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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숙 "이래서 죽나 싶었을 때 빛이 돼준 건..."

엄마 된 이후 만난 내 마음속 어린 현숙

이혼가정서 자랐기에 결정 고민했지만,

“아들에게 행복한 엄마가 될 수 있다면”

한국일보

‘출산드라’로 대중에게 얼굴을 알리고 다큐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로 전성기에 오른 배우 김현숙씨를 4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에서 만났다. 그는 ‘싱글맘’, ‘싱글파파’의 육아분투기를 다룬 관찰예능 JTBC ‘내가 키운다’에 출연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배우 김현숙(43)씨가 엄마가 됐습니다. 외모지상주의를 풍자한 KBS ‘개그콘서트’의 캐릭터 ‘출산드라’(2005), 성차별 사회에 소심하지만 정의로운 일침을 날리는 ‘막돼먹은 영애씨’(2007~2019)로 잘 알려진 그 현숙씨입니다. 그는 대학 시절 이미 단편영화 ‘오래된 청혼’으로 대학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탔고 이후로도 드라마와 뮤지컬, 영화를 놓지 않은 천생 배우입니다.


엄마가 될 것을 예상하지 못한 그는, 이혼으로 ‘싱글맘’이 될 것 또한 알지 못했죠. 그가 JTBC 예능 프로그램 ‘내가 키운다’에서 아들 하민(6)과 함께 사는 일상을 공개했습니다. “가장이기에 돈을 벌어야 했고, 다행히 하민이도 촬영을 좋아했고 즐긴다”는 게 출연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입니다. “다른 ‘싱글맘’과 ‘싱글파파’에게 ‘우리 함께 힘내보자’고 용기를 주고 싶다”는 생각 또한 했고요.


그는 10대부터 가족에게 큰 나무와도 같았습니다. 대학 등록금을 스스로 해결하고 생활비까지 벌어 보탰으니까요. 배우로 성공하고 나서도 그랬죠. 그런 그에게 결혼 후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잇따랐습니다. 최선이 아닐지언정 다시 행복해지기 위해 이혼을 결심한 까닭입니다.


아이를 홀로 키우며, 딸인 자신도 돌아보게 된다는 현숙씨를 4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났습니다. 인터뷰는 그의 대표작이자 다큐드라마인 ‘막영애’의 형식을 빌렸습니다. ‘막영애’처럼 ‘인간극장’을 연상시키는 내레이션을 삽입해 재구성했습니다.

눈떠 있는 게 고통이던 그때

한국일보

그는 연극영화과에 다니던 대학 시절부터 연극과 영화, 뮤지컬 작품에 두루 출연한 배우다. 개그맨 박준형씨의 제안과 소개로 KBS ‘개그콘서트’ 무대에 서게 됐을 때도 여운이 남는 풍자 개그를 하고 싶어 ‘출산드라’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이한호 기자

삶은 늘 현숙에게 고군분투였다. ‘막돼먹은 영애씨’(막영애) 시절에도, ‘맘(mom)돼버린 현숙씨’가 된 지금도. 2015년 1월 아들 하민이를 낳고 올해 ‘싱글맘’으로 우리 앞에 다시 서기까지,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때는 정말 ‘사람들이 이래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구나’ 싶었어요. 눈떠 있는 게 고통이었으니까요. 곡기를 삼키지 못하고, 잠도 안 왔어요. 첫 번째 사기로 피해를 입고 나서 이제 좀 한숨 돌릴 만하니 또 사기를 당한 거예요. 처음보다 액수는 적었지만, 충격은 너무나 컸죠. 숨쉴 틈이 없더라고요.”

열아홉 살부터 주유소, 칼국숫집, 갈빗집, 분식집, 호프집, 생선구이집, 사무 보조에 대학축제 사회까지 해보지 않은 아르바이트가 없는 현숙이다. 대학 등록금에 자기 용돈까지 해결하는 건 물론이고 집 생활비까지 보탰던 그는 그야말로 ‘소녀가장’이었다.


