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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원 백반에 반찬 겁나 많아부러~ ‘고장의 얼굴’이 주걱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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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끝자락에 톡 튀어나온 모양으로 붙어 있는 전남 고흥은 한국 최초 우주기지인 나로우주센터가 있는 곳이다. 한국판 나사(미국항공우주국)의 본거지로 국내 대표 우주 관광지가 된 이곳은 사실 ‘미식’의 고장이다. 하늘에서 보는 고흥은 지형부터 주걱 모양이다. 밥알을 가득 담는 주걱이 고흥의 얼굴인 셈이다. 2018년 서울대 경제학부 연구팀이 발표한 ‘국민건강지수’ 1위 지역도 고흥이다. 건강과 먹거리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고흥에서 15년째 향토 음식을 연구하는 박성숙(62) 요리연구가는 “지리적인 특성상 섬처럼 보이는데 들과 산·바다가 다 있고, 거기서 나는 신선한 생물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곳이 고흥”이라고 평한다. 그동안 남도 대표 미식 도시로 전남 목포와 전북 전주가 꼽혔지만, 고흥도 이에 못지않은 ‘맛 고을’이다. 고흥을 지난달 16~17일 다녀왔다. 미식 여행객을 유혹하는, 신선하고 다양한 먹거리가 넘쳤다.





100년 넘은 시장의 생선구이 장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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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두 차례 말릴 수 있재. 겨울에 한번. 추울 때는 밤에 얼어부러. 날이 새믄, 녹을라믄, 해가 넘어가부러. (생선 두께가) 얇은 거는 빨리 마르고 살이 많은 거는 늦게 마르재. 뚜꺼운 거, 요런 거 오래 걸려. 장어는 요즘 한나절이믄 말리재.” 지난달 17일 전남 고흥군 고흥읍 시장길에 있는 ‘고흥전통시장’ 옥상에서 만난 장양금(74)씨는 생선구이 달인이다. 옥상에는 질긴 녹색 끈으로 엮은 커다란 망이 떠 있고, 그 위에 서대·민어·장어·병어 등 온갖 생선이 햇볕에 비릿한 몸뚱이를 드러냈다. 시장에는 생선구이 구역이 있다. 30개 넘는 가게가 옹기종기 모여 옥상에서 반건조한 생선을 숯불에 구워 판다. 전화 한 통화면 구운 생선을 전국 어디든 받아볼 수 있다. 1915년 개장해 100년 넘은 역사를 자랑하는 고흥전통시장. 장씨 같은 생선구이 장인 수십명이 포진해 있는, 40년 넘은 이 구역의 지난 세월에도 경의를 표하게 된다. 장복수산·오덕상회·미애네생선·봉계상회 등 이름도 제각각인 가게들이 휴대전화 번호를 적은 간판을 내걸고 있다. 이 구역은 언제 생긴 것일까.



