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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 누운 아버지에 매일 책 읽은 딸...기적 같은 변화가 생겼다

[김지은의 ‘삶도’ 시즌2 : 실패연대기] <11>전 허스트중앙 대표 김소영

정점에 아이 돌보려 퇴사 ‘여기서 끝인가’

억울함에 ‘나는 누구’ 답 찾으려 책 속으로

몸 마비 부친에게 낭독...“신의 힘내라는 목소리”

한국일보

‘엘르’ ‘코스모폴리탄’ 등을 내는 허스트중앙 CEO 출신 작가 김소영씨를 26일 서울 중구 정동길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가 아버지 김용찬옹에게 책을 읽어 드리고 있다. 딸의 낭독을 듣는 나이 여든넷 부친의 입가에 미소가 가득하다. 김소영 제공

딸은 아버지와 대화다운 대화를 해본 적이 없었다. “사랑해”란 말을 들어봤을 리도 만무하다. 심지어 아버지를 닮은 면을 떠올리면 자신의 한쪽이 쭈그러드는 기분이었다. 딸의 마음속에 “흰 피부와 추진력은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나의 자랑, 조심스럽고 고지식한 성격은 아버지에게서 온 나의 콤플렉스”였다.


아버지에게 목 아래 사지가 마비되는 불운의 사고가 닥친 뒤로는 어머니의 고통까지 목도해야 했다. 요양원에서도 손사래 치는 중환자를 돌보는 건 오롯이 어머니의 몫. 13년 세월이다. “저렇게 살아서 뭐 하나? 괜스레 오래 살아 자식 고생시키지 말고 빨리 데려가라고 그래라!” 가시 돋친 엄마의 말은, 신을 향한 대거리라는 걸 딸은 안다. 고통스러워하는 부모에게 딸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무력한 자신을 더욱 여실히 자각하는 것밖에는.


모든 게 신의 계획이었던 걸까. 2년 전부터 시나브로 변화가 일어났다. 상황은 같았지만, 받아들이는 마음이 바뀌었다고 해야 맞을 테다. 책에서 시작됐다. 딸이 병상의 아버지에게 책을 읽어 드리면서다. 소설부터 에세이, 고전문학, 우화집까지 그 양이 30여 권에 이른다.


처음엔 “네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참 좋다”던 아버지는 점점 자신의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죽음학 연구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사후생’을 읽어 드렸을 때다.


“아버지, (책 내용처럼) 눈을 감았을 때 누가 마중 나올 것 같으세요?”


“누구긴 누구겠어. (45년 전) 돌아가신 네 할머니지. 근데 내가 이렇게 돼서 알아보실 수나 있을지 몰라.”


“아버지, 책에서 그랬잖아요. 돌아가실 땐 장애가 다 없어진 건강하고 젊은 몸이 된다고. 배구선수 하던 중학교 때 몸으로 하늘나라에 가실 거예요.”


“그럼 좋지. 어머니가 알아보시겠네.”


딸은 몰랐던 아버지를 그렇게 알아갔다. 그간 인지했던 아버지는 다른 통로를 통해 본 아버지였지, 아버지가 말하는 아버지가 아니었던 거다. 아버지에게 묻고 나서야 비로소 ‘진짜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 사랑한다고 해주세요”라고 말할 용기도 생겼다. 아버지는 할 수 있는 만큼 팔을 뻗으려 안간힘을 쓰면서 말한다. “사랑해.”


콤플렉스라고까지 느꼈던 몸의 한쪽이 펴지는 느낌, 그것은 온전한 나를 찾은 기분이었다. 평생의 화두로 삼았던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은 그렇게 쓰였다.


와튼스쿨 MBA 출신도,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속 글로벌 미디어 기업 콘데 나스트(Condé Nast)의 마케팅 컨설턴트도, 국내 미디어 그룹의 역대 두 번째 여성 임원도 아닌, ‘근원의 김소영’(52)에게서 찾은 의미다.

[실패①] 나를 장식했던 타이틀을 버리다

한국일보

김소영 작가는 병상의 아버지에게 3년째 책을 낭독하고 있다. 그러면서 생긴 변화를 에세이집 ‘요즘 저는 아버지께 책을 읽어 드립니다’(두란노)에 담아 출간했다. 사진 속 표지가 보이는 책이다. 최주연 기자 juicy@hankookilbo.com

콘데 나스트 중국 지사의 마케팅 컨설턴트, ‘엘르’ ‘코스모폴리탄’ ‘하퍼스 바자’의 허스트중앙 CEO. 6년 전까지 그를 설명했던 경력이다. 어릴 때 꿈이 ‘세계를 무대로 일하는 미디어 회사의 CEO’였다는데 그걸 이룬 선망의 여성. 그런데 그 정점에서 그는 돌연 회사를 그만뒀다. 6년 전 중앙그룹 재직 때다.