“연예계에 들어와서 한창 바쁠 때도 주위에서 ‘힘들지 않냐’고 하는데 저는 너무 익숙했어요. 재수할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해서 대학(연극영화과)에 들어가서도 돈을 벌면서 다녔거든요. 장학금을 받아야 하니 그러면서도 수업엔 다 들어가고, 연극 연습도 소홀히 하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하고요. 그러니 잠을 거의 자지 못하고 살았어요. 밤샘 공연 연습하고 새벽에 리포트를 쓴 뒤에 수업 들어가고 끝나면 아르바이트 하러 갔죠. 배우가 된 뒤에는 좋아하는 일로 돈까지 벌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더 열심히 살았죠.”


20대부터 치열했던 인생이다. 결혼한 뒤에도 생계는 현숙의 몫이었다. 그러니 사기를 당하고도 믿을 건 오로지 자기 자신뿐.


“나는 ‘흙수저’인데다 0도 아닌 마이너스에서 시작했어요. 게다가 내 옆에는 내가 책임져야 할 가족도 있고요. 제가 벌이가 일정하지 않은 ‘비정규직’이잖아요. 그런 게 늘 콤플렉스였죠. 그래서 안정적인 수입처를 좀 마련해볼까 하는 욕심을 부리다 걸려든 거죠. 처음 사기당했을 때 10억 원 정도 날렸어요.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서 또 사기로 2억 원 피해를 입은 거죠. 돈도 돈이지만, 정신적인 충격이 너무 컸어요.”


그때 현숙 옆에 있었던 아들. 만 세 살이 된 하민이가 현숙의 생을 붙들었다.


“내게 남아있던 실오라기 같은 이성으로 견뎠어요. 하민이 덕분이었죠. 또 이 어려움을 해결해 나가려면 돈을 벌어야 하니 마냥 누워있을 수만도 없고요. 다행히 좋은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을 만나 오래 상담을 받으면서 이겨냈어요.”

‘엄마 되기’에 환상이 없던 이유

한국일보

그의 아들 하민은 요즘 축구에 푹 빠져 있다. 실내 연습장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모자. 김현숙 제공

한창 활동이 왕성하던 시기, 예상치 않게 찾아왔던 아들이다.


“2014년 한창 ‘막영애’ 시즌13을 찍을 때였어요. 월경이 규칙적인 편인데, 이틀 정도 하지 않는 거예요. (결혼 전이라) 남자친구한테 임신 테스트기를 사오라고 했죠. 설명서를 읽어보니 아침 첫 소변으로 해야 정확하다는 거예요. 밤새 잠이 안 오더라고요. 뜬눈으로 지새우고 새벽에 검사를 했죠. 5분쯤 기다리면 결과가 나온다던데, 웬걸 바로 두 줄이 뜨는 거예요. 사람이 참 신기하죠. 그렇게 임신 사실을 알고 보니까 ‘내가 엄마가 되는 건가’ 싶어 신기하면서 바로 몸을 조심하게 되더라고요. 평소 걷던 횡단보도에서조차도 말이에요.


하민이 태몽이 호랑이였어요. 생각해보니까 ‘그게 태몽이었구나’ 싶더라고요. 꿈에 어떤 동물이 나왔는데 갑자기 큰 호랑이로 변신해서 기억하고 있었죠. 그래서 태명을 ‘랑이’라고 지었죠.


어떡하겠어요? 아이가 생겼는데. 하하. 그래서 결혼도 한 거죠.”


엄마가 될 생각은 30대 중반까지도 해본 적이 없던 현숙. 자신의 천성을 잘 알았기에 엄마가 된다는 건 두려움이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홀로 3남매를 키우는 엄마가 너무 안쓰럽게 느껴졌어요. 경제적으로 특히 도움이 되고 싶었어요. 누가 강요하지도 않았는데 짊어진 거죠. 그런 성격을 아니까 자식을 낳으면 내가 어떻게 변할지 눈에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환상도 없었죠. 아마 그때 하민이가 생기지 않았다면, 평생 아이를 낳지 않고 살았을지도 몰라요.”


