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을 알리는 전화벨이 울리고…
영화 ‘완벽한 타인’ 리뷰
40년 죽마고우 커플 모임
재미로 휴대폰 공유 게임했다가
한꺼풀씩 드러나는 ‘불편한 진실’
이탈리아 동명영화 원작 삼아
‘19금 농담’ 버무린 블랙코미디
잘 짜인 플롯·찰떡 연기 호흡 볼만
영화 '완벽한 타인'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당신의 비밀은 안녕한가요?”
40년지기 친구들이 아내와 함께 커플 모임을 하고 있다. 자신들 근황, 지인 뒷담화, 아이 양육문제 등 소소한 일상을 나누다가 누군가의 제안으로 간단한 게임을 시작한다. 각자 휴대전화를 테이블 위에 놓고 지금부터 음성통화는 물론 문자와 이메일까지 모두 공유하자는 것이다. 규칙은 간단하다. 통화는 스피커폰으로 하고, 문자와 이메일은 소리내 읽으면 된다. 재미로 시작한 게임은 과연 이들의 일상에 어떤 균열을 만들어낼 것인가?
영화 <완벽한 타인>(31일 개봉)은 현대인의 모든 걸 담고 있는 휴대전화를 매개로 숨겨왔던 각자의 ‘불편한 진실’이 한꺼풀씩 벗겨지면서 벌어지는 예측불허 상황을 담았다. 이탈리아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캐릭터와 에피소드를 한국적 상황에 맞게 각색한 리메이크작이다.
영화 '완벽한 타인'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자상하고 가정적인 가슴성형 전문의 석호(조진웅)와 아내인 정신과 의사 예진(김지수)은 이날의 호스트. 집들이를 겸해 모임이 열렸다. 고지식하고 가부장적인 변호사 태수(유해진)와 문학수업에 푹 빠진 전업주부인 그의 아내 수현(염정아), 레스토랑을 개업한 사고뭉치 준모(이서진)와 수의사인 어린 아내 세경(송하윤), 최근 교사를 때려치우고 이혼까지 한 백수 영배(윤경호)까지 등장인물은 모두 7명.
모두 흔쾌히 동의하고 시작한 게임인 듯 보이지만, 저마다 내면은 복잡하다. 누구는 걱정과 불안에 안절부절 못하고, 누구는 싹트는 의심에 괴롭다. 영화는 한정된 시공간 안에서 별다른 장치 없이 휴대전화에 의지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벨과 메시지 수신음이 울릴 때마다 한 사람씩 새로운 비밀이 드러나는 식이다. 사소하게는 다른 사람 뒷담화나 배우자에게 숨긴 금전 문제부터 집안을 풍비박산낼 정도의 메가톤급 진실이 차례로 베일을 벗는다. 강도를 더하며 점층적으로 쌓여가는 사건 앞에 벨이 울릴 때마다 ‘다음엔 또 뭘까’를 기대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40년을 알고 지내며 형제 같다고 믿었던 친구, 단점은 있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남편(혹은 아내)이라 믿었던 배우자가 알고보면 ‘완벽한 타인’임이 드러나면서 영화는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영화 시작과 끝에 배치되는 ‘월식’은 의미심장한 상징물이다.
영화 '완벽한 타인'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영화는 잘 짜인 원작의 플롯을 차용하면서 중간중간 빵 터지는 성적 농담과 말맛을 살린 차진 대사로 완급을 조절하는 블랙코미디의 미덕을 보여준다. 특히 7등분한 각자 몫을 해내며 고르게 활약하는 배우들 연기가 장점이다. 위기의 순간마다 클로즈업되는 표정·눈짓·숨소리까지 계산한 듯 완벽한데다 진짜 40년지기 죽마고우처럼 찰떡호흡을 자랑한다.
아쉬운 점은 한국영화의 고질병인 여성 캐릭터의 전형성이다. 가부장적 남편 치하에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전업주부, 일은 똑부러지지만 자식 문제만큼은 소아병적 모습을 보이는 커리어우먼, 띠동갑 남편과 사는 귀엽고 애교 넘치는 어린 아내 역할이 조금은 식상하다.
영화 '완벽한 타인'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휴대전화는 현대인에게 ‘판도라의 상자’로 불린다. 상대가 숨겨둔 상자를 열지 말지는 각자의 선택일 터. 하지만 감독은 선택지를 내미는 척하다가 갑자기 “모르는 게 약”이란 고전적이고 비겁한 수법을 꺼내 든다.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고, 우리 모두는 깨지기 쉬운 존재들이기 때문”이라고 은밀히 속삭이면서. 이 영화의 가장 논쟁적인 지점이 결말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