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맥주 없는데선 약속도 안 잡았다” 하이트진로 첫 여성 영업지점장
[인터뷰] 윤승현 하이트진로 가정서부지점장
지난 4일 서울 서초구 하이트진로 본사에서 윤승현 가정서부지점장이 자사 인기 맥주 테라를 들고 있다. 하이트진로 제공 |
최근 10년 새 술 마시는 남성 비중은 줄고 여성 비중은 늘어나는 추세가 뚜렷하다. 2019년도 보건복지부 국민건강영양조사 기준으로 따져도 한달에 한차례 이상 술을 마시는 사람은 남성 73.4%, 여성은 48.4%. 10년전(2009년)엔 각각 75.8%, 43.4%였다. 이처럼 ‘주(酒)도권’이 여성에게 넘어가는 와중에도 주류 영업계의 남성 중심주의만은 좀체 흔들리지 않았다.
지난해 연말 하이트진로 정기인사에서는 드디어 ‘유리천장’이 깨졌다. 회사 창립(1924년) 이후 96년 만에 첫 여성 영업지점장이 탄생하면서다. 윤승현(45) 가정서부지점장이 그 주인공이다. “회사 맥주가 없는 곳에선 개인 약속도 안 잡았다”는 그를 지난 4일 서울 서초구 하이트진로 본사에서 만났다.
―첫 여성 영업 지점장이라는 승진 소식을 듣고 어땠나.
“처음엔 기쁘고 좋기보다 걱정되고 불안해서 잠도 안 왔다. 주변에서 후배 여성 직원들의 ‘롤모델’이라는 얘기를 들으니 부담도 됐고 잘해야 하는 생각이 컸다. 거래처든 회사든 사회적인 분위기가 이제는 남녀 직업군을 구분하는 시절이 지났다고 여기는 것 같다.”
―여성의 술 소비가 많이 늘어난 걸 생각하면 첫 여성 지점장 배출이 늦은 감이 있다.
“맞다. 마트에서 술을 사든, 식당에서 고르든 여성 입김이 세다. 회사에 여성 소비자를 대우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입사 초기에는 관리직에 있었다고 들었다.
“1997년 입사해 10년간 총무팀과 마케팅팀에 있었다. 그땐 여성 직원들은 대부분 지원부서에서 일했다. 2010년 회사에서 순환보직을 도입하면서 영업을 시작했고 줄곧 영업 파트에서 일했다. 처음엔 내가 왜 영업을 해야 하나 싶었다.”
하이트진로 쪽은 “2010년엔 전체 영업직에서 여성 직원 비율이 1.5%였지만, 현재는 약 5%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어땠길래?
“처음 배치받은 서울 강남역 일대는 모든 주류회사 영업사원들의 격전지다. 처음엔 식당에서 사장님한테 말 붙이기도 창피했다. 괜히 아는 사람 만날 것 같아 신경 쓰이고 경쟁사 영업사원이 오면 숨어있기도 했다. 하지만 승부욕이 있어서 나중엔 더 좋은 자리에 포스터 붙이려고 다투기도 한 게 재밌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때 새벽 거리행진이 있으면 영업직원들도 밤을 새웠다.”
―특별한 영업 노하우가 있나.
“특별한 건 없다. 계속 찾아가서 최대한 얼굴을 많이 비친다. 사람들이 그냥 맥주를 달라고 하더라도, ‘이모님’들께 우리 제품을 손님들에게 먼저 내달라고 부탁드리는 일이다.”
주류영업은 크게 도매사 영업(1차 거래선), 유흥업소 등 특판 영업(2차 거래선), 유통사 영업(가정용 주류)으로 나뉜다. 윤 지점장은 현재 경기 서부권(안양·과천·인천 등) 지역의 마트·슈퍼·편의점 영업을 총괄한다.
―영업직원으로 어떨 때 보람을 느꼈나.
“‘너 때문에 팔아준다’는 얘기 들을 때다. 우리 제품을 취급하지 않던 곳이 그런 얘길 할 때 제일 좋았다. 2017년에 필라이트(가정용)를 출시했을 때에는 결과가 좋아 재밌게 일했다. 매장당 70박스씩 들어갔는데, ‘완판’시켰던 기억이 난다. 신제품은 짧은 시간에 완판하기 쉽지 않다. 가장 싫은 건 ‘(제품을) 놔둬도 안 팔린다’는 얘기였다. 친한 친구들과 식당에서 만날 때도 미리 전화 걸어서 우리 제품이 있는지 확인했다. 만나서 맥주를 마실 텐데 우리 제품이 없는 게 싫어서였다. 친구들이 ‘병이다’라고 할 때도 있었다.”
―이제 직접 영업보다 ‘오더’ 내리는 역할이 커졌겠다.
“요즘은 일방적인 ‘오더’가 통하지 않는다. 공감을 해야 직원들도 따른다.”
―주량이 궁금하다.
“소주 한 병 정도? 폭탄주는 세잔 정도다.”
―가장 좋아하는 술은?
“소주보다 맥주를 좋아하는 편이다. 음식점에선 ‘테라’를 마시지만, 집에서는 ‘맥스’를 마신다. 이번엔 미국산 스페셜 호프 맥스가 나왔는데 묵직하고 맛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