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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슬·팰리스=아파트? 빌라에도 ‘브랜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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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로 공간읽기


다세대주택도 브랜드화


단단집·써드플레이스 등


개성있는 공간 설계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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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집의 외관. AOA 아키텍츠 건축사무소 누리집 갈무리

유학 시절, 우스갯소리로 “한국 사람들은 다 공주고 왕자냐”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한국에 편지를 보내려 주소를 영어로 쓰는데, 캐슬(성)이니 팰리스(궁)니 하는 단어가 떡 하고 들어가 있으니 말이다. 인터넷에서 한국 아파트 브랜드의 과도한 이름 짓기에 대해 풍자적인 유머가 돌기도 했다. 실소를 자아내는 이 화려한 이름의 탄생 배경은 아파트의 브랜드화부터 시작된다.


2000년 대림산업은 경기 용인시 기흥구 아파트 분양을 앞두고 ‘이(e)-편한세상’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같은 해 삼성물산 역시 ‘래미안’이라는 아파트 브랜드 선포식을 열고 본격적으로 브랜드화에 돛을 올렸다. 대림아파트는 이-편한세상이 되고, 삼성아파트는 래미안이 됐다. 이 같은 브랜드 난립 시대를 연 계기는 1998년의 분양가 자율화 정책이었다. 분양가를 건설사가 정할 수 있게 되면서 다양한 품질과 가격의 아파트가 나왔고,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서 건설사 이름 이상의 특별한 것이 필요했다. 여기에 브랜드가 등장한 것.


그동안 아파트 브랜드는 단순히 있어 보이는 것을 넘어, 차별화된 설계 디자인과 브랜드 서비스, 커뮤니티의 자체 콘텐츠 등으로 각자의 고유 가치를 형성했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준다”는 광고 카피 문구가 틀린 말은 아닌 셈이다.


마치 우리가 백색가전을 살 때 ‘○○전자라면 믿고 산다’는 얘기를 하듯 브랜드 아파트를 선호하는 것은 해당 브랜드의 인지도와 품질, 기능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간 우리 곁에 늘 있었고 많은 이들이 살아왔던, 수많은 다세대주택(빌라)은 왜 브랜드 대항해 시대에 끼지 못했던 걸까? 이제 막 브랜드로 태어나고 있는 다세대주택의 귀엽고 신선한 움직임들을 통해 들여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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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집의 내부. AOA 아키텍츠 건축사무소 누리집 갈무리

서울 망원동 골목에서 골목 사이로 들어가다 보면 줄지은 빌라들 사이에 눈에 띄는 빨간 건물이 있다. 게임 마인크래프트에서 튀어나온 듯 외벽을 둘러싼 붉은 타일과 흰 타일, 차곡차곡 각지게 쌓아 올라간 모양새가 참 귀엽다. 단면의 단들이 반복되는 이 빌라는 에이오에이(AOA)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에서 설계한 ‘단단집’이다. 약 35㎡(10.6평)의 다섯 가구가 사는 이 작은 빌라는 잘 빠진 넓은 주방에 볕 쬐는 테라스도 있고, 샤워실은 변기와 분리되어 쾌적한, 작지 않은 잘 지은 집이다. 에이오에이 서재원 대표는 올해 초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찍어내듯 만드는 빌라에서 살다 보면 불폄함이 쌓이고 결국 아파트로 이사하게 만드는 빌라 문화를 돌아보게 하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건축주 역시 이런 생각을 존중해 조형성과 효율성이 높은 공간을 만들었다. 단단집이라는 공간은 브랜드가 되었다. 마치 아파트처럼, 단단집에 산다는 것은 쾌적한 개인 공간과 볕 잘 드는 집에 산다는 뜻. 넉넉하게 요리를 해 먹을 수 있고, 나만의 베란다를 가질 수 있다는, 내가 선택한 브랜드에서 기대할 수 있는 보장된 약속이다.


