음 포인트다.


영화 '기생충', '부산행' 등에서 특수 분장을 맡은 '테크니컬 아트 스튜디오 셀(Technical Art Studio Cell)'이 참여해 다웃파이어 특수 분장 보디슈트(얼굴 포함)를 제작했다. 극 중에서 다웃파이어는 아빠 다니엘로 8초 만에 변신하는 '퀵 체인지'를 무대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제작사 샘컴퍼니 관계자는 여장 연기에 대해 "TV, 영화 등 매체 연기와 달리 컴퓨터그래픽(CG) 작업이 없는 무대에서 아날로그적 메커니즘과 배우의 재능으로 극적 반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니엘과 미세스 다웃파이어를 오가는 주인공은 정성화와 9년 만에 뮤지컬 무대로 돌아온 가수 임창정, 생애 첫 여장 연기에 도전하는 뮤지컬 배우 양준모가 나눠 맡는다.

전형성 비트는 드래그퀸 '킹키부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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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킹키부츠'에서 배우 강홍석이 드래그퀸 롤라를 연기하고 있다. CJ ENM 제공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10월 23일까지 공연되는 '킹키부츠'를 이끄는 주인공은 드래그퀸(여장 남자 가수) 롤라다. 신디 로퍼가 음악을 맡아 2013년 브로드웨이 초연, 2014년 한국 초연된 '킹키부츠'는 폐업 위기의 구두 공장을 살리려 고군분투하는 찰리와 세상의 편견과 싸우는 롤라의 이야기다.


롤라는 찰리에게 영감을 주고 조력자가 되는 인물이다. 전형적 남성성을 보여주는 찰리나 공장 직원 돈 역할 등과 대조를 이루며 편견에 맞선다. 역시 드래그퀸인 앤젤들과 함께 대표 넘버 '랜드 오브 롤라' 등으로 뮤지컬의 화려한 쇼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있기도 하다. 최재림·강홍석·서경수가 롤라를 나눠 연기한다.

'여장 단골 배우는 따로 있다?'

공교롭게도 이들 작품의 여장 캐릭터는 몇몇 배우가 중복해 맡았다. 최재림은 '킹키부츠'의 롤라에 이어 '마틸다'의 미스 트런치불로 무대에 오른다. '미세스 다웃파이어'의 정성화는 2014년 '킹키부츠' 한국 초연에서 롤라를 맡았다. '라카지' '젠틀맨스 가이드' '거미여인의 키스' 등에서도 여장을 했다. 멋있는 남자 주인공이 아닌 데다 섬세한 연기력이 요구되는 역할이어서 맡을 수 있는 주연급 배우가 한정적이다. 최승희 신시컴퍼니 실장은 "캐릭터 확장에 두려움이 없는 배우들이 여장 역할에 도전하는 것 같다"며 "코미디 연기가 가장 어렵다고 하는데 이들 캐릭터가 주로 극 중 유머를 담당하는 경우가 많아 아직은 이런 역할을 소화할 연기자 풀(pool)이 부족한 게 현실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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