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킹’, 단물 빠진 김은숙과 발목 잡은 이민호
'더 킹' 김은숙 작가와 이민호가 남다른 컬래버레이션으로 방송 2주 만 한 자릿수 시청률 하락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SBS 제공 |
김은숙과 이민호의 환장 컬래버다. 방송 첫 주 쏟아진 혹평과 우려를 좀처럼 극복하지 못한 ‘더 킹’이 방송 2주 만에 한 자릿수 시청률로 하락하며 ‘레전드의 추락’ 위기를 가시화하고 있다.
지난 17일 첫 방송을 시작한 SBS 금토드라마 ‘더 킹: 영원의 군주’는 악마에 맞서 차원의 문(門)을 닫으려는 이과(理科)형 대한제국 황제 이곤(이민호)과 누군가의 삶, 사람, 사랑을 지키려는 문과(文科)형 대한민국 형사 정태을(김고은)의 두 세계를 넘나드는 공조를 그린 로맨스 드라마다.
1994년 대한제국와 2019년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평행세계’를 그리는 ‘더 킹’은 첫 방송 이후 난해한 세계관과 지나치게 산만한 중심인물 간의 관계, 설득력은 물론 매력까지 떨어지는 주인공 캐릭터들의 향연으로 혹평을 면치 못했다.
그럼에도 스타 작가인 김은숙과 전역 이후 3년 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한 이민호, ‘도깨비’로 역대급 흥행을 성공시켰던 김고은의 파워에 힘입어 첫 방송은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했다. 1회 11.4%, 2회 11.6%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혹평 속에서도 ‘체면치레’에는 성공하는 듯 했던 ‘더 킹’은 단 3회 만에 한 자릿수 시청률로 내려앉으며 충격을 전했다. 아무리 시청률이 예전만 못한 의미를 갖는 시대라고 하더라도, 그 자체로 막강한 브랜드 파워를 가진 ‘김은숙 표’ 드라마라는 점을 고려할 때 한 자릿수 시청률은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성적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결과에는 힘을 잃어버린 김 작가의 시그니처, ‘백마 탄 왕자’ 판타지가 유효했다. 소위 ‘시청률 보증수표’로 불릴 정도로 강하게 여성 시청층의 마음을 흔들었던 김 작가표 로맨스는 완벽에 가까운 남자 주인공과, 평범하고 의존적인 여자 주인공의 ‘신데렐라 스토리’가 주를 이뤄왔다. 전작인 ‘파리의 연인’ ‘시크릿 가든’ ‘상속자들’ ‘도깨비’ 등은 그의 시그니처 로맨스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최근 드라마 시장에서는 더 이상 ‘의존적인 신데렐라 형’ 여성 캐릭터에 대한 수요를 찾아보기 어렵다. 주체적이고 도전적이며, 남자 주인공보다 더욱 당찬 ‘능력형’ 여주인공들이 매력을 자아내며 시청자들에게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서사보다는 마냥 오그라드는 ‘직진형’ 츤데레 로맨스 대사를 던지며 비주얼로 승부하는 남자 주인공의 시대도 저문지 오래다. 지금 시청자들이 원하는 건 현실과 판타지를 동시에 충족시켜주면서 서사도, 매력도 탄탄하게 구축된 주인공들과 스토리다.
이처럼 시대가 원하는 인물상이 바뀌었다면 작품 속 캐릭터 역시 이에 발 맞춰야 할 텐데, 안타깝게도 김 작가는 여전히 과거의 영광에 머물러 있는 편을 택했다. 결과는 ‘혹평’으로 증명됐다. 형사라는 직업과 거침없는 말투로 차별화를 꾀하려 한 듯한 정태을은 여전히 ‘백마 탄 왕자’(심지어 이번에는 진짜 ‘백마’ 맥시우스를 타고 나타났다.) 이곤과의 운명적 러브 스토리에 빠지고, 최초 여성 총리라는 구서령(정은채)은 시스루 원피스를 입고 ‘와이어 있는 브라’를 외치며 젊은 황제와의 스캔들로 국정 지지율을 높이려 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일국의 황제가 나라보다는 자신의 운명적인 사랑에 푹 빠져있고, 평행세계를 넘어와서 고작 한다는 말이 “방금 아주 중요한 결정을 했어. 자넬 내 황후로 맞이하겠다”는 프러포즈다. 주인공 이곤의 매력이나 개연성 역시 추락한 것은 당연지사다. 과거였다면 어느 정도 시청률을 보장 받았을 지도 모르는 ‘김은숙 표 로맨스의 답습’이지만, 현재 여기에 열광하는 이들을 찾아보긴 어렵다.
‘단물 빠진 로맨스’에 기대 또 한 번의 흥행을 꾀했던 김 작가에 더해 주인공 이민호의 발전 없는 연기도 도마 위에 올랐다.
‘더 킹’ 이민호의 연기를 두고 가장 크게 쏟아지는 혹평은 그의 2013년 출연작이자 김 작가와 첫 번째 호흡을 맞췄던 작품인 ‘상속자들’ 김탄과의 유사성에 대한 지적이다. 사실상 ‘재벌가 고등학생에서 대한제국 황제로 설정만 바꾼 김탄’이라는 말로 그의 연기를 단박에 설명할 수 있을 지경이다. 여기에 2009년 ‘꽃보다 남자’ 구준표와의 차별점까지 찾아보기 어려우니, 도무지 쓴 소리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꽃보다 남자’ 이후 본격적인 한류스타로 발돋움하며 승승장구 해온 이민호는 군 입대 전까지 ‘상속자들’ ‘푸른 바다의 전설’ 등 대표작에서 비슷한 결의 캐릭터를 도맡으며 큰 사랑을 받은 바 있다.
이후 군 입대를 하며 3년간의 공백기를 가졌던 그에게 이 같은 대중의 사랑은 독이었을까. 그는 새로운 이미지로의 변신 대신 늘 좋은 평가를 받았던 ‘안전함’을 택했다. 그가 택한 이곤은 그간 자신이 연기해온 인물들의 ‘집합체’였다. 그의 연기 역시 안전하기 그지없었다. 감정 연기나 시선처리, 대사 톤 등은 자꾸만 전작을 떠오르게 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사 전달력에 대한 지적까지 더해졌다. 첫 방송에서야 개연성 없는 인물 설정을 탓했지만, 이쯤 되니 작가와 배우의 ‘남다른 컬래버’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 아닐까 싶다.
물론 ‘더 킹’ 부진의 책임이 두 사람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첫 방송 전 불거졌던 정은채의 사생활 이슈도 분명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며, 김고은의 연기 역시 박수를 받을 만 한 수준은 전혀 아닌 상황이다. 그럼에도 두 사람에게 자꾸만 눈길이 가는 이유는, ‘더 킹’에서 이들이 갖는 무시하기 어려운 묵직한 존재감 탓이다.
홍혜민 기자 hhm@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