-커리어의 정점이었는데, 왜 사직한 건가요.


“2016년까지 허스트중앙 CEO를 했고, 이듬해 JTBC에서 글로벌 비즈니스 업무를 맡던 때예요. 중앙그룹에서 아들 둘 키우는 ‘워킹맘’을 배려한 덕분이었죠. 그런데 그해 5월 어느 날 저녁에 초등학교 5학년이던 첫째 아이가 돌연 연락이 안 되는 거예요. 경찰에 신고를 했는데 휴대폰 신호가 마지막으로 잡힌 곳이 한강 둔치라고 하니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저녁 내내 애타게 부르면서 찾다 집에 왔는데 눈물이 터져 버렸어요. 저도 모르게 ‘이 아이만 돌려주시면 제 모든 걸 내려놓을게요’란 기도가 나왔어요. 30분쯤 뒤 아이가 돌아왔는데 덜덜 떨면서 현관 앞 계단에 앉아 있더라고요. 과외 수업을 받기 싫어서 떠돌다 왔대요. 그러면서 저한테 그러는 거예요. ‘엄마 없이는 안 될 것 같아. 엄마 회사 그만두면 안 돼?’라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겠네요.


“그때 해외 출장이 잦았거든요. 그러니 아이가 힘들었던 거예요. 하지만 여기서 링에다 수건을 던지면, 여성 후배들에게 나쁜 선례를 주는 것 아닌가 고민이 됐죠. 제가 그룹 내 두 번째 여성 임원이었거든요. 저를 바라보는 눈이 많았어요. 그때만 해도 남성이 많은 조직이었고요. 부모님께도 죄송했죠. 아버지가 사고로 누워 계신 지 7년쯤 됐을 때인데 부모님의 제일 큰 자랑이 저였거든요.”


결단하지 못하던 그는 우연히 묵상집에서 에세이를 보고 마음을 먹었다. 한 목사가 여자 아이에게 방안을 가득 채운 인형 중 어느 걸 가장 좋아하느냐고 물었더니, 그 아이는 가장 낡은 인형을 집으며 이렇게 답했다는 이야기다. “예쁜 새 인형들은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지만, 이 인형은 나 아니면 사랑받을 수 없으니까요.” ‘내 아이에게 지금 나 아니면 안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든 거다.


-아이 생각이 났군요.


“첫째 아이가 굉장히 개성이 강하거든요. 그 아이의 생각을 해석하고 이해해주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엄마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 사건은 정말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어요. 아이도 정말 잘 자라주었고요. 오히려 나를 쉬게 하려고 생긴 일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실제 회사 다닐 때 위경련으로 한 달에 한 번꼴로 응급실에 실려가곤 했거든요. 진짜 휴식이 필요한 상황이었던 거죠.”


-다른 한편으론 ‘내 경력은 여기서 실패’라는 생각도 했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2년만 아이들을 돌보다 복귀하려고 했어요. 아이들이 달라지는 게 느껴지니 (조만간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고요. 그런데 시간이 더 지나니 2년 가지고는 안 될 것 같더라고요. 이 상태로 회사 생활을 다시 하면 도돌이표 같은 상황이 될 게 뻔하더라고요. 장기 휴식이 되겠다 싶었어요. 그러니 ‘미디어 기업 CEO’로서의 나는 끝날 수 있겠다 생각했죠.”


-그 역시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었을 텐데요.


“괴로웠죠. 동료들은 더 올라가고 있는데, 나는 아이들 때문에 여기서 끝인 것만 같았어요. 특히 남편이나 아이들에게 섭섭한 일이 생기면 설거지하다가도 고무장갑을 벗어던지고 싱크대 밑에 앉아서 울었죠. (신을 향해서) ‘이렇게 끝날 거면 왜 미국으로, 중국으로 나를 데리고 다니면서 그렇게 고생을 시키셨어요?’라고 소리도 치고요. 그런 억울함이 쌓이니까 남편도, 아이들도 미워지기 시작하더라고요. 괴물이 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공부를 해야겠다 싶었어요. 제게 제일 중요한 질문은 ‘나는 누구지?’였거든요. 그걸 제대로 찾는 공부를 해보자 했죠.”


