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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데 재밌다… 새집 변신한 노후주택이 품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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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양천구 목동의 주택가 막다른 골목에 위치한 원유민ㆍ유경현 부부의 집은 1970년대 지어진 주택을 고쳐 지었다. 1970년대 주택의 외관이지만 내부는 가족에 맞게 공간을 설계했다. JY아키텍츠 제공

1970년대 인구 증가로 서울에는 연와조(벽돌식구조)에 슬래브 지붕을 얹은 도시형 단독주택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30년이 지난 이들 노후주택은 2000년대 들어 매끈한 빌라들로 새롭게 태어났다. 하지만 대지의 형태나 건축 규제 등으로 선택되지 못한 일부 노후주택들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으며 방치됐다. 이 주택들이 최근 획일적인 아파트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이들의 새로운 주거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원유민(38)ㆍ유경현(38) 부부도 서울 양천구 목동에 70년대에 지어진 주택을 2년 전 고쳐 집(연면적 122.31㎡)을 마련했다. 건축주이자 건축가인 원(JY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소장)씨와 그의 부인, 두 딸(4세ㆍ6세), 장인까지 5명이 산다.

신축보다 비용은 적고, 더 넓게 쓰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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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원유민ㆍ유경현 부부가 매입할 당시의 집은 오래된 철제 난간과 외벽 등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JY아키텍츠 제공

아이들이 태어나고, 부모는 연로해지면서 맞벌이인 원 소장 부부는 장인의 집과 합치기로 했다. 이전에는 서울 내 빌라와 아파트에 각각 살고 있었다. 원 소장은 “아이들이 크면서 층간 소음 문제도 있었고, 홀로 있는 장인도 걱정돼 주거공간에 변화가 필요했다”라며 “건축가로서 가족들과 함께 살 집을 짓고 싶은 꿈은 늘 있었지만, 아무래도 비용 때문에 새로 짓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2년 전 서울 시내 30평대 아파트 전셋값으로 노후주택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는 “재산 증식이나 자녀 교육 목적의 집을 찾지는 않았다”라며 “빛이 잘 들면서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곳을 원했다”고 했다. 마침 목동에서 다세대 주택을 설계하던 때였다. 동네를 눈여겨봤던 부부는 막다른 골목 끝에 살짝 들어가 있는, 70년대에 지어진 집에 마음을 빼앗겼다. 법적 규제 탓에 빌라로 변신하지 못한 집이었다. 원 소장은 “정남향이라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고, 길이 막혀 있어 조용하면서도 안전해 보였다”고 말했다.


아늑한 위치는 마음에 들었지만 안팎으로 손댈 곳은 많았다. 원 소장은 “철제 난간이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었고, 내부도 여러 명의 주인들이 거쳐 가면서 구조가 낡고 어수선했다”고 첫 인상을 밝혔다. 사실상 뼈대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바꿔야 하는 상황. 그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허물고 새로 지었겠지만, 최대한 살릴 수 있는 것은 살려야 예산을 맞출 수 있었다”며 “증축이나 확장을 하면 주차공간 확보, 건폐율이나 용적률 등을 현행 건축법 기준에 맞춰야 하고, 그러면 공정과 비용이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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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이 잘 들고 크기가 가장 컸던 안방이 있던 자리에 가족들이 공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거실 겸 주방을 뒀다. JY아키텍츠 제공

실제 70년대 건축 규제가 느슨할 때 지어진 집의 건폐율은 현행 기준(건폐율 상한선 60%)보다 높다. 예전에는 대지에 꽉 맞춰서 집을 지은 덕분이다. 원 소장은 “집을 넓히려고 구조 변경 신청을 하면 현행 규정에 맞춰 건축면적을 줄여야 한다”며 “높게 올리려고 해도 일조권 사선제한 등으로 건축면적이 줄어들어 바꾸기가 녹록하지 않았다”고 했다. 외관에 붙어 있던 철제 난간을 떼 내고 창을 새로 달고, 벽면을 정리하고 페인트를 칠한 것 외에 집의 외관은 이전 집과 같은 모습이다.


반면 내부는 가족의 생활 패턴에 맞게 180도 달라졌다. 장인이 사용하는 1층은 원래 세 가구가 임대해 사용하던 공간이었다. 제각기 다른 방들이 중구난방으로 배치돼 있었다. 원 소장은 장인이 주로 사용하는 거실과 화장실을 입구 쪽에 두고, 안방과 게스트 룸 등은 사생활 보호를 위해 집의 뒤쪽으로 배치했다. 분리돼 있던 1, 2층의 출입구도 세대간 사생활 보호를 위해 그대로 뒀다.