‘막영애’ 시즌3에 이런 내레이션이 나온다. “때로는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나만의 비밀을 간직한 채 살아가기도 하지만, 확실한 건 인생은 피해 갔으면 하는 일보다 경험해봤으면 하는 일들이 훨씬 많다.” 하민이를 가진 게 그에겐 그런 사건 아니었을까. 현숙에겐 그랬지만, 영애에겐 미안하기도 했던 일.


“한참 ‘막영애’를 찍던 때라 처음엔 제작진에게 임신 얘기를 쉽게 꺼내지도 못했어요. 영애가 노처녀의 아이콘 같은 인물이잖아요. 그러니 저의 임신과 결혼 때문에 드라마 내용에 영향을 미칠까 봐 걱정이 되더라고요. 제 사적인 사정 때문에 공적인 일에 피해를 주면 안 되니까. 드라마 연출을 했던 한상재 PD한테 아주 조심스럽게 ‘차 한잔 마시자’고 해 얘기를 꺼냈죠. 한 PD는 ‘아니, 왜 진작 얘기하지 않았느냐’면서 놀라더라고요. 자기는 혹시 제가 그만둔다고 하려고 보자는 줄 알고 겁을 먹고 나온 거였더라고요. 하하.”


‘막영애’는 현숙이 만으로 스물아홉 살이던 2007년 시작해 마흔한 살인 2019년 시즌17로 끝낸 드라마다. 한국 드라마 중 가장 긴 시즌을 유지한 기록을 가진 작품이 ‘막영애’다. 비정규직 문제· 성희롱 등 직장 내 성차별을 건드린 풍자드라마였고, 6㎜ 카메라 촬영과 내레이션 기법을 도입한 다큐드라마이기도 했다. 현숙이 맡았던 영애는, 자신을 ‘뚱뚱한 노처녀’ 취급하는 ‘꼰대 마초 사회’에 투박하지만 자기만의 방식으로 맞서는 주인공. 또래의 많은 여성이 영애와 함께 울고 웃으며 30대를 보냈다. 현숙에겐 청춘을 바친 애증의 캐릭터가 바로 영애다.


“(‘막영애’를 할 때는) 거의 사생활을 포기하면서 살았죠. 동시대를 사는 평범한 직장인을 대변하는 역할이자 정의로운 캐릭터이기도 해서 많은 시청자들이 자신을 투영해서 보셨죠. 그래서 이 드라마를 하면서 사명감이 점점 더 커졌어요. 싸이월드 시절에 ‘자살 직전까지 갔는데 영애를 보면서 힘을 얻었다’는 댓글을 보고 ‘아, 내가 정말 더 잘해야겠구나’ 생각을 하기도 했죠. 그러니 임신이나 결혼이 드라마에 나쁜 영향을 줄까 봐 엄청 조심스러웠던 거예요. 그래서 임신 초기 놀이공원에 가서 바이킹을 타는 신이 있었는데, 찍고 나서 속이 울렁거려서 다 토하면서도 임신했다고 말을 못 했죠.”

엄마가 되고 나니 곱씹게 된 유년

한국일보

그도 산후우울증이 있었다. 모든 일상이 자신의 의도나 욕구가 아닌 아이 중심으로 흐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한호 기자

그렇게 엄마가 된 현숙. 엄마가 되고 보니, 자신의 엄마 그리고 유년시절이 떠오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 전에 ‘엄마가 돼야겠다’ 이런 생각을 안 했어요. 내가 엄마가 된다는 것에 트라우마가 있었죠. 초등학교 5학년쯤부터 엄마 혼자 오빠와 저, 남동생을 키우셨거든요. 엄마로서는 최선을 다했지만, 저는 그렇게 행복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하고 자랐어요. 그러니 결혼에 환상이 없었죠.”


현숙의 기억 속 친아버지는 어떤 사람일까.