사연이 있다. 1970~80년대에는 해마다 수십번 제사를 지내는 집이 많았다. 제사 음식을 마련하는 일은 여성의 몫이었다. 당시 한 여성이 제사용 식재료를 사러 왔다가, 반건조 생선을 파는 집에서 화로에 굽는 생선을 봤다고 한다. 가게에서 먹을 요량으로 굽는 생선이었다. 여성은 “구운 거 파시라”고 했고, 거래는 성사됐다. 그게 입소문이 나면서 생선구이 가게가 하나둘 늘기 시작했다고 한다. 굽는 수고를 더는 것만으로 제사 준비는 훨씬 수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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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주인들은 대부분 70대 노인들이다. 이젠 대를 잇는 데가 많다. 장씨가 꾸리고 있는 발포상회(010-6328-1839, 010-3849-2930)도 두 딸, 박은희(55)·은주(52)씨가 함께한다. “간하는 거 다 (딸에게) 가르쳐주고 그만둬야재. (집마다) 생선은 같아도 간은 틀리재. 간질(소금 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재.” 장씨가 말하는 맛의 비결은 ‘간’이다. “오래 하다 본께, 이런 거 저런 거 비법이 생겨. 이 생선은 몇 시간 하믄 되고 저건 몇 시간 하믄 되고, 딱 나와.” 소금양 조절만이 비결일까. 굽는 법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은희씨가 굽는 과정을 보여줬다. 대략 가로 50㎝, 세로 40㎝ 불판 아래 잿빛 재가 보였다. “숯으로 온도 조절해요. 숯을 으깨서 화로에 넣죠. (숯 위에 올라간) 재는 전날 거고요, 재를 많이 덮으면 불이 약해지고, 약하다 싶으면 이걸(쇠꼬챙이)로 쑤셔요. 밑에 있는 불씨가 올라옵니다. 이게 맛의 관건이에요. 너무 세면 생선이 노릇노릇 안 구워지고 겉만 시커멓게 타요. 자주 뒤집어도 안 돼요.” 맛보라며 내준 구운 서대에서 고소한 향이 났다. 생선에 참기름을 바른 뒤 굽기에 당연한 맛이다. 여기에 깨소금까지 뿌리니, 고소함이 절정에 이른다.





눈으로는 짜고 입에선 슴슴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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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여행객이 첫손가락으로 꼽는 한식의 매력은 ‘반찬’에 있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반찬은 한식을 도드라지게 하는 정체성이다. 고흥에서도 화려한 반찬의 향연을 제대로 만날 수 있다. 차림표에 ‘백반’이나 ‘정식’을 내건 식당 대부분이 10가지 넘는 반찬을 내놓는다. 거의 1만원으로 가격도 ‘착하다’.



지난달 16일 찾은 ‘대흥식당’(고흥읍 고흥로 1694)의 ‘백반’도 반찬이 11개다. ‘돼지고기고추장볶음’, 쌈채소와 국을 빼고도 말이다. 나물무침에서는 들판에 부는 바람과 풀 향이 났다. 감자조림은 달았다. 천한 단맛이 아니고 달보드레했다. 잘 구운 서대는 준득했다. 양념게장과 참게장은 매콤한 맛과 짠맛이 새겨져 있었는데, 입안에 쏙 들어가자 슴슴했다. 희한한 경험이다. 박성숙 연구가는 “생산물이 다 신선하고 맛나서, 조리를 과하게 하지 않는다”며 “그게 고흥 음식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주인 신인순(73)씨는 이 자리에서만 44년째 장사를 하고 있다. 이제는 조리학교 출신 막내아들 명지환(44)씨가 이을 거라고도 했다. “반찬은 할머니·어머니가 하시던 대로 만든 겁니다.” 이들 모자는 내년에 큰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돈도 안 되고 물가도 비싸서” 백반 식당을 접고 고깃집을 낼 계획이다. 그렇다고 ‘반찬’을 소홀히 할 생각은 없다고 힘줘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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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동항 앞에 있는 ‘정다운 식당’(도양읍 비봉로 159)의 ‘생선백반’도 20가지 반찬으로 구성돼 있다. 일반 ‘백반’은 톳 등 각종 해조류 무침과 3가지 종류의 구운 생선, 모시조개탕, 잡채 등 뭐 하나 나무랄 데가 없는 상차림이다. 궁극의 미식은 소담하고 단출한 밥상에서 나온다. ‘1만원의 행복’을 고흥 백반이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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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장어의 한 종류인 갯장어(하모)백반은 여름철 고흥에서 꼭 맛봐야 할 백반이다. 2m 정도로 큰 갯장어는 물이 깨끗한 지역에서만 잡힌다. 겨울잠을 자기에 여름이 제철이다. 2000년대 들어 어획량이 1970~80년대에 견줘 6분의 1로 줄긴 했지만, 갯장어의 대표 산지는 고흥과 장흥이다. ‘중앙식당’(도화면 당오천변1길 39)은 여름 한 철만 ‘갯장어 정식’(3만5천원)을 판다. 주인 황영희(68)씨는 서른한살에 식당업을 시작해 30년을 훌쩍 넘겼다. 그가 크기가 작은 갯장어로 차린 회 한 접시와 샤브샤브용 갯장어를 내왔다. 존득한 회 맛에 흐뭇한 미소가 퍼질 때쯤 황씨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샤브샤브용은 몸뚱이가 크고 성질도 있어서 못 잡을 정도로 확 물재. 돌아부러.” 그의 팔엔 갯장어에게 물린 찬란한 상처가 있었다. 그가 장어 뼈, 다시마, 말린 밴댕이 등으로 우린 육수에 갯장어를 폭 빠트리며 말을 이었다. “꽃잎처럼 오그라들면 잡숴.” 이 집 장어백반의 매력은 우선 고흥 9미(장어, 서대, 유자, 매생이, 삼치, 전어, 숯불구이 생선, 바지락무침, 한우) 중 하나인 유자와의 ‘맛 조화’다. 장어라면 자부심 강한 장흥에서도 맛볼 수 없는 맛이다. 일단 아삭한 양파 조각에 육수 여행을 다녀온 갯장어를 올린다. 여기에 얇게 썬 노란 유자를 마저 올리면, 일본의 전설적인 미식가 기타오지 로산진이나 일제강점기에 전국 냉면 투어를 한 식도락 시인 백석조차도 반하고야 말 맛이 완성된다. 달콤새큼하고 엇구수하다. 혀를 점령하는 감촉은 우주만큼 신비롭다. 육수에 익힌 갯장어 내장은 폭염도 이겨낼 만한 보양식이다. 황씨는 “우리 집에서만 먹을 수 있다”고 자신한다. 준득한 식감에 호불호가 나뉘는 맛이다.



