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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3D 프린팅은 왜 ‘패스트 팔로워’도 못될까

[한겨레] [윤기영의 원려심모(遠慮深謀)]



디지털과 물리세계가 만난다

한겨레

3D 프린팅은 디지털 세계가 물리세계로 튀어나오는 접점이다. 산업용사물통신(IIoT)과 사물통신(IoT) 기술이 물리세계의 정보를 디지털 세계로 전환하는 접점이라면, 디지털 세계를 물리세계로 구현하는 것이 3D 프린팅이다. 디지털 세계와 물리 세계의 융합은 세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만든다. 3D 프린팅을 포함한 디지털 기술은 세계를 정보와 지식의 흐름으로 보게 만든다.


3D 프린팅을 전문용어로 적층제조(Additive Manufacturing)라고 한다. 생명체가 자가 조립의 형태로 이를 구현한 것이 4D 프린팅이라고 하며, 3D 프린팅은 한층한층을 누적하여 프린팅을 하는 것으로 절삭제조(Subtractive Manufacturing)와 비교된다. 미켈란젤로가 조각에 대해 한 말은 이 절삭제조가 가지는 영감을 보여준다.


“최고의 예술가는 대리석의 내부에 잠들어 있는 존재를 볼 수 있다. 조각가의 손은 돌 안에 자고 있는 형상을 자유롭게 풀어주기 위하여 돌을 깨트리고 그를 깨운다.”


3D 프린팅은 디지털과 물리세계를 이어주고, 정보와 지식의 흐름에 변혁을 주며, 물리세계의 유체물을 재해석하고, 그 가공공정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온다. 이는 미켈란제로의 다비드 상과 3D 프린팅으로 재해석된 다비드 상을 비교해서 보면 명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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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 인해 3D 프린팅을 미래촉매 기술의 하나로 선정하는데는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2013년 매킨지의 파괴적 기술 보고서, 2016년 OECD 미래 기술 트렌드 보고서, 같은 해 PwC의 8대 미래기술 보고서 등에서 3D 프린팅은 공통적으로 미래 기술로 선정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에서도 3D 프린팅 교육 및 건설 등의 과제를 선정했다.


3D 프린팅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3D 프린팅은 범용기술(General Purpose Technology)이므로, 제조, 예술, 의료 및 서비스 등 모든 분야에 적용될 수 있다. 다만 우리나라가 제조업 강국이고, 현재 우리나라가 제조업 분야에서의 기술실업이 진행되고 있으므로, 제조업 분야에 다소 중점을 두고 설명을 진행하겠다. 3D 프린팅은 크게 지식생산의 가속화, 공정의 변혁과 제품의 형태의 의미 변화의 세가지 점에 착안하여 설명을 진행하겠다.


3D 프린팅은 초기에 급속 프로토타이핑(Rapid Prototyping)으로도 불리웠다. 제품 개발이란 무수한 시행착오의 과정이다. 제조물에 국한해서 보자면 시제품을 만들고 테스트하고, 다시 보완된 시제품을 만드는 과정이 반복된다. 이 과정 중에 필요한 경우 금형까지 만들어야 한다. 이에 따른 개발비용은 적지 않다. 과거의 혁신은 위험하며 전략적 의사결정이 필요했다. 개발비용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실패비용이 매우 컸다. 막대한 개발비용이 든 신규 상품이 실패하는 경우, 기업은 생사 기로에 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3D 프린팅을 이용해 프로토타이핑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되었다. 3D 프린팅으로 의료용 의수를 개발한 이상호 만드로 대표는 3D 프린터로 수백번 의수 모형을 개발했다. 이를 전통적 개발 방식으로 접근했다면, 작은 기업이 그 비용을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디지털 변혁 혹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다른 한편으로 데이터, 정보 및 지식의 라이프싸이클 변혁이기도 하다. 3D 프린팅도 지식의 생산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3D 프린팅 및 디지털 기술은 혁신 비용을 줄일 수 있다. 혁신은 큰 기업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개인도 혁신을 주도할 수 있게 되었다. 제조업이 2차산업(Secondary Activity)에서 지식산업(Quaternary Activity)로 전환되었다는 의미다. 지식 생산의 촉매제로서의 3D 프린팅은 기업의 조직구조와 조직문화의 변화를 요구한다.