“음주가무에 주색잡기까지 다 하셨죠. 좋은 기억도 있긴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게 더 많아요. 폭력을 쓰거나 부모님이 싸우는 일도 비일비재했고요. 그래도 엄마가 경제력이 없으니 견디고 살다가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어요. 어버이날 제가 아빠한테 쓴 편지 때문이었죠. 제가 당돌하게 ‘아빠, 이제는 외박도 하지 마시고 엄마랑 싸우지도 않았으면 해요. 우리집도 행복해지면 좋겠어요’라고 썼거든요. 아빠가 보고는 ‘나갔다 와서 보자’ 하시더라고요. 수시간 동안 정말 무서웠죠. 돌아오신 아버지에게 아주 많이 혼났어요. 그때 엄마가 이혼을 결심한 거예요. 그런 사람한테 애를 맡길 수는 없다면서 저희 셋을 다 키우고요. 엄마, 아빠가 이혼하고 나서 경제적으로는 좀 힘들었지만 마음은 더 편했어요.”


위로는 의사가 된 오빠, 아래로는 목사가 된 남동생. 그사이에서 현숙은 ‘별난 딸’이었다.


“여섯 살 때 ‘오빠는 서서 오줌을 누는데 나는 왜 앉아서 눠야 하냐’면서 늘 옷이 다 젖어 있는가 하면, 나도 혼자 칼로 연필을 깎아 보겠다면서 방문 잠그고 해보다가 손을 크게 베어서 꿰매기도 했죠. 아직도 왼손에 흉터가 있어요. 미술을 좋아하고 잘했는데, 엄마가 아끼는 명주를 꺼내 오려서 뭘 만들기도 하고요. 그러니 엄마는 저보다 오빠나 남동생이 더 온순하고 다루기 쉽다고 느낀 것 같아요. 반대로 저는 늘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이었죠. 게다가 저는 어릴 때부터 감성적이고 예민한 편이었거든요.”


무엇이 아직도 현숙의 마음에 맺혀있는 걸까.


“내가 아이를 낳고 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도 자식인데 엄마는 나한테 왜 그랬을까. 내가 애를 낳아보니 자식한테 그렇게 모질게 못했을 것 같은데.’ 엄마가 되니까 내 엄마를 더 많이 이해하게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엄마가 더 이해가 안 되기도 하더라고요. 엄마가 하민이한테 각별하게 하거든요. 그걸 보면서 제가 농반진반으로 ‘엄마가 나 키울 때 손주한테 하는 10분의 1만 해줬어도 좋았을 텐데’라고 해요.”


엄마가 된 뒤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현숙.


“엄마에게는 어딜 가나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는 존재가 오빠였을 거예요. 그런데 엄마가 저희 키우느라 진 수억 원의 빚까지 다 갚은 건 저거든요. 편하게 사시라고 집을 해드린 것도 저고요.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기 시작한 열아홉 살부터 지금까지 가장이니까요. 임신으로 열 달 쉰 걸 빼고 일을 놓아본 적이 없어요. 엄마가 저희를 다 키워놓고 나서 예순 살이 넘어 재혼을 했지만, 지금도 제가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되죠. 새 아빠도 작은 시골교회 목사니까요. 참 좋은 분이지만, 생계에 도움 되는 일은 아니잖아요. 처음 아빠를 보러 가니 다 쓰러져가는 농가주택이 교회라고 하더라고요. 화장실도 집 밖에 있는 재래식이었죠. 지금 사는 (경남) 밀양 집과 교회는 새로 지은 거예요.”

내 엄마에게 듣고 싶은 말

한국일보

그는 어릴 때 재주가 많았다. 그림을 잘 그린 덕에 유치원에도 마치 ‘특기생’처럼 입학해 무료로 다녔고 상도 탔다. 아직 그의 마음속엔 엄마가 자신을 고마운 딸, 장한 딸로 인정해주길 바라는 어린 자아가 숨어 있다. 이한호 기자

그런 서운함에서 머물러 있다면 현숙이 아니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었다는 것, 그래서 두렵기도 하고 실수도 했을 거라는 걸, 엄마가 되고 보니 새삼 깨닫게 된다.


