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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놈펜에 ‘미쉐린 가이드’ 들어오면 ‘별’은 여기에 [ESC]

캄보디아 미식 기행

프랑스 식민지 역사 영향

정통 프렌치 식당 ‘토파즈’

전통에 현대 가미한 ‘말리스’

재래시장 노점 국수도 추천


한겨레

캄보디아 전통 음식을 내는 레스토랑 ‘말리스’의 식탁.

동남아시아를 여행할 때 몇가지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장면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있다. 그중에서 음식이야말로 가장 그 지역이 주는 감동을 도드라지게 하는 요소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발효랄까, 자연에서 갓 건져 올린 투박함, 허브와 향신료의 절도 있는 가세가 어우러져 혀를 흥분시킨다. 이런 전제에서 보면 지난해 한 캄보디아 미식 기행은 좀 결이 달랐다. 나는 프놈펜은 처음이었다. 현지 전문가도 더 말할 필요 없는 세계적 유산인 앙코르와트에 가까운 시엠레아프(시엠립)를 선택하지 않은 것을 의아해했다. 하지만 우리 일행은 프놈펜에서 제대로 된 미식을 원했다. 프놈펜은 그런 자격이 있는 도시였다.


나는 이미 이번 여정을 시작하기 전에 동남아시아의 건축물을 다룬 한 출판물을 본 적이 있다. 동남아시아에서 이루어지는 ‘인공물’ 기획은 대단한 성과를 보였다. 멋진 건축과 빌딩(마천루라고는 할 수 없지만)은 프놈펜에도 있었다. 방콕이나 쿠알라룸푸르가 아니고 말이다. 프놈펜에 이미 고층 빌딩이 들어서고 있었고, 그곳은 잘 기획된 식당과 유흥 공간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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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놈펜 최고의 프렌치 레스토랑 ‘토파즈’.

캄보디아는 알려진 대로 오랜 내전과 식민의 시간을 보냈다. 자랑스러운 크메르제국의 역사에서 현재로 이어지는데, 프랑스 식민의 역사는 뜻밖의 미식의 공간을 열어놓고 있었다. 절제된 요리와 재료의 이해, 복합적이면서도 클래식한 맛, 여기에 캄보디아만의 향과 색깔을 입힌 식당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레스토랑 ‘토파즈’(Topaz). 수도 프놈펜의 가장 중요한 지역에 자리 잡은 이 식당은 그야말로 제대로 된 프렌치를 내고 있다. 세계의 미식은 프랑스식이라는 하나의 통로를 통해서 갈래가 생겨났다. 시간이 흐르면서 각국의 프렌치 레스토랑의 셰프들은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프렌치의 기술과 방식 안에서 자국의 재료와 셰프의 기술, 그러니까 ‘해석’이라고 하는 방식을 찾게 된다. 토파즈는 그런 면에서 입장이 다른 것 같았다. 조금 더 철저하게 프렌치적인 색깔과 맛, 서비스 방식을 고수하는 듯했다. 그냥 프랑스 안에 있는 고급 프렌치 식당이라고 해도 된다. 프놈펜의 하늘과 공기를 호흡하는 너른 공간은 배치가 입체적이어서 어느 자리에 있어도 아름다운 클래식한 풍광을 느끼게 해준다. 마당의 돌 하나까지 세련되고도 정중하게 설계해 놓은 것이 느껴진다. 우리는 한 룸에서 서비스를 받았는데, 나는 탄식하듯 이렇게 말했다. “프놈펜에 ‘미쉐린 가이드’가 들어오지 않은 것은 유감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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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레스토랑 ‘토파즈’는 세련된 프렌치 음식을 선보이는 곳이다.

동석한 요리 전문가 한분은 내 견해에 완벽하게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처음 나온 수프를 한술 뜨는 순간 고개를 끄덕였다. 오리와 고기를 다루는 솜씨, 게살과 캐비아를 올린 전채, 완벽하게 온도와 밀도를 채운 파테(고기나 생선 구운 것을 파이 껍질로 싸서 구운 것)까지 도대체 “왜 이런 식당이 프놈펜에 있는가” 하는 의문을 던지게 했다. 이 미식 기행을 주도한 한·아세안센터(한국과 동남아시아국가연합 10개국의 연합 공식국제기구)는 이런 예외적인 공간이 동남아시아 여러 도시에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싶어 했을 것이다. 그 의도가 맞는다면 충분하고 넘쳤다. 토파즈를 기억하기로 했다. 외람되지만, 이 나라에 언젠가 ‘미쉐린 가이드’가 들어온다면 가장 먼저 별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음료를 포함해서 저녁 1인당 100달러(약 14만7천원) 내외 예상.(topaz.thalias.com.kh/House, number 162 Norodom Blvd, Phnom Pehn/+855 15 821 888)


프놈펜은 오래전 동남아시아에서 우리가 흔히 보고 즐겼던 저렴하면서도 친환경적인 공간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음식 역시 그렇다. 서민들은 싸고 맛있고 흥미로운 시장과 소박한 식당을 즐긴다. 관광객도 마찬가지다. 그곳에 나는 당연히 간다. 그 전에 캄보디아의 전통 요리를 흥미롭게 풀어가는 고급 식당은 없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 마치 우리가 개발 이전 시대에도 한정식이랄까, 정갈한 한식을 공급했듯이. 한·아세안센터와 프놈펜의 친구들은 그런 공간을 미리 확보하고 있었다. 프놈펜 시내에 있는 아주 오래된,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해석을 가미한 요리를 준비한 식당이다. ‘말리스’(Malis)다. 인기가 높아서 반드시 예약해야 한다. 토파즈가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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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놈펜의 대표적인 현지식을 다루는 말리스 레스토랑.