써드플레이스는 다세대주택이자 공동체주택이다. 써드플레이스의 건축주이자 건축가인 박창현 소장(에이라운드 건축)은 혼자 살더라도 집다운 집에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곳을 설계했다고 한다. 작은 오솔길을 따라 건물로 마주해 걸어가면 1층엔 작은 와인바가 있고, 입주자들의 공용 공간이 있다. 어둡지 않은 불빛에 안심하고 건물에 들어서면 둥근 복도를 따라 각자의 집으로 이어진다. 층과 복도는 테라스가 달려 있어 빛과 공기, 바람을 느낄 수 있다. 내부 역시 집의 배치에 따라 구성과 면적이 모두 다르고, 작아도 공간별로 구획이 되어 있어 밥을 먹으며 화장실을 보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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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드플레이스의 외관. 에이라운드 건축 누리집 갈무리

이곳만의 특별한 점은 입주조건으로 한 달에 한 번 같이 식사를 하는, ‘일월일식 프로그램’이다. 브랜드 아파트에서 제공하는 서비스 같은, 일종의 커뮤니티십 빌딩 프로그램이다. 다세대주택이 건물 외관이나 설계 외에도 하나의 정체성을 위한 콘텐츠를 고민하고 신경 쓰고 있다는 지점이다. 써드플레이스는 서울 홍은동뿐만 아니라 전농동에도 있다. 추후 여러 개를 더 짓고 서울형 공동체주택으로 인증받고자 하는 계획이 있다. 더욱 많은 세대들이 써드플레이스라는 브랜드를 매개로 이웃 간 연결되는 삶이 구현되도록 말이다.


주거 공간이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라 남에게 보이는 공간으로 확대되었다는 말에 공감한다. 예전 주거 공간은 아파트, 다세대주택 할 것 없이 대부분 모양과 형태가 획일적이었고, 그 쓰임도 오롯이 주거에만 머물렀지만 지금의 주거 공간은 달라졌다.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로 거주와 업무를 동시에 보는 공간으로 진화하거나, 가족 단위와 구성의 변화로 따로 또 같이 살아가는 공동의 공간으로 해석하거나, 메말라가는 공동체 정신을 내가 선택한 공간의 커뮤니티에서 찾기도 한다. 주거 공간에 대해 안팎으로의 목적과 의도가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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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드플레이스의 내부. 에이라운드 건축 누리집 갈무리

그간 다세대주택은 아파트로 옮겨 가기 전 잠깐 사는 ‘남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월셋집 못 하나 박는 것도 덜덜 떨며 인테리어는 무슨, 포스터 하나 거는 것도 포기하기 십상이었던. 그러나 이제는 크기에 상관없이, 기간에 상관없이 내가 사는 공간에 대한 애정도가 높아졌다. 잠깐 살 곳이라도 나의 정체성과 취향을 듬뿍 담은 곳으로 나답게 살기를 원한다. 버는 만큼 열심히 ‘집꾸’(집꾸미기)도 하고, 공간에 이름도 지어주며 애정과 정성을 더한다. 마치 나의 브랜드처럼. 인스타그램만 둘러봐도 #○○홈, #□□하우스, #○○○호 등 내 집에 대한 이야기가 늘어나고 있다.


“너 어디 살아?”가 아니라 “너 어느 아파트 살아?”라고 묻는 요즘, 나는 이 자조 섞인 말에서 반대로 희망을 보았다. 이제는 지역 단위에서 공간 단위로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니까. 어디에 살더라도 나다운 정체성과 브랜드를 만들면, 그곳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아파트의 브랜드가 늘어나듯, 크고 작은 나만의 공간에 브랜드가 입혀져 가고 있다. 이제 막 돛을 단 빌라의 소중하고 귀여운 항해를 자꾸만 응원하고 싶어지는 까닭이다.


임지선(브랜드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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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집의 외관. AOA 아키텍츠 건축사무소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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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드플레이스의 내부. 에이라운드 건축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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