“엄마를 객관적으로 보려고 많이 노력해요. 엄마도 내 엄마이기 전에 누군가의 딸이었고, 엄마도 내 엄마 노릇을 한 게 처음이었을 테니. 엄마가 아니라 같은 여자로 봤을 때 엄마의 인생이 너무 힘들었다는 걸 아니까 연민도 들고요. 엄마도 완벽할 수 없잖아요. 엄마도 살면서 제가 알지 못하는 희로애락과 트라우마가 얼마나 많았겠어요.”


그런 현숙도 엄마에게 꼭 듣고 싶은 말이 있다. 아무리 어른이 됐어도, 현숙의 내면엔 상처받고 울었던 어린 자아가 숨어 있으니.


“엄마가 ‘아, 네가 그랬구나’라고 해주면 좋겠어요. 엄마 때문에 마음 아프고 섭섭했다는 걸 들어주고 알아주면 좋겠어요. ‘상처 줘서 정말 미안해’ 같은 따뜻한 사과를 듣고 싶어요. 그런 얘기를 엄마한테 해본 적도 있는데 그러면 꼭 싸우게 되더라고요.”


그러나 지금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엄마인 것도 사실. 결혼 생활 중 닥친 난관을 주위 누구에게도 티 내지 않았던 현숙이지만, 엄마만큼은 예외였다.


“전남편과 이혼하게 된 속사정을 다 아는 유일한 사람이 엄마니까요. 오히려 엄마는 결혼 초부터 헤어지길 바랐죠. ‘하민이 때문에 억지로 참으면서 살지는 말아라’ 하셨어요. 이혼하고 나서 먼저 ‘밀양으로 와서 함께 살자’고 해주셨으니까. 부모님 아니면 제가 어떻게 서울로 일을 하러 다니겠어요. 부모님만 한 울타리가 없죠.”


이혼을 결심할 때 제일 고민이었던 건, 역시 아들 하민이다. 자신 역시 이혼가정에서 자랐기에 더 망설였던 현숙.


“이 말만은 할 수 있어요. ‘웬만했으면 이혼했을까.’ 결혼 후 당한 두 번의 사기가 이유는 아니에요. 처음부터 돈을 보고 결혼한 게 아니니까. 이혼 결심을 하고 아이가 가장 마음에 걸렸어요. 엄마, 아빠와 함께 살지 못하게 되는 게 미안했죠.”

불행한 엄마는 되지 않겠다

한국일보

그는 ‘막돼먹은 영애씨’의 영애를 일컬어 “애증의 캐릭터”라고 했다. 예상치 못하게 아이가 생겨 결혼을 할 때도 극중 아직 비혼 상태였던 영애의 눈치가 보였다. 이한호 기자

그렇다고 현실의 괴로움을 방치할 수는 없다. 하민에게도 ‘불행한 엄마’는 되기 싫었던 현숙.


“제 삶도 중요하니까요. 내가 힘들고 불행한데 아이한테 행복한 척을 할 수는 없잖아요. 그 영향이 아이한테 가지 않을 수도 없고요. ‘일단은 내가 살아야겠구나. 내가 행복해야겠구나’ 싶었어요. 인생에서 항상 백 퍼센트 만족스러운 결정을 할 수는 없죠. 차선이나 차악을 택하더라도 덜 불행할 수 있다면,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부부 관계는 끝냈지만, 아들에게 ‘나쁜 아빠’를 만들어주고 싶지는 않은 게 엄마 현숙의 마음이다.


“아이한테는 처음부터 잘 설명해주려고 노력했어요. ‘엄마, 아빠가 정말 사랑해서 결혼하고 하민이를 낳았지만, 정말 함께 살기에 힘든 일들이 있었어. 엄마와 아빠는 헤어지게 됐지만, 아빠는 여전히 하민이를 많이 사랑해. 그러니까 언제든 하민이가 아빠 보고 싶을 때 얘기하면 볼 수 있어’라고요. 아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아는 것 같아요.”


‘싱글맘’의 비애는 때로 엉뚱한 곳에서 튀어나와 현숙을 흔들기도 한다. 하민이가 좋아하는 바다낚시를 갔을 때 울음을 터뜨려버렸던 현숙. 미끼로 지렁이를 낚싯바늘에 끼우다가 여러 생각에 사로잡혔다.