3D 프린팅은 공정의 변화를 야기한다. 이는 제조업 뿐만 아니라, 예술활동과 의료 서비스의 공정을 변혁시킨다. 보청기는 착용자의 귀의 형태에 맞추어 제작되어야 하는데, 이로 인해 3D 프린팅으로 가장 빠르게 전환된 산업분야다. 3D 프린팅 이전의 보청기 생산 공정은 9단계이나, 3D 프린팅으로 3단계로 줄어들었다. 제조업에 국한해서 말하자면 3D 프린팅을 도입한다는 의미는 제조 공정의 재설계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의료 서비스에서도 그 공정의 변혁이 필요한 것은 마찬가지다.


3D 프린팅은 제조물의 의미와 개념을 변화시킨다. 절삭제조 방식으로는 불가능한 구조를 3D 프린팅으로는 큰 어려움 없이 완성품을 만들 수 있다. 3D 프린팅은 매우 복잡하면서도, 가벼우면서, 물리적으로 더욱 안정적이고 질긴 구조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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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프린팅은 제조업의 최종 제품의 개념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온다. 3D 프린팅이 혁신의 일상화와 범용화의 촉매역할을 하고, 공정에 근본적 변혁을 가져오는 것은, 제조업의 가치사슬에 변화를 가져온다. 그런데 최종 제품의 개념의 변화는 제조업 등의 의미와 가치 및 형태에 탈바꿈을 요구한다.


제조업 강국인 한국사회에서 3D 프린팅이 야기할 변화의 폭과 깊이는 생각 이상일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한국사회에서도 큰 이견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3D 프린팅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점이다. 3D 프린팅이 디지털 기술, 물리 컴퓨팅 및 재료 등이 결합된 분야인데 그 어느 것도 차별적 경쟁력을 갖춘 분야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보다 살펴보기 위해서는 3D 프린팅의 실체에 대해서 좀 더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개념 기술, 범용 기술 그리고 디지털 기술


3D 프린팅은 개념이지, 특정한 기술이 아니다. 즉, 다양한 기술에 의해 3D 프린팅을 구현하는 것이 가능하다. 3D 프린팅의 기술 유형은 현재까지 크게 7가지로 나뉜다. 재료를 분사하거나(Material Jetting), 노즐로 뽑아내거나(Material Extrusion), 광중합 소재를 빛으로 쏘아 굳히거나(Vat Photopolymerization), 얇게 편 가루 위에 점착제를 분사(Binder Jetting)하거나, 혹은 얇게 편 금속 가루를 레이저로 소결(Powder Bed Fusion)하거나, 조금씩 금속가루를 내보내고 거기다가 레이저를 쏘아 소결하거나(Directed Energy Deposition), 혹은 얇은 종이나 금속을 한장씩 잘라서 붙이는(Sheet lamination) 방식이 그것이다. 3D 프린팅으로 집을 짓는 경우 콘크리트를 노즐로 뽑아내는 방식을 사용하게 된다. 항공기 엔진을 만드는 경우 얇게 편 금속 가루를 레이저로 소결하거나 혹은 점착제로 일차 굳힌 후 열처리를 하는 방식을 취하게 된다. 이밖에도 3D 프린팅의 기술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분자를 조립하는 3D 프린터가 실험실 수준에서 성공했으며, 점액질 내에서 3D 프린팅을 함으로써 프린팅 속도를 증가시키는 기술도 등장했다. 3D 프린팅은 특정 기술이 아니라 일종의 개념기술이다.


3D 프린팅은 디지털 기술이다. 3D 프린터 자체는 물리 컴퓨팅과 재료 및 쓰임새의 결합이다. 쓰임새에 따라 재료가 결정되고, 재료의 물리적 특성은 물리 컴퓨팅에 영향을 미친다. 3D 프린팅은 디지털 세계와 물리 세계를 연결하는 가교다. 가상현실 및 증강현실의 3D 모델은 3D 프린팅으로 현실세계에 튀어나올 수 있다. 유통되는 것은 유체물인 상품이 아니라 디지털 설계 모델이 될 것이다. 가상현실 기술이 성숙함에 따라, 이러한 이행은 속도를 증가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리쇼어링(Reshoring)은 정착되고 일반화된다. 최종 제품을 설계하는 개념인 생성 디자인(Generative Design)은 디지털 기술에 기반한다. 의료용 카데바를 출력하기 위해서는 MRI 정보를 3D 모델로 전환하는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필요로 한다. 3D 프린터 및 프린팅 산업은 IT 전문가 특히 소프트웨어 전문가를 필요로 한다. 보다 정확하게는 물리 컴퓨팅 전문가, 3D 모델 관련 소프트웨어 전문가, 3D 프린팅을 활용하고자 하는 해당 분야 전문가 및 재료 전문가가 대화하고, 협업할 수 있는 역량과 생태계의 구축이 필요하다.


