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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과 2020년…여전히 우리를 위로하는 ‘순풍산부인과’

[토요판] 남지은의 토요명작 리플레이 ⑥ 순풍 산부인과


‘순풍산부인과’ 연출 김병욱 피디

‘LA아리랑’부터 ‘하이킥’ 시리즈까지

열악한 환경 속 20년간 맹활약

IMF 실직한 박영규 캐릭터 성공

오지명·선우용녀·송혜교·박미선

현실감 있는 연기로 대중 위로

“다시 그때처럼 하라면 못 하죠

함께한 분들께 경의를 보냅니다”

한겨레

김병욱 피디가 속 오지명의 연기를 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다. 그는 “ 는 목숨 걸고 만들었다”며 “내 시트콤의 모태”라고 했다.

“보세요 여기. 하도 부수고 짓고 하니 이음새가 성한 데가 없잖아요. 엉성한 곳이 많아서 너무 부끄럽네요.” 사진 촬영을 위해 오티티(OTT)로 <순풍산부인과>를 켜자마자 그가 극중 ‘오지명’(오지명)네 집 거실 벽 한쪽을 지적한다. 글쎄, 아무리 봐도 너무 웃기는 오지명밖에 안 보이는데 그는 뭐가 그렇게 민망할까. “여러 예능이 한 스튜디오를 요일별로 나눠 썼어요. 월·화에 우리 녹화가 끝나면 다 부수고 다른 프로그램 세트를 지어요. 끝나면 다시 부수고 또 다른 세트를 짓고. 또 부수고 또 짓고. 잘 허물어져야 하니 문짝은 합판 수준이고. 미국 시트콤 <프렌즈>처럼 <순풍산부인과>만을 위한 세트장이 따로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죠.” 미니시리즈는 야외에 고정 세트장을 두면서 대접해줬지만, 시트콤은 ‘싼 프로그램’이라는 선입견에 방송사에서 돈을 안 썼다. “<순풍산부인과> 초창기 제작비를 알면 깜짝 놀랄걸요.” 얼마인데요? 진짜? 말도 안되는 금액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명작이 탄생한 건 창작자들의 피땀과 눈물의 대가인 걸까. 한국 시트콤은 방송사 시스템이 아닌 개인의 능력에 기대어 불모지에 새 역사를 써내려갔다. 주병대 피디(PD)가 한국 시트콤의 효시 <오박사네 사람들>(1993)을 만든 이후 바로 이 사람, 김병욱(59) 피디가 바통을 이어받아 20년간 시트콤 시대를 꾸렸다. <엘에이 아리랑>(1995~1996)을 시작으로 <순풍산부인과>(1998~2000)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2000~2002) <똑바로 살아라>(2002~2003) <귀엽거나 미치거나>(2005) <거침없이 하이킥>(2006~2007) <지붕 뚫고 하이킥>(2009~2010)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2011~2012) <감자별 2013QR3>(2013~2014)까지가 그의 손을 거쳤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생초리>(2010~2011)와 <너의 등짝에 스매싱>(2017~2018)은 기획에 참여했다. 그중에서도 <순풍산부인과>는 김병욱표 시트콤의 원형으로 이 작품의 소재, 구성 등이 이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지난달 19일 서울 종로에서 만난 그는 “<순풍산부인과>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하이킥 시리즈’도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며 소년처럼 해맑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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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아이엠에프(IMF) 시절에 방영해 시청자들에게 웃음과 공감으로 큰 힘을 줬다. 에스비에스 제공

IMF시절 웃음으로 위로…박영규 억울한 연기에 ‘성공 예감’

