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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방하게 화끈하게…운동하는 언니들, 우리도 놀자!

황진미의 TV새로고침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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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언니>(이채널)는 여성 운동선수들이 출연하는 예능으로 첫 회가 방송됐다. 골프의 박세리를 주축으로, 펜싱의 남현희, 배구의 이재영·이다영 자매, 피겨스케이팅의 곽민정, 수영의 정유인 등이 뭉쳐 엠티를 간다.


처음에는 약간 어색하고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나 혼자 산다>(문화방송)에 출연했던 박세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예능프로그램 고정출연이 처음이다. 더욱이 어린 시절부터 엄격한 자기관리하에서 살아온 선수들인지라, 전지훈련엔 익숙해도 목적 없이 여행 가서 마냥 먹고 즐기는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다. 심지어 곽민정은 다른 종목 선수를 처음 본다며 설레했다. 어색함은 금방 사라졌다. 사생활 토크 몇마디로 스스럼이 없어지고 선수들답게 화끈하게 놀이에 집중했다. 아침부터 고기 식사로 배를 채우고, 펀치 기계에 괴력을 자랑하고, 격렬하게 몸을 쓰며 물놀이를 즐기는 모습을 보니 묘한 해방감이 밀려온다.


왜 여태 이런 예능이 없었을까. 티브이(TV)만 틀면 고만고만한 남자 연예인들이 몰려다니며 노는 예능프로그램이 발에 챌 듯 많았는데. 방송 제의를 받은 박세리도 제작진에게 “보통 방송에 나오는 운동선수들은 남자인데, 어떻게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 생각을 했느냐”며 여자 선수들의 입지가 늘어날 수 있으리란 기대에 강력 지지했다고 한다. 남현희 역시 여성 선수들이 출연하는 예능이 생기길 바랐다며, 준비된 예능인의 속내를 드러냈다. 그동안 남자 체육인은 은퇴 뒤 예능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추다 아예 전문방송인이 된 경우도 많았다. 강호동, 서장훈, 안정환, 추성훈, 김동현 등등. 그런데 왜 여자 운동선수들이 나오는 예능프로그램은 없었던 걸까. 양궁, 골프, 피겨스케이팅, 스케이트, 쇼트트랙, 탁구, 배구, 핸드볼, 축구, 컬링 등 수많은 종목에서 한국 여자 스포츠의 실력은 세계 최강이고, 스타 선수도 많은데. 여성 예능인과 마찬가지로 여성 운동선수도 홀대받아왔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의 대화에 귀 기울이면 여성 선수로서 느낀 차별과 편견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있다. 곽민정은 여자 피겨 선수는 스무살만 넘어도 은퇴를 생각한다며 씁쓸하게 말한다. 정유인은 현역 여자 수영 선수 중에 결혼한 사람은 거의 없으며, 결혼한 것만으로도 계약이 안 될 수 있다고 말한다. 6명 중 유일하게 출산을 경험한 남현희는 출산 뒤 복귀가 힘들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선수로 복귀해 39살까지 에이스로 활약했다. 그는 말을 아꼈지만, 2006년 훈련 시즌이 아닌 기간에 코치의 허락을 받고 성형수술을 했다가 과도한 징계를 받아 2년가량 선수 생활을 못 한 억울한 일도 겪었다. 그동안 키, 성형, 출산, 나이 등으로 온갖 편견에 시달렸던 남현희가 앞으로 기막힌 체험담을 들려주리라 기대한다. 정유인은 날다람쥐 날개 같은 우람한 근육으로 좌중을 압도하였다. 그는 떡 벌어진 어깨로 성희롱을 당하거나 ‘남자 같다’는 놀림을 받기도 했지만, “이것이 나의 자랑”이라며 당당하게 말한다.


과연 정유인의 근육은 여성의 몸에 대한 낯선 감각을 일깨운다. ‘아름다운 여자 몸’의 기준은 무엇일까. 말랐지만 가슴과 엉덩이는 비정상적으로 커야 하고, 늘씬하지만 근육이 발달해선 안 되며, 키는 크지만 남자보다 크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남성의 눈으로 보았을 때, 성적인 욕망은 일으키되 위압감은 들지 않아야 함을 뜻한다. 즉 관음의 대상으로 얼마나 남성의 성적 판타지에 복무하는지가 미의 기준이 된다. 그런데 남성의 자아가 위축될수록 ‘아름다운 여자 몸’의 기준도 갈수록 어려지고 여위고 왜곡돼 간다. 그 결과 점점 더 소녀 같고 인형 같은 여자 아이돌의 모습이 ‘이상적인 여자의 몸’으로 등극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여자의 몸은 남자의 성적 판타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여자의 몸은 여성의 자아를 구성하며 그 자체로 기능과 효능을 지닌다. 운동하는 여자의 몸은 이런 자명한 사실을 일깨운다. 최근 예능에는 운동하는 여성의 몸이 자주 등장한다. 김민경의 ‘운동뚱’이나 <온앤오프>(티브이엔)에서 서핑하는 최여진 등을 꼽을 수 있다. 김민경의 뚱뚱한 몸은 그동안 열등한 몸인 양 취급받아 왔지만, 그의 타고난 힘과 운동신경은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슈퍼모델 출신 최여진의 몸은 관음의 대상이 되곤 했지만, 서핑하는 근육질의 몸은 경탄의 대상이 된다. 영화 <킹콩을 들다>나 드라마 <역도요정 김복주>(문화방송)에는 운동하는 여자들이 자신의 강한 몸과 여성성 사이에서 느끼는 괴리감이 잘 묘사돼 있다. <노는 언니>를 비롯해 운동하는 ‘언니들’을 직접 비추는 콘텐츠가 많아질수록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 대해 느끼는 소외감과 위화감은 줄어들 것이다.


바라는 것이 있다. 첫째, 2회에 유세윤, 장성규, 황광희 등 초대손님의 출연이 예고됐는데 모처럼 언니들끼리 만든 오붓한 분위기를 굳이 남자 예능인을 섞어 흐리지 말았으면 좋겠다. 초대 손님을 부르려면 이효리, 김민경, 김연경, 김연아, 손연재 등 다른 ‘노는 언니’를 섭외하라. 둘째, ‘언니들’의 호방한 토크에 성역이나 금기를 두지 말라. 그리하여 이들의 자연스러운 대화 속에 국가대표 수영 선수 탈의실 불법촬영, 심석희 선수 성폭행 피해, 최숙현 선수와 고유민 선수의 극단적 선택, 컬링 팀킴 사건 등 여성 운동선수들이 겪는 구조적인 폭력과 착취의 문제가 언급될 수 있으면 좋겠다. 노는 언니,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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