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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by 한국일보

멋스러움에 푸짐한 인심까지… 수십 년 묵은 전주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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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카페 '행원'에서 대금과 가야금 합주가 열리고 있다. 1928년 조선요리전문점으로 시작해 지역 문화예술의 산실 역할을 해오고 있는 카페다. 국악 공연은 소규모 예약제로 운영된다.

한때 전주한옥마을에 ‘꼬치구이’ 논쟁이 있었다. 전통 한옥마을과 어울리지 않는 음식이다, 조리과정에서 발생하는 연기와 냄새가 분위기를 망친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젊은 여행객이 많은 한옥마을에는 꼬치구이가 아니라도 이들의 입맛을 겨냥한 ‘퓨전 먹거리’가 넘친다.


진짜 전주 맛집은 한옥마을 인근 원도심 골목에 숨어 있다. 전라북도 문화관광재단이 미식 여행지로 추천하는 지역 식당과 카페를 소개한다. 수십 년간 주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식당이거나 오래된 주택을 개조한 카페들이다.


풍남문 인근 남부시장에는 소박하면서도 정성이 듬뿍 담긴 음식이 많다. 전주콩나물국밥이 대표적이다. 식은 밥과 삶은 콩나물에 뜨거운 육수를 부어서 말아 내고, 계란을 수란 형태로 제공하는 ‘남부시장식 콩나물국밥’은 오늘날 전주콩나물국밥의 대표 조리법이 됐다.


‘현대옥’은 30년 넘게 장사하며 전주콩나물국밥의 명성을 일군 식당으로 꼽힌다. 뜨끈한 국밥에 쫑쫑 썬 오징어를 올려 낸다. 스테인리스 그릇에 찐 계란 두 알과 김이 함께 나온다. 손으로 대충 자른 김을 수란 위에 뿌리고, 뜨끈한 국물 두세 숟가락을 얹어 속을 달랜 후 국밥을 먹는 게 정석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해진 규칙은 없다. 식성에 따라 계란을 국물에 터트려도 되고, 국밥에 김을 올려 먹어도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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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란과 김이 함께 나오는 전주 남부시장 현대옥의 콩나물국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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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대접에 한 가득, 한 끼 식사로 든든한 전주 남부시장 동래분식 팥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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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시장 은혜쌍화탕에서 가장 비싼 한방쌍화차, 무려 2,000원이다.

바로 옆 ‘동래분식’ 역시 30년 넘게 팥죽과 수제비를 팔고 있는 식당이다. 넓은 대접에 새알심이 듬뿍 들어간 팥죽 한 그릇이 7,000원, 팥칼국수는 6,000원이다. 죽에는 소금 간을 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전라도에서는 설탕으로 간을 하기도 한다. 식탁에 두 재료가 함께 놓여 있다.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고 팥의 은근한 단맛을 즐기는 이들도 많다.


시장의 찻집 인심도 후하다. 국밥집 손님을 상대로 20년 가까이 영업하고 있는 ‘은혜쌍화탕’은 이름처럼 가격이 은혜롭다. 커피와 식혜, 매실차는 1잔에 1,000원, 가장 비싼 한방쌍화차는 2,000원이다. 20가지 약재를 우려낸 한방차에 예닐곱 가지 견과류를 고명으로 얹으니 품질은 결코 저렴하지 않다.


남부시장 뒷골목의 ‘세은이네’는 맞춤형 메뉴로 승부를 보는 특이한 식당이다. 메뉴판의 물국수(6,000원), 닭곰탕(9,000원)은 점심에만 판매하고 저녁에는 예약 손님만 받는다. 메뉴도 모임 성격에 맞게 맞춤으로 내는데, 주꾸미샤브샤브가 일품이다. 주꾸미와 함께 배추, 청경채, 냉이, 숙주나물이 푸짐하게 제공된다. 데치고 끓이다 보면 채소 육수의 깊은 맛이 우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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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시장 인근 세은이네 식당의 맞춤식 메뉴, 쭈꾸미샤브샤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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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사길 부근 효자문 식당의 불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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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사길 부근 태봉집 식당의 복어탕.

전주객사 ‘풍패지관’으로 이어지는 객사길 주변에도 오래된 음식점이 많다. ‘효자문’은 1978년 문을 연 갈비탕 전문 식당이다. 구이용처럼 칼집을 낸 고기가 들어간 맑은 국물의 갈비탕과 함께 진한 불고기 양념에 바싹 구워내는 '불갈비'가 주 메뉴다. 불갈비를 주문하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반갈비탕’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인근 ‘태봉집’도 1976년 개업한 복어 전문식당이다. 주 메뉴인 복탕에 미나리와 콩나물이 한 바가지 제공된다. 펄펄 끓는 맑은 탕에 살짝 데쳐 먹은 후 진하게 우러난 육수와 함께 복어를 건져 먹는다. 자작하게 남은 국물을 이용해 볶음밥으로 마무리한다. 이 식당의 제일 큰 자랑은 직접 제조한 초장이다. 다진 마늘과 함께 버무리면 알싸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입안에 번진다.


두 식당 옆에는 각각 가정집을 개조한 분위기 좋은 카페가 자리 잡고 있다. 효자문 옆 ‘경우’ 카페는 오래된 한옥 기와집을, 태봉집 옆 ‘한채’ 카페는 1980년대 유행하던 개량 양옥을 개조했다. 좁은 골목 안에 마당을 품은 아늑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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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사길 부근 골목 안에 있는 오래된 한옥을 개조한 '경우' 카페.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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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 카페의 대표 메뉴는 얼그레이사과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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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80년대 유행한 개량 주택을 통째로 쓰는 '한채'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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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한채' 창밖으로 보는 풍경.

풍남문 부근 한옥카페 ‘행원’은 전주다운 멋스러움이 묻어나는 집이다. 1928년 조선요리전문점 '식도원’으로 시작해, 해방 후에는 남원 권번 출신 화가인 허산옥이 인수해 '행원’이라는 이름으로 운영(1961~1978년)했다. 자연스럽게 당대의 국악인과 예술인에게 춤과 노래를 전수하며 지역 문화예술의 산실로 자리매김했고, 지금도 ‘소리가 있는’ 한옥카페로 맥을 잇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엔 매주 토요일 차를 마시며 국악공연을 즐길 수 있었는데, 현재는 소규모 예약제로 운영한다. 공연이 열리는 날이면 대금과 가야금 소리가 작은 방과 소담스러운 정원까지 가득 채운다. 대추차나 쌍화차보다 깊고 그윽한 국악의 향기가 울려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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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카페 '행원'의 내부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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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남문 인근 가맥집 '초원편의점'. 황태포와 명태, 갑오징어, 계란말이 등의 안주가 있다.

전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문화가 ‘가맥’이다. ‘가게 맥주’의 줄임말로, 직장인들이 퇴근길에 슈퍼 앞에서 맥주 한 잔으로 피로를 풀던 것이 전주 특유의 술 문화로 발전했다. 병맥주에 오징어나 땅콩으로 시작된 안주가 조금씩 호사스럽게(?) 발전해 지금은 황태포와 계란말이가 기본으로 자리 잡았다. 가맥집이라고 다 같지는 않다. 소스를 비롯해 그 가게만의 독특한 안주, 소위 ‘시그니처’ 메뉴가 있어야 대접받는다. 원도심 안에 이런 가맥집이 대략 10곳이다.



전주=글·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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