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여덟달만 여는 ‘대통령의 맛집’…전수되지 않는 까닭
맑고 정갈한 경상도식 추어탕
안타깝게 사라져가는 대구 맛
‘63년 내공’ 상주식당 차상남씨
대구 중구 국채보상로 상주식당 2대 차상남 사장. 음식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세심하게 손님들을 돌본다. 대구/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
“올개(올해) 그만둘까 내년에 그만둘까 자꾸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이제 나이가 들어서 너무 힘이 들어.”
대구의 오랜 맛집으로 3~4대를 이어가며 단골들이 드나드는 추어탕 노포, 상주식당은 1957년 처음 문을 열었다. 대구 중구 국채보상로 골목에 자리 잡은 한옥 식당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양옆 선반에 배춧잎이 가지런히 줄지어 늘어선 광경을 만난다. 마당에 걸린 가마솥에는 탕이 펄펄 끓는다.
경상도식 추어탕은 연한 배추 건더기가 풍부하게 들어가고 국물이 맑다. 항암 하는 환자, 노인들도 깔끔하고 비린 맛 없는 이 집 추어탕만은 먹을 수 있겠다 말하곤 한다. 반찬으로 나오는 배추김치와 물김치는 설탕 맛이 없다. 염장한 배추의 짭조름 시원하고 단 맛만 있다. 밥은 보리쌀을 섞어 짓고, 물은 보리차를 끓여 미지근하게 내놓는다. 정갈하고 따뜻한데, 안타깝게도 사라져가는 맛이다.
대구 중구 국채보상로 상주식당 추어탕 한상. 주문 제작한 뚝배기에 들어가는 양이 적지 않아 반 그릇도 판매한다. 대구/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
“음식은 나와 불의 싸움이야”
잡지 <뿌리깊은 나무>의 한창기 발행인, 이만섭 전 국회의장, 박준규 전 국회의장, 이명박 전 대통령, 문재인 전 대통령도 이 집을 즐겨 찾았다. 1960년대 초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군인 시절부터 이 집을 다녀 대통령이 된 뒤에도 대구에 올 때면 꼭 이 추어탕을 가져다 조식으로 먹었다.
2대 차상남(76) 사장은 고집스럽기로 유명하다. 12월부터 3월 말까지 장사를 하지 않는다. 좋은 재료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어머니 천대겸(1993년 작고) 1대 사장이 상주에서 대구로 와서 중구 봉산동에 ‘상주집’이라는 상호의 식당을 차린 것이 처음이었다. 봄엔 육개장, 여름엔 닭개장을 하고 가을에 솎음배추가 나오면 3개월간 추어탕을 냈다. 그러다가 점점 이 집만의 강점을 살려 추어탕 전문점이 되었다.
식당은 1974년 이 자리로 옮겨 왔다. ‘대포’를 한두잔 파는 서민 식당이었지만 3남매 중 맏이인 차 사장은 ‘술집 가시내’라는 놀림을 동생에게 물려주기 싫었다고 했다. 중학 시절, 수면제를 죽지 않을 만큼만 삼키고 구급차에 실려 가는 항의 끝에 술을 안 팔겠다는 엄마의 항복을 얻어냈다. 그 뒤로도 차 사장은 “대구에서 가장 고집 센 여자”라는 말을 들었다. 대학 졸업 뒤 서울의 무역회사에 취직해 잘나가는 ‘커리어우먼’으로 성장했지만 어느날 자신을 바라보며 어머니가 우는 모습에 눌러앉게 됐다. 그 뒤 추어탕을 팔아 두 동생을 공부시켰는데, 대구를 기반으로 왕성히 활동 중인 현대미술가 차계남(69) 작가가 바로 밑의 여동생이다.
지금도 차 사장은 4시40분이면 일어나 재료를 장만한다. 5시면 마당 가득 배추가 들어온다. “전국에서 배추가 오는데, 봄에 전라도부터 시작해서 배추 산지가 점점 북상해 9월 강원도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남쪽으로 내려오면 11월이 되고, 배추도 끝이 나요.” 12월1일부터 식당도 긴 휴식에 들어간다. 식당 문을 여는 8개월간 차 사장은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않는다. 앉은자리에서 신문을 꼼꼼히 읽고 세상을 읽는다. 손님 한명 한명 특성을 예민하게 파악해 적절한 자리를 안내하고 언제 상을 내갈지 주도면밀하게 지시한다. 다양한 손님들이 드나들기에 어떤 정치색도, 종교색도 드러내지 않는다. 일본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돌아와 누나를 보필해온 남동생 차우철(66)씨는 차 사장을 두고 “오랜 세월 마치 수행자처럼 일관되고 엄정하게 살아온 어른”이라고 말했다. 주변에서 이 집만의 맛을 후대에게 물려주라고 해도 차 사장은 고개를 젓는다.
“음식은 나하고 불하고의 싸움이야. 최고의 재료를 쓰는데 조금만 잘못해도 죽이 된다고. 물려준 사람이 나같이 할 수 있으면 모르겠지만 ‘상주식당 이상해졌다’ 소리 듣기 싫어서 프랜차이즈도 안 한다고.”
대구 중구 국채보상로 상주식당 입구 양옆에 보관된 배추들. 배추가 나오지 않는 겨울 넉달 동안 식당은 문을 닫는다. 대구/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
4월~11월에만 파는 추어탕
추어탕이 가장 맛있을 때는 역시나 가을이다. “배추도 미꾸라지도 11월까지 제일 맛있을 때거든. 50그릇씩 냉동해가는 분들도 있어요. 나도 식당 문을 닫으면 냉동해뒀다가 끓여 먹는다고. 하루이틀 전에 얼가(얼려) 달라고 전화하면 얼가 놔서 가져가라 합니다.” 전국 택배는 하지 않는다. 물가가 올라 요즘은 한그릇에 1만1000원인데, 인상한 것을 못내 미안해한다. 양이 꽤 많아 반 그릇(7000원)도 판매한다.
대구 음식이 맵고 짜다는 편견에 대해서 그도 할 말이 있는 듯했다. “대구는 덥잖아. 옛날엔 냉장고가 없었으니까 빨리 쉬어서 맵고 짤 수밖에. 대구 사람들은 의리가 있고, 날씨만큼 끈기가 있고, 질기지. 중학교 때부터 끓여온 추어탕이니까 나도 끈질기게 했지.”
차 사장이 앉아 신문을 읽는 책상엔 이런 말이 붙어 있었다.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아라. 삶에는 연습이 없다. 내 삶의 그릇은 무엇으로 채울까.’ (상주식당: 대구광역시 중구 국채보상로 598-1, 053-425-5924)
대구/이유진 기자 fr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