-까다로운 공부네요.


“나라는 과목을 가르치는 학교도, 학위 과정도 없잖아요. 책을 많이 봤어요. 아이들 학교나 학원 끝나기 기다리면서 그 근처 도서관들을 죄다 다닌 거죠. 길, 나를 찾는 법, 고난 이런 주제의 책들을 읽었죠. 심지어 ‘나를 찾는 아로마테라피’, ‘나를 찾는 컬러테라피’도 배우고 ‘나만을 위한 원앤온리 맞춤옷’도 입어 보고요.(웃음) 그런데 나를 찾는 방법은 다른 데 있었어요.”


공교롭게도 그는 아버지에게 책을 읽어 드리면서 답으로 가는 길에 접어들었다.

[실패②] 아버지의 사고, 내 무능을 절감했다

한국일보

미디어 기업의 CEO까지 했으니 경력의 정점에 다다랐을 때, 그는 사직하고 아이들을 돌보기로 결정했다. 최주연 기자

키 178㎝에 몸무게 80㎏. 중·고교 때 배구선수로 활약한 아버지는 체격도 건장했다. 사고를 당하기 전까지는. 2010년 2월 산책을 나갔다가 집 앞에서 미끄러진 것이다. 뇌진탕을 피하려 넘어지면서 고개를 들었는데, 그 바람에 뇌와 몸을 연결하는 경추 3, 4번이 골절됐고 목 아래의 신경이 마비됐다. 가족은 재활과 치료에 매달렸다. 줄기세포 치료, 경락마사지, 중국 침, 벌침 치료… 좋다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지만 큰 차도는 없었다.


집에서 아버지를 돌보는 어머니의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자식들을 고생시킬 수 없다며 그 모든 수발을 자신이 도맡았다. 새벽 6시에 일어나 하루 네 번 소변을 빼고, 기저귀를 갈고 일주일에 한 번 관장을 한다. 세수와 양치질, 밥과 약을 먹이는 일은 기본. 가렵다는 곳을 긁어주거나, TV 채널을 돌리는 일상의 모든 움직임을 대신하는 게 어머니의 일과였다. 아버지의 불만, 어머니의 맞불이 전쟁으로 발화하는 일은 또 얼마나 많았겠나.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생채기가 반복되면서 마음이 굳은살로 덮였을 것이다.


-아버지 사고로 너무 절망스러웠을 것 같아요.


“병원에서도 ‘집에 이런 중환자가 한 명 있으면 얼마 안 가 가족이 원수처럼 된다’고 할 정도였죠. 목 위의 얼굴 근육이나 뇌기능은 온전하시니까 더 힘든 면이 있었죠. 사고 3년 안에 장 폐색이나 방광 염증으로 사망하는 경우도 많다고 해요. 그런데 벌써 13년이잖아요. 지나고 보니 엄마가 아버지 몸 관리를 엄청나게 잘 한 거죠. 엄마가 얼마나 힘드셨겠어요. 그간 치아 15개가 빠지고, 입마름병도 생겼죠. 그나마 엄마가 긍정적이고 책임감 강한 덕분에 그 시간을 버텨온 거죠.”


-동원한 모든 치료가 그다지 효과가 없었을 때 심정도 말로 다 못할 것 같아요.


“아버지는 ‘입는 로봇’ 같은 과학 기술에도 기대를 하셨어요. 제가 그래서 로봇공학자 데니스 홍 교수가 강연할 때 찾아가서 선생님을 붙잡고 물어보기도 했어요. 딸로서 할 수 있는 노력은 다해보고 싶었죠. 그런데 인간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해결이 안 될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무능함을 처절하게 느꼈죠. 그렇다면 마음이라도 바꾸고 싶어서 책을 찾아보게 된 거예요.”


-책을 읽다가, 책을 읽어 드릴 생각을 하게 된 건가요.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비블리오테라피’라는 걸 알게 됐어요. 책에 치유 효과가 있다는 거죠. ‘이거다’ 싶더라고요. 아버지는 거의 하루 종일 혼자 TV를 보시거나 신문을 보며 시간을 보내셨거든요. 어머니에게 대화까지 요구할 수는 없었고요. 그러던 차 아버지 상태가 갑자기 안 좋아지셔서 덜컥 겁이 났어요. 이 상태로 혹시라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안 될 것 같았어요. 두 분 모두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이 벌을 받나’ 생각하셨거든요. 성경에 고난으로 순금이 된다는 하나님의 연금술이 나오거든요. 실제 그 고난을 겪는 부모님한테 얘기를 해봐야 화만 나시는 거죠. ‘어떻게 고난이 축복이야. 하나님이 어디 있니. 그럼 우리를 왜 이 고생을 시키니.’ 엄마가 그러셨으니까요. 엄마, 아버지가 고지식하게 잘 사셨으니까 그런 마음이 드시는 거죠. 그랬으니 무엇보다 엄마와 아버지를 위로하고 싶었어요.”


