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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가짓수 적은 잼이 가장 맛있어요

이용재의 세심한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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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아닌 과일을 먹을 수 있는 게 잼이다. 질감과 농도를 잘 맞춰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부엌에 연탄 아궁이가 딸린 집에 살았다. 밥은 석유 풍로로 지어 먹었고 난방 시스템이 없어서 마루에는 난로를 놓았다. 겨울이면 난로 위에서 끓는 생강차의 알싸한 향이 집을 가득 메웠고, 계절이 본격적인 여름으로 접어들면 오디(뽕나무 열매)의 향이 바통을 이어 받았다. 처음으로 들여 놓은 가스레인지 위 들통에서 주말이면 잼을 끓여 나는 향이었다. 종종 주스, 아니면 안 먹고 둔 게 저절로 발효돼 술로 탈바꿈도 했지만 하루 세 끼 먹고도 남을 만큼 많은 오디는 주로 잼이 되었다. 공을 들였지만 결과물은 썩 좋지 않았다. 잼이라고 부르기는 했지만 바르다가 빵이 찢어질 만큼 뻑뻑하고 껄끄러운 가운데 씨가 너무 많이 씹히는 페이스트에 가까웠다. 가을께면 오디의 자리를 사과가 대신해 역시 주말 내내 들통에 담겨 하루 종일 보글보글 끓었는데, 그건 숟가락으로 떠먹으면 좋을 조금 묽은 콩포트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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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은 빵이든 크래커든 표면에 발려 떨어지지 않을 정도의 점성과 질감을 갖춰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실패하기 쉬운 ‘집 잼’

여러 번 씻고 껍질이 있으면 깎고 또 조각을 내고 설탕을 붓고… 사람은 사람대로 공을 들이고 들통이며 가스불은 또 그 나름대로 품을 판다. 그러나 결과물은 무엇보다 균일하지 않다. 일단 병에서는 고체처럼 담겨 있다가 떠내면 빵이든 크래커든 표면에 발려 떨어지지 않을 정도의 점성과 질감을 갖춰야 하는데 너무 뻑뻑하거나 너무 묽어진다. 한편 설탕의 단맛이 둘러싼 가운데 농축된 과일의 맛이 표정을 똑똑하게 드러내야 되는데 안타깝게도 그냥 밍밍하기만 할 가능성이 높다. 아직도 우리는 집밥에 큰 가치를 두고 있으며 그 가치를 찾아낼 여지가 조금은 남아 있다. 하지만 가스불과 들통의 오랜 만남을 통한 ‘집 잼’은 이제 포기할 것을 권하고 싶다.


하지만 포기가 곧 슬픔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집 잼을 포기하면 더 큰 세상의 문이 열린다. 요즘 식품 코너의 잼 매대는 다양하다 못해 화려할 지경이다. 온갖 나라의 온갖 과일로 만든 제품이 깔려 있는데 다들 유리병에 담긴 내용물이며 포장이 색색깔이라 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흡족해진다.


만 원을 웃도는, 비싸다 생각되는 제품도 흔할 지경이지만 다행스럽게도 여러 제품군이 마치 차례를 따르기라도 하는 양 돌아가며 할인에 들어가는지라 많은 돈을 쓰지 않고도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요즘은 할인가 3,000원대의 스페인 제품을 두루 먹어보는데 만족스러울뿐더러 종종 작은 병에 담긴 제품을 덤으로 얹어줘서 먹지 않고 책상에 장식품인양 올려 두고 보는 재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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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생산되는 딸기나 사과는 생식에 초점을 맞춘 품종이어서 잼을 만들기에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런데 왜 집에서 잼을 끓이면 결과물이 썩 신통치 않은 걸까? 일단 재료의 문제일 수 있다. 잼의 대표 과일 가운데 국내에서 생산되는 딸기나 사과는 생식에 초점을 맞춘 품종들이다. 따라서 단맛은 강하고 신맛은 약한데, 정작 맛을 골똘히 들여다 보면 강한 단맛의 가운데가 수분으로 인해 비어 있다. 이런 맛의 과일을 졸이면 일단 수분이 많이 나오면서 물리적으로 잘 농축이 되지 않는다. 말하자면 묽은 수프처럼 되어 버리는데, 이를 은근과 끈기로 졸이고 또 졸여서 잼처럼 만들고 나면 금속의 느낌이 깔린 듯한 맛이 난다. 잼이라 부를 만큼 충분히 달지는 않되 결과로 남은 맛이 불쾌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현상은 흔히 ‘잼용’이라 나온 씨알이 작거나 자잘하게 상처를 입은 과일에서도 똑같이 벌어진다. 크기가 다를 뿐 품종이 다른 것은 아니므로 맛에는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크기가 작아서 손질에 더 많은 노력을 들여야 하므로 사실 더 손해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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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세비야 지방의 오렌지로 만든 ‘오렌지 마멀레이드’는 껍질째 만들어 특유의 맛과 질감이 난다. 게티이미지뱅크