프놈펜은 고급 로컬식당을 많이 보유하고 있지는 않다. 말리스는 그래서 더 독보적이다. 영어가 통하며, 직원들은 꼭 필요한 서비스 기술을 갖추고 있다. 나는 사실 타이와 베트남 음식을 구별할 수는 있어도 미얀마와 라오스, 캄보디아의 음식까지는 변별할 능력이 없다. 당신도 그렇다면 이 식당에서 캄보디아 음식을 학습할 수 있다. 파인애플 볶음밥은 동남아시아에서 볼 수 있는 보편적인 음식이랄 수 있지만, 말리스는 아주 유려하게 볶았다. 간이 신중했다. 프놈펜은 중요한 강 4개를 끼고 있다. 고층 빌딩에 올라가면 이 강의 여러 줄기를 볼 수 있다. 강은 프놈펜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강과 가까운 바다에서는 질 좋은 수산물이 잡힌다. 말리스의 인기 요리인 ‘아목’은 그런 종류다. 아목은 특정 생선을 지칭하지 않는 명칭인데, 대체로 메기처럼 크림 같은 부드러운 질감을 가진 민물 생선을 말한다. 이것을 커리나 여러 양념에 넣거나 묻혀 찌거나 굽는다. 캄보디아 국민 생선요리라고 해도 된다. 프놈펜 시내 여러 전통시장에서 이 생선을 즉석에서 손질해서 파는 걸 볼 수 있다. 한 가지 더. 전통시장에선 여러 고급 가재류, 게, 새우 등의 품질 좋은 활어류를 판다. 이런 재료가 모두 말리스의 재료가 된다. 오랫동안 수련한 캄보디아인 셰프들이 다채롭게 재료를 다룬다. 자극적이지 않고 부드러우며 세련된 터치와 전통적인 조리법과 유럽의 이국적 요리법을 두루 응용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캄보디아에는 아주 훌륭한 후추 농장이 산재한다. 현지 방문을 해보기도 했다. 주로 유기농으로 후추를 생산하며 이런 재료를 말리스의 요리에서도 맛볼 수 있다(후추 생산지 이름을 딴 ‘캄포트 후추 가리비요리’와 ‘후추 크렘 브륄레’! 등). 또 프놈펜 시내에는 럼주를 생산하는 증류소가 있는데 이곳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럼주가 바로 후추로 향을 낸 것이다. 프놈펜국제공항에서 필수품으로 구매하는 게 바로 후추 럼주와 후추 가공품들이다. 저녁 1인당 60달러(약 8만8천원) 내외 예상.(malis.thalis.com.kh/Phnom, 136 Norodom Blvd, Pehn 12301/+855 15 814 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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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의 전통시장에서 맛볼 수 있는 국수.

프놈펜은 오래된 수도답게 전통시장도 발달했다. 그중에 가장 로컬다운 시장은 ‘프사르 칸달’(칸달 시장)이다.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로컬 재래시장으로 고기, 생선(민물 위주), 채소, 과일 등의 식자재를 판매하는 상인들이 많고 국수 등의 현지 음식을 파는 가판 식당도 많다. 아침 일찍부터 현지인들로 붐비는 곳이다. 조금 크고 관광하기 좋은 전통시장은 ‘프사르 트메이’다. 프놈펜 중심부의 가장 유명한 시장 중 하나다. 크메르어로 ‘새 시장’이라는 뜻이며, 영어로는 ‘센트럴 마켓’으로도 알려져 있다. 프랑스 통치 시기인 1937년에 프랑스 건축가 장 데부아가 설계한 아르데코 양식의 건축물에 들어서 있다. 이 시장에서 캄보디아 전통 국수인 눔반초크를 먹어볼 것을 추천한다. 커리, 레몬그라스, 코코아 우유 등을 많이 사용하며 아주 맛있다. 수프톰(소고기와 미트볼이 들어간 큰 국수), 미수프 사크 무안( 닭고기와 국물이 들어간 국수), 바바르 로바스 사크(고기와 숙주가 포함된 죽이나 면) 등의 국수 라인업을 알고 가면 좋다. 한국 돈으로 약 3500원 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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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추가 재료인 칵테일. ‘엘리펀트 바’에서 맛볼 수 있다.

밤에 분위기 있는 바에서 한잔하고 싶다면 전통적인 호텔인 ‘래플스 호텔 르 로열’의 1층 바를 이용할 것. 엘리펀트 바가 그곳이다. 고풍스러운 분위기에서 다양한 칵테일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특히 1967년 재클린 케네디가 방문했을 때 그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팜 파탈’ 칵테일이 유명하다. 캄포트 페퍼 칵테일, 피프스 필라 등 대회에서 수상한 칵테일도 있고 친환경 칵테일 메뉴도 있다. 칵테일의 평균 가격은 18달러(약 2만6천원). 땅콩, 캐슈너트, 말린 바나나를 애프터눈 티 같은 3단 찬합에 제공한다. 래플스 호텔은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도 머물렀다.


글 박찬일 요리사 겸 음식칼럼니스트, 사진 박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