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뒤에 서있던 진짜 산악인, 임일진에게 바칩니다
영화 ‘알피니스트: 어느 카메라맨의 고백’
[영화 ‘알피니스트: 어느 카메라맨의 고백’]
히말라야서 생 마감한 임일진 감독 이야기, 김민철 감독이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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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 감독이 임일진 감독에게서 이메일을 받은 건 2014년이었다. 독립 다큐 제작을 하던 김 감독은 이메일 속 산악 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실험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장면이 있었어요. 그러다 다소 뻔한 방송 다큐 영상이 이어졌고요. 이 사람 뭐지? 호기심이 일었어요.” 지난 8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서 만난 김 감독이 말했다.
임 감독과 1년 넘게 만나 술잔을 부딪치다 보니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았다. 임 감독은 산악인이던 아버지 손에 이끌려 어릴 때부터 산에 올랐다. 대학에서 산악부 활동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직업 산악인이 되기엔 실력이 부족하단 걸 알고 좌절했다. 대신 그는 카메라를 들었다. 일본에서 공부해 산악 촬영 전문가가 됐다. 그렇게라도 산에 오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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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감독이 보기에 그의 가슴속엔 산악인이 되지 못한 콤플렉스, 산에 대한 열망, 유명해지고 싶다는 공명심 등이 뒤얽혀 있었다. 그걸 영화로 풀어내보고 싶었다. “같이 영화를 만들어봅시다.” 공동 연출을 하기로 하고 울주세계산악영화제 제작비 지원 프로그램 ‘울주서밋’에 지원해 선정됐다.
이들에겐 임 감독이 찍은 네차례 원정 영상이 있었다. 2009년 임 감독은 김형일 원정대와 처음 히말라야에 갔다. 셰르파와 산소통 없이 알파인 방식으로 해발 7000m가 넘는 고봉에 오르면서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이듬해 다른 원정에서 실패를 맛본 이들은 이를 만회하고자 2011년 36시간 안에 촐라체에 올랐다 내려오는 도전에 나섰다. 하지만 김 대장과 장지명 대원은 등반 도중 추락사했다. 베이스캠프에서 이를 지켜보던 임 감독은 눈물만 삼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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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김창호 원정대와 에베레스트 무산소 원정길에 올랐다. 김 대장과 서성호 대원이 무산소 등정에 성공했다. 하지만 서 대원은 하산길에 기력이 떨어져 숨을 거두고 말았다. 임 감독은 현지에서 주검을 태우는 장면까지 고스란히 담았다. 성공만을 비추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 가려진 실패와 죽음은 기존 산악 다큐에서 좀처럼 다루지 않는 내용이었다.
이를 편집하고 임 감독 내레이션을 입혀 만든 영화 <알피니스트>는 2016년 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서 상영됐다. 하지만 김 감독은 이를 완성본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영화를 통해 임일진이라는 사람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잘 안 드러났어요. 임 감독을 찍으려 하면 ‘나는 카메라 뒤에 있어야 하는 사람’이라며 거부했거든요. 그는 입버릇처럼 ‘나는 산악인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내 눈에는 산악인으로 보였어요. 그걸 담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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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절없이 시간만 흘렀다. 이대로 가면 영화를 완성 못 할 것 같았다. 2018년 김 감독은 임 감독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몇년 만에 잡힌 원정 등반을 떠나기 이틀 전이었다. 그는 날이 서 있던 과거와 달라진 태도를 보였다. “산악인이 되고 싶었지만 안 되는 걸 안 순간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산악 영상을 멋지게 찍으려고 연출도 하고 포장도 했는데, 의미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그는 고백했다.
이틀 뒤 임 감독은 김창호 원정대와 히말라야로 떠났다. 그리고 구르자히말산 등반 도중 강풍을 만난 임 감독, 김 대장 등 5명은 주검으로 발견됐다. “상주가 된 심정”으로 장례를 치른 김 감독은 못다 한 숙제를 시작했다. 임 감독이 남긴 모든 영상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다시 편집했다. 그러면서 예전엔 몰랐던 임 감독의 진짜 모습을 발견했다. 생전 마지막 인터뷰까지 넣어 영화를 새롭게 완성하며 고인을 기렸다. 그 결과물인 <알피니스트: 어느 카메라맨의 고백>은 ‘산악인에게 헌사를 바친 카메라맨에 대한 헌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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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애초 지난 2월에 개봉하려 했으나, 코로나19 사태로 연기해야 했다. 대신 지난 2일(현지시각) 멀리 이탈리아에서 낭보가 들려왔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산악영화제로, 올해 68회를 맞은 트렌토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은 것이다. 영화는 임 감독 2주기(10월12일)에 맞춰 10월8일 개봉할 예정이다.
“임 감독 사망 소식을 듣고 가장 그다운 방식으로 떠났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덜 슬펐던 것 같아요. 임 감독은 지금 하늘에서 웃고 있을 겁니다. 자신의 영화가 상도 받고 개봉까지 앞두고 있으니까요. 그는 진정한 알피니스트(산악인)였습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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