질감과 농도가 가지각색

원래 잼은 단순하디 단순한 음식이다. 매대에 줄지어 놓여 있는 제품을 몇 가지 무작위로 들어 딱지를 읽는 것만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과일 한 가지와 설탕을 반반의 수준으로 섞어 오래 끓이는 것만으로 앞에서 언급한 맛과 질감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잼을 원래는 만들 수 있다. 과일이 이렇게 단맛과 생식 위주로 품종 개량 되지 않았으며, 냉장 보관이 불가능해 어떻게든 장기 보존이 가능한 형식으로 바꿔야만 했을 때는 그렇다. 소금과 더불어 설탕 또한 재료에 많은 양을 더하면 미생물 발생을 억제시키므로, 비록 신선함은 없지만 제철이 아닌 시기에도 먹을 수 있는 과일이 바로 잼이었다. 그래서 잼을 ‘보존하다’라는 의미인 ‘프리저브(preserve)’라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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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의 즙만 짜서 걸러 설탕과 함께 끓인 뒤 굳히면 젤리가 된다. 게티이미지뱅크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잼을 비롯한 프리저브의 계보를 잠깐 살펴보자. 일단 잼은 섬유질을 포함한 과일 전체와 설탕을 더해 끓여 졸인 음식을 의미한다. 따라서 걸쭉하고 과일 맛이 두드러지며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용도에 바르거나 퍼서 먹을 수 있다. 한편 과일의 즙만 짜서 걸러 설탕과 함께 끓인 종류도 있는데 이를 젤리라 부른다. 젤리는 잼보다는 덜 걸쭉하고 색도 더 맑다. 잼과 거의 비슷하게 호환이 가능한 가운데 쉽게 녹아 내리므로 갓 구워낸 토스트처럼 뜨거운 음식에는 바르지 않는다. 지금처럼 우리가 썩 잘 살지 못했던 시절에는 젤라틴으로 묵보다 더 뻑뻑하게 굳힌 젤리에 잼의 딱지를 붙여 팔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마멀레이드가 있다. 마멀레이드도 궁극적으로는 잼이지만 오렌지, 스페인 세비야 지방의 비터 오렌지로 만든 것에 붙이는 명칭이다. 원래 오렌지잼과 질감이 비슷한 모과잼을 일컫는 포르투갈어 ‘마르멜로스(Marmelos)’에서 따온 이름이다. 마멀레이드는 과육과 즙으로도 만들지만 진짜 핵심은 껍질로, 특유의 씁쓸함을 불어 넣는 한편 펙틴으로 걸쭉한 질감에 공헌한다.


이렇듯 잼의 본질은 설탕과 함께 펙틴이 쥐고 있다. 원래 포도, 사과, 체리, 시트러스 류의 과일에 풍부한 성분이지만 정작 집에서 과일을 씻고 깎고 썰어서 끓였는데 아무리 해도 묽은 기가 가시지 않을 수 있다. 펙틴이 부족하다는 메시지이므로 이런 경우, 즉 굳이 집에서 잼을 끓이고 싶다면 따로 준비해 둘 것을 권한다. ‘돌고 도는 인생 역정’류의 노래 가사처럼 펙틴은 잼을 만들고 남은 사과의 껍질이나 씨방 등을 끓여서 가루 형태로 가공해 판다. 제과제빵 전문 사이트 등에서 쉽게 구할 수 있으며 조금만 넣어도 큰 효과를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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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설탕을 적게 넣은 달지 않은 잼이 대세지만 맛은 다소 떨어질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맛있는 잼 고르는 법

이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 발짝만 더 나아가자면, 잼의 알맞은 농도 및 질감은 아주 간단하게 점검할 수 있다. 끓이고 있는 잼을 차가운 접시에 한 숟가락 올려 냉장고에 2분간 두었다가 꺼낸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찍어 가볍게 밀어보았을 때 액체만 따로 배어 나오지 않고 균일하면 적절한 질감을 갖춘 것이다. 묽다면 조금 더 끓이면 되는데, 다만 열을 너무 많이 가할 경우 펙틴이 굳히는 힘을 잃으므로 주의한다. 뚜껑이 딸린 유리병을 냄비의 끓는 물이나 식기세척기(설거지를 한 번 해 주면 된다)에 살균한 뒤 잼을 담아 밀봉하면 1년은 두고 먹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잼이 너무 달 경우 레몬즙이나 식초로 신맛의 균형을 맞춰주면 한결 나아진다.