2층과 다락은 부부와 아이들의 공간이다. 빌라에 살 때 북향이어서 해가 잘 들지 않아 불편했던 부부는 원래 있던 남향 베란다를 그대로 뒀다. 통창을 통해 사계절 내내 따스한 햇살이 집 안 깊숙이 들어온다. 베란다에 폴딩 도어(접이식 문)를 설치해 필요에 따라 주방과 연결하거나 분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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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겸 주방 옆은 가벽을 설치해 부부의 방과 드레스룸, 화장실 등을 모두 안쪽으로 숨겼다. JY아키텍츠 제공

공간 배치는 크게 달라졌다. 기존에 안방이 있던 자리에 거실 겸 주방을 확보했다. 부부의 방과 드레스룸, 화장실은 일렬로 북쪽으로 두었다. 하나의 미닫이 문을 설치해 입구를 막으면 감쪽같이 세 개의 공간이 벽 뒤로 숨는다. 어린 아이들과 함께 쓰는 공용공간을 확보하면서 방은 기능에만 충실하게 설계했다. 아이들은 각자의 방은 없지만 ‘ㅅ’자 형태의 박공 지붕 아래 3층 다락을 온전히 차지한다. 원 소장은 “과거에는 볕이 잘 들고 가장 큰 공간이 안방이었지만 요즘에는 가족들이 함께 밥 먹고, 대화하고, 공부하는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는 거실 겸 주방에 공간을 할애한다”라며 “저희 집도 방은 최소화하고 공용공간을 키웠다”고 설명했다. 그가 집을 고치는 데 든 비용은 1억원대. 같은 크기의 신축 비용의 4분의 1수준이다. 그는 “헌 집을 고치는 것은 예산에 따라 선택지가 다양하지만 기존의 것을 활용하면 비용을 아낄 수 있다”고 했다.

예기치 못한 불편과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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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축이나 확장을 할 수 없었던 집의 구조는 오히려 아이들이 순환할 수 있는 동선이 만들어져 재미를 더한다. JY아키텍츠 제공

헌 집을 고친 탓에 집이 가진 물리적 한계에서 100% 자유롭진 못하다. 경제적, 법적인 이유로 뼈대를 고치지 않아 생활에 불편한 점이 없지 않다. 원 소장은 “내부 벽을 허물지 못한다거나 천장을 지탱하기 위해 추가로 골조를 덧대야 하는 등 고칠 수 없는 부분이 많다”라며 “3층 다락도 높이나 크기가 어중간해서 효율적인 면에서 부족하다”고 털어놨다. 의외의 변수들도 여기저기서 발생했다. 3층 다락과 연결된 발코니에 방수 처리가 돼 있는 줄 알고 바닥재를 깔았지만 막상 입주 후에 물이 새서 바닥재를 떼어 내고 보수를 했다. 단열재가 마땅히 있어야 할 외벽에 단열재가 전혀 없거나, 바닥에 묻혀 있어야 할 정화조가 아예 등록이 안 돼 있는 황당한 경험도 했다.


원 소장은 “건축가에게도 리모델링은 엄청난 도전이다”라며 “신축은 도면대로만 시공하면 완성되지만 리모델링은 도면이 있어도 공사를 하면서 여러 변수가 생기고, 뜯어 보기 전에는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다”고 건축가로서의 고충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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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공 지붕 아래의 다락은 어른의 눈높이로 보면 사용하기 애매한 공간이지만, 아이들에게는 보물찾기하듯 즐거운 공간이다. JY아키텍츠 제공

예기치 못한 불편함이 있지만 예상하지 못한 흥미로움도 있다. 다락에서 직립 보행이 가능한 사람은 가족 중 네 살배기인 둘째이고, 나머지 가족들은 막상 허리도 못 피고 기어 다녀야 하고, 3층에 딸린 화장실의 천장이 너무 낮아 한평생 서서 소변을 본 할아버지가 크게 당황하기도 했다. 2층 벽을 철거하지 못해 생긴 순환형 동선은 아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이다. 원 소장은 “어른의 눈높이로 바라보면 부정적이고 애매한 공간투성이지만, 아이들의 눈으로 보면 재미있고 흥미로운 놀이터 같았다”라며 “한계를 지닌 집이 오히려 집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고, 스토리를 만들어 줬다”고 말했다.


가족의 삶도 한결 편안해졌다. 원 소장은 “신도시의 매끈한 거리보다 유럽의 골목길에서 사람들이 더 편안함을 느낀다”라며 “오래된 것은 우리의 삶에 자연스럽고 편안한 스케일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빌라와 아파트에서 숨죽여 있던 아이들은 이곳에서 마음껏 1층과 3층 다락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집 앞 골목길에서 이웃 친구들과 뛰어논다. 비와 눈, 바람과 햇빛 등 외부 환경과의 밀접성도 높아졌다. 원 소장은 “주택에 사는 게 마냥 낭만적인 일은 아니지만 단점보다 장점을 더 크게 보면 살 만하다”고 했다. 집을 짓는 이들은 보통 평생 살 집을 생각한다. 원 소장은 “아마 아이들이 크면 각자의 방이 필요해질 거고 공간의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라며 “그런 점에서 신축보다 고친 집이 훨씬 더 유연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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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 한 켠에는 햇빛을 쬐면서 책을 읽기 좋아하는 부부를 위한 작은 공간을 마련했다. JY아키텍츠 제공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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