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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 찾는 모험…나만의 향수 만들기

[ESC]

조향사 따라 기자가 자신의 향수 제조


향수 이름은 ESC “뿌릴 때마다 애착이 가”


연인 향수 만드는 20대도 많아


최근 늘어나는 개인 향수 제조 공방들


향수 제조.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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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좋아하는 향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구체적인 취향을 찾아가는 모험. 내 코를, 내 선택을 믿어보자.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조향 연구소 ‘살롱 드 느바에’에서 다양한 향료를 골라 향수를 만드는 원데이 클래스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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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향료 병 44개가 선반에 쪼르륵 늘어서 있었다. 아이리스, 프리지어, 아카시아, 장미처럼 익숙한 꽃향기들과 오스만투스(금목서), 뮤게(은방울꽃)등 이름이 낯선 향들. 샌들우드처럼 나무에서 유래한 향들과 허브류, 따스한 살 냄새로 남는 머스크 향도 대여섯 종류다. ‘화이트 페더’(흰 깃털)나 ‘시 솔트’(sea salt)같은 이미지를 1차로 조향해둔, 반쯤 완성된 향수들도 있었다. 나만의 향수를 만드는 첫 단계. 우선 하나씩 향을 맡아보고 호감인 향을 10~15개를 골라야 한다. 깊이 고민하지 말고 코 감각에 맡겨보자. 냄새를 맡다 보면 오래된 기억이 섬광처럼 스치기도 한다. 옛날 주방 세제 냄새가 퍼뜩 떠오르는가 하면, 엄마 장롱을 몰래 뒤질 때 맡았던 시고 화한 나무 향도 있다. 내 향수가 달콤하면서 푸릇하고 나무 냄새가 폴폴 나길 바라면서 14종류를 골랐다.


다음은 산수 시간이다. 고른 향료들의 무게 총합이 5g이 되도록 배분해 부향노트에 옮겨 적는다. 어떤 향료를 얼마나 사용했는지 등의 수치를 기록하는 부향노트는 내 향수의 설계도다. 향을 마구 섞다가 완성된 향수가 엉망이 되면 어쩌나 하고 걱정도 된다. 이때 각자의 부향노트를 기본으로 전문 조향사가 도움을 준다. “큐컴버(오이)는 아주 적은 양으로도 향수 전체의 인상을 좌우하니까 오이 향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양을 조금 줄여보라”고 하거나 “튤립은 지나치게 넣으면 전체 향이 느끼해지기 쉬우니 비율은 약간 낮추는 게 좋다” 등 조언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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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의 배분이 끝났으면 고른 향료의 무게를 재서 병에 옮겨 담을 차례다. 원료 향의 가격은 1㎏당 100만원에서 3000만원까지라고 한다. 내 향수병에 0.3g 옮겨 담은 샌들우드 원료는 1㎏당 8~900만원 선이다. 향료 병 스포이트에 다른 향이 닿으면 교차오염이 되어 병 전체를 못 쓰게 되니까 주의해야 한다.


개인이 고가의 내추럴 원료를 잔뜩 넣어 만든 향수를 팔아도 될까? 답은 ‘안 된다’이다. 오렌지나 샌들우드 같은 천연 향 원료도 피부나 호흡기 관련 독성을 연구한 자료에 따라 일정 비율 이하로 사용해야 하는 국제 화장품 규격을 따라야 한다. 국내법상 화장품 제조 판매업에 대한 허가가 없는 개인이 향수를 제조하거나 유통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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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량한 향수 원액 5g에 더하는 향수 베이스에는 정제수와 식물성 발효 주정 에탄올, 산화방지제, 용매제 등이 있다. 자식 같은 향수가 완성되었으니 이름을 붙여야 한다. 오랜만에 더하고 빼고 산수를 하느라 피로해진 뇌가 멈춘 듯했다. 쉽게 가자. 향수 이름은 ‘이에스시’(ESC)로 정했다. 이날 같이 수업에 참여한 이들에게 ‘이에스시’ 향이 어떤가 물었다. “우아해요!” 친구 사이인 허재윤(29)·이유림(28)씨의 평가다. 허씨와 이씨의 향수는 풍성하고 달콤한 부케 느낌이 났다. 허씨의 향수는 파릇한 인상이 강했고, 이씨의 것은 뒤끝이 좀 더 상큼했다.


이장우(38)씨는 함께 온 여자친구 오은지(30)씨보다 코가 예민하지 않아서 걱정이라더니, 웬걸! 그는 팔면 당장 사고 싶을 정도로 썩 괜찮은 향수를 만들었다. 많은 종류의 꽃 원료 향을 넣었는데도 제라늄 잎 오일과 ‘우디 아로마틱’이 균형을 잘 잡아 쌉쌀하고 상쾌한 향이 탄생했다. 오씨가 만든 향수는 단정하고 맑은 물 같은 인상이 강했는데, 향의 주인과 똑 닮았다. “향수를 선물하면서도 여자친구가 어떤 계열을 좋아하는지 잘 몰랐는데, 같이 와서 향을 경험해보고 서로의 취향을 알아가니까 향긋한 즐거움을 더하는 기분이다.” 장우씨의 말이다. 향을 배분하고 계량할 때는 차분하던 수업 분위기가 각자 만든 향수를 비교하면서 달라졌다. 확 피었다. 웃음과 탄성이 터진다.


만든 향수는 바로 사용해도 되지만, 약 5주 정도 김치가 익듯이 숙성을 거치면 더 좋단다. 갓 만든 ‘이에스시’는 바닐라의 달콤한 향이 치고 올라왔으나, 열흘이 지나자 신선한 식물 줄기 냄새가 앞서면서 바닐라는 머스크(사향 냄새) 곁에 얌전히 가라앉았다. 향수가 천천히 완성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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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반이 소요된 수업은 5만원. 의도한 향을 정확하게 구현하는 일은 전문가의 영역이고, 나는 내 코에 기대서 우연한 결과물을 만들었지만, 내가 하나씩 고른 향이라서 그런지 뿌릴 때마다 애착이 간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향수 만들기 체험하는 곳은 여럿이다. 궁금한 향료나 평소 좋아하는 향료가 충분히 준비되어 있는지 후기 등을 검색하면 도움이 된다.


향수 제조 체험 공간 여러 곳 중, ‘살롱 드 느바에’를 찾아간 데는 이유가 있다. 수입 향수가 이끄는 국내시장에서 이곳은 한국 토종 브랜드로 제조한 향수 대부분을 유럽에 수출한다. “스위스 쪽에서는 ‘퓨어 워터’의 주문이 많고 중동 쪽에선 하누넘, 감로가 반응이 좋다.” 하누넘, 감로, 이스랏 블로썸, 바이올레타 오도라타, 퓨어 워터 5종의 향수를 만든 ‘느바에’(Nevaeh)씨의 말이다. 불어처럼 들리는 그의 이름은 ‘헤븐’(Heaven)의 영문 철자를 뒤집은 것으로, 그는 한국인 여성 조향사다.


일반적인 향수는 처음 향을 맡으면 가벼운 시트러스 향가 나고, 이어서 묵직한 나무 계열 향이 발향되기 마련이다. 하누넘은 일반적인 발향 순서를 뒤집어 만든 향수다. 이스랏 블로썸의 향도 매력적이다. 생자두와 앵두와는 다른 풋풋한 새콤함이 느껴졌는데, 마냥 발랄하지 않은 고상함이 깔려 있었다.


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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