시작은 살짝 무모하고 초라했다. <문화방송>을 거쳐 <에스비에스>에서 일하던 그는 1996년 당시 유명했던 주병대·윤인섭 피디를 따라 프리랜서로 전향했다. “전 별 것 없는 피디였어요. <엘에이 아리랑>도 주병대 선배가 하던 것을 이어받았으니 엄밀히 말해 제 것이 아니었고. 선배들을 믿고 무작정 따라 나왔어요.” 하지만 셋 다 일이 잘 안 풀렸다. “형 무역회사에서 일을 배워야 하나” 고민하던 그때 운명처럼 기회가 왔다. “오지명씨가 <에스비에스>와 작품을 준비하면서 저를 연출자로 추천했어요. <천일야화>에서 같이 일하면서 20분짜리 극을 쓴 적이 있는데, 그때 좋게 본 뒤로 같이 시트콤을 하자는 이야기를 계속 했었거든요. 방송사는 당연히 싫어했겠죠. 유명한 피디도 아니니. 그렇지만 오지명씨가 강하게 계속 주장했더니 일을 맡겼어요. 시작은 참 초라했네요. 하하하.” 이거 안되면 모두 다 끝장이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뛰어들었다. “<순풍산부인과>는 정말 목숨 걸고 했어요.”


당시 방송사는 타사 뉴스 시간인 밤 9시에 뉴스 안 보는 이들을 끌어들이려는, 가볍게 접근하는 것을 편성 전략으로 짰다. 모두의 미래를 짊어진, 절실했던 그는 뼈를 갈아넣었다. “어떻게 하면 몰입도를 높일까” 고민하던 그는 <순풍산부인과>로 우리나라 시트콤 문법을 다시 썼다. 하나의 에피소드가 이야기 전체를 차지하는 구조였던 이전의 시트콤과는 구성 자체가 달랐다. “큰 줄기의 이야기 두개를 교차시켰어요. 20분밖에 안 되는 시간 동안 이야기 두개를 엮어야 하니 축약해서 엑기스만 풀어내면 구성이 입체적이 되죠. 보는 사람도 덜 지루하게 느껴지는 효과가 있어요.” ‘박영규’(박영규)가 장인 ‘오지명’의 구두 교환권을 훔쳐 새 구두를 사는 이야기와 ‘오혜교’(송혜교)의 친구 ‘박광현’(박광현)이 ‘오소연’(김소연)한테 반하는 이야기가 함께 흘러가는(13회) 식이다. 주 1회이던 이전과 달리 일일시트콤 시대도 열었다. 월화수목금. 몸은 정말 힘들었지만, 거의 매일 찾아오니 친근함이 도움이 됐던 것은 사실이다. “다시 그때처럼 하라면 못 하죠. 얼마나 힘든지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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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인 이야기를 선호해서인지 그의 시트콤에는 늘 병원, 의사가 등장했다. 환자들의 사연은 좋은 소재가 됐다. 에스비에스 제공

김병욱표 시트콤은 늘 찌릿한 웃음과 눈물이 함께였다. 1998년 3월2일부터 2000년 12월1일까지 682회 방영한 <순풍산부인과>는 특히 그랬다. 1997년부터 2001년까지 우리나라는 국제통화기금(아이엠에프) 외환위기로 힘든 시절을 보냈다. 그는 “아이엠에프 시기에 시청자들에게 웃음으로 힘을 주고 싶다는 목표는 확실했다”고 했다. 시트콤이지만 웃음과 함께 공감을 주는 데 중점을 뒀다. “실직 가장이 많아서 그들을 대변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에게서 위로받으니까.” 그래서 설정한 것이 ‘박영규’ 캐릭터다. ‘박영규’는 15년간 영어 강사를 하다가 큰돈 들여 만든 강의용 비디오테이프가 망하면서 처가살이를 한다. 처가 눈치를 보고, 장모한테 구박도 받지만 장인과 티격태격하는 모습으로 재미와 짠함을 주고, 그가 다시 일어서는 모습에서 시청자들은 마치 자신의 일처럼 용기와 희망도 얻었다. 김병욱 피디는 2014년 이후 자영업자 폐업률이 가장 높았던 2016년(12.18%) 이듬해 선보인 <너의 등짝에 스매싱>에서는 치킨집을 운영하다가 폐업한 가장(박영규)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작품 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동시대성이었어요. 자잘한 일상 이야기를 하는 시트콤은 시청자에게 생활감으로 스며드는 게 중요한데, 시대를 반영하지 않으면 생활감이 느껴지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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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 오지명과 사위 박영규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이 시트콤의 재미였다. 둘은 늘상 얼음 많이 먹기 등 소소한 대결을 했다. 프로그램 갈무리