그는 어느 날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제가 책을 읽고 나서 행복해졌거든요. 그래서 아버지한테도 책을 읽어 드리고 싶어요.” 딸의 말에 아버지는 “그래라, 뭐” 했다. 좋다는 얘기였다.


읽기 쉽고 재미도, 의미도 있는 우화집으로 시작했다. 때론 아버지에게 어떤 책이 좋은지도 물었다. 세 권쯤 갖고 가 골라 달라고도 했다. 그러다 코로나19 국면이 시작됐다. 휴대폰의 녹음 기능을 활용해 낭독 파일을 전송하는 방식으로 바꾸게 된 계기다. 외려 장점이 많았다. 그는 서울에 살고, 부모는 경기 용인시 수지구에 거주했으니 곁에서 낭독하려면 자주 가 봐야 일주일에 두세 번이었다. 녹음 방식으로 바꾸니 주 5일간 녹음해 파일을 전송할 수 있었다. 매일 아침 세탁기를 돌려놓은 뒤 골방에 앉아 휴대폰을 앞에 두고 20~30분씩 낭독했다.


-진짜 변화가 있던가요.


“처음에는 부모님 모두 ‘네 목소리 들으니 좋다’ 정도였어요. 그다음엔 굉장히 재미있어 하시더라고요. 그러더니 언젠가부터 엄마의 언어가 바뀌는 걸 느꼈어요. ‘하나님이 어디 있니’에서 ‘너네 하나님한테 부탁 좀 해라. 나는 자는 듯이 죽게 해달라고’로. 나중에는 감사하다는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무슨 변곤지 몰라. 멀쩡하던 사람을 저렇게 눕혀 놓고. 그래도 뭐 뜻이 있으시겠지’ ‘무슨 변곤지 몰라. 그래도 전엔 우리가 하나님을 몰랐지. 그래서 우리가 교만하게 살았지’ 같은.”


종교로 따지면 딸은 개신교, 부모는 가톨릭이었다. 종교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 어머니의 입에서 전에 않던 말들이 나오기 시작한 거다.


-책 목록을 보니 손흥민 선수 아버지의 에세이나 ‘로빈슨 크루소’, ‘거상 김만덕, 꽃으로 피기보다 새가 되어 날아가리’처럼 분야가 다양하던데요. 종교 관련 서적만 읽어 드린 것도 아닌데 왜 그런 변화가 일어났을까요.


“여러 가지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누구나 자기 문제가 절대적이고 커 보이지만, 책을 읽다 보면 나보다 더 어려운 환경의 인물도 만나게 되잖아요. 그러면서 그래도 내 삶에 좋았고 감사한 순간을 떠올리게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고난 안에 갇힌 사람의 마음을 밖으로 걸어나올 수 있게 하는 시각의 변화에 도움을 준 것 같아요. 또 하나는 그래도 딸이 낭독을 해주니 자식들에게 사랑받는다는 걸 느끼시지 않았을까요. 그게 위안이 됐을 것 같아요.”


-어머니의 마음이 좋아지니 아버지에게도 영향이 있었겠죠.


“맞아요. 엄마의 마음이 너무나 힘들었으니까. 그런데 엄마의 언어가 바뀌어 가면서 아버지도 덩달아 긍정적인 영향을 받으셨죠. 그전에는 엄마 안에서 화가 올라오면 아버지한테 가서 소리도 지르시고 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감정을 폭발시키지는 않게 됐어요. 또 제가 책 한 권 낭독이 끝날 때마다 ‘브런치’(온라인 글쓰기 플랫폼)에 글을 올렸는데, 아버지는 그걸 보시고도 그렇게 좋아하시더라고요. ‘네가 왜 이렇게 글을 잘 쓰니’라면서요.”


-아버지와 대화의 물꼬도 터졌다고요.