3D 프린팅은 범용기술(General Purpose Technology)이다. 범용기술은 국가나 전지구적 차원에서 전체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술을 의미한다. 즉, 특정한 쓰임새에만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범용적으로 사용됨으로써 생산성과 효율성 증가 및 생산방식과 삶의 방식과 같은 질적 변화를 야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인쇄술, 증기기관, 전기 및 컴퓨터 등이 범용기술에 해당한다. 범용기술은 사후적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다만 과거의 범용기술의 사례를 분석하여 그 후보군을 짐작할 수는 있다. 3D 프린팅은 가장 강력한 범용기술의 하나다. 범용기술이란 그 응용분야가 매우 넓다. 3D 프린팅은 제조업 뿐만 아니라. 의료, 예술, 에너지, 우주, 전자/전기 등의 모든 분야에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3D 프린팅 재료에 대한 연구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며, 그 쓰임새도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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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3D 프린팅의 안타까운 현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가 3D 프린팅 분야에서 패스트 팔로워도 되지 못하고 있다. Web of Science를 기준으로 분석하면, 한국계 학자가 의료 분야의 3D 프린팅에 어느 정도 성과를 보여주고 있으나, 그 이외에는 큰 성과를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 개념으로서의 3D 프린터에 대한 연구나, 디지털 기술로서의 3D 프린터에 대한 연구는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최근 의료 분야의 3D 프린팅 소프트웨어 전문기업인 메디컬 아이피가 올해 가트너의 3D 프린팅 분야와 의료 분야에서 대표적 기업의 하나로 선정된 것이 그나마 위안이다. 일부 기업에서 대형 금속 프린팅을 연구 개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위상과 욕심에 비해 3D 프린팅 분야는 그 환경과 경쟁력이 열악하다.


우리나라 3D 프린팅 분야는 그것이 프린터이든, 재료이든, 활용이든 혹은 소프트웨어이든 경쟁국가에 뒤처져 있다는 점은 꽤 아프다. 3D 프린팅을 같이 연구했던 교수 한 분은 3D 프린팅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패스트 팔로워도 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필자는 이에 충분히 공감하고 동의한다. 3년여간 3D 프린팅에 대한 미래전략 과제를 수행했던 필자는 다음과 같은 제언을 하고 싶다.


■ 3D 프린팅은 공정 변혁을 가져온다. 3D 프린팅, 산업용사물통신 등과 연계하여 전통적 공정을 재설계할 수 있도록 접근해야 한다.


■ 3D 프린팅은 디지털 기술이다. 3D 프린팅과 관련성이 있는 IT 전문가와 소프트웨어 전문가를 다양한 활용 분야에서 키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3D 프린팅은 개념이다. 새로운 형태와 개념의 3D 프린팅은 끊임 없이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대학을 중심으로 실험적이고 창의적 접근을 독려해야 한다.


■ 범용 기술로서의 3D 프린팅은 다양한 분야에서 융합적으로 연구되고 응용돼야 한다. 3D 프린팅을 부처별로 나누지 말고 통합하여 응용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미래역량이 협조, 협상, 대화 역량이다. 우리나라 정부부처의 미래역량을 3D 프린팅에서부터 키우도록 서로 협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3D 프린팅은 상품을 포함한 유체물의 개념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고가의 하이테크 스마트 제품은 3D 프린팅으로 제조될 것이다. 의료분야와 항공기 분야 등에서 3D 프린팅이 발전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장기적으로는, 3D 프린팅이 절삭제조와 달리 많은 부품이 필요하지 않게 됨에 따라, 부품산업의 변혁을 가져올 것이다.


3D 프린팅 성숙도가 낮다는 것은 이익률은 낮아지고 차별적 경쟁력은 떨어지게 된다는 의미다. 3D 프린팅은 수출 품목의 변화도 가져올 것이다 .제조업 강국으로서의 한국 정부와 기업이 3D 프린팅을 보다 전향적으로 그리고 단기 적응 전략 뿐만 아니라, 중장기 전략으로 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패스트 팔로워 조차도 되지 못한 한국사회가 팔로워가 아니라 리더로서 변혁(Transformation)하기를 간절하게 고대하고, 기대하며, 응원한다. 이것이 필자의 3D 프린팅에 대한 원려(遠慮)이다.


윤기영/미래학자·에프엔에스 미래전략 연구소장


synsaj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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