어느 지역이나 맛 골목이 있기 마련. 고흥의 ‘과역삼겹살백반 거리’는 과역버스터미널 근방에 형성돼 있다. ‘과역기사님식당’ ‘보성식당’ 등 여러 집이 이 거리의 주인이다. 고흥에는 기차역이 없다. 예부터 타지로 팔려 가는 농산물이나 꼬막 등 먹거리가 과역면에 있는 버스터미널에 모였다. 기차역이 있는 벌교행 버스에 실렸다. 제대로 된 도로가 뚫리기 전까지 과역면은 고흥 교통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당연히 들락거리는 버스가 많았다. 기사님의 입맛이 이 거리를 만든 것이다. ‘빨리 먹어야 하지만 맛 좋고 영양가도 좋아야 하는’ 식당들이 들어서게 된 이유다. 여기에 ‘과역기사님식당’(과역면 고흥로 2959-3)이 ‘백종원의 3대천왕’(SBS)에 소개되면서, 이 거리는 전국에 이름이 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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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6일 찾은 ‘보성식당’(과역면 고흥로 3009)의 ‘삼겹살백반’은 반찬이 10가지가 넘지만, 어째 고기 맛이 별났다. 구운 오리고기 맛이었다.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김선옥(58)씨가 “우리 집만의 비결이라 말씀 못 드리겠는데요”라며 웃었다. “본래 할머니 때는 반찬이 32가지였어요.” 36년째 이 집 부엌을 책임지는 김옥임(76)씨 손맛이 이 집 역사를 증명한다. 오후 1~2시면 준비한 음식이 다 팔리는 다미식당(두원면 두원로 477)뿐만 아니라 ‘소문난 식당’ ‘해태식당’ ‘백상회관’ ‘삼이야식’ ‘산채뜰’ ‘다도해 회관’ 등 고흥 백반 식당은 밤하늘 별만큼 많다. 왜 고흥에만 수십가지 반찬을 내는 백반집이 많을까. 박성숙 요리연구가는 “바다·산·들에서 나는 거 다 반찬으로 내는데, 각각 서너가지씩 차려도 10가지가 훌쩍 넘는다”고 이유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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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 맛이 나는 황가오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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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질 녘 녹동항에 도착하자 진귀한 풍경을 마주했다. 한국 대학에 연수생으로 온 브라질 학생 밀레나 쿠아레즈마와 유튜버로 활동하는 포르투갈 출신 모델 마리아 마두레이라를 포함한 외국인 6명이 ‘진미횟집’(도양읍 비봉로 200)에서 한상 떡하니 차려진 밥상을 받고 즐거워했다. ‘촌캉스’ 체험차 고흥을 방문한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고흥 맛’에 찬사를 보냈다. 진미횟집은 고흥에서 손꼽히는 횟집이다. 박성숙 요리연구가는 “공장도 없는 고흥의 바다에선 신선한 생선이 많이 잡힌다”고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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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는 호남의 대표 먹거리지만 고흥 사람들은 홍어를 먹지 않는다. 대신 홍어와 생김새가 비슷한 황가오리를 찾는다. 고흥에 홍어 식당이 거의 없는 이유다. “10~30㎏ 이하 황가오리로만 회를 떠야 맛나요.” 황가오리회 맛으로 전국 으뜸인 ‘도라지식당’(고흥읍 여산당촌길 4-2) 주인 이명심(69)씨가 말했다. 식당은 정감 넘치게 허름하다. 늦게까지 문을 열기에 한잔하기 좋다. 장흥이 고향인 그는 고흥 남자와 결혼해 이 지역에서 장사하며 터를 잡은 지 40년째다. 그가 하루 숙성해 내는 황가오리의 회와 애(간)는 별미다. 회는 쫀득한데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고급 한우 맛이다. 애는 세계 3대 진미 푸아그라도 부끄러워 숨을 정도로 극강의 고소한 맛이다. “운 좋은 사람만 먹어요.” 서남해안에서 헤엄치는 황가오리는 여름 한 철 잡히는 어종이다. 그가 먹는 법도 알려줬다. “깻잎을 깔고 그 위에 따스한 밥, 회를 차례로 얹어봐요.” 주인의 지시를 잘 따라야 한다. 미식가가 갖춰야 할 중요한 태도다. 이 식당에서 한잔 술을 했다면, 다음날 해장은 ‘평화국밥’(과역면 과역로 951)에서 하면 된다. 맑은 국물에 넉넉한 순대와 내장이 푸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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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새큼달큼 열무김치, 어렵지 않아요