지명, 영규, 미달…배우·캐릭터 열전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는 비슷한 처지의 시청자 마음을 절절하게 표현하는 배우들의 연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는 “<순풍산부인과>에서 실직한 가장 역할을 맡았던 박영규씨가 연기를 굉장히 잘해줬다”고 말했다. 그런데 처음에는 박영규가 ‘박영규’가 아니었단다. 백윤식이 사실상 확정됐다가 마지막에 불발되면서 역할은 김상중, 주현, 손창민 등 여러 사람을 돌았다. 녹화 1주일 남겨 놓고 박영규가 떠올랐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다. “1회 박영규씨의 첫 촬영이 지금도 기억나요. 장모가 ‘마늘이나 까라’며 구박해 방에 있는데, ‘오미선’(박미선)이 그에게 뭐 하냐고 묻잖아요. ‘마늘 까자나. 까래자나’라고 말하는데 그 억울한 톤, 그게 너무 좋은 거예요. 아이엠에프로 억눌린 사람들의 느낌. 잘될 것 같다는 느낌이 그때 바로 왔어요.” 박영규뿐이랴. <순풍산부인과>는 김병욱표 시트콤 중에서도 특히 캐릭터가 잘 살아났다. 그는 “시트콤은 배우 본연의 성격을 잘 살려야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선우용녀의 독특한 말투는 평소 말이 빠른 것에서 조금 변형했고, ‘김정배’(이태리)는 연기가 늘 한 박자 늦어 아예 캐릭터로 만들어줬다. 특히 ‘박미달’(김성은)은 지금 다시 봐도 놀라울 정도로 천재적이다. “보통 아역들은 대사하기도 바쁜데 ‘미달’은 말하면서 머리카락을 넘기는 등 여유가 있어요. 타고난 배우예요.” ‘미달’ 역할에는 다른 배우가 뽑혔었는데, 오디션에서 김성은을 본 뒤 캐스팅이 바뀌었다.


지금 시선에서 보면 가장 다르게 해석되는 인물 또한 ‘미달’이다. 당시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가 의심되는 캐릭터’라는 기사까지 나올 정도로 산만하고, 이기적인 모습 등이 부정적인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그때는 아니었던 것이 지금 시선에서 새롭게 읽히는 모습도 있다. 미달은 일찌감치 성별을 허무는 젠더 프리를 실천하고 있었다. 645회. 엄마가 원피스를 입혀주면서 “여자애들처럼 놀라”고 하자 ‘미달’은 바지를 고집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런 거 입고 씨름이랑 야구를 어떻게 해!” 엄마의 성화에 ‘세미나’(정인선)와 함께 놀이터에서 원피스 입고 쪼그리고 앉지만, 오히려 ‘세미나’가 ‘미달’로 인해 자신을 괴롭히는 남자애에 맞서는 여성으로 변화한다. ‘김정희’(장정희) 수간호사 등 요즘 화두인 걸크러시 여성이 그 시절에 등장한 것도 인상적이다. ‘오지명’은 손녀와 잘 놀아주는 할아버지였다는 사실을 다시 보기로 알게 됐고, 실직한 가장인 ‘박영규’의 나이가 43살밖에 안 됐다는 것도 2020년에 새롭게 보인다. ‘영규’, 너무 젊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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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적인 연기를 선보인 미달과 의찬. 프로그램 갈무리