“그간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아버지는 엄마의 시각에서 본 아버지였더라고요. 학창 시절이나 사업할 때 아버지 얘기를 들어보니 우리 아버지가 꽤 괜찮은 사람인 거예요. 사업을 하실 때도 신중하고 꼼꼼한 성격 덕분에 과욕 부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경영하셨고요. 사고로 누워 계시면서도 ‘빨리 죽어야지’ 같은 말씀도 안 하셨죠. 비관적인 성격이 아닌 거예요. 아버지를 마음의 눈으로 보게 됐죠.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결합체잖아요. 그런데 그간엔 엄마를 닮은 부분만 장점이라고 여겼거든요. 아버지의 긍정적인 면을 알게 되면서 아버지를 닮은 부분이 펴지는 게 느껴졌고, 내 자존감도 올라갔죠.”

‘고난의 현실’ 아닌 ‘웃음의 다른 세계’로

한국일보

싱크대가 마치 실패의 공간처럼 느껴졌던 휴직의 기간, 그는 나를 찾는 공부를 시작했다. 최주연 기자

-낭독하는 자신에게도 장점이 있던가요.


“유익이 많아요! 눈으로만 책을 읽으면 씨를 흩뿌리는 느낌인데, 낭독은 모를 심는 느낌이죠. 제 안에 더 깊이 들어오는 거예요. 게다가 재미있어요. 소설을 읽을 땐 등장인물들을 다 제가 연기해야 하잖아요. 악인도 했다가, 선인도 했다가, 노인도 했다가 하는 거죠. 나도 몰랐던 내 안의 나를 만나면서 카타르시스도 느끼고요.”


-원래 낭독을 했다거나 배운 적은 없나요.


“처음이에요. 그런데 매일 하다 보니 늘더라고요. 벌써 2년이 됐잖아요. 처음 읽은 파일을 들어보면 못 들을 정도예요. 처음에는 글자를 그대로 읽는 데 급급했다면, 나중에는 인물을 어떻게 하면 잘 담을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낭독했죠. (종결 어미) ‘~다’만 해도 책의 내용이나 문장의 의미에 따라 다르게 낭독했으니까요. 그렇게 발전시켜 나가는 재미가 있어요. 지나고 보니 꽤 괜찮은 낭독자로 훈련됐겠다 싶어요. 책을 진짜 사랑하는 데다 무엇보다 이걸 들을 부모님을 위로해 드리려 간절하게 낭독해온 여정이니까.”


그의 낭독이 궁금해져 링크를 부탁했다. 그가 읽은 책 중 저작권 사용 허락을 받은 두란노 출판사 것만 업로드한 것이다. 전 축구 국가대표 이영표가 2018년 출간한 ‘생각이 내가 된다’의 일부다.


( ※포털에서 영상이 보이지 않으면, 다음 주소를 주소창에 복사하시면 됩니다 : https://youtu.be/JIREYMCt44s )



-긍정적으로 바뀌는 부모님을 보는 것도 기뻤을 테고요.


“무엇보다 부모님이 힘든 순간을 잊을 수 있다는 게 좋았죠. 엄마가 불면증이 있으신데 낭독 파일을 들으면 잠이 온다는 거예요. ‘니 목소리를 들으면 잠이 좀 와’ 하시면서요. 그러니 힘이 되죠. 아버지가 손흥민 선수 아버지 손웅정 선생의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를 특히 좋아하시거든요. 아버지가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그 책을 읽고 나니까 손흥민이가 잘하는 게 더 대견하더라’라고 하시는 말을 들을 때 참 좋죠.”


-기억에 남는 책이 있나요.


“시인 정호승 작가의 우화소설 ‘산산조각’ 중에 ‘선암사 해우소’라는 글이 있어요. 차밭에서 안락하게 지내던 잘생긴 바윗돌이 어느 날 해우소의 받침돌이 된 거예요. 풍경 좋은 데서 있다가 화장실의 똥오줌을 받는 처지가 된 거죠. 그 대목을 읽는데 눈물이 터지는 거예요. 엄마 생각이 나서요. 똥오줌을 치우고 사는 엄마의 삶이 연상돼서… 겨우 감정을 추스르고 읽어서 보내드렸더니 엄마가 아니나 다를까 ‘오늘의 이야기는 나의 삶 같다’고 하시는 거예요. ‘내 고생으로 자식들에게 도움이 되면 내겐 큰 의미다’라고 하시면서. 만약 제가 그냥 말로 했다면 ‘부모를 가르치니’라고 하실 수도 있는데, 책으로 그 메시지가 그대로 부모님에게 갈 수 있는 거죠.”