“지렁이가 너무 징그러워서 잘 잡지 못해요. 그런데 아이가 낚시를 하려면 내가 끼워야 하니까. 앞으로 비단 이 일뿐 아니라, 아이를 위해서 헤쳐나가야 할 일이 한두 개가 아닐 텐데, 그때마다 혼자서 해결할 생각을 하니 갑자기 서러운 거예요. 미우나 고우나 남편이 옆에 있다면 지지고 볶고 싸우더라도 맡길 수도, 기댈 수도, 상의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래도 그런 현숙에게 가장 큰 기쁨이고 희망인 건 아들, 하민이다. 이제 만 여섯 살밖에 안 된 아이가 속 깊은 말을 툭툭 던질 때마다 가슴이 뜨끈해지는 현숙.


“얼마 전에는 제게 그러는 거예요. ‘엄마, 나는 엄마 같은 엄마의 아들이어서 정말 행복해!’ 그 말에 울컥했죠. 한번은 또 제가 ‘엄마가 이럴 땐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라고 했더니, ‘나는 엄마가 행복한 게 좋아. 엄마가 행복한 게 내가 행복한 거야’라고 답하는 거예요. 어릴 때부터 참 효자였어요. 아이들이 엄마랑 떨어지면 울기도 하는데 하민이는 그런 게 없었죠. 아이는 어른의 짐작보다 훨씬 많은 걸 보고 느끼더라고요.”


엄마 현숙은 아이와 함께 성장한다.

아들에게 꼭 물려주고 싶은 것

한국일보

그간 고생해온 자신을 인정해주기, 행복에 강박을 느끼지 않고 오늘을 충분히 누리며 살기. 그가 지금 바라는 삶이다. 이한호 기자

“저는 하민이한테 모든 걸 책임져주는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아요. 아이에게 너무 ‘올인’하면 보상심리도 자연스럽게 생길 테니까. 그저 인생을 먼저 살아본 선배로서 길라잡이가 되어주고 싶어요. 하민이가 힘들고 괴로운 일을 겪지 않게 해주는 부모가 아니라 그런 난관도 잘 이겨낼 수 있는 단단한 마음가짐을 갖게 돕고 싶어요.”


자식이 부모한테 제일 듣기 싫은 말이 ‘내가 너 때문에 다 포기하고 희생하면서 살았어’라고 하지 않던가. 현숙도 자식의 마음에 죄책감을 싹트게 하고 싶지는 않다.


“저도 살아 보니 인생이란 힘들 수밖에 없는 거더라고요. 태어나면서부터 고뇌의 시작이잖아요. 내가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도, 부모를 선택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고요. 자식이 고난을 맞닥뜨렸을 때 아무리 부모라도 대신해 줄 수 없잖아요. 그래서도 안 되고요. 그 과정을 견디고 해결하는 건 본인의 몫이니까. 엄마는 그럴 힘을 기르도록 돕는 존재죠.”


연극과 뮤지컬, 개그, 드라마, 영화를 넘나들며 뿌리를 튼튼히 다진 배우이자, 책임감 강한 딸에서 엄마로 다른 인생의 막을 연 현숙. 현숙은 지금 자신을 한없이 토닥여주고 싶다.


“지금까지 잘해왔어, 현숙아. 참 수고했어. 이제는 너 자신과 하민이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생각해도 돼. 그럴 만해. 그러니까 충분히 누려라.”


다시 ‘막영애’의 내레이션을 변주해 본다.


엄마가 된 현숙은 안다. 싫든, 좋든 자신 앞에 놓인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인생은 어쩌면 고통의 연속이지만 그사이 찾아오는 예상치 못한 행복의 힘이 더 길고 강하다는 것을. 그러기에 어둠 속에 머무르기보다 묵묵히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내가 바랐던 삶에 가까워지리라는 것을. 때로는 삶의 이유가 실낱처럼 희미해져도, 그 무게는 자신을 지탱할 정도로 엄중할 수 있다는 것을.


김지은 인스플로러랩장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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