한편 냉장 기술의 발달로 과일도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현실이 잼의 제조와 선택에도 영향을 미친다. 과일 뿐만 아니라 잼도 냉장고에 두고 먹을 수 있으니 설탕을 아주 많이 쓸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달지 않은 잼이 대세가 되었는데 마냥 반길 일은 아니다. 이런 제품군은 설탕을 줄이거나 아예 쓰지 않고 포도즙 등으로 단맛을 주는데 맛 자체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다. 집에서 끓인 잼이 밍밍해지기 십상이라 기성품을 샀는데 역시 밍밍할 수 있는 것이다.


설탕을 줄였다는 제품군의 등장 이래 시간을 두고 계속 맛을 비교하며 먹어본 결과, 보존성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잼은 설탕 위주로 만든 게 가장 먹을만했다. 마지막으로 어떤 제품을 고르더라도 재료의 가짓수가 최대한 적은 것을 고른다. 기본적으로 과일과 설탕이고, 농도와 질감을 맞추기 위해 펙틴, 그리고 단맛과 신맛의 균형을 잡아주기 위해 구연산 정도를 쓰는 게 전부이다. 특히 합성착향료나 올리고당이 들어간 제품은 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상관 없이 맛도 향도 없으므로 피한다. 한없이 복잡한 삶과 식생활 속에서 그나마 단순함을 좇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음식과 식재료 가운데 하나가 잼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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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을 활용해 ‘엄지 쿠키’를 만들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잼 넣은 ‘엄지 쿠키’

숟가락으로 그냥 퍼먹거나 (다만 박테리아 번식을 막기 위해 웬만하면 적당량을 덜어서 먹자) 빵에만 발라 먹어도 충분히 맛있는 잼이지만 제과제빵에서도 자리를 찾아줄 수 있다. 소개할 레시피는 ‘엄지 쿠키’이다. 가장 간단한 축에 속하는 버터 쿠키 반죽의 가운데를 엄지로 꾹 눌러 낸 자국에 잼을 담아 굽는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엄지 쿠키는 여러모로 아이들과 함께 시도하기에 좋다. 일단 레시피 자체가 워낙 간단하고 위험한 요인(칼질 등)이 없는데다가 버터와 크림치즈를 듬뿍 쓴 반죽이 몰랑몰랑해서 아이들이 다루기에 재미있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런 가운데 정체성을 불어 넣는 반죽 누르기 과정이 마치 아이들을 배려라도 한 양 별개의 과정으로 독립되어 있어 참여와 보람을 유도하기에도 좋다. 물론 무엇보다 함께 구운 쿠키를 나눠 먹는 즐거움이 각별하다.



재료


잼 1/2컵, 중력분 320g, 소금 ½ 작은술, 베이킹소다 ½ 작은술, 베이킹파우더 1/4작은술, 버터 165g, 설탕 130g, 크림치즈 85g, 계란 1개, 바닐라 1 ½작은술



만드는 법


1. 오븐을 190℃로 예열하고 두 장의 제과제빵 팬에 유산지를 깐다


2. 작은 밀폐봉투에 잼을 담아 둔다. 밀가루, 소금, 베이킹소다. 베이킹파우더를 중간 크기 볼에 담아 거품기로 잘 섞는다. 스탠딩 믹서(손 믹서도 쓸 수 있다)의 볼에 설탕과 설탕을 담아 색이 옅어지고 부풀어 오를 때까지 3~6분 중간 빠르기로 섞어 준다. 크림치즈, 계란, 바닐라를 더해 다시 30분 섞어 준다.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밀가루를 흘려 넣어 반죽이 될 때까지 마저 섞는다.


3. 반죽을 1 ½ 작은술(메추리알 크기)만큼 떼어내 손바닥 사이에서 굴려 둥글게 빚은 뒤 준비한 팬에 4센티미터 간격으로 올린다(잘 띄워 놓지 않으면 부풀어 오르면서 붙어 버린다). 가운데를 엄지로 꾹 누르면 반죽이 조금 납작해지면서 가운데가 오목해진다.


4. 쿠키를 한 팬씩, 가장자리의 색깔이 살짝 변할 때까지 10분가량 구운 다음 꺼낸다. 가운데 잼의 자리를 손가락으로 살짝, 보기 좋게 다듬어 준다. 지퍼백의 한쪽 귀퉁이를 가위로 살짝 잘라내 쿠키에 잼을 채워 준다. 팬을 다시 오븐에 넣고 살짝 노릇해질 때까지 12~14분 더 굽는다. 오븐에서 꺼내 그대로 10분 식힌 뒤 식힘망에 옮긴다. 완전히 식힌 다음 나눠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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