내 손으로 만드는 고흥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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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에서 15년째 향토 음식을 연구하는 박성숙(62) 요리연구가의 고흥식 열무김치. 박미향 기자

고흥 열무김치는 새큼달큼한 맛이 비교할 데가 없다. 여행객이 반하고야 마는 맛이다. 조리법도 어렵지 않아 요리 초보자라도 쉽게 도전할 수 있다.



박성숙 연구가의 ‘고흥식 열무김치’





재료: 열무 1단, 풋고추 500g, 밥 100g, 마늘 100g, 양파 1개, 사과 1개, 맑은 액젓 1/2컵, 소금 약간



만드는 법: 열무를 다듬어 헹군 다음 소금을 뿌린다. 30분 지나면 뒤집는다. 30분 더 지나 숨이 죽으면 한번만 헹군다. 물기를 뺀다. 나머지 재료들을 모두 갈아 열무에 버무린다. 바로 먹어도 맛있다.





고흥 음식 조리 체험



2021년 설립된 사회적협동조합 ‘고흥마을대학’(포두면 내산길 151-22)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숙박형 공정여행’ 등이 있는데, 그중에서 박성숙 요리연구가가 진행하는 ‘고흥 음식 체험’ 프로그램(1인당 3만5천원)이다. 최소 6명이 모여야 진행한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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