요즘 10대들에게 인기 프로그램


<순풍산부인과>는 방송 4~6개월이 지나 입소문을 타며 타사 뉴스를 위협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회차에 따라 시청률은 30%를 넘어섰고, 평균은 20%대. 이례적으로 배우들 모두 총 30~40개 광고를 촬영했다. 제작진의 호흡도 끈끈했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송재정 등 유명 작가들이 여기서 신인 시절을 거쳤다. “송재정 작가는 그때도 구성력이 뛰어났다”고 김병욱 피디는 회상했다. 작가 5명이 한 회씩 맡아 초고를 썼고, 다 같이 회의하며 대사 한 마디 한 마디 수정하고, 김병욱 피디가 마지막 원고를 마무리할 정도로 철저하고 섬세했다. 급할 때는 즉석에서 대화하며 대본을 써내려갈 정도로 모두 경지에 올랐다. “1999년 추석 때 원고가 ‘펑크’났어요. 송재정 작가와 둘이 탄현 방송국에서 만나 즉석에서 주거니 받거니 대화하며 대사를 쓴 적도 있어요.” 393회 짠돌이 영규가 혜교한테 용돈 5만원을 주고 두고두고 우려먹는 이야기다. “보편적인 이야기를 선호한다”는 그들은 일상 속에서 아이디어를 찾기도 했다. “‘박영규’가 방구총을 쏘는 건 전현진 작가의 삼촌 이야기이고, ‘오지명’이 ‘박영규’에게 삐돌이라고 놀리는 건 저의 형이 많이 쓰는 표현이에요.” <거침없이 하이킥>의 ‘빵꾸똥꾸’는 김병욱 피디가 어렸을 때 동생한테 쓰던 말이란다.


하지만 1주일에 5일, 에피소드 10개를 만들어야 하니 3년간 잠잘 틈 없이 일만 했다. 제작진도 배터리가 닳았다. 이제는 끝낼 때가 됐다, 1주일에 4일만 하자 여러 의견을 냈지만, 예능은 인기가 떨어질 때까지 한다는 게 방송사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조금만, 조금만 더를 외치다가 결국 끝이 좋지 않았다. 김병욱 피디가 몸과 마음이 망가져 병원에 입원하면서 592회를 끝으로 연출을 그만뒀다. 이후에도 100회 가까이 더 방영되면서 수많은 배우들과 작가들이 빠지고 투입되기를 반복하다가 이야기는 산으로 가고, 시청률 5%로 막을 내렸다. 시트콤 장르임에도 김병욱 피디 작품은 거의 모두가 새드엔딩이지만, 이 작품만 유일하게 새드엔딩이 아니다. 그가 마지막 회를 연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에게 처음이었고, 절실했기에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한 것이 괜찮을 리는 없다. 김병욱 피디는 “너무 좋은 배우들을 만났는데, 3년간 방송을 찍는 기계처럼 촬영하다 보니 한명 한명 개인적인 교감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 돌이켜보면 참 많이 아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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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욱 피디는 1998년부터 20년간 매일 에피소드를 만들면서 잠 못 드는 인생을 살았다. 공황장애까지 올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고, <감자별>이 끝나고 55살이 되어서야 그 삶에서 자유로워졌다고 한다. 개인의 역량에 기대어온 한국 시트콤은 대가들이 떠나면서 서서히 티브이에서 사라졌다. 그는 “이젠 드라마도 시트콤처럼 재미있는 시대이기에 장르를 따로 구분 지을 필요는 없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병욱표 시트콤의 감동은 오티티에서 살아 숨 쉰다. 유튜브에서 요즘 10대들에게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 <순풍산부인과>다. 그는 “당시 유행어를 사용해 이야기를 만들지 않았고, 보편적 정서를 담은 것이 지금 봐도 어색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유독 <순풍산부인과>가 2020년 남다르게 느껴지는 데는 코로나19로 또 다른 아이엠에프를 겪고 있는 요즘의 상황이 그때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직한 가장, 그래서 힘든 ‘박영규’의 모습은 오늘날 수많은 가장들의 모습이다. “아이엠에프 시대였기에 따뜻한 가족애가 살아있는 시트콤을 보고 싶다는 요청이 많았었어요. 지금도 힘들잖아요. 그때처럼 어려운 시대이기에 유튜브 댓글을 읽어보면 이런 가족애가 살아있는 시트콤을 다시 보고 싶다는 이야기가 많아요. 그래서 찾아보시는 것 같아요.”


인터뷰 며칠 뒤, 그가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초창기 작품이라 부끄럽게만 생각했는데 인터뷰 때문에 다시보기를 했더니 그때 기억이 새록새록 나고 흐뭇하게 웃으며 봤어요. 기억을 되살려줘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같이했던 배우들과 작가들에게 감사와 경의를 보낸다는 말을 꼭 하고 싶어요. 너무 고마워요.” <순풍산부인과>는 1998년과 2020년, 그때도 지금도 우리를 위로하고 있다.


글·사진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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