-특히 재미있어 하신 책은 뭔가요.


“소설 ‘불편한 편의점’은 두 분 모두 진짜 재미있어 하셨어요. 아버지가 매일 엄마한테 ‘편의점 아직 안 왔어’라고 물으실 정도였대요. 엄마도 파일이 오면 늘 아버지 먼저 틀어 드렸는데 이 책은 엄마가 먼저 듣고 드렸다고 해요. (웃음) 저한테도 ‘그래서 그다음에 어떻게 되는 거야’라고도 물으시고요. 그 소설에 편의점 음식들이 나오거든요. 그중에 ‘참참참’이 있어요. 참치 삼각김밥, 참깨라면, 참이슬. 부모님 세대는 편의점을 잘 모르시잖아요. 참이슬 빼고 두 가지를 사서 아버지한테 갖다 드렸더니 ‘아, 이게 그거야? 맛있네. 한 끼 식사가 될 만하다’ 하시면서 좋아하셨죠. 소설에 나오는 옥수수수염차도 사서 엄마와 건배도 하고요. 그 순간에 우리는 아버지의 사고가 없는 다른 세계에 들어가 있는 거예요. 그런 순간을 누릴 수 있고, 또 허락된 것이 감사하죠.”

[실패란] 실패 속에 숨겨진 열쇠

한국일보

책 낭독은 부모에게 위로와 웃음을 선사했다. 책을 매개로 그는 잘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진면목도 알게 됐다. 때로 억울함이 분노로 폭발했던 어머니의 입에선 ‘감사’라는 단어가 나왔다. 2년 동안의 변화다. 최주연 기자

-인생의 여러 실패들이 있었을 텐데 그 경험들로 ‘실패’라는 단어를 김소영만의 언어로 정의해본다면 뭘까요.


“실패는 ‘내 안의 나도 모르던 좋은 것을 발현시키기 위한 신의 장치’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야말로 신의 연금술인 거죠.”


-그 실패들이 준 삶의 도가 있나요.


“회사를 그만둔 뒤에 싱크대 밑에 앉아 많이 울었다고 했잖아요. 그때 싱크대는 ‘실패의 공간’이라고 여겼죠. 회사 다니느라 살림을 많이 안 해봤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성경 말씀(로마서 8장 28절)처럼 이 싱크대의 순간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생활 속 수련인 거죠. 고무장갑을 끼고 청소하다 보면 영감도 떠오르고요. 제겐 그래서 고무장갑이 현실에 두 발을 디딜 수 있도록 하는 도구예요.”


그는 6년 전 품었던 인생의 질문 ‘나는 누구인가’의 답도 부모에게 책을 읽어 드린 2년 동안 깨쳤다. “나를 찾으려고 정말 열심히 공부했는데 그 답은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인 가족에게 있었어요.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을 위하는 마음속에 열쇠가 숨겨져 있더라고요.”


그리고 또 하나. 어머니가 울부짖듯 내뱉었던 질문의 답은 찾았을까. “신이 있기는 하니. 왜 내게 이 고생을 하게 하니?” 그의 어머니 모연금씨가 이런 글을 썼다. 전문이다.


‘매일 아침 엄마, 아버지 힘내시라고 책을 읽어 보내는 딸의 녹음 파일을 틀어 놓고 남편 아침밥을 챙깁니다. 오랜 세월 병석에 누운 남편도 딸의 목소리를 들으면 얼굴에 미소가 걸리면서 생기가 돌지요. 고난 속에서도 버티는 힘은 삼 남매의 지극한 효심과 맏딸의 사랑의 목소리 덕분입니다. 딸의 책 읽어주는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하나님의 ‘힘내거라’ 하시는 목소리를 듣는 것 같았습니다. 처음에는 우리 가족에게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하는 생각에 화가 나기도 했지만, 지금은 이 어려움조차 감당하고 살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서로 힘을 합쳐 고난도 이겨낼 수 있는 사랑의 가족이 되었으니까요.’


2년간 부모에게 책을 낭독하며 일어난 변화를 그는 에세이집 ‘요즘 저는 아버지께 책을 읽어 드립니다’(두란노)에 담아 출간했다. 이 글은 그의 어머니가 쓴 추천사다. 부탁을 받고 어머니는 20분 만에 글을 써 내려갔다고 했다. 아마도 어머니의 지금 마음 그 자체, 그리고 과거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내뱉었던 자문의 답일 것이다.


김지은 선임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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